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의성군 안사면, 인구 800명 시골에 식당 연 청년들 이야기
벼르던 의성군 안사면(安寺面)에 다녀왔다. 의성은 한때 도내에선 ‘대읍(大邑)’이었으나 소멸위험 1위의 기초단체로 떨어진 고장. 안사는 의성에서도 면세가 보잘것없는 동네인데, 거기 외지 청년이 음식점을 열었다는 소식을 듣고서였다.
의성군은 유소년 인구 대비 노인 인구 비율이 가장 높고, 65세 이상 인구 비중 대비 20~39세 여성 인구 비중이 가장 작은 지방자치단체다. 이런 객관적 지표가 의성을 소멸위험 1위로 내몰고 있다. 하지만 의성군은 다양한 정책으로 맞섰다. 그 덕분일까. 지난해 8월 통계청이 발표한 2019년 합계출산율이 1.76명을 기록해 경북 도내 1위를 차지했고, 귀농 인구 실적도 같은 등수를 기록했다.
의성군은 청년들의 정착과 농업 창업 지원, 신혼부부 주거비 지원, 결혼·출산 장려금 지원, 출산 통합지원센터 운영 등으로 소멸 1위의 현실과 맞서고 있다. 정책 가운데 ‘이웃사촌 시범 마을’이 한몫을 했다. 합계출산율과 귀농 가구 수가 전국에서 손꼽는 순위에 오른 것도 ‘지역소멸지수 1위’의 오명에 맞선 노력의 결과다.
귀촌 프로그램에서 만난 세 청년, 시골에 창업하다
‘이웃사촌 시범 마을’ 사업은 2019년부터 시작해 일자리, 주거, 생활 여건 등 5개 분야에서 지원을 펼치는 사업이다. 이 사업은 80명이 넘는 청년들이 의성에 정착하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 청년들은 지역에서 수제 맥주 공방인 ‘호피홀리데이’, 유럽식 파스타 식당인 ‘달빛레스토랑’, 지역 농산물 판매점인 ‘진팜’(이상 안계면) 등의 문을 열었다.
신문과 TV로 내가 얻은 정보는 유명 요리학교 호주 르 꼬르동 블루(Le Cordon Bleu)를 나온 셰프가 ‘퓨전 레스토랑’을 열었다는 것이었다. 나는 무엇보다도 문을 닫은 벽촌의 빈 우체국 청사를 구조 변경하여 ‘안사우정국’(옛 감성을 살려 지은 이름인데, 우정은 ‘郵政’이 아니라 ‘友情’이란다)을 연 청년과 그 도전 과정이 궁금했다.
지난 5월 29일, 토요일 정오를 막 넘긴 때 우체국 앞에 차를 대고 나는 잠깐 식당을 건너다보았다. 전형적인 우체국 건물인데, 문 앞에 세워놓은 칠판에 적힌 ‘오늘의 점심 특선 간장 불고기’라는 문구가 없었다면 거길 식당이라고 여길 사람은 없을 듯했다.
뉴스는 유학파 셰프만 조명했지만, 기실 안사우정국을 연 이는 세 사람이다. 경남 마산 출신의 대표 이학정(27), 서울 출신의 부대표 김현서(28,), 오너 셰프 박지상(28)씨다. 세 사람은 의성군에서 마련한 귀촌 프로그램 ‘도시 청년 의성 살아보기’에서 만나서 의기투합했다.
인구 839명 시골에서 창업한 까닭
나는 하필이면 인구 감소로 우체국까지 문을 닫은 안사에 왜 들어왔느냐고 물었다. 2021년 1월 1일 기준, 안사면 인구는 839명(남 394, 여 445명)이고, 평균 세대원 수는 1.5명이다. 그것도 행정리 13개 마을에 흩어져 산다. 그러나 학정씨는 시원스럽게 대답했다.
"사람 많은 지역에 문을 여는 것은 도시에서 시작하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요? 식당 하나 없는 동네고, 마침 이런 맞춤 공간을 빌릴 수 있다는 걸 알고 논의 끝에 해 볼 만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람들을 찾아오게 만들면 되니까요."
이들이 사전 준비를 거쳐 식당 문을 연 날은 지난 4월 말이다. 외식경영을 전공한 학정씨나 요리학교 출신의 지상씨와 달리 건축학을 공부한 현서씨는 학정씨의 요청에 식당의 구조 변경을 돕다가 전격 합류했다. 이들은 의성군의 ‘도시 청년 시골 파견제’ 창업자금을 지원받았다. 개업 후 첫 한 달은 어땠을까.
"처음에는 지역 주민들께서 경계하는 듯했습니다만, 시간이 지나면서 너무 적극적으로 도와주시기 시작하면서 이제 아주 편안해졌습니다."
