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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과 ‘해님’은 사이시옷 한 끗 차이?

by 낮달2018 2020. 9.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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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성어와 파생어에서 ‘사이시옷’ 쓰기

프로야구단 한화 이글스 소속의 김해님이란 선수가 있다. 언젠가 경기에 나온 그의 모습을 보았는데 등판에 새겨진 ‘김해님’이란 이름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햇님’이라 쓰지 않고 이름을 제대로 썼구나 싶었기 때문이다.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니 그는 2007년 방출되어 지금은 일본 독립 리그의 코치로 활동 중이다.

얼마 전에는 <인터넷 경향>의 화보에서 한 여성 모델을 만났는데 이름이 ‘김햇님’이었다. 비키니 차림의 젊은 여성 연예인들의 풍만한 몸매를 ‘황홀한’, ‘아찔한’, ‘명품’, ‘이기적’ 따위의 꾸밈말로 소개하며 누리꾼들을 유인하고 있는 코너다. 푸근한 표정의 이 모델도 몸매보다는 그 이름에 눈길이 갔다.

프로야구 선수 김해님과 모델 김햇님

▲ 프로야구 선수 김해님과 모델 김햇님

사람의 이름은 ‘고유명사’다. 따라서 일반적인 어법을 적용하기 곤란한 부분이 있다. 실제 발음과 무관하게 본인이 그렇게 불러달라면 그리 불러주어야 한다는 얘기다. 3공화국 시절에 서울시장을 지낸 양택식(梁鐸植)이란 사람이 있었다. 이 이의 이름 가운데 ‘택’은 사실은 ‘방울 탁’자다. 그런데 본인의 요청에 따라 ‘택’으로 쓰는 것이다.

재벌 그룹 ‘쌍용’도 마찬가지다. 쌍용(雙龍)의 용은 원래 음이 ‘룡’이다. 당연히 쌍룡이라 써야 옳지만 기업에서 그렇게 표기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그걸 용인할 수밖에 없다. 앞소리에 따라 ‘렬, 률’로 적어야 하는 이름을 굳이 ‘열, 율’로 적었다면 어법을 들먹이면서 바꾸라고 할 수 없다는 얘기다.

우리나라에서는 40여 년간 ‘시보레’로 써온 자동차 브랜드가 2011년부터 ‘쉐보레’로 쓰이기 시작한 것도 마찬가지 사례다. 영자 ‘Chevrolet’는 1986년 개정된 외래어표기법을 따르면 ‘시보레’로 표기하는 게 옳다. 그런데 한국지엠(GM)은 미국 영어 발음과 비슷하게 부르기 위해서라며 ‘쉐보레’로 쓰겠다고 하니 그렇게 쓰는 수밖에.


다 같이 ‘해’가 들어가는 낱말이지만 ‘햇빛’과 ‘해님’은 다르다. 국어 시간에 합성어와 파생어를 설명할 때 내가 양념처럼 끼워 넣는 예다. ‘햇빛’은 ‘해’와 ‘빛’이 더해 만들어진 합성어(둘 이상의 어근으로 이루어진 단어)다. ‘햇빛’은 [해삗/핻삗]으로 발음되기 때문에 사잇소리를 붙여서 ‘햇빛’으로 적는다.

‘토끼님’도 ‘토낏님’으로 쓸 건가?

그러나 ‘해님’은 명사 ‘해’에 접두사 ‘님’이 더해진 파생어(어근에다 접사가 붙어서 이루어진 단어)다. ‘-님’은 ‘뜻을 가진 낱말’(어근)이 아니라 거기에 ‘높임’의 뜻을 더하는 의존 형태소다. 따라서 여기엔 사잇소리가 들어가지 않으므로 그냥 ‘해님’으로 읽고 적는다. 이는 ‘토끼’를 인격화하면서 ‘토낏님’으로 쓰지 않는 것과 같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흔히들 ‘해님’을 [핸님]으로 발음하기도 한다. 이때 ‘ㄴㄴ’이 덧나기 때문에 사이시옷을 넣어야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표준발음에 어긋난다. [해님]으로 읽지 않고 [핸님]으로 읽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사람이름은 고유명사다. 개인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이름에 어법을 들이대어 맞네, 틀리네 할 수 없다는 말이다. 그러나 ‘해님’을 ‘햇님’으로 쓸 수 없다는 건 분명히 기억해 둘 일이다.

 

 

2012. 2. 19.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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