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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교단(1984~2016)에서

“통일, 안 되었으면 좋겠어요.”

by 낮달2018 2021. 7.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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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을 바라보는 아이들의 생각

▲  의견  ④

지난달 일이다. 6·15 남북공동선언 9돌을 맞아 아이들에게 분회에서 준비한 ‘통일 사탕’을 나누어주었다. 6·15선언의 내용을 간략하게 설명하고 단일기가 그려진 종이를 나눠준 뒤, 나중에 시간 나는 대로 ‘통일’에 대한 생각을 자유롭게 적어 보라고 했다. 막대 달린 사탕을 빨아 먹는 아이들은 즐거워 보였다. 통일은 먼 데다 어렵고, 사탕은 가깝고도 달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혼자 속으로 웃었다.

 

한동안 잊고 있다가 아이들에게 종이를 받아보았다. 한 줄이라도 감상을 적은 아이는 얼마 되지 않았다. 대신 제법 논리적인 의견이 많았다. 충분히 짐작한 일이긴 했지만, 나는 얼결에 따귀를 얻어맞은 듯한 기분이었다. 모두 14명이 의견을 적었는데 반대는 7명, 다소 유보적인 생각까지 합치면 11명이었고, 찬성은 고작 3명뿐이었기 때문이다.

 

▲  통일사탕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우리 세대처럼 분단을 민족사의 문제로 여기는 것과는 달리 요즘 아이들에게 분단은 때로 ‘뜬금없는 문제’로 이해되기도 하는 것 같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아이들은 분단을 사회적 과제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것은 자신들과 무관한 ‘골치 아픈 어떤 것’에 불과하다.

 

“통일은 꼭 해야 되는 거예요?”

“그냥 이대로 살면 안 돼요?”

“통일로 엄청난 혼란이 일어나지 않나요?”

“북한 때문에 경제가 엄청 나빠지지 않을까요?”

 

중학생들의 의견은 대충 이런 수준이다. 나름대로 주워들은 바는 있어서 통일비용이나 통일로 인한 경제적 혼란 등을 우려하기도 한다. 통일 문제를 자신의 고민이나 문제로 끌어안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 정도라도 관심을 가지니 기특하다고 해야 할까.

 

애당초 제대로 된 ‘통일교육’이 존재하지 않는 현재의 학교 교육에서 아이들의 의견을 묻는다는 것 자체가 난센스일지 모른다. 아이들은 ‘분단 문제’나 ‘통일’ 문제에 대한 기성세대의 보수적 의견과 논리에 훨씬 익숙할 뿐만 아니라, 그런 논리를 자연스럽게 답습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통일, 안 되었으면 좋겠어요.”

 

아이들이 낸 의견을 읽으면서 나는 그들이 입을 모아 “통일, 안 되었으면 좋겠어요.” 하고 외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선발시험을 거쳐 입학한 우리 아이들은 모두 이른바 ‘범생이’들이어서 주어진 문제에 대한 나름의 판단과 사고에 뒤지는 아이들이 아니다. 그래서인가, 아이들의 반대 주장에선 이상한 결기마저 느껴졌다. 다음은 아이들의 의견을 그대로 옮긴 것이다. 의견에 번호를 붙이고 맞춤법과 띄어쓰기만 바로잡았다.

 

more..의견보기(백업은 이 부분을 살리지 못했다)

 

 

대체로 아이들이 서 있는 논리의 출발점은 ‘지금 통일한다면’이다. 마치 언제든 통일하자는 합의만 하면 금방 그게 이루어지는 것처럼 문제를 바라보고 있다. 통일은 민족사의 과제요, 목표이긴 하지만 그것의 실현을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과정’이라는 사실을 잊고 있다. 자신들의 의견조차 ‘극복해야 할 조건’이라는 사실 말이다.

 

▲ 의견 ①
▲  의견  ②
▲  의견  ③

의견 ①,②,③,④는 아주 낯익은 논리다. 이른바 ‘시기상조론’이다. 그 근거는 ‘지금은 때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들은 현 정부 출범 이래의 남북 경색이나 북핵 문제로 인한 국제적 상황에 대한 나름의 이해를 바탕으로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 통일은 불가능한 것이므로 이에 반대한다는 것이다. 아이들의 ‘순진한 상상력’으로서는 매우 현실적인 선택을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① 현 상태에서 통일을 하는 것은 반대합니다.

② 이 시점에선 평화적인 통일이 불가능하다고 생각됩니다.

③…지금 현재 상황으로선 우선 통일을 반대합니다.

④ 지금 상황으로선 통일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현재의 부정적 상황을 전적으로 북한에 묻는 형식으론 문제에 접근할 수 없다는 사실, 무릇 협상에는 상대가 있다는 사실에 대한 이해는 떨어진다. 전임 정부의 햇볕정책에 대한 현 정부의 부정적 인식이 결과적으로 남북 경색을 가져온 요인 중의 하나였다는 것도 아이들은 고려하지 못하고 있다.