자기표현에 서툰 경상도 사람, 주민들은 낯선 젊은이들이 들어와 음식을 만들어 판다고 하는 게 미덥지 않았을 터, 얼마나 가나 두고 보자는 심정으로 지켜보았을 것이다. 그러다가 이들이 단단하고 야무진 청년이라는 걸, 그 진정성을 받아들였던 모양이었다.
나는 매출을 물어보는 대신 한 달 운영해 보니 어떠냐고 완곡하게 물었다. 그러나 청년들은 씩씩하게 대답했다. 생각보다는 괜찮았다고, 이 정도라면 할 만하다고. 이들이 만든 음식은 호평받았던 모양이다. 주민들은 들에 나갔다가도 음식점에 들러 주었고, 보도를 본 외지인들도 심심찮게 찾아주었다. 평일에는 손님이 많은데, 주말에 오히려 조용하다고 했다.
나는 좀 조심스럽게 ‘지속가능성’을 물었다. 처음이니까 사람들이 찾아와 주지만, 시간이 지나도 그게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는 것이다. 아무리 넉넉하게 봐주려 해도 좌절은 생각보다 훨씬 일찍 찾아올 수 있는 게 아닌가 말이다.
"식당만으로는 어렵지요. 그래서 체험 프로그램과 밀키트 같은 가공식품을 개발해 판매하는 걸 구상하고 있습니다. 집 옆 밭에서 허브를 재배하고 있는데, 이걸 수확하고 요리해 보는 체험 같은 거요. 당장은 어렵지만, 그렇게 가려고 합니다."
나는 보도에서 본 ‘파스타’ 주메뉴 건에 대해 물었다. 젊은이는 드물고 장노년층이 주요 고객일 텐데, ‘파스타가 주메뉴라니’ 싶어서였다. 한식은 지역 주민들을 위해 만들고 있고 파스타는 나중에 찾아오는 손님을 위한 메뉴인데, 특색 있는 요리로 만들려고 연구를 거듭하고 있다고 했다.
청년의 도전은 의성 소멸과 맞선다
연신 밝게 웃고, 쾌활한 청년들의 모습에선 미래에 대한 불안 따위를 찾기 어려웠고, 낙관적 태도가 자산처럼 보였다. 나는 그쯤에서 고백했다. 청년들이 음식점을 연다는 걸 이들의 수련 과정쯤으로, 미래의 사업을 위해서 시골에서 가볍게 시작해 보는 정도로 여겼다는 사실을. 언젠가 미련 없이 떠나가면 그만인 사람으로 여겼다는 것을. 적어도 이들이 이 산골에 뿌리박으리라고 상상할 수 없었다는 사실을.
그러나 그것은 젊은이의 선택과 도전을 시뻐 본(‘쉬이보다’의 방언) 것이었다. 우리 세대의 감성으론 이 이십 대 젊은이들의 도전을 쉽사리 이해하지 못한 것이었다. 나는 일단 ‘현실적’이란 방패 뒤에 숨기만 하는 내 상상력의 빈곤을 뉘우쳐야 했다.
이들의 창업은 세 사람만의 도전에 그치지 않는다. 이들의 성패는 일찌감치 시동을 건 의성군의 청년 유치 정책, 그리고 의성 소멸에 맞선 싸움과 이어지기 때문이다. 의성군에서 청년의 유입과 안정적인 정착에 사활을 건 이유이기도 하다.
이 적극적 정책 덕분에 창업에 도전한 청년들의 성공 사례가 알려지면서 도시 청년들이 의성을 눈여겨보고 있는 점도 고무적이다. 합계출산율을 포함한 의성의 정책은 중앙부처와 다른 지자체의 ‘본따르기’(벤치마킹)의 대상이 되고 있다.
어쨌든 도전은 시작되었다. 청년들은 ‘미래’나 ‘발전 가능성’ 따윈 없다고 알려진 소멸 1순위의 시골 마을에서 자신들의 가뭇없는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땀을 흘리고 있다. 젊음에는 실패조차도 값진 자산이 되리라는 뻔한 수사는 미뤄두기로 한다.
나는 그날, 안사우정국의 간장 불고기를 먹은 첫 번째 손님이었다. 유학파 셰프가 조리한 간장 불고기는 맛이 좋았다. 들큼한 단맛이 없었는데도 충분히 입에 잘 맞았다. 배추된장국도 맑고 담백했다. 대화를 끝낼 때쯤 두 번째 손님이 들었다. 방송 보고 왔다는 60대 남녀 4명은 가족 친지들로 보였는데, 인근 비안면이 고향이라고 했다.
나는 단풍 좋은 가을에 다시 안사우정국을 찾겠다고 약속했다. 이들의 성공과 안착을 응원하는 것은 정 때문만은 아니다. 농촌은 어머니와 고향 같은 원초적 이미지로 존재하는 공간이다. 젊은이들의 도전은 그 공간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고 넓히는 일이기 때문이다.
2021. 6. 2.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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