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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냥공장 떠난 동네, ‘성냥 마을’로 되살아났다

by 낮달2018 2021. 9.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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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 성냥 마을 기행]성냥공장 대표 기증 재산으로 마을은 복합문화공간으로 재생된다

▲ 의성 도동리의 마을미술프로젝트는 성냥공장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공장 아래 골목길 축대 위에선 읍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지난 16일, 의성의 ‘성냥 마을’을 다녀왔다. 성냥 마을이란 경북 의성군 의성읍 도동리, 성광성냥 공장 주변 마을을 이르는 이름이다. 성광성냥 공장 이야기를 기사로 쓴 게 이태 전인 2019년 3월이다. 코로나19로 막혀 버린 2년여 동안 이 마을에도 적잖은 변화가 있었다. (관련 기사 : 딱 하나 남은 성냥공장, 이대로 보내야 할까요)

 

성냥공장 대표는 공장 터와 건물을 기증하고 떠났다

 

팔순을 넘긴 고령이었지만, 만났을 때 건강해 보였던 성광성냥의 손진국 대표는 이듬해인 2020년 2월에 세상을 떠났다. 국내에 하나 남은 성냥공장을 관광자원이든, 문화유산이든 활용되어 사람들의 기억에 남을 수 있기를 바랐던 그는 공장 터와 건물, 성냥 생산 설비 190점 등을 의성군에 기증하고 빈손으로 세상을 떠났다.

 

의성군은 성냥공장 주변을 의성의 대표 역사문화관광 자원으로 개발하기 위해 주변 땅도 사들였다. 성냥공장은 문체부의, 보존 가치가 높은 유휴공간을 문화명소로 발굴‧활용하기 위한 사업인 ‘2019 유휴공간 문화 재생 대상지 공모’에 선정되어 있었다. 성냥 마을은 앞으로 5년간 총사업비 178억 원을 들여 의성 근대산업의 역사를 간직한 공간으로 복원‧재생된다.

 

성냥 마을은 의성군의 2차 ‘마을미술프로젝트’(2020.4.1.~ 2021.3.31.) 이후 모습이 꽤 달라졌다. 문체부 공모에 선정된 이 마을미술프로젝트는 “쇠락한 마을(공간)을 예술로 새롭게 창조하는 사업”이다. 의성군이 시행한 사업 주제는 성냥공장에서 일하던 주민들을 모티브로 한 ‘발화(發話), 남겨진 기억의 풍경’. 작가 12명과 500여 명의 주민이 참여한 이 사업의 결과가 ‘성냥 마을’로 변모한 것이다.

▲ 성냥공장 아래 슬래브건물 외벽에는 성광성냥 상자를 가득 실은 소달구지와 그 고삐를 잡은 청년을 흑백으로 그려놓았다.
▲ 성냥공장으로 오르는 언덕길 길섶의 철제 울타리는 볼트나 너트, 톱니바퀴 따위로 장식해 만들어져 있었다.
▲ 철조망 울타리에는 쇠 파이프로 만든 나뭇가지 위에 쇠로 된 새집을 올리고 거기에 철제의 목이 긴 새 두 마리를 마주 보게 세워 놓았다

일간지에서 성냥 마을 소식을 확인한 뒤 나는 관련 정보를 검색하여 갈무리한 뒤 지난 16일 도동리를 찾았다. 마을 미술 작업은 성냥공장에서 의성장터에 이르는 골목 곳곳에 그 시절을 되돌아보게 하는 미술 작품으로 진행됐다. 공간의 원형을 건드리지 않는 범위에서 벽화나 조각 등으로 낡고 우중충한 분위기를 바꾸어내는 공공미술의 형식은 어디에나 비슷하다.

 

마을미술프로젝트, “발화, 남겨진 기억의 풍경”

 

대상이 된 도동리의 골목은 짧았다. 사업은 성냥공장에서 읍내 도로로 내려오는 좁은 골목길과 이면도로에 집중되었고, 장터 앞 도로에는 벽화 몇 군데와 상가 간판에 그 흔적이 보일 뿐이다. 깨끗하게 페인트칠을 한 집들의 외벽에는 담쟁이넝쿨이 그려졌고, 골목 어귀의 담벼락에는 성냥 상자를 가득 실은 소달구지와 그 고삐를 잡은 청년을 흑백으로 그려놓았다.

 

꼬부라진 내리막길 양옆의 낡은 슬레이트집과 기와집 담을 따라 조그만 창문 외벽에는 나뭇가지나 고양이 따위를 조각한 창틀을 덧대어 놓았다. 그런 창틀이 10여 개소였고, 빨간 성냥개비 조형물도 흔했다. ‘성냥공장 가는 길’이라고 쓰인 포장한 골목길 옆 빈 화단과 도로 끝 아사어린이공원의 정문 아치 위, 커다란 나무 구조물에도 빨간 성냥개비 조형물이 꽂히거나 달려 있었다.

 

낡은 텔레비전 안테나에는 연 모양의 조형물을 걸었고, 언덕 길섶의 철제 울타리는 볼트나 너트, 톱니바퀴 따위로 장식해 만들어져 있었다. 그 위쪽 울타리는 쇠 파이프로 만든 나뭇가지 위에 철제의 새집을 동그마니 올리고 그 위에 목이 긴 새 두 마리를 마주 보게 세워 놓았다.

