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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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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섦’의 시간, 기해(己亥)년 설날에

by 낮달2018 2019. 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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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기해년 설날을 맞아

▲ 차례 지내기. 이런 풍경도 이젠 유명 성씨의 종가들에서나 볼 수 있을 듯하다. ⓒ 한국의 세시풍속

육십갑자 가운데 서른여섯 번째, 기해년 설날이 밝았다. 1962년부터 공식적으로 연호를 서기로 쓰게 되면서 이 갑자는 사실상 역법의 기능을 잃었다. 다만 해가 갈리는 연말과 연시에 반짝 사람들 입에 오르내릴 뿐이다.

 

그해의 간지(干支)에 따라 태어나는 아이들의 띠가 달라지기 때문인데, 올해는 기해(己亥)년이니 돼지띠의 해다. 음양오행(陰陽五行)의 법칙에 따라 갑자를 이루는 천간(天干, 앞글자)과 지지(地支, 뒷글자)는 모두 각각 음양, 오행(····), 오방색(五方色, ····)을 나타낸다.

 

기해년은 천간인 ()’는 음양으로는 음(), 오행으로는 토(), 빛깔은 황이다. 지지인 ()’는 음양으로는 음(사주에서는 양), 오행으로는 수(), 색은 흑()이다. 올해의 띠를 황금돼지띠라고 하는 것은 천간인 의 색을 지지인 돼지[()]와 결부하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상 전형일(명리학자/철학박사), 누가 황금돼지 해라고 하는가, 2019 기해년(뉴시스 2019.1.2.)]

 

황금돼지가 만들어진 것은 어떤 문헌적 과학적 논리도 없는 억지라는 것이다. 백말띠, 청사띠, 백호띠 같은 것도 비슷한 방식으로 간지를 조합한 예다. 열두 띠를 이루는 12()는 불교를 지키는 신장(神將)‘12지신상(支神像)’처럼 불교 사상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열두 동물은 대다수 문맹인 백성들에게는 시간과 방위 등의 의미가 내포된 지지(地支)의 이해를 돕는 방편이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기 띠와 같은 동물에 애착을 두고 그것이 지닌 이미지와 특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관심은 오래가지 못한다. 얼마 안 있어 사람들은 올해의 간지조차도 잊어버리게 되고 만다. [관련 글 : 갑을병정, 진사오미…, 간지는 과학이다.]

 

낯섦의 시간, ‘설날

 

새해라는 문화적 충격을 표현한 설다라는 뜻에서 비롯한 이름이라고 한다. 그것은 새해에 대한 낯섦, 즉 새해라는 문화적인 시간 인식 주기에 익숙하지 못함을 표현한 것이다. 설을 삼가고 조심하는 날의 뜻인 신일(愼日)’로 표현한 것은 새해라는 시간 질서에 통합되기 위해서는 조심하고 삼가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이런 뜻은 원일(元日세수(歲首세초(歲初)’와 같은 한자어에도 내포되어 있다. 설날을 즈음해서 베풀어지는 세시 풍속들이 모두 ()’자 항렬로 시작하는 것도 같은 뜻으로 볼 수 있겠다. 이날의 뜻이 평범하지 않다는 방증이다.

▲ 연날리기는 정월 초하루부터 보름까지 아이들이 가장 즐겨하는 놀이다. ⓒ 한국의 세시풍속

어른을 찾아뵙고 인사를 드리는 것을 세배(歲拜)’, 이날 대접하는 음식을 세찬(歲饌)’, 차려 내는 술을 세주(歲酒)’, 남녀 아이들이 모두 새 옷을 입는 설빔세장(歲粧)’이라 한다. 아침 일찍 일어나 세찬 중 가장 중요한 떡국과 세주로 차례를 지낸다.

 

지금은 영문을 알 수 없는 풍속이지만, 예전에는 세화(歲畵)’세함(歲銜)’ 같은 것도 있었다고 한다세화조선 때, 새해를 축하하는 뜻으로 궐내에서 만들어 임금이 신하에게 내려 주던 그림이다. ‘세함서울이나 지방 관아의 구실아치와 하례(下隷), 각 영()의 군졸 등이 설날에 상관 집에 문안드리고 표적으로 명함을 놓고 오던 일. 또는 그 명함.”을 가리킨다.