 

또 하나 아이들이 들고 있는 통일 불가의 논리가 ‘남북의 이질화’다.

 

① 경제, 교육, 정치 모든 게 다르고 다만 말만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 남북분단이 예전부터 지속되어 온 거라 나부터도 왠지 모를 거부감이 듭니다.

② 원래부터 한민족이었고 같은 역사 속에서 살아왔다 할지라도 현재 추구해 나가는 방향이 너무도 다른 이 시점에선…

③ …역시나 너무 오래 떨어져 있어 아직 다른 부분이 많고 민주주의와 공산주의라는 갈래에서 사고방식들도 너무 판이합니다.

④ …하지 말라는 짓은 다하고 대화와 타협이란 것도 모르며, 무엇보다 국민들을 아낄 줄 모르는데 그런 사람이 독재정권을 쥐고 있는 상황에서 통일이란, 터무니없는 그런 짓입니다.

 

서로 다른 체제가 들어선 지 반세기가 넘었으니 이질화는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다. 그러나 여전히 남북이 동일한 언어로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은 그 이질화를 넘을 수 있는 가장 본질적인 ‘동질성’이며 나아가 남북이 공유할 수 있는 ‘민족의 정체성’이 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정치, 경제, 교육’ 등이 다르고, ‘추구하는 방향’이 다르고 ‘민주주의 공산주의의 사고방식’ 따위의 이질성은 남북이 각각 선택한 체제와 제도의 문제이다. 공산주의의 반의어로 ‘민주주의’를 상정하는 오류야 논외로 치더라도 아이들은 여전히 지금 우리가 맞닥뜨린 문제가 근본적으로 체제의 상이 때문에 빚어진 것이라는 사실을 간과한 것이다.

 

북한이 우리와 ‘다르다’는 전제는 모든 이성적 합리적 논의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그들이 우리가 다르지 않고 같은 정서와 같은 지향이 있다면 무엇이 문제가 되겠는가. 남쪽이 형이라 친다면 이 말썽 많은 아우를 어떻든 구슬리고 달래는 일까지 마땅히 우리의 몫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이들은 현재의 대결구조가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제도와 체제의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걸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듯 보인다. ‘김정일 타도’나 ‘김정일 위원장이 빨리 돌아가셨으면 좋겠’다는 대목에서 실소할 수밖에 없는 이유도 거기 있다. 김일성 사망이 통일 문제를 단박에 해결해 줄 것이라는 믿음이 한때 유력했던 때가 있긴 했다. 그러나 여전히 이러한 감정적 접근이 가능한 것은 통일에 대한 우리의 패러다임이 여전히 냉전적 사고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의견 ④는 가장 강경한 태도다. ‘통일이란, 터무니없는 그런 짓’이라고 단정 짓고, ‘…어찌 한 민족이며 한 가족일 수 있’느냐고 반문하는 모습은 소녀다운 순진함에서 비롯된 비분강개로 여겨지지만, 마음 한쪽을 저리게 만든다.

 

의견 ⑤, ⑥, ⑦은 비교적 짧은 촌평이다. 이들도 위의 의견과 마찬가지로 북한에 대한 ‘비호감’ 위에 서 있다.

 

⑤ 북한이 너무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것 같아서 통일하기 싫다.

⑥ 통일해서 북한이랑 잘 지낸다는 보장도 없잖아. 난 반대하는 입장이다.

⑦ 통일에 대해 찬성 안 한다. 갈등이 많을 것 같다.

 

‘통일하기 싫다’는 것은 다분히 감정적이다. 뒤에 언급한 ‘이득과 민족적 문제’와 서로 부딪치는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내고 있는 아이의 느낌을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통일해서 ‘잘 지낸다는 보장도 없’고 ‘갈등이 많을 것 같’아서 싫다는 의견은 차라리 솔직해 보인다.

 

의견 ⑧, ⑨, ⑩, 을 나는 유보적 의견으로 분류했다. 기본적으로 ‘현재 통일은 불가하다’는 전제 위에서 있다는 점에서 앞서 반대 의견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이 의견들은 ‘통일을 위한 준비’가 필요하고 ‘발판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 의견 ⑨

⑧ …지금 통일하면 다양한 문제들이 발생할 것입니다. 좀 더 준비를 해서 통일이 될 수 있도록 발판이나 마련합시다.

⑨ …현재 남북을 비롯해 동북아시아 전체에 걸쳐 고조되어 있는 대립 긴장 상태를 완화해 북한과의 대화를 재개해야 한다.

⑩ …시간을 두고 통일해 나가야 할 것 같다.

