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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거일의 ‘남성유전자 보존론’

by 낮달2018 2021. 3.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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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보수 논객’ 복거일의 마초이즘

▲ 복거일의 저작. 이들의 주제는 그의 정체성과 통한다 .

‘보수 논객’이라는 복거일을 나는 소설가로 만났다. 그가 80년대에 발표한 장편소설 <비명(碑銘)을 찾아서>를 통해서였다. 스스로 ‘대체역사(代替歷史, alternative history)라고 말하는 이 소설은 1909년 하얼빈에서 있었던 안중근 의사의 암살 기도가 실패로 끝나 이토 히로부미가 부상만 하였다는 가정 아래 쓰였다.

 

작품성이나 감동과는 별개로 나는 이를 매우 흥미로운 시도로 받아들였다. 자국의 역사는 물론 민족적 정체성조차 잃고 일본인으로 살아가는, 완전히 일제에 동화된 식민지 조선인이 민족적 정체성에 눈떠가는 과정을 매우 충격적으로 그리고 있는 이 소설을 나는 ‘중간소설’이라는 관점에서 읽었던 것 같다.

 

복거일, ‘대체역사’ 소설가에서 ‘영어공용화론자’로

 

뒤에 1988년에 펴낸 소설 “높은 땅 낮은 이야기”를 산 것도 앞선 작품에서 얻은 흥미의 연장선상에서였다. 군대를 배경으로 한 이 소설의 내용은 구체적으로 기억나지 않는다. 그 이후의 그의 저작에 대해서는 아는 게 전혀 없다.

 

▲ 문학과 지성사, 1983

그를 다시 만난 것은 2000년을 전후한 이른바 ‘영어공용화론’을 중심으로 한 논란에서였다. 그는 뜻밖에도 영어를 공용어로 하자는 이 주장의 주도적 논객으로서 이 논쟁의 중심에 서 있었다. 오래된 일이라 구체적인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의 주장을 거칠게 요약하면 ‘몇 세기 안에 하나의 국제어가 등장하고 다른 민족어들은 모두 소멸하리라는 전망, 실질적으로 국제어가 된 영어가 지금 누리는 거대한 망 경제’ 아래서는 ‘모국어인 한국어를 버리고 영어를 우리말로 삼는 것’이 ‘우리가 고를 수 있는 단 하나의 대책’이고 사람들의 ‘심리적 저항을 크게 받지 않’기 위해서 그 ‘첫 단계’로 우선 ‘영어를 우리말과 함께 공용어로 삼자’는 것이었다.

 

그가 편 주장의 정당성과 합리성을 굳이 따질 일은 없겠다. 나는 우리 사회에 팽배해 있는 이러한 영어나 그것으로 대표되는 미국 일변도의 문화에 대한 경도와 숭앙이 어떤 형식으로든 미국과 관계를 맺고 있는 친미 지식인들 일반의 정서와 닿아 있다고 생각한다. 이들을 일률적으로 일반화하면 이른바 ‘머리 검고 한국말 유창한 미국인’이다.

 

복거일은 서울대를 나와 경제계에서 활동했고 자유주의·자본주의의 전파에 앞장서는 보수 진영의 논객으로 널리 알려진 이다. 그는 영어 공용화와 함께 ‘원화 대신 달러를 통화로 채택’하자는 주장으로 ‘탈민족주의’를 주창한 바 있으니 더는 설명이 필요 없을지 모르겠다.

 

시집살이, 남성 유전자 보존의 ‘장치’?

 

그가 영어공용화론을 펴고 있을 때 나는 언뜻 그가 소설 “비명을 찾아서”에서 다룬 현실은 어쩌면 그가 용인할 수 있었던 역사적 가정은 아니었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잠깐 했었다. 영어 공용화의 완성으로 태어날 또 다른 나라를 그는 이상적인 국가의 전형으로 여긴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그런 복거일이 다시 뉴스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이번에는 여성 비하 발언으로다.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그는 이화여대의 초청 강연에서 주제와는 무관한 ‘여성 비하’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켰다는 것이다. 그의 발언을 정리하면 대충 다음과 같다.

 

“여성은 결혼을 했어도 언제나 혼외정사 의도가 있고, 그렇기 때문에 항상 여성을 감시해야 한다.

‘여성이 시집간다’는 표현은 그래서 있는 것이며, 시집살이는 여성이 다른 곳에 한눈을 팔지 못하게 하고, 성적인 관계를 남편에게만 집중할 수 있게 하며, 남성의 유전자를 보전하기 위한 하나의 장치다.

여성이 화장을 하는 이유는 남성에게 섹스 어필을 하기 위한 것이다. 남성은 유전자적으로 젊고 어린 여성을 원하기 때문에 여성은 최대한 어려 보이려는 목적이다.

남성은 자식이라도 자신의 유전자를 가졌는지 확신이 없기 때문에 계속 다른 여성과 성적인 관계를 가져야 한다.

관습은 우리 사회에서 아주 오래전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것이라 함부로 없애서는 안 된다. 호주제 역시 폐지해서는 안 된다.”

 

▲ 복거일(1946 ∼  )

이 ‘주옥’ 같은 말씀은 당연히 비난을 부를 수밖에 없는 일. 학내 커뮤니티 등을 통해 이 사실이 알려지자 비난이 쇄도했고 일부 학생은 학내 양성평등센터에 이 사실을 신고했다고. 복씨가 전화를 받지 않아서 이러한 비난에 대한 그의 반응은 아직 알 수 없다.

 

실소할 수밖에 없는 이 한편의 촌극 앞에서 우리는 입맛을 다실 수밖에 없다. 이게 이른바 ‘보수의 본색’이 아닌가 싶어서다. 당명을 바꾼 여당의 권력자, 실력자들이 시시때때로 저지른 숱한 여성비하 발언과 ‘성 추문’ 따위를 생각해 보라.

 

‘보수’는 인간의 삶과 시대, 역사에 대한 일정한 태도를 가리키는 이름이다. 그것 자체로 ‘진보’와 함께 한 사회, 한 시대의 균형을 취할 수 있는 세계관으로 마땅히 기려져야 할 이 태도가 어찌하여 이 땅에선 지리멸렬한 전근대적, 시대착오적 가치관과 등치되는지 기가 막힐 노릇이다.

 

글쎄, 그가 꿈꾼 문화국가, 영어를 공용어로 쓰면서 이 국제어가 누리는 ‘거대한 망 경제’ 안에 편입된 사회에서도 그의 논리는 관철될까. 관습으로서의 ‘호주제’, 이 전근대적 가부장제가 필요하고, 여전히 여성은 ‘우월적 유전자’를 보존하는 장치로서 인식될까.

 

“여성은 결혼을 했어도 언제나 혼외정사 의도가 있고, 그렇기 때문에 항상 여성을 감시해야 한다.”라는 기상천외의 주장은 그가 은연중 그리고 있을지도 모르는 미국 사회의 그것을 이야기하는 걸까. 혹 그것은 여성에 대한 감시를 통해서라도 우월한 유전자를 지켜내야 하는 주류 남성의 조바심 같은 것일까.

 

무엇보다 내게는 이들이 지키려는 자유주의·자본주의가 이러한 퇴행적 세계관의 확대 재생산을 위한 의사 체제로만 읽히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현대사회가 마땅히 견지해야 할 자유와 평등의 가치가 아니라 여전히 구체제의 패러다임을 벗지 못하고 있는 이 땅 ‘보수’의 본색 앞에서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2012. 3. 29.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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