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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풍진 세상에 /행복한 책 읽기

“말려 죽이지 말고… 총으로 쏴서 죽여달라”

by 낮달2018 2020. 6.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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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밀양 구술 프로젝트 <밀양을 살다>… ‘슈퍼 갑’ 국가에 맞선 할매 할배

▲ 지난 6월 20일 북 콘서트 ‘밀양을 알다’에서 ‘포기할 수 없다’라고 하며 웃고 있는 참가자들

외국으로 이주하지 않는 한 제가 나고 자란 나라(국가)를 부정할 수 있는 백성은 없다. 속지주의니 속인주의니 하는 복잡한 개념을 보탤 필요 없이 사람은 태어나면서 절로 한 나라의 국민이 된다. 그것도 개인이 선택하는 게 아니라 저절로 주어지는.

 

그래서일까. 여느 사람들의 삶에서 국가의 존재를 구체적으로 인식하는 일은 흔치 않다. 납세나 병역, 교육과 같은 의무도 습관처럼 받아들일 뿐, 개인이 구체적 문제의 당사자로서 국가를 상정하는 일은 드물다. 올림픽이나 아시아 경기대회 같은 국가 대항의 스포츠 경기 등에서 국가적 동일성을 인식할 때 나라는 때로 구체적이고 친근한 이웃의 얼굴로 돌아올 뿐.

 

▲ 밀양 구술 프로젝트 지음, 오월의 봄

그러나 국가가 요령부득의 이유로 내 신체나 거주 이전의 자유, 재산상의 이해를 직접 규제하게 될 때 우리는 구체적 실체로서의 국가를 마주할 수 있다. 그때 국가란 내가 명시적으로 용인한 적이 없는 절대적 권한을 지닌 존재로서 개인 앞에 다가오는 것이다.

 

‘국가의 인적 요소 내지 항구적 소속원으로서 국가의 통치권에 복종할 의무를 가진 개개인의 전체집합’이라는 ‘국민’의 정의(<위키백과>)는 그런 권력 관계를 직접적으로 드러내 준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하는 헌법 조항은 어디까지나 교과서적이고 선언적 조항일 뿐이다.

 

개인이나 기업과 달리 국가는 우리가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가장 강력한 ‘갑’이다. 국가는 국민이 자신의 지시·명령을 거부할 때 이를 강제할 수 있는 경찰과 군대와 같은 물리적 억압 기구가 ‘공권력’이라는 이름으로 그것을 합법적으로 집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국가’는 무엇인가

 

최근 ‘국가’라는 존재의 의미를 묻게 된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국가가 지닌 무소불위의 권력에도 불구하고 국민이 나라로부터 마땅히 받아야 할 보호와 존중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세월호와 함께 자식을, 가족을 떠나보내야 했던 사람들, 군에 보냈다가 총기사고나 군내 폭력으로 생때같은 아들을 잃은 어버이들, 756kV 송전선에 생존권과 재산권을 강탈당한 ‘밀양’의 주민들이 그들이다.

 

시골에서 논밭을 일구면서 살아온 노인들에게 국가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존재였을 것이다. 소액의 기초 노령연금을 받으면서 그들은 가끔 국가의 존재를 떠올렸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9년 전에 시작된 송전탑 건설에 반대하는 싸움을 벌이면서 이들은 국가와 개인의, 그 ‘불평등 관계’를 온몸으로 체험하게 된다.

 

<밀양을 살다>는 밀양 송전탑 건설에 반대하는 주민 17명의 구술 기록이다. 지난해 말 기록노동자, 작가, 인권활동가, 여성학자 등이 ‘밀양 구술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모였다. 이들은 올 2월까지 직접 밀양을 찾아 주민들의 삶과 목소리를 기록하고 담았다.

 

책은 짧게는 그들이 지난 수년간 맨몸으로 마주 서야 했던 국가 폭력에 대한 고발이고, 길게는 이들이 살아온 고단한 삶에 관한 이야기다. 그들은 자신들의 소박한 삶을 짓이겨 놓은 송전탑을 왜 받아들이지 못하는지, 그로 인해 삶의 터전이, 마을 공동체가 어떤 상처를 받았는지를 때로는 담담하게 때로는 피를 토하듯 말하고 있다.