⑪ 통일을 하면 경제나 기술 등 많은 면에서 높은 수준에 도달해 경쟁력이 세질 것 같다. 일본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무엇보다도 통일을 ‘언젠가는 반드시 해야 할 민족의 과업’으로 바라보고 있는 관점은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이다. 뒷부분에 ‘적절한 대북 제재를 통해, 북한 정부에 국제사회의 법과 질서를 준수해야 한다는 것도 알려줘야 한다.’는 의견은 아주 낯과 귀에 익은 논리이긴 하지만.

 

어쨌든 통일을 긍정하거나 민족적 과제로 인식하고 있는 부분은 희망적이다. 의견에 드러난 ‘경쟁력’이나 ‘국력’ 부분은 통일을 찬성하고 있는 의견과 마찬가지로 통일이 주는 긍정적 측면을 주목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단편적이고 지엽적인 데 머물고 있다는 점은 매우 아쉽다.

 

⑫…무엇보다 원래 하나였던 것을 다시 합치는 것은 당연하다고 본다.

⑬ 언젠가는 통일이 되겠지…….

 

원래 하나였다는 것은 생뚱맞은 지적 같지만, 대부분의 냉전적 사고는 이런 기본적 전제를 폄하해 버린다. 근대국가로 서지 못한 상태에서 한반도 분단이 이루어진 것이 그런 사고의 실마리를 제공하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한편으로 의견 ⑬ 에서는 통일에 대한 낙관적 전망을 잃지 않는 아이들의 건강성을 확인할 수 있다.

▲  의견  ⑭

의견 ⑭ 는 ‘통일’에 대한 가장 종합적인 안목을 매우 정연한 논리로 설파하고 있다. 나는 이 의견을 찬성 쪽으로 분류했지만 기실 반대로 놓거나 유보로 정리해도 무방한 내용이다. 글을 쓴 아이가 어떤 자료의 도움을 받았는지는 알 수 없다.

 

통일이 가져다주는 이익을 아이는 세 가지로 정리한다. 첫째는 군사적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고, 분단에 따른 사회적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남의 기술과 북의 자원이 만나서 경제적 이익을 창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세 번째로 북한 인민들을 보호하고 그들을 기근에서 구해나갈 수 있으며, 네 번째로 아이는 한반도의 통일이 냉전체제의 종식과 세계평화의 상징이 되리라고 내다본다. 아이가 세 번째로 든 내용은 자신이 말하는 ‘통일’의 성격을 자유민주주의적 통일, 이른바 흡수통일이란 사실을 전제한다.

 

이어지는 의견은 현 정부의 대북 정책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면서 지난 10여 년 동안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의 햇볕정책이 오히려 문제를 키웠고 현재의 위기를 초래했다고 비판한다. 그러면서 아이는 통일 이후 대한민국이 국제사회의 왕따가 되는 걸 우려하면서 아주 단호한 어조로 대북 제재를 말한다.

 

아무 대책 없이 ‘북한을 무조건 달래안고 가는 것은 기름을 안고 불로 뛰어드는 것과 같다.’는 마지막 문장에서 아주 자연스럽게 보수언론의 냉전적 시각이 겹쳐진다. 아이는 이런 의견들을 구성하는 데 필요한 논리들을 스스로 구하지는 않았으리라. 그게 지금까지 우리 교육의 결과일 수도 있고, 기성세대와 우리 사회의 보수주의가 만들어낸 논리일 수도 있다.

 

아이들의 의견은 안타깝지만 그게 우리 2009년 현재 우리 아이들의 통일의식이라면 그것을 부정할 수는 없겠다. 우리 아이들의 이러한 통일관이 같은 세대의 그것과 어떻게 이어지는지에 대해서는 나는 말할 수 없다. 지역의 보수성과 아이들의 문화가 어떻게 연관되는지에 대해서도 알지 못한다. 다만, 일방적으로 아이들의 그것을 무시하거나 폄훼할 수만은 없음은 분명하다. 보다 성숙한 통일관을 갖기 위해서는 아이들이 자기들과 다른 진보적인 시각과 논리에도 열려 있어야 한다는 사실은 너무 분명해 보인다.

 

아이들의 의견을 읽으면서 나는 꽤 고민스러웠다. 어떻게 이런 내 느낌과 생각을 여과 없이 아이들에게 전할 수 있을까. 그게 잠깐 내 의견을 전달하는 것이라면 그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나는 아이들이 통일과 분단의 문제를 자기 문제의 일부로 이해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나는 비록 미처 성숙하지 못했지만, 아이들의 유연한 사고방식이 이런 질곡들을 헤쳐 나갈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늘 열려 있기를, 그리고 현재 우리가 처해 있는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면서 너희들이 통일한국의 중추 세대로 성장하기를 기대한다고 말하면서 그날의 짧은 수업을 맺었다. 아이들은 금방 통일 따위는 잊어버리고 교과서에다 다시 얼굴을 묻었다.

 

 

2009. 7. 1.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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