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각 지역에 세운 ‘평화의 소녀상’
안동에 경북에서 네 번째 소녀상 건립
경상북도 안동에도 평화의 소녀상이 세워졌다. 안동 평화의 소녀상 건립추진위원회는 회원 1천773명으로부터 건립비용 5천570여만 원을 모으고 지역 예술인의 재능 기부를 받아 석 달 만인 8월 15일 오후에 웅부공원에서 소녀상을 제막한 것이다.
안동은 보수적인 지역이지만 일제 식민지 시기에는 일제에 항거한 숱한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이른바 ‘혁신유림’의 고장이었다. 독립운동의 성지로 불리는 안동에 시군 단위로는 거의 유일하게 ‘독립운동기념관’이 세워져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건립추진위의 배용한 상임대표는 기념사에서 안동이 ‘한국 정신문화의 수도’, ‘독립운동의 성지’라고 불리는 사실을 환기하면서 소녀상 앞의 각오를 밝혔다. 그는 “할머니들의 명예를 회복하고, 나아가 위안부 할머니들과 독립운동가들과 일제에 희생되신 모든 영령들이 염원하신 우리 민족의 온전한 자주독립을 완수하는 민족의 평화 통일을 실현하기 위하여 지혜를 모으자”고 강조했다.
평화의 소녀상 건립은 지역마다 이어지고 있어 마치 유행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애당초 평화의 소녀상은 주한 일본 대사관 앞에서 거리 투쟁을 이어오다가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명예와 인권회복을 염원하기 위해 세워졌다. 수요시위가 시작된 지 20년 만인 2011년 12월 14일이었다.
소녀상, 인류 보편의 인권과 평화 상징
그러나 국내는 물론, 일본과 미국, 오스트레일리아, 캐나다, 중국 등 나라밖에도 세워지면서 평화의 소녀상은 단순히 ‘위안부’ 문제에 머물지 않고 인류 보편의 인권과 평화를 상징하는 기념물로 승화되고 있다.
그동안 평화의 소녀상은 전국 방방곡곡에 다투어 세워졌다. 평화의 소녀상이 세워진 곳을 대별해 보면 경기도에 8군데, 전남에 7군데, 충남에 6군데 등이 손꼽힌다. 부산, 인천, 울산, 대구 등의 광역시는 1개소 정도인데 비해 지역이 넓은 광역도에 소녀상이 꾸준히 세워진 것이다.
경상북도에는 2015년 10월 군위군에서 처음으로 건립된 이래 어제(8. 15.)까지 모두 네 군데에 소녀상이 세워졌다. 2015년 11월에는 포항시, 2016년 10월에는 상주, 그리고 어제 안동시에 소녀상이 제막된 것이다.
경북에서 첫 소녀상이 세워진 곳이 군위군이라는 건 좀 뜻밖이다. 경북에서 가장 작은 시군 가운데 하나고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의 득표율이 12%에 그칠 만큼 보수적인 동네다. 그런데 이 지역에서 경북에서 처음으로 주민들이 뜻을 모아 소녀상을 세운 것이다.
과문한 탓인지 나는 올 3월 군위에 들렀다가 이 사실을 처음 알았다. 군위 읍내에 조성되어 있는 ‘조선의 역사와 문화, 선조들의 지혜와 슬기를 체험하는 사라온 이야기마을’ 입구의 숭덕박물관 앞에 세워진 평화의 소녀상은 맨발로 서 있다.
재능 기부 형식으로 소녀상을 직접 제작한 조각가(이병준)에 따르면 소녀상은 “정갈하고 깨끗한 머릿결을 가진, 순수하면서 소박한 모습으로 한국 여성을 표현했다”고 한다. 서울 일본대사관 앞의 김서경·김운성 부부 작가의 소녀상과는 느낌이 좀 다르다.
단순히 앉아 있거나 서 있어서가 아니라, 서울의 소녀상이 더 어려 보이고, 코도 나지막한 한국 여인의 느낌인데 비기면 군위의 소녀상은 코가 높아서 성숙한 여인 같은 느낌이다. 160Cm 정도 키의 소녀는 두 손에 태극기를 들고 서 있다.
