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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곡할매글꼴, 박물관에 소장되고, 공개글꼴로 ‘문화유산’이 되었다

by 낮달2018 2021. 5.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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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된 ‘칠곡할매글꼴’ 5종, 한글박물관에 표구로 소장되고 한컴오피스에도 탑재

▲ 국립 한글박물관에 영구 소장되고, 사설 한글박물관에 상설 전시되고 있는 칠곡할매글꼴로 만든 표구 ⓒ 칠곡군 제공

경북 칠곡군에서 성인 문해교육으로 한글을 깨친 할머니들의 손글씨로 만든 글꼴 ‘칠곡할매서체 5종’이 나온 건 지난해 12월이었다. 깨친 한글로 쓴 시집 세 권에 이어 자신들이 ‘삐뚤빼뚤’ 쓴 손글씨가 서체가 되는 경이로운 체험은 그들뿐 아니라, 이를 지켜본 이들에게도 적지 않은 감동이었다(관련 기사 : 삐뚤빼뚤 칠곡할매들의 손글씨, ‘폰트’로 나왔다).

 

칠곡할매글꼴이 일상에서 쓰이기 시작했다

 

당초에 이 소식을 전하면서 나는 칠곡군이 이 글꼴을 군 홍보 문구 표기와 칠곡 지역 특산물 포장 등에 쓰겠다고 하였으니 이 글꼴로 쓰인 ‘꿀벌 참외’나 ‘금남 오이’를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썼다. 그러나 이후 거의 반년이 지났으나 짐작한 만큼 이 글꼴이 널리 쓰이지는 못한 듯하다.

 

새로운 글꼴이 출시되어도 그게 쓰이는 기간은 어차피 제한적이다. 할매글꼴처럼 특수한 글꼴인 경우는 말할 것도 없다. 제목은 물론이고, 본문 서체로 쓰기에도 마땅치 않은 것은 이 서체가 시각적 가독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 사업을 수행해 온 칠곡군의 한선혁 칠곡군 평생교육 담당도 이 의견에 동의했다.

 

발표 직후 잠깐 몇몇 언론의 조명을 받았던 할매글꼴은 최근에 다시 언론에 불려 나오기 시작했다. 칠곡군에서 왜관 읍내 주요 거리에 내건 펼침막에 이 글꼴이 쓰였고, 읍내 통닭집과 분식집에서 포장지에 이 글꼴을 써 고객들의 호응이 이어지면서다. 백선기 칠곡군수도 할매들의 다섯 종 글꼴로 인쇄한 명함을 쓰며 글꼴 홍보에 나섰다.

▲ 포항 해병대 교육훈련단에서 내건 펼침막(위)과 경주 황리단길 부근 게시된 글판.

다른 지역에서는 지난 3월 경주시 황리단길 입구에 ‘지금 너의 모습을 가장 좋아해’라고 쓴 글판이 걸리면서 이 글꼴이 처음 쓰였다. 황리단길 입구에 있는 경주공고에서 권안자체로 가로 5m, 세로 10m의 대형 글판을 만들어 본관 외벽에 상시 전시하면서다.

 

최근에는 포항시 오천읍 해병대 교육훈련단이 "해병대 입대를 환영합니다"라는 펼침막을 걸었다. 여기 쓰인 글꼴은 다섯 종 가운데 가장 단정한 글꼴이라고 평가받는 권안자체다. 할매글꼴은 활용되면서 이처럼 글꼴 이름을 덧붙여 밝히면서 홍보를 이어가고 있다.

▲  칠곡할매글꼴의 홍보대사로 위촉되어 활동하고 있는 정재환 성균관대 교수 ⓒ 칠곡군 제공

칠곡할매글꼴은 지난 1월, 칠곡군에서 방송인이자 역사학자인 정재환(60·사진) 성균관대 교수를 홍보 대사로 위촉하면서 대중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되었다. 일찍이 개그맨으로 방송활동을 시작한 정 교수는 우리말 겨루기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한글과 인연을 맺은 이래, 한글문화연대 공동대표를 지내기도 한 자타공인 한글 지킴이다.

 

할매글꼴, ‘실용성’보다는 보통교육 못 받은 세대의 ‘문화유산’

 

현실 생활에서 칠곡할매글꼴의 쓰임새가 확대되는 것은 앞서 말한 이유에서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오히려 칠곡할매글꼴은 성인 문해 작품 콘텐츠 개발 사업에서 의도한 대로 ‘보통교육을 받지 못한 마지막 세대가 낳은 문화유산’으로 자리매김함이 더 가치 있고 소중하다. 그들은 우리 현대사와 근대화 과정에서 소외된 세대로 온몸으로 근대화 과정을 견뎌내며 이후 세대의 성장을 뒷받침한 세대였기 때문이다.

