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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길 위에서

역사의 퇴행, 혹은 어떤 예후(豫後)

by 낮달2018 2021. 7.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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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에 대한 보수의 반격

▲  한겨레 그림판 (7. 1.)  ⓒ  장봉군

‘능숙한 집행자’로서 솜씨를 보임으로써 국민을 감동하게 하고자 했던 이명박 대통령의 첫 외교 업무는 뜻밖의 복병을 만났다. 캠프 데이비드에서 몸소 카트카를 운전하면서 부시와 진한 우정을 과시한 것까진 좋았고 쇠고기 수입이라는 선물로 한미 FTA를 매듭짓고 싶었던 그의 ‘쾌도난마’식의 행보가 ‘한미동맹 복원’이라는 목표를 가볍게 넘을 듯했다. 그러나 정작 그것은 국민의 먹을거리에 대한 ‘소박한 우려’를 넘지 못하고 그예 좌초당하고 말았다.

 

국민의 우려 앞에 굳이 ‘소박한’이라는 수식어를 쓰는 까닭은 자명하다. 국민의 저항은 정치적 이해관계와 무관하게 그것을 ‘삶과 생활’의 문제로 받아들인 것이다. 이는 촛불집회가 초기는 물론, 지금까지 여학생과 주부 등 여성들을 적극적 참여로 전개되어온 사실로 증명된다.

 

‘건강’하게 먹을 권리를 주장했던 촛불의 외침은 50일을 넘겼지만, 그 여론과 민심에 오불관언했던 권력은 ‘공구리(콘크리트) 친 귀’라는 비아냥을 들어야 했다. 메아리 없는 촛불이 잠시 주춤하는가 싶자 수구 언론의 격려에 고무된 권력은 ‘의사(疑似) 사과 모드’에서 ’강경 대응 모드‘로 재빨리 갈아탔다.

 

경향신문의 보도(“조·중·동, 강경 부추기고 정부·여당, 끌려다니고”)처럼 현재 상황은 말하자면 ‘수렴청정’의 상태다. ‘조·중·동이 촛불집회에 색깔을 씌우고 강경 대응을 주문하면, 정부가 이를 수용하는 양태가 반복되면서 결과적으로 권력과 시민이 거리에서 격렬하게 충돌하는 상황이 가속되고 있’는 것이다.

 

조·중·동의 비명처럼 ‘폭력’은 일상화되었다. 단지 그 방향이 다를 뿐이다. 저 장한 메이저 언론은 ‘극렬 시위대의 폭력’에 희생되는 ‘경찰’과 ‘국가 법질서’를 아파하며 비명을 지르지만 정작 공권력의 폭력 아래 피를 흘리는 이들은 선량한 시민이다. ‘선진화’를 지향하는 이명박 정부의 통치는 단숨에 ‘잃어버린 10년’을 건너 그 이전 신군부 시절로 세상을 되돌려 버렸다.

 

대통령의 ‘불법 시위 적극 대처’ 발언에 이어지는 정부·여당과 조·중·동의 언어는 이미 5공 시절의 수사학을 답습하고 있다. 한나라당의 대표와 원내대표, 사무총장 등은 공교롭게도 모두가 ‘공안 검사’ 출신이라던가. <한겨레>는 이들을 ‘5공 본색’으로 부르면서 ‘민주정의당(민정당)이 민주화운동 탄압에 앞장서던 낡은 행태를 재현’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예후(豫後)’라는 개념이 있다. 국어사전에 따르면 ‘의사가 병자를 진찰한 다음 미리 그 병세를 전망함. 또는 그런 병세. 또는 병후의 경과’를 뜻하는 말이다. 오랜, 무려 50일이 넘는 촛불을 통해 정권을 향해 검역 주권과 국민의 건강권을 부르짖어온 국민의 저항 앞에 여러 번 변신해 온 권력의 시선과 표정에서 드러나는 예후는 무엇일까.

 

▲ 조선일보 (6. 26.)

- 법 위에 시위대

<6. 23_조선일보>

 

- ‘주말 촛불’ 다시 폭력으로 변질

<6. 23_중앙일보>

 

- 일부 정책에 대해 비판하는 시위는 정부의 정책을 돌아보고 보완하는 계기로 삼아야 하겠지만, 국가정체성에 대해 도전하는 시위나 불법적, 폭력적 시위는 엄격히 구분해 대처해야 한다.

<6. 24_이명박 대통령>

 

- 순수한 촛불시위가 민주정권 퇴진을 위한 폭력 시위로 변질되고 있어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 정부는 불법 시위에 대해선 국민의 편에 서서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처리할 것.

<6. 26_한승수 국무총리>

 

- 광화문, 법은 죽었다.

<6. 26_조선일보>

 

- 광우병대책회의의 실체를 들여다보면 그들의 주장은 국민 건강을 빙자한 반미에 있다. (…) 촛불집회를 주도하는 대책회의의 핵심 세력은 반미를 신앙처럼 생각하는 단체다.

<6. 27_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

 

- 인민재판 당한 경찰관

<6. 28_조선일보>

 

- ‘혼수상태’ 대한민국

<6. 28_동아일보>

 

- 휴일 서울 한복판은 전쟁터였다.

<6. 29_중앙일보>

▲ 조선, 동아 등 일부 매체에만 실린 정부 광고

- 과격 폭력 시위를 조장 선동하거나 극력 폭력행위자에 대해서는 끝까지 추적, 검거해 엄정하게 사법 조치할 방침이다. 파괴된 기물 등으로 인한 피해에 대해서는 민사상의 손해배상도 청구하겠다. 아울러, 민주노총의 총파업과 불법 집단 행동에 대해서도 반드시 책임을 물을 것이다.

<6. 29_법무·행자·문체부 대국민 합동 담화문>

 

- 무법천지 방치, 이젠 끝내라

<6. 30_중앙일보 사설>

 

- 전문 시위꾼에게 언제까지 서울 도심 내줘야 하나

<6. 30_조선일보 사설>

 

- 불법과 폭력으로 얼룩진 촛불집회 사태에 대해 이제는 종지부를 찍겠다.

<6. 30_임채진 검찰총장>

 

- 촛불은 다 어디 가고 쇠구슬, 새총, 쇠 파이프와 흉기가 난무하고 있다. (…) 민주주의 자체에 대해 도전하는 세력에 대해서는 가차 없이 응징해서 스스로 보호할 수 있어야 제대로 된 민주주의다.

<6. 30_한나라당 권영세 사무총장>

 

- 쇠고기 문제는 사실상 정부가 최선을 다해서 할 만큼 했다. (…) 불법 짝퉁 촛불시위는 절대 안 된다. (…) 불법 과격 시위 같은 집회는 공동체 이익을 갉아먹는 해충과도 같다.

<6. 30_한나라당 강재섭 대표>

▲ 김용민의 그림마당 (7.1.)  ⓒ 경향닷컴

 

2008. 7. 1.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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