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길 위에서

‘그들’의 역사, ‘우리들’의 역사

by 낮달2018 2020. 11. 28.
728x90

고위 공직자 청문회 풍경

▲ 청문회에서 예민한 질문을 비켜 간 고위공직자들. 왼쪽부터 류길재, 조윤선, 서남수, 황찬현

# 풍경 하나

 

- 5·16은 쿠데타가 맞느냐?

 

“역사의 평가에 맡겨야 한다.” (류길재 통일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이하 같음.)

“역사적인 문제에 대해 판단을 할 만큼 깊은 공부가 안 돼 있다.” (조윤선 여성부 장관 후보자)

“교과서에 기술된 것을 존중한다. 그 문제에 직답을 못 드리는 이유를 이해해 달라.” (서남수 교육부장관 후보자)

“감사원장 후보자로서 역사적 사실에 대해 평가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점을 널리 양해하여 주시기 바란다.” (황찬현 감사원장 후보자)

 

# 풍경 둘

 

- 1980년대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 사건 때 조선 침략을 ‘조선 진출’이라고 기술해 우리 국민이 화가 나 500억 원을 모아 독립기념관을 지었는데 교학사 교과서에서 다시 ‘진출’이라는 용어가 등장했다. ‘진출’과 ‘침략’ 뭐가 적합하냐? (도종환 의원 대정부 질문)

 

“용어 문제에 문제가 있다면 그런 부분은 검증 위원회와 심사단이 하고 있다. 거기에 맡겨 달라.” (정홍원 국무총리)

“(교학사 교과서가 강화도조약을 ‘고종의 긍정적인 인식으로 체결됐다’고 서술한 대목을 문제 삼으며) 일본이 함포사격을 해 무력으로 조약을 체결하게 했는데 고종의 긍정적 인식이라는 게 진실인가?”(도종환)

“그건 역사학자들이 판단할 문제다.” (정홍원)

 

- 교학사 교과서를 쓴 사람은 이렇게 쓰는 것이 긍정적인 역사관이고, 민족의 고통을 이야기하는 것이 자학적이라는 것이다. 총리는 이것에 동의하냐?(도종환)

 

“역사를 보는 눈은 전체적 맥락으로 볼 필요도 있다. 교학사 교과서를 포함한 8종 교과서마다 갖고 있는 오류이기 때문에 종합적으로 검토할 것이다.

미리 질문지를 받지 못해 충분하게 검토하지 못했다. 검토할 시간을 주지 않으면 즉석에서 어떻게 답하느냐?” (정홍원)

 

# 풍경 셋

 

▲ 정홍원 국무총리

풍경2의 답변에 대해 분노한 민주당 의원들이 본회의장 퇴장. 국회의장과 총리 등이 조율 후 “질문의 형태를 빌어서 국무총리에게 질문하고, 국무총리가 사과하는 형식”으로 하기로 합의 후.

 

- (일제가) 침략한 것인가, 진출한 것인가?(최민희 의원)

 

“침략이다.” (정홍원 총리)

 

- (관동대지진 당시 조선인 대량학살에 대해) (일제가) 학살한 것인가, 소탕한 것인가?(최민희)

 

“학살한 것이다.” (정홍원)

 

- 명성황후 시해가 만행인가, 아닌가?(최민희)

 

“만행이다.” (정홍원)

 

현대사 관련 역사 인식에 관한 질문에 대한 행정부 부처의 장을 맡을 장관 후보자(인사청문회), 그리고 그 행정부를 통할하는 국무총리의 답변(대정부질문)이다. 현대사의 예민한 부분에 대한 답변을 두루뭉술하게 뭉개거나 얼버무린 게 특징이다. 물론 대정부 질문에서 국무총리는 뒤늦게 혼이 나서 태도를 바꾸긴 했지만.

 

명색이 장관이다. 어쨌든 이 나라에서 날고 기는 인재에 해당하는 이들이니 역사에 대한 이해나 안목이 부족하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런데도 하나같이 특정 역사에 관한 질문 앞에서 잔뜩 몸을 도사린다. 하필이면 현직 대통령 부친이 행한 군사 정변과 유신독재에 대해 이들은 ‘잘 모르겠다’러거나 ‘역사의 평가에 맡겨야 한다’라거나 ‘직답을 드리지 못하겠다’라는 형식으로 은근히 발을 빼고 있다.

 

우리나라 총리 맞냐?