소녀상 왼편 잔디밭에 표지석으로 세운 오석이 있다. 광복 70년을 기념하여 이 소녀상을 세운 의의가 새겨져 있다. “어린 소녀들에게 자행한 일제의 비인권적 행위를 세상에 알리고 치욕의 역사를 교훈으로 삼아 자유·평등·정의·평화·박애가 넘치는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염원으로 건립하였다.”는.
포항과 상주에는 김서경·김운성 작품
같은 해 11월 중순에 포항시 북구 환호동 환호공원에 김서경·김운성 작가가 제작한 평화의 소녀상이 세워졌다. 시민 3천583명과 단체 86곳이 참여해 8천736만원을 모아 목표액 6천만 원을 넘겼다. 제막식에는 포항시 죽장면에 사는 ‘위안부’ 피해자 박필근 할머니도 참석했고, 추진위는 모금액 중 1천만 원을 박 할머니에게 전달하고 위로했다고 한다.
경북에서 세 번째 소녀상은 상주시 왕산역사공원에 세워졌다. 시민 추진위는 영화 <귀향>의 실제 주인공인 강일출 할머니가 상주 출신인 만큼 상주의 ‘평화의 소녀상’이 갖는 의미는 남다르다고 강조하면서 시민 모금으로 이 소녀상을 세웠다.
역시 의자에 앉은 소녀와 왼쪽에 빈 의자를 배치한 김서경·김운성 부부작가의 작품으로 포항시의 소녀상과 같은 형태다. 그런데 며칠 전 이 소녀상 얼굴 부분이 날카로운 날카로운 물체로 긁히면서 일부 훼손되어서 경찰이 수사를 벌이고 있다고 한다. 아직도 소녀상을 삐딱하게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안동은 소녀상을 역사성과 상징성 등을 고려해 옛 안동대도호부가 있던 웅부공원에 설치했다. 소녀상은 복원해 놓은 안동대도호부 관아 영가헌(永嘉軒)을 등지고 거리를 바라보고 있다. 의자 대신 그는 돌 위에 앉아 있다.
안동의 소녀는 개성적인 ‘안동 처녀’
이 작품은 미술협회 안동지부 작가들의 공동 작업으로 완성했다고 한다. 소녀의 얼굴은 이왕에 보아왔던 김서경·김운성 부부의 작품과는 꽤 다르다. 부부작가의 소녀가 앳되고 연약해 보이는 반면에 안동의 소녀는 좀 강해 보이는 인상이다.
사진으로 보는 ‘안동 소녀’는 ‘좀 선머슴’처럼 보인다‘고 했더니 배 상임대표는 ’안동처녀‘라고 말했다. 그리고 “안동 소녀상을 보다가 서울 소녀상을 보니, 안동 상이 나아 보인다”고 했다. 작업에 참여한 안동 지역의 작가들이 공동으로 형상화했으니 안동처녀라는 얘기는 사실이겠다.
어떤 방식으로 형상화하든 소녀상에 담긴 뜻이 다르지는 않을 터이다. 그것은 역설적으로 ‘위안부’ 문제를 일본과 합의하면서 이 문제가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해결될 것을 확인’한 박근혜 정부의 몰역사적 성격을 환기하는 것이기도 하다.
전국 곳곳에서 세워지는 ‘평화의 소녀상’은 바로 이 문제가 10억 엔의 ‘위안부 기금’ 따위로 해결되지도 않을뿐더러, 일본 정부가 원하는 ‘소녀상 이전’이 결코 근원적인 문제 해결 없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웅변하고 있는 것이다.
2017. 8. 16. 낮달
*이후 경상북도에는 영천(2017.12.10., 영천시 시립도서관 뜰)과 구미(2018.3.1., 구미역사 뒤편 광장)에 각각 평화의 소녀상이 세워졌다. 영천의 소녀상은 김서경·김운성 작가, 구미는 이병준 작가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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