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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풍진 세상에 /길 위에서

대한변협의 커밍아웃(?)

by 낮달2018 2021. 7.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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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집회가 “헌법 질서를 파괴하고 법치주의를 훼손”한다는 변협의 성명

▲ 누리꾼들의 광고 불매운동 관련한 변협의 보고서(부분) ⓒ 변협 PDF

흔히들 율사라고도 부르는 변호사는 우리 사회의 최상층 엘리트 집단이다. 사법시험을 통과하고 사법연수원을 거쳐 판검사로 임용되거나 변호사로 진출하는 이른바 ‘법조(法曹)’의 길은 좁고 가파르다. 비슷한 엘리트 집단으로 의사를 꼽기도 하지만, 그것과의 차별성은 적지 않다. 의대를 졸업하면 누구나 의사가 될 수 있지만, 법대를 나온다고 해서 누구나 법조인이 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법은 한 국가나 사회를 규율하는 가장 기본적인 강제 규범이니 좋든 싫든 사람들은 이 법의 규제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판검사가 그 법을 직접적으로 다루는 사람이라면 변호사는 합법적으로 그 법의 규제와 영향을 무력화하거나 최소화하는 활동을 통해 사람들의 인권을 지키는 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 변호사들의 단체가 대한변호사협회(약칭 변협 또는 대한변협)다. 법에 따라 모든 변호사는 이 단체의 회원이 된다. 변협 누리집에는 변협이 하는 일로 ▶ 사회정의 실현을 위한 정부 정책 감시 등과 함께 ▶ 인권옹호 사업을 맨 앞에 두고 있다.

변협 누리집에 따르면 ‘인권옹호 업무’는 ‘국민이 국가권력 등으로부터 기본적 인권을 침해당하는 부당한 사례가 있을 경우 이를 조사하여 시정을 요구하고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을 강구하는 등’의 활동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런 변협이 지난 3일 촛불집회와 관련해 성명(흔들리는 촛불 너머 길 잃은 법치주의를 우려한다)을 통해 ‘불법행위자 엄정 대처’를 주문했다는 뉴스를 들으면서 나는 잠깐 헷갈렸다. 보수 인사로 알려진 이가 변협 회장이 된 후, 변협의 행보가 이전에 비해 그리 가뿐해 보이지 않긴 했지만, 그래도 변협은 ‘인권의 보루’가 아닌가 말이다.

 

변협은 성명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 논란으로 점화된 민심 분열과 시위사태’가 사실상 ‘불법 야간 집회’와 ‘폭력 시위’ 등으로 번지면서 연일 ‘불상사’가 계속되고 있으며, ‘일부 종교인마저 종교행사라는 이름으로 이에 합류함으로써 선량한 국민의 불안을 증폭시키고 있다’고 주장한다.

 

보수언론 광고 중단 운동도 민·형사 책임 있다 강변

 

그러면서 변협은 이 같은 사태는 ‘촛불집회의 진정성과는 거리가 먼 것’이며, ‘헌법적 절차에 의거해 출범한 합법정부에 대하여 퇴진을 요구하는 현재의 사태야말로 오히려 헌법 질서를 파괴하고 법치주의를 심하게 훼손하는 것’이라 진단한다.

 

그러면서 변협은 정부에 ‘헌정질서가 파괴되지 않도록 불법행위자들에 대하여 엄정하게 대처함으로써 국가와 국민의 안위를 확고히 지켜나가야 한다.’고 조언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뿐이 아니다. 변협은 ‘보수언론 광고 중단 네티즌 압박의 법률적 문제점에 대한 검토보고서’를 돌려 ‘광고 싣지 말기 운동’을 주도한 누리꾼들에게 민·형사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변협은 이 문제가 ‘헌법상 보장된 소비자의 권리’와 관련되어 ‘판단이 용이치 않다’고 하면서도 ‘사안의 특성을 고려할 때’ ‘명예훼손죄와 업무방해죄’ 등의 혐의를 적용할 수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같은 변호사 조직으로 지난 20년간 나라의 민주화 과정에 이바지해 온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이하 민변)의 행보와 명확하게 엇갈리는 대목이다.