 

이 골짜기 커 갖고 이 골짜기서 늙었는데 6·25 전쟁 봤지, 오만 전쟁 다 봐도 이렇지는 안 했다. 이건 전쟁이다. 이 전쟁이 제일 큰 전쟁이다. 내가 대가리 털 나고 처음 봤어. 일본 시대 양식 없고 여기 와가 다 쪼아가고, 녹으로 다 쪼아가고 옷 없고 빨개벗고 댕기고 해도 이거 카믄. 대동아전쟁 때도 전쟁 나가 행여 포탄 떨어질까 그것만 걱정했지 이렇게는 안 이랬다. 빨갱이 시대도 빨갱이들 밤에 와가 양식 달라 카고 밥해 달라 카고 그기고. 근데 이거는 밤낮도 없고, 시간도 없고. 이건 마 사람을 조지는 거지. 순사들이 지랄병하는 거 보래이. 간이 바짝바짝 마른다. 못 본다 카이, 못 봐.

  - 상동면 도곡마을 김말해(37쪽)

 

지난 5월달에 얼매나 힘들었노? 내가 말이 ‘아버님예 너무너무 힘들어 죽겠습니더. 제가 너무너무 힘들어 죽겠습니더. 오늘도 전투 가서 너무너무 힘들어…… 아버님 너무너무 힘들어 죽겠고, 이걸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저로서는 못 막겠습니다’ 하면서 내가 사진을 안고 통곡을 했어예.

  - 부북면 위양마을 희경(131쪽)

 

“일생 일구어 온 재산이 강탈당하고 송전탑과 송전선으로 말미암아 주민의 생존권이 나락으로 떨어지는데 여기에 저항하는 천부의 자연권은 불법으로 매도당하는 상황”(이계삼 대책위 사무국장)이다. 그런 상황에서 주민들은 정부와 한전에 대한 분노, 돈 앞에 무너지는 이웃들에 대한 배신감, 거대한 공권력 앞의 무력감도 숨김없이 토로한다.

 

그 바드리 거기 막고 있을 때 경찰이 콱 늘어서는 광경을 아침에 볼 때, 도대체 믿겨지지가 않아요. 이게 생신가 싶을 정도로예. 왜냐면 경찰이 너무 많이 깔리거든예. 진짜 개미떼처럼 들어오거든예. 주민들 몇 명 없거든요. 우리 주민과 경찰력의 비율은 20대 1도 넘었을 겁니다.

 

아무리 우리가 경찰력을 흩어보자 하지만 할머니들은 몇 걸음 걸어봤자 얼마 안 가잖아예. 금방 고착당하고. 고착 안 당한 할머니는 사지를 들어서 그냥 집어 던져요. 사람을 손을 딱 잡는 순간 손목을 비틀어버리고. 베라 벨 방법을 다 쓰더라고예. 막 멍멍해요. 바보 같애 우리도. 당하고도 꿈인 거 겉기도 하고. 경찰이 이런 일도 다 하는가 싶고.

  - 단장면 용회마을 구미현(225쪽)

 

그 추운 날, 어른들 나와 있는 거 보면 마음이 찢어지지예. 아침 7시가 돼도 춥거든요. 어떻게 하면 나 많은 사람들이 추운 데 안 나오고 이 공사를 어떻게 멈출 수 있겠노. 어떤 방법이 좋을까.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답이 없고. 한 할머니가 그러더라고요. 우리를 이렇게 시들시들 말려죽이지 말고 총으로 쏴서 죽여달라. 내가 그 엄청난 소리를 들으면서도 어떻게 해줄 수 없다는 게 너무 속상해요.

  - 상동면 여수마을 김영자(237쪽)

 

세상을 살아가는 데 돈이 전부는 아닙니다. 양심껏 살아야 그기 사람 가치가 있지. 돈이 지금 인자 내 벌어놓은 것만 해도 다 못 쓸 건데. 절대 돈 거는 추접은 돈이고 필요 없는 돈입니다. 돈 모할 낀데? 사람이 살아가는 데 똑바로 살아야 합니다.

  - 부북면 위양마을 권영길(185쪽)

 

국가는 ‘슈퍼 갑’이었다

 

애당초 힘든 싸움이었다. 그러나 이른바 ‘슈퍼 갑’인 나라와 공기업을 대상으로 싸움을 벌이면서도 이들이 기죽지 않고 더 강해질 수 있었던 것은 자신들의 소박한 신념이 얼마나 정당한 것인가를 굳게 믿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희망 버스’의 이름으로 사람들이 밀양으로 달려오면서 이들의 투쟁을 지지하는 연대가 이루어졌다. 비로소 이들의 싸움이 ‘보상금 더 받아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땅과 고향을 지키고 지금 이대로 살아가기를 원하는’,‘할매들의 투쟁’으로 알려지게 되기에 이른 것이다.

