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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란의 <한국사> 교과서, 정부의 직무유기

by 낮달2018 2020. 9. 6.

[서평] 역사교육연대회의 지음 <뉴라이트 위험한 교과서, 바로 읽기>

 

▲역사교육연대회의 지음(서해문집, 2009)

뉴라이트가 다시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물론 이들이 주도해 국사편찬위원회 최종 검정을 통과한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아래 교과서) 때문이다. 6일부터 교사들에게 공개된다고 하는 <교과서>의 전모는 아직 드러나 있지 않다. 그러나 관련 보도를 종합해 보면 <교과서>를 관통하는 관점을 짐작하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을 듯하다.

 

<교과서>의 근현대사를 꿰뚫는 관점은 이른바 ‘식민지 근대화론’에, 이승만·박정희 체제에 관한 기술은 ‘미화’에 가깝다는 게 관련 보도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특히 일본군 위안부 강제 동원에 관한 기술은 축소·왜곡했고 조선인 친일 협력자 활동은 긍정적으로 서술해 친일 행위를 합리화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일제는 1944년 여자정신근로령을 발표하고 12세에서 40세까지의 여성들을 침략 전쟁에 동원하였다. 동원된 여성들은 일본과 한국의 군수공장에서 일하였다. 일부 여성들은 중국·동남아 일대·필리핀 등지로 끌려가 일본군 위안부로 희생당하였다.”

   - 교학사 <한국사>

 

교학사 교과서의 뿌리는 ‘대안 교과서’?

 

▲ 대안교과서(교과서포럼, 기파랑, 2008)

<교과서>의 일본군 위안부 관련 기술은 마치 1944년 이후의 일로 한정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기실 일본군의 군 위안부 운영은 만주 침략 당시부터다. 천재교육에서 펴낸 <고교 한국사>의 관련 내용은 이를 분명히 하고 있다.

 

“일본군은 만주 침략 당시부터 군 위안부를 운영해 왔는데, 전쟁 말기에는 이를 더욱 조직화하여 조선을 비롯하여 중국, 동남아시아 등지에서 여성들을 집단으로 강제 연행하여 성노예로 삼았다.”

   - 천재교육 <고교 한국사>

 

<교과서>의 지적사항이 무려 106쪽에 840개라든가, 5·16 쿠데타는 추동 세력의 시각만 반영했다든가, 5·18 계엄군 발포 사실을 기술한 문장(“계엄군이 광주를 장악하는 과정에서 희생자가 많이 발생했다.”)에 ‘주어’가 없어 ‘누가’, ‘어떻게’가 생략되었다는 지적도 있다. (주진오 교수 인터뷰)

 

이 교과서의 필자는 권희영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와 이명희 공주대 교수, 4명의 고교 교사다. 권·이 교수는 진보 진영에서 뉴라이트 계열 단체로 분류하는 한국현대사학회에서 활동하는 이들이다. 한국현대사학회는 편향된 역사 연구를 지양하고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인정하는 기반 위에서 한국 근현대사를 연구한다는 취지 아래 2011년 5월 설립된 학술단체다.

 

한국현대사학회는 2011년에 역사 교과서의 ‘민주주의’ 표현을 ‘자유민주주의’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해 역사 교과서 논쟁을 일으킨 바 있는데, <교과서>에도 이런 관점이 관철되고 있는 것으로 봐도 무방할 듯하다.

 

<교과서>는 ‘교과서 포럼’이 2008년 펴낸 <대안 교과서 한국 근·현대사>와는 비슷한 뉴라이트 계열의 학자들이 주도했다는 점을 빼면 ‘형식적으로는’ 관련이 별로 없다. <대안 교과서>가 ‘근현대사’를 다루고 있지만, <교과서>는 ‘통사’를 다루고 <대안 교과서> 집필자 중에는 정작 역사학자가 없었지만, <교과서>는 역사학자들이 썼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의 ‘왜곡·축소’된 내용을 일별해 보면 <대안 교과서>에서 서술된 관점은 <교과서>에서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는 듯하다. 2009년에 간행된 <뉴라이트 위험한 교과서, 바로 읽기>(아래 바로 읽기)를 새로 꺼내 뒤적이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바로 읽기>는 ‘교과서 포럼’에 대응하고자 올바른 역사 인식과 교육을 모색하기 위해 결성된 역사교육연대회 소속의 역사 교수, 교사들이 집필한 책이다. 주진오 교수(상명대)와 박한용 실장(민족문제연구소)을 비롯한 이 집필자들은 모두 4부에 걸쳐 <대안 교과서>를 해부하고 있다.

