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분회장 결의대회 참가기
어제 “표현의 자유 보장! 시국선언 탄압 중단! 경쟁교육 반대 전국 분회장 결의대회”(이름도 길다. 하 수상한 시절이 집회의 이름조차 복잡하게 만든다.)를 다녀왔다. 물론 나는 분회장이 아니다. 분회장이 아니면서도 상경길에 오른 다른 많은 조합원과 마찬가지로 나는 일요일의 휴식 대신 집회를 선택했다.
우리는 9시에 안동에서 출발했다. 요즘엔 유독 오래 묵은 사람들이 자주 눈에 띈다. 정년이 몇 해 남지 않거나 예순을 목전에 둔 역전의 용사들인 선배 교사들도 노구(?)를 이끌고 차에 오르신다. 나는 반가워 그 선배들께 ‘충성’하고 과장된 거수경례를 바쳤다.
버스를 탄 이들은 이들 ‘폐계’(廢鷄)(?)들만이 아니다. 20대의 싱싱한 영계(성차별적 어휘로 오해 마시길!)들도 있다. 지회 살림을 맵짜게 꾸리는 이는 20대의 곱디고운 처녀다. 내려오면서 확인했더니 그녀는 나보다 꼭 25년 아래다. 사람 좋은 미소로 부지런히 움직이는 초등의 남교사는 이제 스물다섯이라고 했다. 아, 스물다섯!
이들 20대의 새파란 남녀 교사들을 바라보면 격세지감이 따로 없다. 지금 40대 중견 교사들도 스무 해 전에는 ‘귀때기가 새파랬’던 애송이들이었다. 학교에 가면 막내, 층층시하 선배 교사들 아래서 때로는 ‘벌떡 교사’가 되어 온정주의와 경력 뒤에 숨으려는 학교 관리자들과 좌충우돌하던 시절을 늠름하게 넘어온 이들이다.
오후 두 시, 서울역 앞 광장에 도착했을 때, 더위가 절정이었다. 그러나 주변의 간선도로를 따라 전경 버스가 둘러싼 광장에 모여든 교사들의 얼굴에 활기가 넘쳤다. 긴장감은커녕 오랜만에 옛 친구들을 만난 듯 그들은 유쾌하게 팔을 걸고 흔들었고, 파안대소했다.
시국선언에 참여한 1만 7천여 교사를 징계하겠다는 교과부의 서슬은 푸르지만, 애당초 학교에서부터 교사들에겐 긴장 따위는 없었다. 누구 말마따나 ‘장사를 한번 두번 하는 게 아닌’ 까닭이다. 서명과 선언이라면 이골이 날 대로 난 사람들이 교사들이다.
실제로 단체행동권이 유보된 교원노조가 선택할 수 있는 전술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그중 서명과 선언은 자신의 이름을 걸고 어떤 주장과 요구에 힘을 싣는 싸움으로 빈번히 선택되는 투쟁이다. 좋아, 거기에 이름 하나 보태는 것이라면…….
물론 곡절도 적지 않았다. 서명하고 나면, 관리자들이 집까지 찾아와 서명 철회를 요구하고, 눈물 머금고 철회한 뒤, 다시 양심선언을 하고……. 처음부터 그게 쉽고 심상한 싸움은 아니었다. 처음엔 손이 오그라드는 두려움도 있었다. 그때, 쭈뼛쭈뼛 망설이기만 하던 이들은 어느새 부드럽지만, 속내 깊고 단단한 활동가가 되어 있는 것이다.
두 시간 반이 넘게 계속된 집회는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교사들은 곳곳에서 폭소를 터뜨렸고, 목청 돋우어 구호를 외쳤다. 비좁은 광장 주변에서 흥미롭게 집회를 지켜보는 시민들은 머잖아 징계를 받을 교사들의 넘치는 여유가 쉬 이해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전임 위원장들이 기자회견에서 밝힌 대로 “1986년 교육민주화선언 이래 민주주의와 사회정의가 위협받는 역사의 굽이마다 우리 교사들은 그와 관련한 입장을 밝혀 우리 사회 민주주의를 한 단계 발전시키는 데 기여해 온 자랑스러운 역사를 갖고 있다.”
“이런 점에서 현 시국에 대한 우려와 입장을 제시한 교사들의 시국선언은 정당하다”는 것 외에 일점일획도 더 보탤 게 없다. 어떤 두려움이나 망설임 없이 전국 각지에서 모인 교사들이 두 시간 반 동안의 집회에서 확인한 것은 ‘진실 앞에는 적이 없다’는 사실 외에 더 무엇이 있겠는가.
날씨가 더웠지만 나는 사진기를 들고 대열 여기저기를 어슬렁거리고 다녔다. 옛 동료들은 집회에서 만날 때마다 정겹기 그지없다. 고작 따뜻하게 악수를 나누고 사소한 안부를 주고받는 게 다지만 짧은 만남 속에 우리가 나누는 게 어찌 그것뿐이겠는가.
렌즈에 잡힌 이들은 위원장을 비롯한 몇 분을 빼면 모두가 우리 지역의 선후배들이다. 활짝 웃고 있는 그들의 표정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나는 기분이 썩 좋았다.
2009. 7. 6.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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