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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드 반대 세 번째 집회, 모인 이 적다고 뜻도 작을까

by 낮달2018 2021. 9.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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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 번째 '사드 배치 반대 구미 촛불문화제'가 24일 오후 4시부터 구미역 광장에서 열렸다.

어제(24일) 오후 4시부터 세 번째 ‘사드 배치 반대 구미 촛불문화제’가 집회가 ‘촛불’ 없이 역전 광장에서 열렸다. 웬 촛불문화제를 대낮에 한담, 하면서 나갔더니 예상대로 집회 장소는 썰렁했다. 참여연대 대표를 만나서 왜 시간을 대낮으로 바꿨냐니까 글쎄 말예요, 하고 그는 싱긋 웃었다.

주말 한낮에 열린 세 번째 촛불문화제

첫 집회[관련 기사 : ‘구미맘(mom)’들이 밝힌 사드(THAAD) 반대 촛불] 끝에 예고했던 두 번째 집회가 9월 10일에서 9일로 하루 앞당겨지는 걸 나만 몰랐던 모양이다. 집회를 꾸리는 단체 소속도 아니었고 참여자들의 밴드에도 들어가지 않은 데다가 굳이 날짜도 확인하지 않았던 까닭이었다.

9일 밤늦게야 퍼뜩 떠오르는 느낌이 예사롭지 않아서 구미참여연대 페이스북으로 들어가 보니 이미 집회는 끝난 뒤였다. 쓴웃음을 지었지만 어쨌든 이러저러한 연락망과 무관하게 내 생활이 독립적이라는 걸 새삼 확인하는 느낌은 나쁘지 않았다.

두 번째 집회는 첫 집회보다 더 많은 이들이 모였다고 했다. 역시 구미맘들이 힘을 보탰고, 집회를 치러내면서 주최 측도 힘을 꽤 얻었던 듯했다. 집회 이후 밴드에 9백 명 이상이 들어와 북새통을 이루었고, 여기서 누군가가 집회를 토요일 오후로 하는 게 좋지 않겠냐는 제의가 있었단다.

“밴드에서 집회 일정에 대한 투표가 이루어졌던 모양이에요.
투표 결과가 토요일 오후로 나와 버렸고요.
아니라 싶으면서도 어쨌든 민주적인 방식으로 뜻을 모은 걸 어쩌겠습니까.”

▲ 북한의 5차 핵실험 때문일까, 주말이라 행인도 적지 않았는데도 서명대 부근은 한가했다.
▲ 주말인데다 대낮에 치러진 이번 집회는 촛불도 없었고, 참여 인원도 최소한이어서 다소 썰렁했다.
▲ 집회의 승패와 상관없이 아이들은 낯선 체험이 즐겁다.

시작 시간이 지났는데도 ‘장이 서지 않았다’. 좀 난감한 기분으로 바라보고 있었더니, 참가자들이 하나둘 연단 앞으로 가서 앉기 시작하면서 집회는 썰렁하게 시작되었다. 주변에서 집회를 돕는 이들을 포함해도 50명 남짓의 집회는 주최하는 이들이 성실하게 끌어가고 소수지만 참석자들이 적극적으로 호응하면서 제법 집회 꼴을 갖추어 갔다.

주말이라 행인도 적지 않았는데도 서명대 부근도 한가했고, 유인물 배포에 관심을 보이는 이들도 드물었다. 가끔 혼잣말로 비난조의 욕설을 하며 지나가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던 것 같다. 이런 이들 앞에서 참가자들은 쓴웃음을 짓는 것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다.

북한 5차 핵실험 이후 바뀐 분위기?

참석자들은 아무래도 북한의 5차 핵실험 이후로 분위기가 좀 바뀐 것으로 봐야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거기다 시간이 지나면서 대중의 관심이 떨어진 측면도 있을 게고, 이른바 제3부지라 해서 배치 지역이 성주 골프장으로 확정되는 분위기도 한몫을 했을 거였다. 무엇보다도 집회의 주력(?)이었던 구미맘들의 참여가 준 것은 주말 낮이라는 시간이 결정적이었다고 모두들 입을 모았다.

역전의 택시 정류장에선 차를 세워둔 택시 기사들이 좀 심드렁한 표정으로 집회를 곁눈질하고 있었는데 첫 집회에서와 마찬가지로 그들은 여전히 집회를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다. 무심히 행인들은 모두 사드는 나와 무관한 일이라고 말하고 있는 듯했다.

