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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교단(1984~2016)에서

“선거를 축제처럼?”

by 낮달2018 2021. 7.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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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고 학생회 선거 풍경

▲ 강당에  모여 앉아 입후보자의 소견 발표를 듣고 있는 학생들.

학도호국단 체제였던 중등학교의 학생회가 직선제로 바뀐 것은 1988년부터다. 1987년 6월항쟁과 이어진 민주화 물결 덕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내가 근무하고 있던 남자 고등학교에서는 상당히 첨예한 선거전이 벌어졌다. 당선자는 소견 발표 때 두루마기를 입고 나와 보충수업으로 변칙 운영되던 ‘특별활동’의 ‘복권’을 내걸며 사자후를 내뿜었던 친구였다.

 

학생을 통제의 대상으로 바라보던 시절이어서 학생부와 직선 학생회의 관계가 매끄럽지는 못했던 듯하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민주주의의 훈련과정에서 거쳐야 할 성장통으로 여겼고, 대부분의 교사들도 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던 듯하다.

 

그리고 20년. 한때는 나아지는가 했던 학교는 더 공고한 입시체제로 가고 있다. 부모의 직업과 경제력이 자녀들의 진학과 직업, 미래까지 규정해 버리는 구조 아래서 ‘현실’은 가장 강력한 ‘힘’이고 ‘압제’다. 그 현실 앞에서 교사들의 열정과 원칙은 초라해지고, 아이들은 바보처럼, 더러는 매우 영악하게 현실을 받아들인다.

 

학생회는 원칙적으로 학생자치활동의 출발점이지만 일선 학교에서 그것은 일종의 ‘기능적 체제’처럼 보인다. 자치활동에 대한 아이들의 요구 대신 불우이웃 돕기 따위의 학생회가 주체가 되어야 할 몇몇 사안을 기능적으로 담당해 달라는 학교의 요구가 중심이 되어 학생회는 ‘기능적’으로만 존재한다.

 

지난 수요일에 다음 학년도 학생회 선거가 베풀어졌다. 러닝메이트제인 학생회장-부회장(2학년)에 두 팀이, 1학년 부회장에 세 팀이 참가한 가운데 치열한 유세전이 펼쳐졌다. 체육관은 찜통이었지만, 아이들의 열기는 더 뜨거웠다.

 

아이들은 학생회가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입후보자들은 가능한 범위 안에서 지극히 ‘기능적’인 공약을 내걸고 유권자들도 그 공약의 ‘실질성’을 중심으로 후보를 판단한다. ‘면학 분위기 조성’이나 ‘학교 축제 개선’, ‘학교 건의함 활성화’ 따위의 공약이 해마다 되풀이되는 이유다.

 

‘선거를 축제처럼’이라는 구호는 기성 정치판은 물론이고 모든 선거의 지향이다. 대표를 뽑는 선거를 통해 민주주의와 참여의 기쁨을 나누자는 취지인 것이다. 구호는 여전히 선거는 축제가 아니었다는 반증이다. 그러나 아이들의 선거는 축제처럼 베풀어졌다. 수업과 자습에 지친 아이들에게 입후보자들이 보여주는 갖가지 퍼포먼스는 축제 이상의 기쁨과 자유로움을 선사해 주는 것이다.

 

환호와 함성이 후텁지근한 체육관의 공기를 눌러 버렸던 두 시간의 유세와 투표는 승부를 가르고 끝났다. 아이들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손에 손을 잡고 교실로 돌아갔다. 훗날, 아이들은 이 여고시절을 추억하면서 축제 같았던 선거를 민주주의의 교실이었다고 기억하게 될까, 어떨까…….

 

 

2008. 7. 12.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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