 

시가지가 내려다뵈는 언덕의 축대 위 울타리에는 아이를 업은 아낙과 가방을 든 남자 등 사람 셋을 검정 철제 모형으로 세워놓았다. 축대 맨 왼쪽에 빨간 성냥개비 아래 세워놓은 글자 조형물 ‘since 1954’의 숫자는 성광성냥공업사가 문을 연 때다. 세 사람은 어떤 형태로든 성냥공장과 관계를 맺은 노동자거나 그 가족일 것이다.

 

마을 미술 작품은 그 나름대로 성냥공장 이야기라는 스토리텔링을 따라 이어지고있었다. 성냥공장에서 내려오는 좁은 골목을 빠져나와 의성장터로 이어지는 도로변에 있는 3층 건물 옆벽에 새겨진 글귀가 스토리 텔링의 출발점이다.

 

음표 대신 불탄 색색의 성냥개비로 이루어진 오선지 위에 사람들의 발화(發話)가 기록되어 있다. 지역 주민한테서 수집한 성냥공장에 대한 기억과 도동리 마을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저마다 간직한 삶의 소회다.

 

“평범함이 가장 큰 복이다”, “바깥양반 먼저 가고 자식 넷에 빚 갚고 사느라 고생한 기억밖에”, “성공이란 별 탈 없는 게 성공이다” 같은 발언인데 이는 ‘발화, 남겨진 기억의 풍경’이라는 주제로 수렴된다.

▲ 의성장터 인근 건물 외벽의 ‘발화, 남겨진 기억의 풍경’. 성냥공장에서 일하던 주민들을 모티브로 한 글들이 새겨져 있다.
▲ 성냥공장으로 오르는 언덕길 바닥에는 ‘성냥공장 가는 길’이라고 페인트로 쓰여 있다.
▲ 마을미술프로젝트에서 가장 흔히 쓰인 오브제가 성냥개비다. 모형 나무 가지끝에 성냥개비 전등이 달려 있다.
▲ 의성장터의 대장간. 60여 년 역사의 대장간은 마을미술프로젝트의 도움으로 쇠로 된 글자 간판을 달았다.

마늘 장터로 가는 길, 담벼락에 ‘할매 도자기 벽화’가 있다. 벽화 옆에 “할매 화가의 대표 작품들을 도자기 벽화 위에 재현해 보는 예술가와 할머니들이 함께 하는 콜라보 작업”이라고 씌어 있었다. 손을 맞잡은 할머니와 손자, 할아버지와 손녀의 실루엣을 중심으로 민화풍의 동식물을 그려 넣은 타일 벽화였다.

 

장터로 들어간 마을 미술은 의성 대장간 앞에서 끝났다. 60여 년간 장터에서 쇠를 두드리고 벼려 온 장인의 대장간은 마을미술프로젝트 덕분에 쇠로 된 글자 간판을 달았다. 대장간 전면의 빨간 철판에는 낫과 호미 같은 농기구 그림과 함께 ‘환하게 따뜻한 그리운 이야기’를 펼쳐 놓았다.

 

복원 재생된 공간은 ‘자랑스러운 일터’를 재현해 줄까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성냥 마을의 미래를 그리기는 쉽지 않다. 5년간 총사업비 178억 원을 들여서 만들어지는 “의성 근대산업의 역사를 간직한 공간을 복원‧재생해 관람과 체험을 한 번에 경험할 수 있는 차별화된 복합문화공간”은 어떤 모습일까.

 

열일곱에 시작한 일을 일흔여덟까지 놓지 않았던 손 대표에게 성냥공장은 전 생애를 바친 일터요, 그의 보람과 긍지였다. 그가 수십억에 이르는 공장 터와 생산 설비를 기꺼이 내놓은 것은 그것이 부동산 가치로 평가되지 않고, 한 시대를 치열하게 살아간 이들의 자랑스러운 일터였다는 사실을 추인받고 그것이 오래 기억되기를 바랐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 성냥공장 터와 건물, 생산설비를 의성군에 기증하고 떠난 성광성냥공업사 고 손진국 대표. 사진은 별세하기 1년 전의 인터뷰 때 찍은 것이다.

그런 뜻에서 성냥공장 사람들이 꾸려낸 한 시대를 담아낸 근대산업 유산으로 이 마을을 재생 복원하는 일은 이 마을과 도시의 재생을 맡은 이들에게 주어진 만만찮은 과제인 셈이다.

 

‘성냥공장 유휴공간 문화 재생’ 사업은 2025년에 마감된다. 나는 복원될 의성 근대산업의 역사를 간직한 성냥공장이 얄팍한 상업주의에 물들지 않고 잃어버린 한 시대를 추체험할 수 있는 ‘문화공간’으로 거듭나기를 기대하며 성냥 마을을 떠났다.

 

2021. 9. 25. 낮달

 

 

 

쇠락한 동네에 불 지필 '성냥마을'에 바라는 것

의성 성냥공장 마을은 복합문화공간으로 재생 중... 자랑스러운 일터로 기억되길

www.oh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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