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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에서 ‘국민’으로 살아가기

by 낮달2018 2021. 10.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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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의 국가인권위 국정감사와 촛불시위

▲ 국가인권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안경환 국가인권위원장 등이 선서를 하고 있다.

인권위 국정감사, ‘국민’의 기준?

 

어떤 자리에 있든 ‘국민이 맞느냐?’는 힐난을 받는 것은 그리 유쾌한 경험이 아니다. 일제 강점기 때 ‘비국민(非國民)’(일제 강점기에, 황국 신민으로서의 본분과 의무를 지키지 않는 사람을 이르던 말)을 떠올릴 일은 아니지만, 무언가 한 국가의 구성원으로 대단한 ‘흠’을 가진 게 아니냐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으니 말이다.

 

어저께 이 힐문을 받은 이는 안경환 국가인권위원장이다. 국가인권위 국정감사에서다. 이유는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촛불시위에서 경찰이 인권침해를 한 사실이 있다’라며 경찰 간부에 대한 징계를 권고했기 때문이다. 이런 힐문을 던진 이는 여당의 한 의원이었다. 잠깐 텔레비전 화면에서 그 장면을 봤는데, 이 여성 의원은 아주 고음으로 안 위원장을 몰아붙였다.

 

막상 국민이 맞느냐는 질문을 받은 안 위원장이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는 화면에 나오지 않았다. 명색이 독립기구인 국가인권위원장이 본연의 업무를 수행한 데 대해 여당 의원으로부터 그런 막말을 듣는 기분은 어땠을지를 짐작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기실 인권위의 이번 권고는 한참이나 때늦은 것이었다. 지난 5월 이후 촛불집회 때문에 숱한 시민들이 마구잡이로 연행되고, 경찰의 폭행에 노출되고 있을 때도 인권위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모든 기관이 정부의 수족처럼 움직일 때, 국민이 마지막 희망으로 인권위에 100여 건의 진정을 제기했음에도 인권위는 답을 내놓지 않았었다. 뒤늦은 이번 권고는 그나마 인권위원회의 존재 이유를 확인시켜 준 최소한의 조치였다.

 

예의 질문을 한 의원의 논리는 추측건대 대충 이런 것일 거다. 촛불시위에서 폭력이 난무했다. 이 폭력을 진압하는 것은 당연한 경찰의 임무다. 그런데 그 임무를 충실히 수행한 경찰 간부를 징계하라고? 그게 같이 ‘국록’을 먹는 기관인 인권위에서 내놓을 의견이냐? 이 힐난 속에는 ‘한 식구끼리 감싸주어도 뭣할 판에 웬 어깃장이냐’라는 억하심정이 끼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안 위원장은 “위원회는 국가 공권력에 의한 침해만 조사하고 국가기관 상대로 권고하는 권한밖에 없다.”라는 사실, 즉 국가인권위원회의 성격과 권한을 분명히 밝혔지만, 상황을 바꾸지는 못한 듯하다. 이어서 여당 의원들은 “국가인권기구가 헌법상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거나 “인권위의 임무 중 92.5%가 국민권익위원회 직무와 중첩된다.”라면서 ‘인권위 무용론’을 펴기도 한 모양이다.

 

어떤 의원은 인권위원장이 시민단체 참여연대 간부 출신이 많다는 점을 지적하며 “(인권위가) 시민단체 사랑방이냐. 채용장이냐. 왜 인권위만 정부 지침을 안 따르는 초헌법적 기관으로 남아 있냐”라고 목소리를 높였다고 한다. ‘인권위를 폐지하자’라는 주장만 안 했을 뿐, 사실은 ‘폐지가 답’이라고 강변하고 싶었을 것이다.

▲ 인권위 누리집에서

이 어쩌면 만화 같은 뉴스를 보고 난 기분은 한 마디로 ‘찝찝하고 씁쓸하다’. 국정감사에서 피감기관을 혼내는 것은 헌법기관인 국회의원들의 특권이라고 치자. 그러나 인권위 국정감사 풍경에서 드러난 좀 살벌하다 싶은 ‘편 가르기’의 논리와 ‘인권’에 대한 선량들의 몰이해는 걱정스럽다 못해 한심할 지경이다.

 

촛불시위와 관련 유모차 부인을 증인으로 불러, 경우에 없는 호통을 치면서부터 일찌감치 알아는 봤다. 그들의 국감이 정작 국민의 이해가 아니라 ‘자당(自黨)과 권력의 이해’에 치우쳐 있음을 말이다. 촛불 시위대의 폭력은 연인원 수백만 명의 시민들이 참여한 촛불의 통제되지 않은 ‘일부’였고, 그걸로 그 시위의 성격을 규정하는 것은 결코 온당한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촛불시위에 대한 권력의 시각은 거의 청맹과니 수준이다. 그들은 그 시위의 불법성에 집착하다 그예 모성에서 비롯한 어머니들의 유모차 시위에도 외눈박이 눈길을 들이댄다. 그게 대통령도 언급한 바 있는 ‘아동학대론’이다. 그들은 마치 불법에 대한 강변에 집착하다 상식선에서 판단할 수 있는 평정심조차 잃은 듯이 보인다.

 

유모차 시위에 대해서 ‘어머니, 아기’라는 순수한 사랑의 이미지를 ‘불법집회를 미화하는 수단’으로 이용했다고 한 모처의 논평부터 이 시위가 ‘광우병국민대책회의’와의 공모를 통한 조직적 불법시위라는 ‘배후론’, ‘자식들을 인질로 삼아 경찰을 압박했다는 ’인질론‘에 이르기까지 갖가지 논리가 난무한다. 이들 주장을 가로지르고 있는 공통점은 ’달을 보라는 데 손가락만 쳐다보고 있다‘는 점이다.

