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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호박19

[2017 텃밭 일기 3] 진딧물 가고 탄저 오다 텃밭 고추에 탄저(炭疽)가 온 것은 장마가 시작되기 전이다. 눈 밝은 아내가 고추를 따다가 탄저가 온 고추를 따 보이며 혀를 찼을 때, 나는 진딧물에 이어 온 이 병충해가 시원찮은 얼치기 농부의 생산의욕을 반감해 버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진딧물로 고심하다가 결국 농약을 사 치고 나서도 나는 마음이 내내 개운치 않았다. 약을 쳤는데도 진딧물은 번지지만 않을 뿐 숙지는 것 같지 않았다. 그 무렵 만난 선배 교사와 고추 농사 얘기를 하다가 들은 얘기가 마음에 밟히기도 했다. 집 마당에 텃밭을 가꾸는 이 선배는 부지런한데다가 농사의 문리를 아는 이다. 내가 어쩔까 망설이다가 내 먹을 건데 뭐, 하고 약을 쳐 버렸다고 하니까, 그런 이야기를 했다. “아무개처럼 큰돈을 들여서 농사를 짓는 이들은 도리가 없.. 2021. 7. 29.
[2021 텃밭 농사 ⑤] 마침내 고추가 익기 시작했다 1. 방제(防除), 방제, 방제……(7월 10일, 13일) “반풍수(半風水) 집안 망친다”라고 했다. 내가 이러쿵저러쿵 병충해 핑계를 자꾸 댄 뜻은 일종의 알리바이를 위해서다. 약을 치지 않으면 안 되는 사정을 시시콜콜 이야기함으로써, 방제는 내가 원해서가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선택임을 강조하려는 것이다. 의성서 농사를 짓는 내 친구는 내가 농약을 치는 걸 심상하게 받아들여 주었다. 그뿐 아니라 아무도 내가 농약을 치는 걸 따로 지적하거나 비난한 이는 없다. 그런데도 알리바이 운운하는 것은 한편으로 텃밭 농사에 굳이 방제까지 하려는 게 지나친 욕심이면서, 농약에 대한 이해나 인식의 부족 탓이라는 지적을 받을 수 있음을 의식한 결과다. 7월 3일에 약을 치고 왔는데 일주일 후에 들렀더니 상태는 더 나빠져 .. 2021. 7. 18.
[2021 텃밭 농사 ④] 거름주기와 약 치기 사이… 1. 거름주기와 수확(6월 28일) 첫 수확을 하고 엿새 뒤다. 이제 우리 고추밭은 제법 꼴을 갖추기 시작했다. 시원하게 낸 고랑을 사이에 두고 고춧대는 열매를 다닥다닥 달고 있다. 밭 주인의 눈에는 마치 딱 벌어진 어깨를 자랑하는 실팍한 장정의 모습이다. 무엇보다 거기 달린 고추의 크기나 굵기가 예사롭지 않다. 풋고추로 먹으려고 한 줌을 따 집에 와 재어 보니 15cm 가까이 되었다. 아마 20cm 가까이 자라는 건 문제가 아닐 것이다. 지난해 우리가 고춧가루 스무 근을 이룬 것은 전적으로 이처럼 크고 굵은 고추의 품종 덕이다. 이게 장모님이 지은 부촌 고추가 아닌가 싶다. [관련 글 : 장모님의 고추 농사] 내가 건성으로 밭을 둘러보며 사진기를 가져가지 않아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는 동안, 아내는 알.. 2021. 7. 9.
