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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풍진 세상에 /행복한 책 읽기

포복절도하다 등이 서늘… 끝내주는 <충청도의 힘>

by 낮달2018 2020. 8.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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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남덕현의 <충청도의 힘>…정말 감칠맛 납니다

▲ 양철북(2013, 12000원)

<충청도의 힘>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한겨레>에 실린 기자 칼럼에서다. 기자는 이 책에 나오는 노인의 말씀을 제법 길게 소개했다.

 

“세상일이란 한 가지로 똑 떨어지는 법은 없다. 원래 사람이 하는 일은 모두 새끼를 치니까. 1번 되었다고 너무 야코 죽지 말아라. 5번 찍었으면 반드시 5번이 새끼 칠 날이 올 거니깐….”(눈치챘겠지만 지난 대선 이야기다. 5번 찍은 사위에게 건넨, 1번 찍은 장인어른 말씀이다.)

 

머리를 갸웃했지만, 무슨 책 이름이거니 하고 잊어버렸다. 그런데 얼마 전에 <작은책> 8월호에 실린 어떤 글을 읽다가 퍼뜩 짚이는 게 있었다. ‘수덕사가 워디 가?’라는 제목의 글은 포복절도하고도 남을 이야기였다. 책을 읽다가 거의 대굴대굴 구를 지경으로 배를 잡은 건 거의 십몇 년 만이었다.

 

충청도 노인들이 수덕사로 관광을 가는 길이다. 기차를 기다리면서 노인들이 나누는 대화의 주제는 ‘버스’가 낫냐, ‘기차’가 낫냐다. 모두 기차에 관한 험담을 해대는데 침묵하는 한 사람이 있다. 개중에선 좌장 격인 ‘성님’이다. 아우들은 성님의 속내를 캐묻는데 성님은 기차가 좋단다.

 

페이스북에 연재된 충청도의 힘

 

성님의 기차 예찬론을 들으면서 아우들의 심사는 꼬이기 시작한다. 그러다 마침내 그들의 인내심은 폭발해 버린다. 오지 않는 기차를 흘기며 아우들은 시간이 점점 늦어지는 걸 참지 못하게 된 것이다. 당연히 ‘성님’의 ‘원죄’를 캐물으며 결기를 앞세운다.

 

“기차가 편혀유? 정신만 멀쩡허믄 기차가 왔따유? 아, 월매나 정신이 멀쩡허게 편허믄 기차 시간 놓치는 줄두 모르구선 내처 주무셨대유? 야? 성님네 안방이 기찻간이유? 환장허겄네. 참말루! 지가 기냥 빠스 대절혀서 가자구 혔슈? 안 혔슈? 이게 뭐유 시방! 빠스 불렀으믄 수덕사 발쌔 도착허구두 남었슈! 일찍 인날 자신이 읎으믄 돈이래두 총무헌티 매끼든가! 그랬으믄 우덜이래두 먼저 갔을 거 아뉴?”

 

여기저기서 볼멘소리가 터져 나온다.

 

“인자 출발혀서 원제 도착한댜! 비빔밥 맞춰논 거 다 쉬어터지게 생겼네!”

“담부텀 기차 타자구 허믄 난 안 갈껴. 조상님덜 중에 기차 못 타서 죽은 귀신이 붙은 겨 뭐여!”

“빠스 대절혔으믄 수덕사 가서 머리 깎구 여승 되구두 남을 시간이여!”

“얼래? 여승이 뭐여? 부처 되구두 남을 시간인디!”

 

죽을죄를 지은 ‘성님’이 여전히 먼 산을 바라보며 조용히 한마디 한다.

 

“수덕사가 워디 가?”

    - 남덕현 ‘수덕사가 워디 가?’, 월간 <작은책> 8월호 중에서

 

아우들의 짜증 섞인 힐난은 노인들의 극에 달한 불만을 여과 없이 드러낸 것이다. 그러나 그걸 읽으면서 독자들은 그 분노에 동참하기보단 ‘뒤집어지기’ 쉽다. 성님의 뜻과 달리 ‘빠스’를 이용했다면 수덕사 ‘여승’이 되고도 남을 시간이라고, 아니 ‘부처’가 되고도 남은 시간이라는 이들의 ‘과장’과 아우들의 불만 앞에서 느긋하기만 한 형님의 능청, 그것이 ‘충청도’다.