▲ 칠곡군의 성인 문해 작품 콘텐츠 개발 사업을 수행해 온 칠곡교육문화회관 평생학습관. 현관에 걸린 펼침막도 할매글꼴로 쓰였다.

지금까지 민중이 쓴 한글(훈민정음) 문서는 부녀자들이 주고받은 편지인 내간(內簡)이나 필사본 한글 소설 등으로 전해져 내려왔다. 그것들은 표기법은 물론이거니와 그 내용으로 당대의 생활상을 유추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다.

 

그러나 2021년에 디지털로 제작된 이 글꼴은 한국인이 일상적으로 쓰는 한글 문서 편집기에서 언제든지 불러와 구현할 수 있는 도구다. 그것은 잘 다듬어지고 세련되게 정제된 서체가 아니라, 노년에 처음 연필을 잡은 노인들의 악력(握力)과 운지(運指)를 통해 그들의 고단하고 곡절 많은 삶을 드러내는 글꼴이다. 이 글꼴이 21세기에 걸맞은 문화유산이 되고도 남는 이유다.

 

칠곡군에서 칠곡할매글꼴로 제작한 표구가 국립 한글박물관에 자체 심의를 거쳐 영구 보관 자료로 소장되게 된 것도 ‘문화유산’의 자격으로서다. 충주의 사설 한글박물관에서 이 표구가 상설 전시되는 이유도 같다. 어쩌면 이 글꼴은 20세기를 힘겹게 건너온 우리 부모 세대의 초상일지도 모른다.

 

한글박물관 소장, 한컴오피스 탑재

▲ 한컴오피스 프로그램에도 칠곡할매글꼴이 정식 탑재되었다.

한국인이 가장 많이 쓰는 문서 편집기인 한컴오피스 프로그램에 칠곡할매글꼴이 정식 탑재된 것도 빼놓을 수 없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기관인 한국문화정보원의 ‘공공 안심 글꼴’ 사업으로 한컴오피스에서 저작권 걱정없이 이 글꼴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아래아 한글 2018’ 이상에선 별도의 설치 없이 칠곡할매글꼴을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성인 문해 작품 콘텐츠 개발 사업을 수행해 온 칠곡군 교육문화회관 별관 회의실에는 칠곡할매글꼴로 표구한 6폭 병풍이 있다. 병풍은 칠곡할매글꼴에 대한 안내가 1폭, 나머지 다섯 종의 글꼴을 각각 담아서 여섯 폭이다.

 

병풍에는 대체로 글씨로 이름 높은 선비나 유명 문인이 한자로 쓴 시문이 주로 쓰인다. 한글 서예가 병풍에 쓰이게 된 것은 현대 이후다. 그런 뜻에서 보면, 칠곡 할머니들이 스스로 일상을 기록해 쓴 글로 만든 여섯 폭 병풍은 그것 자체로 이 평등의 세기를 상징하는 듯했다.

▲ 칠곡교육문화회관 평생학습관의 회의실에 있는 6폭병풍. 칠곡할매글꼴로 만든 이 병풍은 평등의 시대 21세기의 상징처럼 보였다.

칠곡 할머니들이 쓴 ‘거친 글씨’는 이제 사람들이 자신의 필요에 따라 활용하면서 단순한 문서 편집 도구에 그치게 될지 모른다. 문서를 꾸미는 데는 그 글씨가 보여주는 거칠고, 정제되지 않은 모습으로도 충분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할머니들이 늘그막에 힘들게 쓴 손글씨는 그들이 건너온 고단한 삶과 그 갈피마다 패인 옥니를 닮았다. 거기엔 자신의 희생으로 자식들의 더 나은 삶을 기대한 어머니의 애틋한 마음이 담겨 있다. 홍보 대사 정재환이 이 글꼴을 두고 "돌아가신 어머님의 손글씨를 보는 것 같아 울컥했다"라고 고백한 것은 그래서다.

 

할머니들의 삶이 담긴 서체는 칠곡군 누리집(https://www.chilgok.go.kr/main.do)에서 거저 내려받을 수 있다. 누리집 맨 위 차림표의 ‘칠곡 소개’ 아래 ‘칠곡할매 서체’에서 내려받을 수 있는 글꼴은 트루타입(TTF)과 오픈타입(OTF), 두 가지다.

 

이 글꼴을 쓰면서 우리 어머니들이 건너온 고단한 세월을 떠올려 보시기를 권한다. 그분들이 견뎌낸 아프고 고단한 ‘근대 속의 전근대’를 추억하면서.

 

 

2021. 5. 28. 낮달

 

 

칠곡군수 명함에도, '콤푸타'에도 들어가는 이 글씨

문화유산 된 ‘칠곡할매글꼴’ 5종, 한글박물관에 표구로 소장되고 한컴오피스에도 탑재

www.oh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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