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안 먹던 쑥갓을 새로 먹으며 맛을 익히다
벗 세한도는 나를 두고 ‘미식가’라고 이른다. 글쎄, ‘맛있는 음식을 가려 먹는 특별한 기호를 가진 사람’이라는 본뜻으로라면 나는 거기에 미치지 못한다. 그게 단지 ‘입이 좀 까다로운 사람’이거나 ‘맛에 좀 예민한 사람’이라는 의미라면 동의할 수 있다.
입이 까다로워서 어릴 적부터 잘 먹지 못하는 게 많았다(이는 미식가의 자질에 한참 못 미치는 특성이다). 비린 것을 꺼려서 젓갈을 넣은 김치(우리는 이를 ‘젓지’라고 했다)를 먹지 않았고, 읍내의 국수 공장에서 빼 오는 소면(‘왜국수’라고 했다)도 비린내가 나서 잘 먹지 않았다.
나는 향에 예민하다
무엇보다 나는 향신료(香辛料) 맛에 예민한 편이다. 우리나라와 달리 향신료를 많이 쓰는 중국이나 일본, 동남아의 음식에 거부감이 큰 이유다. 심지어 나는 탕과 국에 넣어주는 후추도 덜어내는 편이다. 후추가 입에 맞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 강한 향이 탕과 국 본연의 맛을 중화시킨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경남 쪽에 가면 흔히 ‘제피’라 부르는 초피나무 열매 가루를 추어탕에 넣기도 하는데 나는 이 강한 초피나무 열매 맛에도 질색한다. 경주 지방에 가도 소면에 초핏가루를 넣는 경우가 있는데 이 맛 앞에서도 나는 냅다 꽁무니를 뺀다.
나물 종류 가운데 나는 참죽나물(우리 고장에서는 이를 ‘가죽나물’이라 한다)을 잘 먹지 않는다. 내 형은 그것만 있어도 밥을 먹는다 할 만큼 참죽나물을 즐기지만 나는 그 향이 너무 강해서 잘 먹지 않는다. 올해는 아내가 텃밭 주변에 새로 올라오는 참죽 잎을 따와 튀겨주었는데 향이 누그러져 먹을 만했다.
유일하게 향을 즐기는 채소로는 미나리가 있다. 뭐랄까, 싱싱하면서도 은근하고 소박한 미나리의 향은 내게 과부족이 없다. 그래서 아내가 해 주는 미나리강회를 즐겨 먹고 썬 무와 미나리를 넣은 물김치를 먹으며 그 향취를 즐기곤 한다. [관련 글 : 미나리, 미나리강회, 그리고 봄]
그런데 미각은 나이를 먹으며 변하는 모양이다. 아내가 내 기호를 살펴 곱게 밭인 젓갈을 넣어서 김치를 담그므로 나는 요즘은 젓갈 넣은 김치도 일상으로 먹는다. 물론 아직도 순도 100%의 멸치젓(경상도에선 ‘밋젓’이라 한다)에는 감히 접근하지 못한다.
어릴 적에 쑥갓도 잘 먹지 않았다. 내 기준에 그것도 향이 강한 채소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 이 쑥갓 맛에 나는 편안해졌다. 올해도 텃밭에 상추와 쑥갓을 갈았는데 쑥쑥 잘 자란 상추와 쑥갓을 잔뜩 뜯어와 올린 점심 식탁에서 나는 상추에 쑥갓을 곁들여 상추쌈을 싸는 것이다.
쑥갓은 뜻밖에 ‘국화과’에 딸린 한두해살이풀이라 ‘춘국(春菊)’이라고도 한다. 쑥갓꽃을 보면 그게 국화과라는 걸 수긍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서양에서는 관상용으로 심으며(먹지 않는다는 말일 터이다) 동양에서는 채소로 재배한다.
상추쌈에 곁들이는 쑥갓을 만나다
상추쌈에 곁들여 먹거나 데쳐서 나물로도 먹는데, 요즘 아내가 무쳐주는 쑥갓나물도 맛있게 먹는다. 내 기준으로 치면 쑥갓 향은 절대로 넘치지 않는 것이다. 무칠 때 들어가는 참기름이나 마늘 등이 또 그 향을 중화하는지도 모르겠다.
쑥갓의 독특하고 산뜻한 향은 찌개류나 탕 요리에 마지막으로 넣어 비린 맛을 제거하는 데 좋다. 쑥갓은 위를 따뜻하게 하고 장을 튼튼하게 하는 채소라고 한다. 녹황색 채소 가운데서 비타민 에이(A)가 가장 풍부하여 100g으로 1일 필요량을 충족할 수 있다고 하니 귀한 채소임은 틀림없다.
아내는 다음 주초에 텃밭에 가면 뿌리겠다고 여름 상추와 고들빼기 씨를 사 왔다. 그러고 보니 고들빼기도 즐겨 먹는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 맛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향보다는 쓴맛이 오히려 입에 맞는 경우가 많아서다. 씀바귀(경상도에선 ‘신냉이’다)도 그렇고 얼마 전에 맛본 엄나무 순 나물무침도 쌉싸름한 맛이 원초적 입맛을 환기해 주는 것 같다.
나이 들면서 우리 땅에서 나는 나물이나 채소에 익숙해지는 것은 제 유전자가 알게 모르게 시키는 일이다. 신토불이, 사람의 몸은 그 땅과 어우러지면서 마침내 그 흙으로 돌아가는 연습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2018. 6. 9.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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