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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길 위에서

갱년기, ‘질병 혹은 죽음과 친해지기’?

by 낮달2018 2021. 9.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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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겪는 갱년기, 질병과도 친해져야 한다

▲ 내 출근길. 이런 오르막길이 태반이다 .

기본적으로 좀 ‘복잡한 인간’이다. 쓸데없는 망상도 잦은 편이고, 어떤 문제를 골똘하게 고민하는 데는 이력이 났다. 매사에 다분히 회의적이거나 냉소적인 면도 없잖아 있다. 돈키호테보다는 햄릿에 가깝고 낙관보다는 비관에 더 익숙하다. 감정의 기복도 적지 않다.

 

전입 2년차, 익숙해졌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쩐지 학년 초부터 기분이 마뜩치 않을 때가 많았다. 새로 만난 아이들과 낯을 익히는 가운데 제주도를 다녀왔는데 4월에는 월요병이라 할 만한 증세가 느껴졌다. 월요일마다 날이 흐렸고, 종일 기분이 울적했다. 날씨 탓인가 하면서 몇 달을 지냈다.

 

매사가 심드렁하게만 느껴지는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었지만, 유독 올핸 그게 심했다. 머릿속에 어떤 그림을 그리는 순간부터, ‘그래서 어쩔 건데, 그냥 물처럼 흘러가는 거야…….’ 하는 식으로 마음의 곬이 움직였다. 무언가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늘 희미하게 앞을 가렸고, 예전 같으면 단칼에 해치울 일인데도 어쩐지 자신이 없어서 멀거니 바라보기만 하기도 했다.

 

여름이 들면서부터 유난히 더위를 견디는 게 힘이 들었다. 원래 더위를 타는 편이긴 하지만, 유난스러울 정도는 아니었다. 수업을 하다가도 속에서 불이 활활 나는 듯한 느낌이 몹시 힘겨웠다. 올핸 유난히 더위를 못 견디겠다고 했더니 아는 의사는 ‘혈당을 자주 체크해 보라’는 충고를 해 주었는데, 정작 나는 아직 당뇨의 증상은 없다.

 

여름을 나면서 결국 더위가 괴로웠던 것은 나이 들면서 떨어진 체력 탓이거니 하고 정리했다. 문제는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면서 다시 불거졌다. 여전히 덥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려웠는데 기온이 훨씬 떨어진 한밤에 찬물을 뒤집어써도 한기가 전혀 들지 않았다. 물을 끼얹을 때마다 몸이 얼마나 뜨끈뜨끈한지가 새삼 깨달아지는 것이었다.

 

그런 몸의 부조화를 중얼댔더니 아내가 혈압을 재 볼 것을 권했다. 그렇다! 나는 학교 보건실에서 혈압을 쟀는데 한 차례는 좀 높았고, 또 한 차례는 높게 한번, 낮게 한 번이 나왔다. 여름내 체중이 조금 불었는가, 그게 주범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막연하게나마 위기감을 언뜻 느꼈다. 걸어서 출퇴근을 시작한 것은 그 다음날부터였다.

 

어제도 한참 걸어서 가고 있는데 앞에 승용차 한 대가 섰다. 같이 근무하는 선배 교사였다. 같이 가자는데 굳이 거절하려니 민망해서 타고 가다가 귀가 번쩍 띄는 소릴 들었다. 우연히 그런 내 증상을 얘기했더니 이 양반, 그게 뭐냐면 바로 ‘갱년기’ 증상이우, 하는데 나는 갑자기 흐릿하던 눈앞이 시원하게 개는 느낌을 받았다.

 

그도 비슷한 증상을 경험했다는 것이었다. 심할 때는 발에 열이 활활 나는 느낌까지 있었다고. 나는 막연하게 시달리고 있던 옅은 불안으로부터 해방되는 기분이었다. 그랬었구나. 공연히 얼굴에 홍조가 생기는 것 같은 증상도 그렇게 맞추니까 말끔하게 정리된다.

▲ 일주일쯤 걸어다닌 흔적. 화살표가 그 표시다. →는 편도, ↔는 왕복이다 .

인터넷 검색을 통해 들여다 본 ‘남자 갱년기 증상’은 내 기분과 맞아떨어지는 게 많다. 남성 갱년기의 주증상은 ‘피로·불면·골다공증·심계항진(心悸亢進, 두근거림)·안면홍조·근력 저하·건망증·불안·우울·자신감 결여·식욕부진·관절통·빈뇨’ 등인데, 구체적 검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골다공증 외에 불면이나 식욕 부진, 관절통, 빈뇨 등을 빼면 내 증상과 비슷하다.