 

박귀미 교사(수원 외국어고)가 쓴 ‘뉴라이트의 역사 인식’, 박찬승 교수(한양대)의 ‘식민지근대화론에 매몰된 식민지 시기 서술’, 박한용 실장이 집필한 ‘뉴라이트 교과서의 친일 문제 인식과 문제점’ 등은 <교과서>에 드러난 왜곡과 축소의 연원을 간단명료하게 풀어준다.

 

교과서 포럼의 한국 근현대사 인식에서 가장 핵심적으로 기능하는 관점은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를 절대시하는 문명사관’이다. 이영훈 경제학자 교수는 국사학계의 민족주의를 비판하면서 ‘민족사’ 대신 ‘문명사’를 제기했다. 문명사적 관점에서는 1876년 개항부터 1945년 해방까지의 한국 근현대사는 ‘서양문명에 기원을 둔 근대문명이 이식되고 정착되는 과정’으로 이해한 것이다.

 

뉴라이트의 근현대사 인식, “일제=시장경제 이식, 경제 성장기”

 

▲ 일본 훗카이도 샤쿠베쓰 탄광 입구에서 찍은 징용자 단체 사진

당연히 식민지 시대는 제국주의 침략으로 고통받는 시기라기보다는 발달한 ‘일본, 미국의 문명이 야만적 조선 문명과 융합하는 과정’으로 묘사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식민지 시대는 일본에서 사유재산제도가 도입되고 시장경제가 발전했던 시기, 근대화가 촉진되는 시대로 규정하면서 일제의 침략과 수탈은 과장이라는 입장을 <대안 교과서>는 일관되게 유지한다.

 

이영훈에 의하면 식민지 시대는 일제가 ‘조선에 근대적 시장경제를 이식하고 공업화를 추진하여 근대적 경제성장을 이룩한’ 시기다. 이런 역사 인식은 일제의 침략행위를 정당화할 뿐 아니라 친일 등 반민족 행위를 단죄해야 한다는 논리가 설 자리를 잃게 하는 것이다.

 

해방 후 미군정이 ‘근대적 사회제도의 이식자’로 강조되고 남한 단독정부의 출범을 ‘분단국가’보다는 ‘근대 국민국가’의 출발로 바라본다. ‘광복절’을 ‘건국절’로 바꾸겠다거나, 이승만을 ‘건국의 아버지’로 바라보려는 것은 이들의 외곬으로 흐른 역사의식 때문이다.

 

군부독재 시기였던 박정희·전두환 시대를 ‘산업화를 향한 대질주가 실현’되었다고 이해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5·16을 통해 등장한 군부 집단을 강력한 추진력을 바탕으로 ‘비현실적인 민주주의’ 관점과 위험한 ‘통일지상주의’를 극복하고 한국의 산업화를 이끈 세력으로 평가하는 것이다.

 

<교과서>, 일제가 ‘시간 사용의 합리화’ 강요?

 

이러한 맥락과 관점은 <교과서>에서도 비슷한 방식으로 서술된다. 한국인들이 일제로부터 ‘시간 사용의 합리화’를 강요받았다면서 양력 사용과 함께 약속 시간을 지킬 것,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것 등의 예를 든 것이다. 이는 한국인들이 시간 사용을 비합리적으로 했다는 전제 아래 일제가 한국인들을 ‘근대적 인간’으로 만들어 주었다는 뉘앙스를 풍긴다.

 

<대안 교과서>의 역사 서술은 ‘식민지 근대화론’에 매몰되어 있다. 식민지 시기의 서술에서 ‘지배정책의 억압성’을 말하기보다는 그 시대를 새로운 ‘근대문명에 관한 학습기, 근대문명의 제도적 확립기’로 보기 때문이다.

 

토지조사사업을 서술하면서 이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산미증식계획 역시 ‘수출 증가’라 하여 긍정적으로 바라본다. 경제 서술에서도 마찬가지여서 일제의 교통, 통신망 등 사회간접자본의 확충이 한국에서 ‘자본주의적 시장경제를 활성화한 것’으로 서술하는 것이다. 경제성장률도 언급하고 있지만, 그 경제성장의 과실이 일본 자본과 재조선 일본인의 몫이라는 사실은 언급하지 않는다.