 

사라진 것은 세화나 세함에 그치지 않는다. 세배와 세찬인들 어디 온전하게 남아 있는가. 집안 웃어른들께 새해 첫인사를 드리고 차례를 지낸 뒤, 아침을 먹고 나서는 일가친척과 이웃 어른을 찾아뵙고 드리던 세배는 이제 집안 울타리를 넘지 않는다.

세배를 드려야 할 어른이 먼 곳에 살고 있을 때, 정월 보름까지 찾아가서 세배하면 예절에 어긋나지 않는 것으로 간주하던 풍습도 옛말이 되었다. 이웃에 살고 있지 않을 때, 굳이 세배를 위해서 오고 가는 일은 상상하기 어렵게 된 것이다.

 

세배가 그러나 자연 세찬도 식구들끼리 나누는 음식에서 그치고 세주는 차례상에 올리는 게 다인데, 요즘 차례를 지내지 않는 집도 늘고 있으니 더 말할 게 없다. 따로 아이들이 없으면 설빔, 세장도 눈에 잘 띄지 않으니, 설날은 연휴나 텔레비전 특집 따위로나 새삼 환기될 뿐이다.

 

명절도 '예전' 같지 않다

 

내외가 다 부모님을 여의었고, 형님 내외분도 세상을 떠나 달리 찾아갈 큰집이 내겐 없다. 크든 작든 간에 선물꾸러미를 들고 길을 나서지 않는 명절은 단출하다 못해 쓸쓸하기조차 하다. 장성한 조카가 있지만 멀리 있고, 차례를 지내지 않으니 명절에 굳이 왕래하지 않는다.

 

이미 우리 세대도 명절에는 큰집 대신, 사위나 며느리를 기다려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그러나 아직 인연을 만나지 못한 아이들만 돌아온 설날은 좀 쓸쓸할 수밖에 없다. 모인 가족들끼리 몇 가지 음식을 만들어 나누고 부모님 묘소에 성묘하는 게 다다.

 

명절이 예전 같지 않은 것은 우리 집만이 아니다. 성묫길에 마을 고샅이나 동구를 살펴봐도 귀성한 승용차만 잔뜩 보일 뿐, 설빔을 차려입은 아이들도 잘 눈에 띄지 않는다. 집집이 울려 퍼지곤 했던 윷놀이의 소란도 없이 동네는 적막하기만 했다.

▲ 위도 용왕굿은 풍어를 기원하고 물에 빠진 원혼을 달래주는 굿.바다에 띠배를 띄운다. ⓒ 부안이야기

세시 풍속이 시대와 함께 변천되어 가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더러는 없어지고 더러는 새로 생기기도 하는 이 풍속을 호오(好惡)의 잣대로 바라보는 것은 지나치다. 문제는 그 풍속이 담고 있던 공동체의 정신, 그 나눔과 보탬의 문화가 쇠잔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체로 농한기인 정월엔 농업 생산의 주기에 따라서 전개되는 신앙적 의식인 농경의례가 설날부터 상원(上元, 정월 대보름)까지 집중되어 있다. 그리고 그 공동체 의식은 마을을 단위로 한 동제(洞祭)로 집중된다.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당산제, 동신제, 산제, 용왕제, 풍어제등이 베풀어지는 때가 바로 이때다.

 

모든 액운은 띠배에 실어 보내는 한 해를

 

<한국의 세시 풍속>(황현만·정승모, 학고재, 2001)에서 소개하고 있는 전북 부안군 위도면 대리의 용왕굿은 풍어를 기원하고 물에 빠진 원혼을 달래주는 굿인데 바다에 띄우는 띠배가 인상적이다. 동네의 온갖 재액을 담은 허수아비와 함께 그들을 달랠 제물을 실은 이 배를 띄움으로써 마을 사람들은 한 해의 액운을 저 멀리 쫓아내는 것이다.

 

몇 해째 이어지는 어려운 경제 상황 때문인가, 새해를 맞이하는 사람들의 표정도 밝지 않다. 둘 중 하나가 올해 우리나라 경제 상황이 더 나빠질 거로 전망했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그런 우울을 배가한다.

 

그래도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로 맞이하는 새해, 새봄인데 새해가 그 기대를 채워줄 듯하지 않으니 씁쓸하기 짝이 없다. 비록 사진 속의 띠배지만 그것을 아련하게 바라보는 것은 이 땅에 내릴 모든 액운을 그 작은 배가 고스란히 싣고 떠나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2019. 2. 5.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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