 

그런데 어디에도 몸에 열이 나는 듯한 증상은 보이지 않는다. 내 경우엔 이게 핵심인데……, 의사 후배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고개를 갸웃한다. 갑상선이니, 호르몬이 어쩌고 하는 전문 용어로 설명하는데 쉽게 알아들을 수 없다. 병원에 나와서 호르몬 검사를 받아볼 것을 권하는데, 다시 머리를 갸웃할 수밖에 없다.

 

‘갱년(更年)’의 뜻은 뻔하다. ‘해(연대)를 고친다’는 뜻이니 중년에서 노년(!)으로 바뀌는 변화가 곧 갱년인 것이다. 국어사전에서는 갱년기를 '인체가 성숙기에서 노년기로 접어드는 시기'로 설명한다. 대체로 주로 40~50세 사이에 발생한다는 이 갱년기가 뒤늦게 왜 내게 찾아왔는지 다툴 일은 아니다. 신체 기능의 저하는 나이 들면 자연스런 현상이다.

 

여느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신체 기능의 변화를 비교적 무심하게 받아들여 왔다. 체중이 늘거나 건망증이 심해지고 잠시라도 힘을 쓰고 나면 현기증이 일어나는 식의 변화는 누구나 겪는 일이다. 그러나 지속적으로 머리가 빠지는 걸 의식하게 되면서는 다소 비감한 기분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한편으로 어른들을 뵐 때나 챙겼던 ‘건강 관련 안부’가 자신의 일상이 되어 버리는 시기가 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심혈관계 질환 등의 성인병으로 세상을 뜨는 주변 지인들의 안부도 더 이상 나와 무관한 얘기는 아니다. 올 2월에는 내 친구 하나가 그렇게 가 버렸다. 그의 부음 앞에 우리는 말을 잃었다.

 

비슷한 상황이 나와 아내에게도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는 걸 인정해야 했다. 나는 내 삶에 아무런 안전판이 없다는 걸 깨닫게 된 지난해 여름, 종신보험에 가입했다. 보험이 예측할 수 없는 삶의 위기를 지켜 주리라고 믿는 건 순진한 생각일 테지만, 우리의 경우 선택지가 그리 많지 않았던 것이다.

 

여러 종류의 암이나, 간과 심장의 질환이 어느 날, 내게도 올 수 있다는 걸 받아들이게 되면서 나는 늘 그렇게 생각한다. 오래 살기를 원치는 않는다, 대신 살아 있는 동안은 건강할 수 있으면 좋겠다……. 아주 소박한 바람 같지만 기실 그 소박한 원망이 이루어지는 건 결코 쉽지 않다. 그러나 알면서도 그런 바람조차 포기할 수는 없지 않은가.

▲ 복원. 단 0.1Kg인데도 80 아래로 내려가는 기분은 전혀 다르다 .

담배를 끊은 건 4년 전쯤이다. 30년이 넘게 담배를 피웠는데, 어느 날 그게 단지 무익한 습관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하면서였다. 담배를 끊고 난 뒤에 인사를 많이 들었다. 원래 살빛이 좀 검은 편인데 담배에 찌들어 있던 안색이 두드러지게 좋아진 것이다. 인근 체육관에서 운동을 시작한 것도 비슷한 시기부터였다.

 

갱년기 건강은 흡연·과음을 삼가고 비만 예방을 위한 정상 체중 유지와 규칙적인 운동에 달렸다고 한다. 지난봄에 망설이다가 운동을 그만두었다. 도저히 시간을 내기가 마땅찮았던 까닭이다. 그래서 그런가. 지난여름 내내 체중은 80Kg을 간단히 넘어가고 있었다. 맞았던 바지 허리춤이 팽팽하게 죄이는 경험은 지랄 같다. 36에서 34까지 줄였던 허리 치수는 다시 35를 넘었다.

 

혈압을 잰 이튿날부터 나는 걸어 다니기 시작했다. 두어 달만이다. 지난 주 내내 걸어서 출퇴근하고 식사량을 줄이는 등 신경을 썼더니 어제 목욕을 다녀와 저울 위에 올라서니 바늘은 아슬아슬하게 80 아래로 떨어진다. 1, 2킬로그램은 식사조절만으로도 넘나들 수 있다. 문제는 그게 안정적이지 않다는 데 있을 뿐이다.

 

몸이 무겁다는 느낌은 없지만, 자꾸 늘어나는 체중을 확인하는 것은 결코 유쾌하지 않다. 갱년기가 문제가 아니다. 몸무게를 다스리는 일은 건강관리의 전부인 것처럼 보인다. 벽에다 ‘감량 3Kg’ 따위를 써 붙이고도 이르지 못했던 체중 줄이기, 이참에 해 봐? 하고 나는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묻고 있는 중이다.

 

 

2008. 9. 13.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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