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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풍진 세상에 /삶 ·세월 ·노래

새해에 듣는 노래, ‘갈 수 없는 나라’

by 낮달2018 2020. 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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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해일의 노랫말, 해바라기의 노래 ‘갈 수 없는 나라’

▲ 평화의 기도.  ⓒ <한겨레> 김봉규

2011년 새해 첫날, <한겨레> 1면에 실린 사진에 오래 눈길이 머물렀다. 연평도에서 태어나서 평생을 살아온 한 할머니가 천주교 연평도 성당에서 주름진 두 손으로 드리는 기도의 사진이다. 그 기도는 물론 평화와 안전을 비는 것이었을 것이다.

 

35면 사설은 “평화, 우리 모두의 가슴에 꽃피워야 한다”였다. 소제목까지 붙인 이 사설에는 <한겨레>가 일관되게 추구하는 한반도의 평화와 공존에 대한 염원이 오롯이 실려 있었다. 천천히 사설을 읽어 가는데 1면의 할머니가 주름진 손으로 올리는 기도의 장면이 아주 자연스럽게 겹쳐지는 듯했다.

 

사설은 지난해 연평도에서의 군사적 충돌 이후 계속되는 대치와 위기상황을 지적하면서 시방 한반도에 필요한 것은 남북 간 평화와 화해라고 힘주어 말한다. 전쟁이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것은 ‘폐허’뿐임을 환기하면서 사설은 ‘평화는 생명이고 밥’이라고 규정한다.

 

‘평화는 생명이고 밥이다’

 

할머니의 굵게 패인 주름진 손을 떠올리면서 나는 예의 구절이 한갓진 수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아프게 깨우친다. ‘전쟁 불사론’을 들먹이는 이들에게 전쟁은 멀기만 하지만, 정작 이 분단 현실을 온몸으로 감당하며 사는 사람들에게 전쟁은 생생한 공포고 절망인 것이다.

 

‘이성과 상식을 회복하자’

 

사설은 ‘정권 유지’와 ‘권력 확장’을 위한 ‘안보상업주의’를 지적하면서 남과 북에 ‘선동과 광기를 버리고 이성과 상식을 회복하라!’고 주장한다. 새해 첫날의 신문 지면에 실린 사설로 그것은 비장한 절규처럼 읽혔다.

 

‘평화가 생명이고 밥’이라는 주장과 마찬가지로 ‘이성과 상식의 회복’ 호소도 매우 절절하게 다가왔다. 진실로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지금 ‘이성과 상식’을 잃어버리고 있지 않은가.

 

왜 그때 해바라기가 부른 노래 ‘갈 수 없는 나라’가 떠올랐는지는 알 수 없다. ‘갈 수 없는 나라’는 작가 조해일이 1978년 <중앙일보>에 연재한 추리 소설이다. 내용이 잘 기억나지 않을 만큼 오래된 작품이다. 해바라기의 ‘갈 수 없는 나라’는 거기 나온 작가의 시를 이주호가 노래로 만든 것이다.

 

원작의 어두움에 비기면 해바라기의 목소리에 실린 ‘갈 수 없는 나라’는 마치 판타지 같다. ‘사랑 없는 마음에 사랑을 주러’ 온 너, 그 슬픔과 좌절이 뻐근하게 가슴에 와 닿는다. 단순한 은유이긴 하지만 ‘맑은 햇빛과 나무와 풀과 꽃들이 있는 나라, 그리고 사랑과 평화가 있는 나라’는 우리가 꿈꾸어야 할 평화의 세상 같다.

 

깊숙한 울림으로 다가오는 해바라기의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그 ‘갈 수 없는 나라’를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은 노래에서처럼 ‘갈 수 없는 곳’이 아니라 언젠가 ‘가야만 할 나라’여야 한다고 스스로 되뇐다. 그것은 판타지가 아니라, 마땅히 이 분단상황을 넘어 우리가 이르러야 할 현실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2011. 1. 2.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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