 

나는 온라인 검색을 통해 <충청도의 힘>이 지난 7월에 막 출간된 책이라는 것, 그 지은이가 <작은책>에 실린 글의 저자라는 것도 확인할 수 있었다. 나는 망설이지 않고 다른 책 몇 권과 함께 이 책을 주문했다. 주문한 책이 와도 차일피일 한두 달을 묵히는 일은 다반사지만 나는 <충청도의 힘>을 펴고 한나절 만에 읽어 버렸다.

 

<충청도의 힘>은 충남 보령의 가내 수공업체 ‘자이랑식품’에서 ‘가마솥에 불 넣는 머슴’으로 일하고 있다는 남덕현이 쓴 ‘능청 백단들의 감칠맛 나는 인생이야기’다. 보령 달밭골(월전리)에서 펼쳐지는 충청도 어르신들의 ‘인생극장’, 페이스북에 연재되면서 입소문으로 유명해진 에세이다.

 

작가는 도시에서 살다 처가인 달밭골으로 귀촌해 살면서 자신의 장인을 비롯하여 일흔이 넘는 동네 어르신들의 능청스러운 대화를 수시로 듣게 된다. 그리고 그 일상의 대회 속에 담긴 ‘위대한 힘’을 발견하고 일이 끝나는 밤마다, 새벽마다 그 대화를 재구성해 페이스북에 연재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작가의 말대로 <충청도의 힘>은 ‘거기서 거기’에 불과한 사소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좋았던 젊은 시절 다 보내고 쓸쓸하게 늙어가고 있는 시골 노인들이 걸쭉하게 구사하는 충청도 사투리에 묻어나는 진국의 ‘익살’과 삶에 대한 만만치 않은 ‘성찰’의 기록이다.

 

사투리 속의 삶, 그 진실과 눈물

 

입말의 묘미를 제대로 구현하는 게 고장 말, 사투리다. 표준말이 잘 정리된 논리적 인식을 드러내 준다면 사투리는 사람살이의 희로애락을 그 걸쭉한 말마디로 오롯이 선보이는 것이다. 사투리 속엔 ‘먹물’들의 잘난 인식과 난해한 세계관, 단순함을 과장하고 비트는 현학도 존재하지 않지만, 그 속엔 삶의 진실과 눈물이 있다.

▲ 특정 지역과 그 지역 사투리를 배경으로 이루어진 소설들 .

조정래의 <태백산맥>에 전개되는 전라도 사투리, 박경리의 <토지>에 서술되는 경상도 사투리, 이문구의 <관촌수필> 등에 나타나는 충청도 사투리가 그것이다. 신교육을 받아 표준말을 의식하는 젊은이들과 달리 노인들은 사투리를 아주 편안하게 쓴다. 상대가 알아듣건 말건 태어날 때부터 익힌 오래된 말로 엮어내는 이들의 이야기 속에는 삶의 장면 장면이 담고 있는, ‘살아 꿈틀대는 진실’이 있는 것이다.

 

처가 동네로 들어가 살고 있는 작가에게 가장 신실한 멘토는 국민학교 2년 중퇴의 학력이지만 지역에서 ‘배운 양반’으로 통하는 ‘장인어른’이다. 그이는 소를 한 번도 보지 못했지만, 눈치로 ‘소 그림’을 알아맞혀 국민학교 입학시험에 합격한 전력을 가졌고, ‘아는 것이 심(힘)이여!’이라고 힘주어 말하는 노인이다.

 

처가로 들어왔지만 사위는 백년손님, 엔간하면 대접하고 배려하면 좋으련만 아주 친아들처럼 편하게 대하다 보니 때로 사위는 동네북이 되기도 한다. 사위가 지갑을 잃어버려 찾아다니자 온갖 잔소리로 타박을 해대는 이 ‘빙장어른’ 앞에 사위는 그저 ‘밥’일 뿐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사위가 찍은 5번이 새끼 칠 날도 온다는 위로를 잊지 않는 노인이다.)

 

“니 생각에두 고추밭이여? 야! 근디 니가 무신 고추를 심허게 땃다구 지갑을 다 흘린댜? 난 암만 따두 담배갑 하나 안 흘리는디 니가 나보덤 고추를 더 땄간? 치다보믄 게우 하나 따구 산 한 번 보구 허드만.”(중략)

 

아마 화장실이라고 대답했으면 이런 타박이 돌아왔을 것이다.

