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길 위에서

두 전직 대통령은 왜 <국방백서>에 빠진 걸까

by 낮달2018 2020. 12. 23.
728x90

두 진보 대통령을 백서에서 뺀 국방부

▲ <2012 국방백서>를 보도한 <서울방송(SBS)> 8시 뉴스 ⓒ <SBS> 뉴스 갈무리

눈 밝은 누리꾼의 눈에나 띌 단신 하나가 보도된 것은 지난 21일이다. <경향신문> 홍진수 기자의 기사 “국방·외교 대통령이 ‘국방백서’에서 빠졌는데…누구?”다. 기사의 요지는 국방부가 발간한 ‘2012 국방백서’ 특별부록의 한미 동맹사 연표에 실린 사진에 박정희, 전두환 전 대통령은 있지만 고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은 없다는 것이다.

 

한미 동맹사에서 빠진 ‘전직 대통령들’

 

국방백서는 그간 국방정책과 관련 자료 등을 총정리해 국내외에 알리는 목적으로 국방부에서 격년으로 발간하는 백서다. 국방부는 이번 백서에 ‘한미동맹의 과거·현재·미래’란 특별부록을 모두 8쪽(268~275)에 걸쳐 실었다. 1953년 10월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로 시작된 한미동맹 역사를 연표 형식으로 정리했고 주요 사건들에는 간단한 설명과 사진을 붙였다.

 

1961년 1월 미국 케네디 대통령과 회담하는 박정희 당시 최고회의 의장, 미국에서 레이건 대통령과 만난 전두환 대통령 모습 등이 사진으로 실렸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거기 두 전직 대통령은 없다는 것이다. 두 전 대통령 재임 기간(1998~2007) 중에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합의’,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파병’ 등과 같은 중요 사건이 제시되었는데도 말이다.

 

2007년 2월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합의 대목에는 노무현 대통령 대신 당시 국방부 장관이던 김장수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회 국방 안보추진단장의 사진이 실려 있다고 한다. 신문은 이에 대한 국방부 관계자의 해명을 이렇게 전한다.

 

“일련의 역사성 있는 것들을 정리한 것이지 사진 하나 하나당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전체적인 흐름을 잘 이해하실 수 있도록 해야 된다는그런 차원의 정리된 자료다.”

 

기사가 널리 보도되지 않아서였는지 혹은 전직 대통령 사진이 빠진 경위에 대한 국방부의 해명이 이해할 만한 것이었는지 온라인에선 이에 대한 누리꾼들의 반응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요리 전문 여성 커뮤니티인 ‘82cook’의 자유게시판에 관련 글이 하나 실려서 조회 수 1,500을 기록하고 비난 일색의 댓글이 열몇 개 달린 게 고작이다.

 

그러나 대중들의 반응과 무관하게 나는 이 기사를 처음 접했을 때의 느낌이 아주 생생하게 남아 있다. 뭐랄까, 그것은 뭔가에 된통 무시당하고 있다는 느낌 같은 것이었다. 선거 뒤끝이어서 그랬을까. 나는 국방부에 의해서 배척받은 두 전직 대통령에게 일종의 동질감을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국방부의 해명대로 그랬구나, 하고 넘길 수 없었던 것은 사안의 성격과 이명박 정부 내내 군이 보여준 전임 정부에 대한 일련의 태도와 성향, 그리고 대선 국면의 NLL 관련 파장 따위를 두루 떠올렸기 때문이었다.

 

국방백서에서 다룬 ‘한미동맹의 과거·현재·미래’란 두 전직 대통령의 재임 기간에 이루어진 일련의 합의와 해외 파병 등을 빼놓고 이를 수 없다.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라크 파병의 경우는 미국(유엔)의 요구에서 비롯된 ‘한미동맹 관계의 공고한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서’ 이루어졌다.

▲ 2007년 한미국방장관회담에서 전작권 환수 시기가 결정되었다.

이명박 정부 들면서 연기된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문제도 전통적 한미동맹 관계의 흐름을 바꾸는 주요한 합의라고 할 수밖에 없다. 거칠게 정리하면 그것은 한국전쟁 시기에 양도한 우리나라의 군사주권을 되찾는 매우 중차대한 결정이고 합의였기 때문이다.

 

전시작전통제권 환수에 대한 군 내부의 이해와 인식이 어떤 수준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보수 진영의 부정적 의견에도 불구하고 전작권 전환이 합의된 것은 한미 양국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결과였다는 게 일반적 평가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에선 2007년 참여정부 시절의 합의(2012년 4월 17일)에서 3년 7개월 뒤(2015년 12월 1일)로 전작권 이양을 연기했다. ‘북의 현실적 위협’에다 ‘독자적인 전작권을 가질 준비가 안 되었다’라는 걸 연기 사유로 들었지만 역시 ‘군사주권의 포기’라는 비판도 만만치 않았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군에 대한 문민통제는 상식이다. 군은 사안에 대한 독자적 의견을 제시할 수는 있지만 일단 행정부의 결정을 따를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전작권에 관한 예비역 장성들의 반대가 격렬했지만, 참여정부 당시의 군이 전작권 환수를 수용한 것도, 현 정부에서 다시 그 연기를 받아들인 것도 일관된 선택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대중의 의구심과 비판’을 돌아보라

 

이번 국방부의 ‘백서’ 편집에서 전직 두 대통령의 사진이 빠진 것을 우리 군의 참여정부에 대한 인식의 일단을 드러낸 것으로 이해하고 싶지는 않다. 당시 참여정부의 전작권 환수 결정과 거기 드러난 참여정부의 한미동맹에 대한 태도에 대한 이견으로 해석하고 싶지도 않다.

 

백서는 쿠데타로 집권한 두 전직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해 미 대통령과의 만나는 장면은 사진으로 처리했다. 그러나 그보다 훨씬 중요한 전작권 관련 합의를 당시 대통령 대신 주무 장관의 사진으로 대체한 까닭을 단순히 ‘전체적인 흐름’으로 설명하는 것이 얼마나 온당할까. 유독 그 시기만 국가수반이 아닌 주무 장관이 해당 정책을 수립, 집행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말이다.

 

백서의 편집을 바라보는 대중들의 눈길은 결코 호의적이지 않다. 82cook에 오른 한 누리꾼의 지적처럼 그들은 두 전직 대통령을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일까. 혹은 국방부는 최근 대선 국면에서 여당이 주장한 NLL 관련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발언을 사실로 받아들인 것일까.

 

굳이 ‘정부의 연속성’을 이를 일은 없다. 헌정의 계승과 정부의 연속은 같이 가는 것이고, 그것을 부정하는 것은 헌정의 계승을 부정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는 단순히 백서 편집상의 촌극에 불과할 수도 있는 사안을 바라보는 대중들의 눈길에 담긴 의구심과 비판을 국방부가 솔직하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2012. 12. 23. 낮달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