 

‘법률가 단체로서 전문성과 합리성을 살려 우리 사회의 개혁과 진보를 위한 비판과 건설적인 대안 제시에 기여’(누리집 http://minbyun.jinbo.net/minbyun/zbxe/)해 온 민변은 촛불집회에 참여하면서 인권침해 감시단을 꾸려 집회와 시위에 따른 인권 지킴이로서 역할을 다했다.

▲ 민변의 논평. ⓒ 민변 누리집

민변, 방통심의위의 광고 불매운동 게시글 삭제 요구는 위헌

 

민변은 또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광고 불매운동 게시글 삭제 요구는 월권이며 위헌이다”라는 논평을 통해 ‘방통심의위는 위헌인 정보통신망법의 규정을 정치적, 이데올로기적으로 악용한 것’이라 규정하면서 이에 대한 반대를 분명히 했다. 민변은 또 ‘주요한 표현 매체의 하나로 자리를 굳힌 인터넷상의 표현에 대하여 질서 위주의 사고만으로 규제하려고 할 경우 표현의 자유의 발전에 큰 장애를 초래’할 것이라 경고하기도 했다.

 

같은 사안에 대한 전혀 다른 두 단체의 대응은 그 조직의 성격을 웅변적으로 드러내는 것처럼 보인다. 변협은 촛불집회가 ‘헌법 질서를 파괴하고 법치주의를 훼손’한다고 우려하고 ‘강경 대처’를 주문했지만, 정작 그보다 더 근본적인 표현의 자유 등의 기본권에 대한 옹호에 대해선 눈을 감고 있다.

 

국민의 기본권 옹호는 외면하면서 시위에 나선 시민들을 처벌하라는 변협의 태도는 ‘검찰의 역할을 자청한 것’이라는 비판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까닭이다. 누리꾼들에 대한 처벌 여부를 역시 변협이 '자발적으로 검토’한 것도 과잉이다. 검찰이 아닌 변협이 누리꾼들에 대한 처벌 여부를 검토할 필요는 없다. 어느 변호사의 지적대로 ‘그것은 조중동의 대리인들이 알아서 할 문제일 뿐’인 것이다.

▲ 민변의 월례회. ⓒ 민변 누리집 사진

민변의 산 역사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한승헌 변호사는 민변 20돌 기념 자리에서 ‘사서 고생한 20년’을 회고하고 ‘앞으로도 고생 사서 하자’고 제안하였다고 한다. 이 노 변호사의 삶이 곧 우리 현대사의 민주화 과정이니 이들의 실천적 삶은 곧 기득권을 수호하거나 거기 안주하기를 거부한 지식인으로 기려져야 마땅하다.

 

거기에 견주면 변협의 이번 성명과 의견 개진은 마치 우리 사회의 최상층 기득권의 자기 계급적 이해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게 아닌가 싶다. 아무나 쉬 범접할 수 없는 특수 영역에 대한 전문적 이해와 식견으로 무장한 우리 사회의 이 최상층 엘리트 집단의 이해는 권력과 집권 정당, 그리고 미국의 이해와 겹쳐지는가.

 

그들에게는, 건강권을 주장하는 다수 국민의 저항과 부당한 공권력의 과잉 진압으로 유발된 대중들의 방어적 대응도, 주류 언론의 독점적 권한을 침해하는 누리꾼들의 광고 불매운동도 모두 ‘처벌’되어야 할 ‘폭력’이거나 ‘헌정질서 파괴’행위로 이해되는 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들이 지켜야 할 ‘헌정질서’와 ‘국가 안위’는 50일이 넘게 거리에서 촛불을 밝히는 시민들의 그것과 같지 않다. 그들은 ‘종교행사라는 이름으로 (촛불집회에) 합류함으로써 선량한 국민의 불안을 증폭시키고 있’는 일부 종교인과도 이해를 달리한다. 때로 신도 계급과 계층의 이해에 따라 서로 다른 얼굴로 나뉘는지 모른다.

 

그런 뜻에서라면 이번 촛불집회에 관련해 드러난, ‘언제나 국민 곁에 있다’는 대한변협의 입장은 자신들의 계급적 정체성을 확인하는 일종의 ‘커밍아웃’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모르긴 몰라도 그들이 ‘언제나 곁’에 있다는 ‘국민’이란 생업에 쫓기면서도 거리로 나와 촛불을 밝히는 다수의 대중과는 ‘다른’ 사람이라는 것은 분명한 듯하다.

 

 

2008. 7. 5.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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