 

“월매나 똥을 몸부림치믄서 푸지게 싸질렀으면 지갑이 다 삐져(빠져) 나간댜? 그라구 똥 누믄서 지갑은 뭔 초칠 맛으루다가 봉창(주머니)에 넣어 가지구 들어가는겨? 돈두 벨로 읎어 보이드만.”

    - 잔소리에 마빡 터지다(38쪽)

 

장인이 멘토라면 이웃의 남녀 노인들은 죄다 작가의 스승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들은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는 좋은 이웃이지만 때론 ‘사촌’ 때문에 배가 아프기도 하는 아주 인간적인(?) 이웃이다. 고추 농사가 결딴이 나자 남의 고추밭을 기웃거리는 건 ‘혼자서 대박 난 이웃이 있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다.

 

“어허. 성님네 고추는 우리 집에 비하믄 엔간히 열렸네유.”

“뭔 심판 없는 소리댜! 이것두 고추여? 참말루.”

“환장허겄네! 성님네 고추가 고추가 아니믄 우리 집 건 똥이유, 개똥.”

“자네 집 게 개똥이믄 우리집 건 새똥이여, 새똥! 개똥은 약에라두 소용 있지.”

“봉황이 피똥 싼 규? 이렇게 굵고 불그죽죽한 새똥은 대그빡 털 나구 첨이유, 성님.”

“자네 집 고추두 만만치 않드만, 봉황이 거기두 피똥 싼 겨 그럼?”

“무신(무슨)…. 올 고추 농사 베린 거 대한민국이 다 아는디.”

“그러니께… 여기두 대한민국 소속이여! 베리긴 매한가지 아녀?”

“성님은… 대한민국두 강남 있구 시골 있슈! 성님 정도믄 강남에서두 노른자유, 노른자!”

   - 봉황의 피똥(53~54쪽)

 

시골 노인들도 건강을 위해 담배를 끊는 이들이 늘었지만, 여전히 하루 적지 않은 양의 담배를 태우는 노인들이 적지 않다. 병원에서 간호사와 어떤 노인이 나누는 ‘건강과 담배’ 관련 대화다.

 

“그래도 이제 담배 끊으세요! 친구분들 중에 더러 끊는 분들 계시죠?”

“많지….”

“건강도 좋아지고 입맛도 돌고 좋다고들 하시죠?”

“글씨…. 물어보기가 좀 그려.”

“왜요?”

노인이 천연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다들 숫가락 집어던진 지 오래구 나만 꼴랑 남았는디 워찌케 물어? 담배 끊으니께 몸띵이가 가뿐허다 워쩐다 연설들 허더니 나보덤 먼저 가두 엄청 서둘러 가데?”

   - 담배뎐(93쪽)

 

장터 찐빵 가게 창문에 “시댁으로 보내시는 찐빵 5천 원에 21개 드려요. 친정 쪽으로 보내시는 찐빵은 5천 원에 23개 드려요”라 씌어 있다. ‘아무리 미워도 일단 친정이라 해 2개를 남기면 이득 아니냐’는 단순한 셈법을 캐묻는 고객에게 건네는 주인장의 답은 간단 명료하다.

 

“이득이구 삼득이구, ‘시’ 자 놓구 해골 복잡허게 따지구 자시구 허는 일이 칠득이 된 거 맹키루 싫으니께 그러쥬! 이득인 거 누가 몰러유? 알어두 친정보덤 시댁으루 두 개 들(덜) 간다니께 좋아갖구선 시댁이라구 허는 거 아니겄슈? 그 맴을 모르겄슈? 친정이라구 혀서 두 개 더 이득 보는 것보덤 시댁이라구혀서 두 개 밑까는(손해 보는) 걸 훨 좋아라 하는 메느리들 맘을 모르겄슈?”

   - 봄이 오는 소리 1(145쪽)

 

무지렁이 농사꾼으로 살아가는 이들이지만 그들의 마음속에 깃든 사랑도 여느 도회인들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혼인날이 낼모렌데 ‘샥시’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신랑이 ‘원판 궁금허니께’ 위험을 무릅쓰고 색시 동네로 찾아간다. 동구에서 만난 아이들 속에 마침 색시의 조카가 있었다.

 

시방 니 이모는 워디에 있냐 허구 물으니께 그눔이 이러는 겨.

“시방 똥눠유!”

쌍눔의 새끼, 김이 팍 새데!

