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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부음4

[근조] 리영희 선생님의 부음에 부쳐 1929 ~ 2010. 12. 5. 리영희 선생께서 돌아가셨다. 며칠 전 정운현 선생의 블로그에서 문병 소식을 들으면서 병환이 매우 위중하다는 것을 알았는데 불과 며칠 새에 결국 세상을 버리신 것이다. 아침에 조반을 짓던 아내로부터 나는 선생의 부음을 들었다. “이영희 선생이 돌아가셨대.” “그래, 위중하시다더니 그만…….” 아침밥을 먹고 나서 인터넷에 들어갔더니 여기저기서 선생의 부음 관련 기사가 떠 있다. 많은 기사에서 선생을 ‘사상의 은사’라고 보도했던 프랑스 일간지 의 평가를 전하고 있다. 외국 언론의 평가지만 그것은 더하거나 뺄 필요가 없는, 선생의 삶과 사상이 이 나라의 젊은이들에게 끼친 가르침에 걸맞은 표현이다. 나는 선생을 존경하고 선생의 저작을 통해서 눈과 생각이 트이기는 했지만, 그를 .. 2020. 12. 5.
<아버지는 그렇게 작아져간다>의 작가 이상운 떠나다 소설가 이상운 1959 ~2015. 11. 8. 오늘 아침 신문 ‘궂긴 소식’란에서 작가 이상운의 부음을 읽었다. 8일 새벽, 그는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수능일이 며칠 남지 않은 3학년 교실에서 그 부음을 읽고 나는 잠깐 마음의 평정을 잃었다. 아, 나는 자습하는 아이들에게는 들리지 않도록 나지막하게 신음을 흘렸던 것 같다. 소설을 읽지 않은 지 좋이 10년이 넘었다. 매체에서 작가라고 소개하는 이들을 적지 않게 만나지만 나는 그들의 소설을 읽은 적이 없으므로 그냥 작간가 보다, 하고 만다. 이상운도 그런 작가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러나 나는 소설 대신 그가 쓴 간병일기 를 읽었다. 그는 가까운 포항 출신이다. 1959년생이니 우리보다 몇 년 아래다. 그는 1997년에 장편소설 으로 대산 .. 2020. 11. 8.
우리 시대의 부음, 떠도는 죽음들 개인적 슬픔과 불행 너머 ‘시대의 부음’들 에는 ‘궂긴 소식’이란 이름의 부음란이 있다. ‘궂기다’는 ‘(완곡하게) 윗사람이 죽다’(표준국어대사전)라고 하는 뜻의 우리말이다. 이 난에는 사회 저명 인사들의 죽음은 말할 것도 없고, 게재를 요청하는 일반인들의 부음도 실리는 것 같다. 숱한 죽음이 거기 실리지만 대부분은 나와 무관한 것들이다. 그나마 낯이나 귀에 익은 이름이면 아, 그이가 죽었구나, 하고 생각할 뿐이다. 나와 무관한 죽음이란 세상에 넘치고 넘친다. 망자를 알든 모르든 그 죽음은 숱한 죽음 가운데 하나일 뿐이지, 무슨 애달픔으로 다가오는 것은 아니다. 지난 6월 8일 자 신문을 읽다가 나는 문득 한 작가의 부음을 읽었다. 소설가 임동헌 씨. 나는 등허리로 서늘하게 지나가는 전율을 희미하게 느꼈.. 2020. 6. 15.
지아비와 함께 편히 쉬시라 김지원 1959~2012.4.26 인간의 삶에서 ‘죽음’을 떼어낼 방법은 없다. ‘낙양성 십 리 하에 높고 낮은 저 무덤’을 굳이 불러오지 않더라도 인간의 삶은 죽음을 피해갈 수 없다. 고매한 사상가도, 억만금을 가진 부자도, 대중의 사랑을 먹고살던 연예인도,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는 숱한 선남선녀들도 죽음의 시간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모든 죽음은 슬프다. 그러나 우리는 살 만큼 산 ‘자연사’는 비교적 담담히 받아들인다. 호상(好喪)이란 이름이 따르는 부음이 그것이다. 그 죽음이 더욱더 애틋한 것은 아이들의 죽음이고, 좀 이르게 찾아온 죽음이다. 그것은 ‘자연사’와 달리 쉬 받아들일 수 없는 안타까운 죽음이기 때문이다. 지난주 목요일 오후에 한 통의 문자를 받았다. 4년 전에 우리가 저세상으로 배.. 2020. 4.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