택시 정류장 옆에서 주변의 풍경을 살피다가 문득 마르틴 니묄러의 시 ‘나치가 그들을 덮쳤을 때’를 떠올린 것은 그래서일 것이다. 독일의 루터교 목사이자 반나치 운동가인 니묄러의 시 ‘나치가 그들을 덮쳤을 때’가 환기하는 것은 ‘정치적 무관심의 위험성’이다.


나치가 공산주의자와 사회민주당원을, 노동조합원과 유대인을 덮쳤을 때 그는 침묵했다. 왜냐하면 그는 공산주의자도, 사회민주당원도, 노조원도 유대인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그들에 자신에게 닥쳤을 때는 그의 주변에는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사드가 칠곡에 배치된다고 했을 때, 이어서 성주 성산리에, 성주 초전면에 배치된다고 하였을 때 사람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곳은 자신이 사는 곳과 꽤 떨어진 다른 동네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 사드 배치로 말미암은 위험과 불안이 자신의 것이 될 때, 주변에는 도와줄 사람이 남아 있기나 할까.

▲ 주최 측 인사들이 분전한데다 엄마들의 협조로 율동과 노래를 하면서 집회는 재미있게 진행되었다.

이번 집회에도 아이를 데리고 온 젊은 엄마들이 많았다. 역시 ‘구미맘’들이었다. 이들의 협조로 집회는 율동도 하고 노래도 배우면서 서글프지 않게 진행되었다. 5, 60대의 굳은 몸을 움직여 율동하는 주최 측 인사들의 분투에는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아이들과 함께 일어나 율동과 노래에 맞추어 열심히 몸을 흔들어준 엄마들의 이바지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6시께 집회는 뒷날의 촛불을 기약하며 끝났다.

사드 반대의 ‘민심’은 ‘북핵과 안보’를 넘을까

오늘 확인하니 어젯밤 치러진 이웃 김천의 사드 반대 집회에는 1만이 운집했고, 성주에선 800여 군민들이 모여 74번째 촛불을 밝혔단다. 보도에 따르면 이번 주 후반에 이른바 ‘제3부지’가 발표될 예정이고, 성주 초전 골프장이 확정적이라 한다.

지난 7월부터 두 달이 넘게 밝혀온 성주 농민들의 촛불과 뒤늦게 밝힌 김천시민들의 촛불에 담긴 농심과 민심은 ‘북핵’과 ‘안보’의 벽을 넘어서게 될 수 있을까. 아니면 사드 배치를 강행함으로써 한국이 미국의 미사일 방어(MD) 체계로 편입되는 걸 수용하면서 지역과 주민들을 냉전의 표적으로 넘겨주게 되는 것일까.

2016. 9. 25. 낮달

 


* 지난해 11월 민중총궐기 투쟁대회에서 경찰이 쏜 직사 물대포에 맞고 317일 동안 사투를 벌여온 백남기(70) 농민이 끝내 숨을 거두었다. 부당한 공권력의 폭력에 쓰러진 농민의 희생 앞에 정부는 단 한 번도 사과하지 않았고, 그 가해에 대한 수사도 진행하지 않았다.

317일간이나 사경을 헤매대 끝내 마지막 숨을 놓아버린 한 농민의 죽음 앞에 우리가 분노하는 이유다. 권력은 직권 남용과 비리 의혹으로 온 국민의 지탄을 받는 측근을 감싸는데 바쁠 뿐 선거를 통해 드러난 민의는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

그러나 다소 늦어지거나 미루어질 뿐, 역사는 곧 제 물길을 찾아가게 될 것이라는 건 진실이다. 역사의 진실 앞에 권력자 개인의 ‘불멸의 아집’(<한겨레>) 따위가 설 자리는 없다.

문제는 그걸 모르는 이들이 ‘떼’로 존재한다는 것. 권력의 의중을 헤아려 여론과 국민의 냉소도 아랑곳하지 않는, 집권당의 억지와 주사(呪辭)의 성찬이 연출하는 것은 정치의 ‘막장’이다.

백남기 농민의 명복을 빈다. 뒷일은 남은 사람들에게 맡기시고 쌀값 폭락도, 수입쌀도, FTA도 없는 곳에서 편히 쉬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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