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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의 ‘백과사전’들, 믿을 만하나?

by 낮달2018 2021. 3.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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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백과사전’의 정보, 신뢰할 수 있나?

▲ 청음 김상헌 (1570~1652)의 글씨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인터넷 정보가 그리 믿을 만하지 않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안다. 그러나 막상 그 정보의 신뢰성을 마땅히 측정할 방법은 없다. 그러니 사람들은 아쉬운 대로 인터넷에서 검색한 정보를 쓸 수밖에 없다.

임신·육아·출산 관련 66개 사이트 중에서 72%에 이르는 48개 사이트가 엉터리 정보를 게재하고 있으며, 200건 중 126건(63%)이 잘못된 정보였다는 보도는 그 움직일 수 없는 실례다.

▲ 실수하게 만든 출전

이태 전쯤에 블로그에 올린 글에서 ‘수욕정이풍부지(樹欲靜而風不止) 자욕효이친부대(子欲孝而親不待)’라는 글귀의 출전을 <논어>로 쓴 적이 있었다. 미심쩍어 인터넷 검색으로 확인하고 썼던 듯한데, 어디에 씌었던가 보다.

이웃의 지적을 받아 다시 찾아보니 웬걸, <한씨외전(韓氏外傳)>이다. 있을 수 있는 실수라고는 하지만 기분이 개운하지 않았다. (방금 찾아보니 여전히 그런 정보를 담은 자료가 떠 있다.)

사용자들이 일종의 정보 공유의 형식으로 올리는 자료는 검증을 거치지 않았으니 때로 불확실하거나 잘못된 정보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공신력 있는 포털 등에서 게시한 <백과사전>이나 각종 <사전>의 오류는 어떨까. 이 경우에 우리는 대체로 그 정보의 정확성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는다.

글을 쓰기 위해 자료조사를 하면서 나는 가끔 포털의 <백과사전>을 검색하곤 한다. 주로 역사적 인물에 대한 정보를 검색하는데 사전에 따라 연대나 내용이 서로 달라 곤혹스러웠던 기억이 있다. 여러 차례 그런 일을 겪었는데 지금도 기억나는 건 ‘청음 김상헌’에 관한 내용이다.

그에 관한 글을 쓰려고 백과사전을 검색한 결과 몇몇 정보는 일치하는데 또 몇몇은 달라서 나는 적지 않게 당황했었다. 병자호란 당시 주전파의 거두였던 청음 김상헌은 청에 붙잡혀가서 수년간 억류되었는데 이 기록이 포털의 백과사전마다 조금씩 달랐기 때문이다.

포털은 저마다 다른 백과사전을 쓰고 있다. 네이버는 <두산백과사전>을, 다음은 <브리태니커백과사전>을, 엠파스(지금은 네이트로 통합)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야후는 <동서문화사 백과사전>을 쓴다. 구글은 <위키백과>를 기본으로 하는 것 같다. 그 내용이 얼마나 상세한가, 소략한가는 사전별 특성일 수 있으니 논의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기본 사실이 다른 것은 좀 다른 문제가 아닌가 싶다.

청음이 청으로 압송되고 수년간 억류되었다는 기본 사실은 다르지 않다. 그러나 압송된 해나, 억류 기간이 조금 달랐다. ‘1639년 청으로 압송되어 1645년까지 6년간 억류되었다’라고 기록하고 있는 포털은 다음(브리태니커), 네이트(한국민족문화대백과), 구글(위키백과) 등 세 군데였다.

▲ 다음의 브리태니커백과사전
▲ 네이트(옛 엠파스)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구글의 위키백과

그러나 네이버(두산백과)와 야후(동서문화)는 조금 다르다. 두산백과사전에서는 ‘1641년에 청에 압송되어 4년간 억류되었다’라고 쓰고 있는 것이다. 앞의 사전에 비기면 2년이 차이 난다. <동서문화백과>에서는 압송 년도 없이 ‘3년간’ 억류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쯤 되면 어느 자료를 믿어야 할지 혼란스러워질 수밖에 없다.

▲ 네이버의 두산백과사전
▲ 야후의 동서문화 대백과사전

나는 이 역사적 사실의 진위를 밝힐 능력이 없다. 나는 국사편찬위원회의 국역 <조선왕조실록>을 검색해 보았다. 인조 17년(1639)에 12월에 김상헌이 상소를 올린 것은 확실하다. 국역 실록의 제목은 ‘청나라에 대응할 것에 대한 전 판서 김상헌의 상소’다. 그러나 그 해에 김상헌에 청으로 끌려갔다는 기록은 없다. 물론 실록에 없다고 해서 존재했던 역사적 사실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정작 ‘김상헌·조한영·채이항 등이 심양에 도착하여 문초를 받다’라는 제목의 실록은 인조 19년(1941년) 1월의 기록이다. 자, 어떻게 판단해야 하나. 혹시 다른 자료가 있나 다시 검색했더니 조금 더 상세한 자료로 ‘서울 600년사’가 있다. 거기서는 ‘1639년 압송, 1642년 일시 귀국했다가 재압송되어 모두 6년간 심양 북관에 머물렀다‘고 적고 있다.

▲ 조선왕조실록의 기사. 각각 김상헌의 상소와 심양 도착을 다루고 있다.

여전히 내게 진실은 오리무중이다. 어느 자료의 어느 기록을 믿어야 할까. 역사의 세부 기록이니 그 정확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인터넷의 강자인 포털 앞에 개별 사용자는 포털이 전해주는 자료의 진위를 판단할 수 없는 그저 무력한 개인일 뿐이다.

2009. 3. 22. 낮달


*12년 전에 쓴 글이지만, 사정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매체든, 사전이든, 믿지 말고 자료를 여러 군데 살펴보고 정보를 수용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한 마디로 끊임없이 의심하면서 확인하려는 태도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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