 

‘척하면 삼척’이니, 그 이유를 굳이 거론할 일도 없겠다. 이들이 임명권자의 이른바 복심과 심기를 헤아린 결과다. 이들은 임명권자의 부친이 저지른 민주주의와 헌법 유린 행위를 각료들이 곧이곧대로 인식하는 걸 대통령이 원하지 않는다고 생각한 것일까. 아니면 정말로 그의 복심(腹心)이 그런 것일까.

 

‘우리나라 총리 맞냐’는 질타를 들은 국무총리의 태도는 더욱 절묘하다. 그것은 일제의 식민 지배를 바라보는 관점과 직결된 것으로 국가와 민족의 정체성에 대한 이해와 다르지 않은 까닭이다. 도종환 의원의 질문은 교학사 판 ‘한국사’ 교과서의 문제점에 관한 것이었다.

 

그러나 총리의 답변은 상식을 뒤엎었다. 일제의 ‘침략’을 ‘진출’로 기술한 것이 역사적 사실에 반한다고 판단하는 데 어떤 문제가 있는가. 총리는 그걸 ‘용어’의 문제로 받아들였다. 무력으로 강제된 ‘강화도조약’을 ‘긍정적 인식’으로 기술한 부분에 대해서도 그는 ‘역사학자들의 판단’으로 미루었다.

 

거듭 말하지만, 역사에 관한 이해와 소양이 전혀 없는 사람이 아니라 한 나라의 총리에게 주어진 질문이었다. 우리나라 총리 맞느냐는 질타가 나온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그는 ‘미리 질문지를 검토하지 못했다’라고 변명했지만, 사실 그가 동문서답으로 일관한 것은 교학사 판 <한국사> 교과서(이하 <한국사>)에 대한 당정과 보수 세력들의 엄호를 의식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 '후쇼사' 교과서만도 못하다는 평가를 받는 문제의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일제의 식민 지배에 독립운동의 전개로 맞선 우리 역사를 ‘자학사관’으로 매도하면서 이 우익 교과서가 기대는 것은 ‘식민지 근대화론’이다. 그런 의도는 결과적으로 일제의 식민 지배나 해방 이후의 독재 정치에 대한 유화적 접근을 낳았다. 그리고 이는 치명적 흠결에도 불구하고 <한국사> 교과서를 이른바 ‘좌편향 교과서’의 대항마로 키우려는 우익세력들의 총공세로 이어지고 있다.

 

‘침략과 진출’, ‘긍정과 부정’, ‘학살과 소탕’ 따위로 맞서고 있긴 하지만, 그게 단지 역사적 규정과 관련한 용어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모두가 안다. 그것은 한 나라, 한 민족의 역사를 서술하는 바탕과 철학에 직접 이어진 관점, 역사관의 문제다.

 

전도된 역사 인식은 ‘국민에 대한 배임’이다

 

행정부의 각료들과 수장이 이 중차대한 역사 인식의 문제에 관해서 모르쇠로 일관한다. 또 국민이 아니라, 임명권자나 집권 여당, 또는 사회의 주류를 자처하는 세력을 의식하고 그에 영합하는 인식을 보인다. 이는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을 망각하고, 그들을 부리는 국민에 대한 명백한 배임이다.

 

역사에 대한 이들 오만한 보수 세력들의 당파적 이해가 역사 교육의 파행을 부채질하고 있다. 검인정 <한국사>로도 부족해 이들은 결국 수십 년 전의 ‘국정 교과서’ 체제를 돌아가자고 선동한다. 역사는 MB정부 이래 마치 고삐 풀린 말처럼 퇴행을 거듭하고 있다.

 

그나마 일부 법조계 출신 공직 후보자들(황교안 법무, 채동욱 검찰총장, 조용호·서기석 헌법재판관 등)이 인사청문회에서 5·16과 유신헌법에 대해 당당히 입장을 밝힌 것으로 위안을 삼을 수 있을까.

 

역사를 바라보는 공직자들의 시각을 확인하면서 여전히 국민은 ‘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거듭 깨닫는 기분은 씁쓸하다. 4년이나 5년에 한 번씩 치러지는 선거 때나 잠시 ‘갑’이라고 떠받들릴 뿐, 이 땅의 헌정사 가운데 국민이 갑이었던 적은 일찍이 없지 않았는가.

 

역사조차도 자신들의 의도에 맞게 서술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 앞에서 ‘역사가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명제가 설 자리는 없어 보인다. 그러나 그들이 전가의 보도처럼 역사를 자신들의 이해로 포장한다고 해도 사람들이 몸으로 써 내려가는 우리의 역사는 연면할 터이다. 그게 늘 을이었던 백성들이 믿는 구석이라면 구석이리라.

 

 

2013. 11. 28. 낮달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