[2021 텃밭 농사 ③] 텃밭 농사도 ‘심은 대로 거두기’는 매일반 1. 풀매기(6월 5일) 지지대를 세워준 게 5월 26일, 열흘 만에 텃밭에 들르니 고랑마다 돋아난 풀이 말이 아니다. 일찍이 첫 농사를 지으면서부터 나는 텃밭 일이 풀과의 씨름이라는 걸 알았다. [관련 글 : 초농기(初農記), 첫 농사의 기록] 며칠만 한눈을 팔면 풀은 마치 임자의 게으름을 비웃듯 밭고랑을 잠식해 들어오기 때문이다. 바랭이 등 잡풀들의 공세에 기가 질리는 건 새삼스럽지 않다. 새록새록 나날이 짙어지는 잡풀의 기습을 불가항력이라고 느낀다면 ‘폴과의 공존’을 선택해도 좋다. 요즘 농사꾼 가운데서는 굳이 고랑의 풀을 뽑지 않고 버려두는 경우도 흔하니까 말이다. 그러나 아내는 곧이곧대로 농사일을 곁눈질하며 자란 사람이라, 풀과의 공존 따위를 입 밖에 낼 수 없다. 부지런히 틈만 있으면 놈들을 .. 2021. 7. 5.
2020 텃밭 농사 시종기(3) 고추 농사 ② 처음으로 고춧가루 20근을 거두다 좋은 모종으로 시작한 고추 농사 올해는 고추를 심되 비싼 모종, 상인 말로는 족보가 있는 모종으로 심었다는 건 이미 말한 바다. 글쎄, 긴가민가했는데 고추가 자라면서 이전에 우리가 10여 년 이상을 보아온 고추보단 무언가 다른 모습을 보고 우리 내외는 머리를 주억거렸다. “암만, 돈을 더 준 게 돈값을 하는구먼.” “그러게. 엄마가 지은 고추가 전부 이런 종류였던가 봐.” 그렇다. 일단 키가 좀 훌쩍하게 크는데, 키만 크는 게 아니라 검푸른 빛깔을 띠면서 뻗어나는 가지의 골격이 심상찮았다. 고추가 달리기 시작하고, 그게 쑥쑥 자라서 10cm 이상 가는 예사롭지 않은 ‘인물’을 선보이자, 우리 내외는 꽤 고무되었다는 얘기도 앞서도 했었다. 처음으로 익은 고추는 지난 회에서.. 2020. 9. 24.
[2010 텃밭일기 ⑤] 첫 결실, 시간은 위대하다 고추에 지지대를 박아 주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차일피일하다가 처가에 들른 김에 장모님과 함께 종묘사에 들러 지지대 서른 개를 샀다. 개당 300원, 9천 원을 썼다. 고추 포기마다 쳐 주지는 못하고 서너 포기 간격으로 지지대를 박아 놓고 짬이 나지 않아 며칠을 보냈다. 지지대 사이를 비닐 끈으로 이은 것은 며칠 전이다. 두둑에 심은 고추의 열이 고르지 않아서 두 겹으로 친 줄이 고춧대를 제대로 감싸지 못할 것 같다. 서툰 농사꾼은 어디서든 표가 나기 마련인 것이다. 한 포기밖에 없는 오이 위에는 장모님께 얻어 온 온상용 철근(?)을 열십자 모양으로 박고 끈으로 단단히 묶었다. 오늘 다시 며칠 만에 밭에 들렀다. 밭 어귀에서부터 펼쳐지는 초록빛 물결이 훨씬 짙고 푸르러졌다. 시간은 이처럼 위대한 것이다. 시.. 2020. 6. 24.
첫 수확과 호미, 이 땅 어머니들의 ‘노동’을 생각한다 [ 텃밭일기 2018] ② 첫 수확과 호미, 이 땅 어머니들의 ‘노동’을 생각한다 지난해 6월에 쓴 텃밭 일기다. 오늘 인터넷에서 기사를 읽고 ‘호미’에 관해 쓴 이 글이 생각났다. 기사는 영주의 대장간에서 전통 방식으로 농기구를 만들고 있는 경상북도 최고 장인의 호미가 아마존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고 전한다. 미국 온라인 쇼핑 사이트 아마존에서 한국산 농기구 ‘영주대장간 호미(Yongju Daejanggan ho-mi)’가 크게 이른바 ‘대박’을 냈다는 것. 국내에서 4000원가량인 이 호미는 아마존에서 14.95~25달러(1만6000원~2만8000원)로 국내보다 훨씬 비싸게 팔리지만, ‘가드닝(gardening·원예)’ 부문 톱10에 오르며 2000개 이상 팔렸다고 한다. ㄱ자로 꺾어진 ‘호미’는 .. 2019. 2.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