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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지 않은 사랑은 없다 -차중락의 ‘사랑의 종말’

by 낮달2018 2020. 7.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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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중락이 부른 대중가요 ‘사랑의 종말’

 

가수 차중락(1941~1968)은 내겐 실재감이 없는 존재다. 더 까마득한 시대의 인물인 김정구나 현인 같은 이와는 달리 나는 살아 있는 그의 모습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는 몇 곡의 노래와 풍문으로 내게 다가온 사람이었다.

 

노래와 풍문으로 다가온 사람, 차중락

 

▲ 차중락(1941~1968)

그가 죽었을 때 나는 초등학교 6학년이었다. 물론 나는 그의 죽음을 훨씬 뒤에야 알았다. 나는 중학교 시절에야 형이 부르는 몇 편의 노래를 통하여 그와 그의 노래를 만났다. 형이 애절하게 불렀던 그의 노래들―낙엽 따라 가버린 사랑, 사랑의 종말, 철없는 아내―을 나는 꽤 예민하게 받아들였던 것 같다.

 

나는 이내 그 노래를 배웠고 내 방식으로 노래가 전하는 사연에 몰입할 수 있었다. 사랑과 이별을 이해하기에는 어린 나이였지만 나는 문학적 상상력으로 그 슬픈 사랑의 이야기를 쉽사리 ‘나의 이야기’로 바꾸어 냈던 것이다.

 

얼마 전 나는 라디오에서 그의 노래 ‘사랑의 종말’을 들었다. 그 노래는 40여 년을 뛰어넘어 1960년대의 축축한 시간을 떠올려 주었다. 나는 인터넷 검색을 통하여 마치 필름을 거꾸로 돌리듯 그의 삶과 노래를 재구성해 보았다. 같은 시간을 살고 있었지만 한 시골 소년에게는 존재하지 않았던 그의 삶 말이다.

 

차중락은 1941년 한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양친이 모두 신교육을 받은 이들이었고 집안도 부유했다. 그는 시인 김수영과 이종사촌 간이었다. 초중고등학교에서 육상 선수로 활약했고, 대학에선 보디빌딩을 해 1961년에 미스터코리아 2위에 입상하기도 했다고 한다.

 

한국의 ‘엘비스’, ‘낙엽 따라 가버리다

 

차중락은 1963년에 그룹 ‘키보이스(Key Boys)’의 멤버로 미 8군 무대에서 데뷔했다. 키보이스는 그의 사촌 형 차도균과 윤항기 등이 참여한 5인조 그룹사운드였다. 고무장화를 신고 엘비스의 모창을 멋들어지게 하며 대중들에게 첫선을 보인 그는 ‘한국의 엘비스’라는 별명을 얻으며 꽤 유명해졌다.

 

그는 1966년에는 차도균과 함께 ‘가이스 앤 덜스(Guys & Dolls)’를 조직해 활동했고, 그해 11월, 엘비스 프레슬리의 ‘그대의 일부분(Anything that’s part of you)’을 편곡한 ‘낙엽 따라 가버린 사랑’을 발표하면서 이듬해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 차중락의 음반들
▲ 배호(1941~1971)

정작 엘비스 프레슬리의 노래로는 크게 성공하지 못한 ‘그대의 일부분’은 차중락의 노래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것이다. 뒤에 이 노래는 같은 제목의, 당대의 최고의 여배우 문희가 출연한 영화(김기덕, 1969)로도 만들어지기도 했다.

 

차중락은 상당한 미남이어서 주로 미혼여성 팬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았다. 당시 라이벌 관계를 유지했던 인기 가수 배호(1941~1971)는 그와 동갑내기 친구였다. 배호 역시 내게는 실재감이 없는 사람이다. 배호는 차중락보다 세 해를 더 살았지만, 차중락과 마찬가지로 나는 살아 있는 그의 모습을 보지 못했다. 텔레비전은 물론이고 라디오도 대중화되어 있지 않은 시대였으니 말이다.

 

차중락은 1968년 무대 위에서 고열로 쓰러진 후 10월 11일 자신의 대표곡 ‘낙엽 따라 가버린 사랑’ 발표 1주년 날 짧은 삶을 마감하고 망우리 묘지에 묻혔다. 향년 27살. 어떤 이유에선지 나는 당시 형에게서 그의 사인이 ‘몹쓸 병’이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를 데려간 건 뇌막염이었다. 이듬해 그의 묘지에 추모비가 세워졌다. 추모비에는 조병화의 시 ‘낙엽의 뜻’이 기념사업회 명의로 새겨져 있다.

 

세월은 흘러서 사라짐에 소리 없고

나뭇잎 때 따라 떨어짐에 소리 없고

생각은 사람의 깊은 흔적 소리 없고

인간사 바뀌며 사라짐에 소리 없다

아, 이 세상 사는 자, 죽는 자, 그 풀밭

사람 가고 잎 지고 갈림에 소리 없다.

 

요절한 가수들의 죽음을 이야기하면서 호사가들은 그들이 부른 노래와 죽음을 연관 짓기도 한다. 차중락은 ‘낙엽 따라 가버린 사랑’을 부르고 떠났고, 배호는 ‘마지막 잎새’와 함께 떠났다고. 어쨌든 가수는 갔지만, 노래는 남았다.

 

‘사랑의 종말’은 차중락이 솔로로 독립한 뒤 처음 부른 노래다. 이봉조가 작곡한 이 노래는 <동양방송(TBC)> 라디오 드라마 주제가였다. 이 노래는 차중락에게 TBC 방송가요 대상 남자 신인 가수상 수상의 영예를 안겨주면서 크게 히트했다. 1970년대에는 이수영과 박경애 등의 가수가 리바이벌해 부르기도 했다.

 

아프지 않은 사랑은 없다

 

대중가요는 기본적으로 대중의 감정을 숨기지 않고 드러낸다. 대중가요의 영원한 주제가 ‘사랑’이고, ‘이별’이고 ‘외로움’이며 ‘고독’인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러나 ‘사랑의 종말’이 노래하는 사랑과 이별, 외로움은 그보다 훨씬 더 직설적이다. 감추거나 비유로 감싸지도 않는다.

 

화자는 애절한 목소리로 외로워서 못 살겠다고 호소한다. 그의 외로움은 ‘하늘과 땅’ 사이에 오직 ‘혼자’만의 것이다. 그는 사랑을 잃은 아픔이 이런 것인 줄 몰랐다고 고백하면서 ‘외로워서 못 살겠다’라고 절규하는 것이다.

 

40여 년 전, 이 노래의 애조를 흉내 내어 부르면서 나는 차중락이 노래한 아픔과 외로움을 느꼈을까. 아마 나는 단지 가사와 선율만을 따라잡기 바빴을 터이다. 노래에 깃든 삶과 아픔이 아니라 노래로 표현된 정조만 받아들였을 것이다.

 

40여 년 전의 목소리로 차중락이 노래한다. ‘외로워 외로워서 못 살겠어요.’ 세월은 ‘거저’가 아니다. 나는 노래하는 젊은이의 아픔을 내 것으로 인간 보편의 외로움과 서러움으로 새겨듣는다. 세상에 사랑이, 이별이, 외로움과 고독이, 그렇게 아플 줄 알았던 사람은 아무도 없다. 모두가 그것을 겪으면서 그것을 깨닫고 배우고 견디고 이겨나가는 것이다.

 

2011. 11. 12.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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