 

암만 어린것이라 혀두 그렇지, 눈치가 읎어두 그 모냥으루 읎을까? 똥이 뭐여, 똥이!

총각이 지 이모 찾으믄 뻔한 거 아녀? 총각이 지 이모 똥 받아다가 거름으루 쓸라구 워딨냐구 물었겄어? 기분이 확 잡쳐갖구선 입맛만 쩍쩍 다시구 있는디 그눔이 한술 더 뜨는 겨.

“다 눴으믄 델꾸 오까유?”

참말루 델꾸 올께 비 겁나데!

 

그래 갖구 그눔 새끼 마빡을 후려갈기구선 그답(그대로) 집으루 온 겨. 뒤돌아 오는디 그눔 새끼가 뒤에서 소리를 빽빽 지르는 겨.

“우리 이모, 인자 거진 쌌슈!”

사램 환정허지 참말루다.

이치루 따지믄 사램이 똥 안 누구 살 수는 읎는 건디두 그답 오만 정이 똑 떨어지는 겨.

   - 사랑 1(95쪽)

 

그 사랑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러나 물 수 없는 사랑. 이어지는 이야기 속에 한 남자의 사랑 이야기, 그 인생유전이 펼쳐진다. 그것은 한 편의 소설로도 감히 갈무리할 수 없는 사람의, 사랑과 미움의 드라마다.

 

익살과 능청, 그 말본새 속에 깃든 힘!

▲ 책 뒤표지

익살과 해학은 때로 눈물을 감추고 있기도 하다. 두 번째, 세 번째 마디인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나유’와 ‘복이란 복은 죄다 꽝’에 실린 이야기들이 그것이다.

 

가난과 설움을 참고 견디며 살아온 숱한 세월들, 무지렁이 농부들의 고단한 삶, 그 눈물과 고통을 사람들은 웃음으로 눙쳐낸다. 그게 그들의 삶의 지혜다. 지게꾼 방귀 소리의 내력은 그 세월을 버텨온 이의 배고픔에 대한 실증적 분석이다.

 

어쩌다 찬밥이래두 한 술 말구 나온 날은 입심이 훨 들 든다니께? 실지루 꼴랑 찬밥 한 술 말아먹었는디 뭐 월매나 심쓰는디 보템이 있겄어? 근디 허기지기 시작헐 때 ‘아, 내가 아침을 먹었구나’ 생각허몬서 혓바닥으루다가 이빨을 쑥 핥으믄 입에서 단내가 확 돌믄서 이를 악물어두 월매나 보다로운지(부드러운지) 아픈 걸 하나도 모르겄더라구. 희한혀, 사램이라는 게!

 

워쨌든 그 모냥으로 버티다가 즘심 때 국수한 그릇 해치우믄 속이 좀 든든헌디, 그것두 잠깐이지 기합 몇 번 주구 나믄 멜깡(모두) 도루묵이구 또 허기져.

그라다 보믄 끝에 가서 겔국 나사가 풀리는 게 똥구녕이여, 똥구녕.

방구가 한 번 줄줄 새기 시작허믄 그거 참말루 주체를 못 혀, 주체를!

앉어두 뿡, 서두 뿡, 걸어두 뽕, 돈 받어두 뽕, 거슬러 줄 때두 뽕, 이짝에서 뽕, 저짝에서 뽕, 하여간 니미뽕이구 다마네기뽕이라니께!

  - 지게꾼 방구소리(192쪽)

 

강원도가 유명해진 것은 영화 <강원도의 힘> 덕분이라던가. 영화를 보았든 보지 않았든 사람들은 ‘강원도의 힘’을 입에 올린다. 그러나 아무도 무엇이 그 ‘힘’인지 모른다. 그러나 충청도의 힘은 분명하다. 그것은 충청도 보령 산골 노인들의 입심 속에 있다.

 

걸쭉한 사투리로 갈무리하는 능청과 능청 속에 숨긴 삶의 진실 속에 ‘충청도의 힘’은 있다. 작가의 말처럼 ‘인생의 무겁고 복잡한 의미를 머리칼 쓸어 올리듯 사소하게, 한없이 사소하게 다루’는 그들의 말본새 속에 ‘충청도의 힘’이 의연히 깃들어 있는 것이다.

 

2013. 8. 18. 낮달

 

 

포복절도하다 등이 서늘... 끝내주는 <충청도의 힘>

[서평] 남덕현의 <충청도의 힘>... 정말 감칠맛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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