 

(경찰들은) 겁 안 나요. 내 재산이 없어져서 애가 쓰려 갔지. 내 뭐 도둑질했나, 거짓말을 했나? 그런 거 걱정하는 건 없었습니더. 또 내가 너무 억울하고 이래가 그 뭐꼬 희망 버스가, 손님이 그리 많이 왔을 적에 아무것도 말할지도 모르고 글자도 모르는 내가, 하도 어찌 원통한지 사람들이 저래 저렇게 참 도와주로 오니 얼마나 감사한 마음인동 그래가 내가 고맙다 하는 말을 거서 했어요. 마이크 들고. 그래 하고 나니 속이 좀 후련하더만.

  - 상동면 도곡마을 조계순(85쪽)

▲ 금산대안학교 학생들이 밀양의 어르신들께 보내온 편지 ⓒ 밀양송전탑반대대책위원회

크게 그거할 건 아니지만 어떻게 했으면 좋겠다 바라는 것 때문에 희망 버스 그지예? 말이, 생각 자체가 희망인 거예요. 그 사람들이 오면 중단할 수 있지 않겠나 하는 희망, 가고 나면 또 허전하지만 그래도 또 “다음에 오께요, 할머니”하고 가시는 그 양반들 마음이 희망이죠.

  - 상동면 여수마을 성은희(346쪽)

▲ 6월 11일 행정대집행으로 주민들을 ‘강제 철거’한 후 기념사진을 찍고 있는 경찰들

지난 6월 11일, 경찰은 행정대집행을 통해 송전탑 주변의 주민들을 강제 철거했다. ‘슈퍼 갑’ 국가는 할머니들 중심의 시골 노인들을 강제로 몰아내고 경찰들은 ‘승리’를 구가했다고 뉴스는 전한다. 국민을 상대로 한 싸움에서 승리했다니…… 공권력은 도대체 무엇일까.

 

아이구 씨. 일본 시대부터 내 살아생전에 정부가 도와준 거 하나도 없다. 일본 시대, 일본 놈들한테 그리 고생하며 살았지. 6·25 사변 나가 그래 고생했제. 대동아전쟁 나가 그리 고생했지. 나중 되니께 미국, 저저 북한 놈 때문에 개지랄했지. 한 번도 없었다. 내가 무진년에 났는데 올해 2014년 안 됐나. 하루라도 내 나라 싶은 날이 없었다.

  - 상동면 도곡마을 김말해(39쪽)

 

우리 모두가 ‘밀양’이고 ‘삼평리’다

 

교육받지 못했어도 사람들은 10년에 가까운 ‘나라와의 싸움’을 통해 그 국가의 실체를 깨달아 버렸는지 모른다. 자신들의 삶과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국가와 한판 싸움을 마다치 않았던 밀양 주민들은 비로소 ‘국가의 통치권에 복종할 의무가 있는 개개인’에서 ‘주권자로서의 행복해질 수 있는 권리를 주장하는’ 개별자로 새롭게 태어나게 된 것일까.

▲ 삽화 ‘우리가 밀양이다’ ⓒ 밀양송전탑반대대책위누리집

행정대집행으로 밀양에서의 싸움은 일단락이 된 셈이지만, 송전탑으로부터 삶과 마을을 지키려는 주민들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한전의 경북 청도 삼평리 송전탑 건설공사 재개를 둘러싸고 주민들과 한전·경찰 간 대치와 마찰이 16일째 이어지고 있다. 밀양의 주민들은 촛불문화제 등으로 삼평리 싸움에 다시 힘을 보태고 있다.

 

756kv밀양송전탑반대대책위원회 누리집에는 ‘우리가 밀양이다’는 삽화 하나가 걸려 있다. 사람과 짐승과 농작물이 어우러진 삽화가 정겹다. 자신들의 소박한 삶과 그 터전을 지키려는 밀양에서의 싸움은 한갓진 시골 이야기가 아니라 삶과 공동체를 지키기 원하는 모든 사람의 것이다. ‘우리 모두가 밀양’인 이유는 바로 거기 있는 것이다.

 

 

2014. 8. 8. 낮달

 

 

 

"말려죽이지 말고... 총으로 쏴서 죽여달라"

[서평] 밀양구술프로젝트 <밀양을 살다>... '슈퍼갑' 국가에 맞선 할매할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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