 

쌀 ‘수탈론’을 비판하면서 ‘수탈이 아니라 경제 논리에 따라 일본으로 수출하였다’라는 식으로 서술하기도 한다. 교육 현실을 다루면서도 식민지 말기 취학률이 40%를 넘었다면서 왜 그 시기 총독부가 취학률을 높이려 했는지는 설명하지 않는다. 보통교육의 확장은 징병제를 시행해 조선 청년들을 전장에 동원하기 위해 일본어를 가르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었는데도 말이다.

 

▲ 1930년대의 화신백화점. <교과서>는 이 기업이 마치 민족자본으로 일본과 경쟁했던 것처럼 쓰고 있다.

<대안 교과서>는 식민지 시기를 ‘억압과 투쟁의 역사’만이 아니라, 식민통치의 ‘의도하지 않은 효과’와 한국인의 노력그도 “근대문명을 학습하고 실천함으로써 근대 국민국가를 세울 수 있는 사회적 능력이 두텁게 축적되는 시기”라고 규정한다.

 

즉, 일제의 민족 차별과 폭력적 억압의 실상 대신 일제 식민통치의 근대적 효과와 성과에 주목하면서 식민지 시기를 ‘식민지 근대화론’이나 ‘제국주의 시혜론’에 기대어 서술하는 것이다. 이러한 시각에서는 일제의 하수인 노릇을 한 친일파를 식민통치와 식민지 근대화 과정에 절 적응해 근대적 능력을 배양하고 대한민국 발전의 초석을 놓은 ‘근대화 선구자’로 둔갑시키는 것이다.

 

‘친일파=근대화’ 과정에 잘 적응한 근대화의 선구자?

 

박한용은 이들의 논리대로라면 식민지 시기에 ‘항일은 독립 쟁취, 친일은 건국 역량 준비’라는 기괴한 도식이 성립한다고 말한다. 항일과 친일이 똑같이 ‘애국활동’이 되는 것이다. 이는 일제에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전쟁 동원에 앞장선 친일파들과 일제의 수탈과 억압의 대상의 된 일반 조선인들 모두 일제의 침략 전쟁에 자발적이든 강제적이든 ‘협력’했다고 서술함으로써 ‘전민족 친일 공범론’을 답습하는 것이기도 하다.

 

<교과서>에서도 이러한 관점은 이어진다. <교과서>에서는 일제 강점기에 형성된 기업인 집단을 대한민국 ‘자본주의 성장의 주역’으로 그리면서 이들의 친일 행적은 감춘다. 철저히 친일 자본이었던 화신백화점과 경성방직의 기업인들은 해방 후 반민특위에 구속되었던 친일 행위자였다. 그러나 <교과서>는 이들 기업가가 마치 민족자본으로 일본과 경쟁했던 것처럼 쓰는 것이다.

 

<교과서>가 역사를 왜곡, 축소하고 있는 동안 현실은 어떤가. 보도에 따르면 박근혜 대통령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에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지난 5월 하시모토 오사카 시장의 ‘위안부 제도가 필요하다’라는 망언에 대응한 것은 정작 노벨 평화상 수상자 5명이었다.

 

20년 넘게 위안부 피해자들과 시민들이 일본대사관 앞에서 수요시위를 벌였지만, 식민통치를 통해 근대화된 대한민국 정부는 그와 관련한 어떤 조치도 하지 않았다.

 

결국, 헌법재판소는 2011년 8월에 “일본군 위안부의 대일 배상청구권이 지난 1965년 체결된 한일 청구권 협정에 따라 소멸됐는지 여부에 대한 한일 간의 해석상의 차이에도 정부가 이에 대한 해소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것은 위헌”이라고 결정함으로써 정부의 직무유기를 꾸짖었다.

 

지난 8월 24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최선순 할머니가 세상을 떠남으로써 이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 등록된 한국인 237명 가운데 현재 생존해 있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는 56명으로 줄었다.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가고 여전히 갈 길은 멀고 아득하다.

 

그런 상황에서 이 같은 ‘식민지 근대화론’을 연상시키는 <교과서>를 버젓이 검정에서 통과시킨 것은 ‘국사편찬위원회’다. <교과서> 문제를 진단하는 주진오 교수의 일갈 앞에 우리가 부끄러움을 금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무리 학문적 자유가 보장된다고 하더라도 한국의 역사 교과서에서 식민지의 긍정적인 모습과 친일이 옹호되는 내용이 들어온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고, 민족사적 입장에서도 허용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2013. 9. 6. 낮달

 

 

 

 

논란의 <한국사> 교과서, 정부의 직무유기

[서평] 역사교육연대회의 지음 <뉴라이트 위험한 교과서, 바로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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