 

무려 석 달에 걸친 촛불의 본뜻을 굳이 다시 확인할 일은 없다. 상식적이고 평균적인 한국 사람이라면 그걸 이해하지 못하는 이는 없다. 그러나 권력은 촛불에 반영된 여론과 민심을 살피는 게 아니라, 그 과정에서 우발적으로 발생한 폭력 시위만을 노려보며 눈을 부라리고 있다.

 

촛불시위와 관련한 경찰의 폭력도 국제사면위원회의 조사 권고 등으로 이미 국제적으로 확인된 것이다. 그 불을 보듯 분명한 사실에 대한 조사 끝에 인권침해 사실을 지적한 인권위의 권고는 오히려 뒤늦은 것일 뿐, 그 진위 여부를 가릴 일은 아니다.

 

그런데 위 국감장의 분위기는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다. 안 위원장더러 ‘국민 맞냐’라고 물었던 국회의원의 분류에 따르면 적어도 우리 국민의 과반수는 ‘비국민’의 불명예를 감수하지 않으면 안 될 듯하다. 그리고 그 분류의 잣대도 명백해 보인다. 또, 그 분류가 겨누는 것은 ‘편 가르기’다.

 

촛불시위의 폭력성을 인정하는가, 하지 않는가. 경찰의 시위진압은 당연한 업무수행인가, 아닌가. 촛불시위는 순수한 시위였는가, 아니면 배후가 있는가……. 단순화하면 그것은 이렇게 정리된다. 촛불은 정당한가, 아닌가. 촛불은 좋은가, 나쁜가…….

 

이 땅에서 ‘국민’으로 사는 건 참 고단한 노릇이다. 분노와 염려로 촛불시위에 참여한 시민들은 중국발 멜라민 파동에 즈음해선 ‘왜 촛불을 들지 않는지’에 대한 답변을 강요당했고, 저들이 스스로 내린 답에 따라 팔자에 없는 ‘반미주의자’가 되기도 했으니 말이다.

 

그 권력도 ‘국민’으로부터 ‘위임된 것’

 

인권위 국감에서 드러난 보다 본질적인 문제는 이른바 ‘선량’들의 인권에 대한 몰이해가 아닌가 싶다. 인권위의 권고에 잔뜩 화가 난 여당 의원들이 쏟아낸 발언 속에 들어 있는 ‘인권’에 대한 인식은 매우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이른바 ‘실용’을 최고의 가치, 국정의 지향점으로 삼고 있는 이명박 정부는 인수위 시절부터 인권위에 대해 다른인식을 드러내기는 했었다. 정부나 국회에 소속되지 않은 우리나라의 인권위원회는 그 독특한 위상에서 다른 나라의 모범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인수위에선 인권위의 대통령 직속 기구화를 들고 나왔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유엔의 “국제인권법의 국내적 실현을 위해 각국에 특별한 인권기구 설치 적극 권장”에 따라 2001년 11월 설립된 인권기구다. 1993년 유엔총회에서 채택된 ‘파리원칙’은 국가 인권기구 설립에 관한 국제사회의 보편적인 기본 준칙이다. 즉 “국가 인권기구는 다른 국가권력으로부터 독립적 지위를 보장받기 위하여 그 구성과 권한의 범위를 헌법 또는 법률에 의하여 구체적으로 부여받아야 한다.”라는 것이다.

 

1997년 김대중 대통령 후보의 공약으로 떠오른 국가인권기구 설립 논의는 ‘국가인권기구의 지위와 권한 문제’ 등으로 여러 해에 걸친 법무부와 인권단체 사이의 갈등을 거쳐 독립적 위상을 가진 국가인권위원회로 탄생한 것이다.

▲ 국가인권위원회

인권위의 이 같은 설립과정의 역사성을 고려한다면 어제 국감에서 제기된 여당 의원의 ‘초헌법적 기구’ 운운하는 주장은 별로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만약 인수위 안대로 인권위가 대통령 직속 기구로 바뀌었다면 예의 뒤늦은 권고마저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이 여당 의원은 인권위 구성과 관련해서 ‘차라리 검찰청에서 파견받아 일하는 게 낫다’라고 비약하기도 했다.

 

민변의 성명에 있듯 인권은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권리’다. 그리고 그것을 보호하기 위해 모든 권력의 인권침해를 감시하는 것은 인권위 본연의 임무이면서 그 존재 이유가 된다. 당연히 인권위가 인권침해를 감시하는 기준은 오로지 ‘인권’일 뿐이다.

 

정권의 안위나 집권 여당 등 권력의 이해와는 무관하게 인권기구는 존재하고 그 본연의 목적을 지켜나가야 한다. 그러나 이번 국정감사는 역으로 그런 일반론을 새롭게 환기해 주었다. 진부한 비유지만 정권은 유한하지만, 국민은 영원하다. 권력의 안위는 잠깐이지만 인권은 인류가 존속하는 한 결코 변할 수 없는 보편적 가치이다.

 

국정감사는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의 업무다. 그리고 그들에게 그런 권한을 부여한 것은 국민이다. 때로 국회의원들은 이 단순 명쾌한 원칙을 잊어버리는 듯하다. 그들이 국정감사에 임할 때, 상기하여야 하는 것은 자신의 정치적 지향, 소속 정당의 이해, 그리고 권력의 의지가 아니라, 그런 다수 ‘국민의 위임’이라는 것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2008. 10. 31.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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