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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다! ‘참소주’ 회사의 결혼 퇴직제

by 낮달2018 2021. 3.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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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주류업체의 수상한 제도

▲ 대구경북여성단체연합이 금복주 본사 앞에서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며칠 전 의성으로 귀촌한 친구 내외가 집에 들렀다. 나가서 점심을 먹으면서 반주로 소주를 주문했다. 요즘은 식당에서도 소주를 시키면 원하는 상표를 물어본다. 나는 문득 생각이 나서 ‘참이슬’을 시켰다.

 

“뉴스 봤지? 금복주 여직원들은 결혼하면 사표를 써야 한다며? 그래서 진로를 시켰어.”

“그래, 한동안 나도 참소주 안 마셨잖아. 거짓말 광고 때문에 뿔나서.”

 

그렇다. 나는 특정 상표의 소주를 찾는 일이 전혀 없지만, 꽤 오래 친구는 금복주에서 나온 ‘참소주’를 기피했다. 5~6년 전의 일이다. 이 회사에선 ‘참소주’의 주원료를 천연 암반수라고 광고했지만, 실제 수돗물로 소주를 만든 게 들통이 나버렸었다. 분노한 친구는 늘 참이슬을 주문했다.

 

이른바 ‘팔도 소주’라 하여 지역별로 안방을 지키는 소주가 있다. 예컨대 대구·경북의 ‘참소주’, 부산·울산의 ‘시원(C1)’, 광주·전남의 ‘잎새주’ 같은 소주를 ‘자도주(自道酒)’라 한다. 1973년부터 소주 시장의 과다경쟁과 품질 저하를 막기 위해 주세법의 ‘자도주 구입제도’가 시행되면서 지역마다 이 안방 소주가 정착한 것이다

 

‘자도주 구입제도’로 성장한 지역 기업 ‘금복주’

 

자도주 구입제도는 시도별로 하나의 소주 업체만을 허용하고, 그 지역의 주류 도매업자는 이른바 ‘자도주’를 50% 이상 구매해야 한다는 것이 골자다. 이는 영세한 지역 주류업체가 반독점적인 지위를 유지하며 중견업체로 성장하는 배경이 되었다.

 

6, 70년대만 해도 요즘과 달라서 술 광고도 아무 때나 전파를 탔다. 우리는 “금, 금, 금복주, 최고 소주 금복주”로 시작되는 금복주 시엠(CM)송을 들으며 자랐다. 1957년 창업한 금복주는 1963년부터 ‘금복주(金福珠)’ 상표를 사용하면서 심벌마크로 ‘복영감’을 썼다.

 

술통 위에 앉아 왼손에는 술 주머니, 오른손에 부자 방망이를 든 이 영감은 중국과 인도의 유명한 스님의 이미지를 빌려서 만들었다고 한다. 이 다소 유들유들하면서도 코믹한 표정의 복영감은 그 시대와 얼추 맞아떨어졌던 것 같다. (물론 지금은 이 마크를 쓰지 않는다.) 살이 쪄 뚱뚱한 사람을 가리켜 ‘금복주’ 스타일이라고 할 만큼 금복주가 널리 알려지자 1973년 회사 이름도 금복주로 바꾸었다.

 

지금은 순한 소주라 해서 14도까지 낮춘 소주도 나오지만 70년대에 우리가 구멍가게에서 새우깡을 안주로 마시던 금복주는 옹근 30도짜리였다. 몸에 나쁜 불순물이 떠 있다 해서 병을 따면 한 잔쯤은 버리고 마시던 그 술은 쓰고 독했다.

 

자도주 구매 제도가 1996년 위헌판결로 사라지면서 이른바 팔도 소주는 전국에서 경쟁하게 되었지만 20년 이상 반독점적 지위를 누리면서 구축한 시장 점유율은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보도에 따르면 대구·경북의 금복주도 지난 3년간 80~90%의 점유율을 지켜오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지역의 중견기업으로 성장한 이 회사에는 지난 60년 동안 여직원이 결혼 후 근무한 선례가 없다는 게 밝혀졌다. 회사는 부인하고 있지만, 전체 여직원 10명 모두 20대 미혼이어서 사실상 ‘결혼퇴직제’를 적용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것이다.

 

대표이사는 항의 방문한 여성 단체와의 면담에서 ‘여성 인력이 필요하지 않아 뽑지 않은 것’이라고 해명했다고 한다. 그러나 지역 여성 단체에서는 명백한 성차별로 남녀고용평등법 위반이라며 1인시위를 벌이고 항의 방문에 이어 불매운동까지 들어가는 모양이다.

 

처음 이 뉴스를 들었을 때, 나는 순간적으로 시간이 30년 전으로 퇴행하고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80년대 초임 시절, 사학에 근무할 때다. 사학인데도 해마다 십수 명씩 교사들이 바뀌곤 했다. 그 당시엔 무심하게 여겼는데 그렇게 인사이동이 잦은 게 결혼퇴직제 때문이었다.

 

쓰다, 참소주 회사의 결혼퇴직제

 

여학교이기도 했지만, 여교사 비율이 매우 높았고, 그들은 모두 미혼이었다. 결혼했지만 퇴직하고 싶지 않았던 몇몇 동료의 하소연을 듣고 그게 문제라는 걸 알았지만 그 시절엔 그걸 해결할 방법이 없었다. 얼마 뒤에 교원노조가 출범하고 교권에 대한 인식이 제고되면서 결혼하면 사표를 써야 하는 이 악습은 사라졌다.

 

그런데 그로부터 30년도 더 지난 2016년도에 미혼여성만 근무할 수 있는 회사가 있다는 거 아닌가. 출산과 육아 때문에 경력이 단절될 수밖에 없는 여성들을 일러 ‘경단녀’라고 부르는 시대에 결혼하면 회사를 떠나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는 기분은 참 묘했다.

 

대구에서 중고등학교에 다닐 적에 침산동 큰길가에 금복주 회사가 있었다. (그게 회사인지, 물류센터였는지 모르겠다.) 소주 상자가 엄청나게 쌓여 있었고 대형 콘테이너에 ‘납세보국’이라고 글자가 선명했다. 뒷날 이 회사의 설립자가 납세자 표창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기도 했다. 세금도 잘 내야겠지만 고용에 성평등에 대한 개념도 갖추어야 마땅하지 않은가.

 

술을 제조하는 회사라고 해서 남자 사원만 필요하고 여사원이 필요하지 않을 수는 없다. 직역에 성별 구분이 사라져가고 있는 현실에서 이 지역 중견기업의 시대착오적 인사관리 정책을 바라보는 기분은 70년대 우리가 마셨던 30도짜리 독한 금복주보다 더 쓰고 떫다.

 

 

2016. 3. 18.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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