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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드라마와 영화 이야기38

<짝패>, 작가 김운경의 인물들 김운경 드라마 한동안 TV 드라마하고는 담을 쌓고 지내오다가 언제부턴가 드라마와 친해졌다. 무엇보다도 아이들이 ‘드라마의 여제(女帝)’라고 놀릴 만큼 드라마를 ‘끌어안고’ 사는 아내 덕분이다. 아내는 이른바 ‘막장 드라마’도 빼먹지 않고 끊임없이 ‘욕하면서 보는’ 시청자다. (MBC)과 (SBS)을 보면서 아내는 명쾌하게 두 어절로 예의 드라마를 정리해 버렸다. “작가가 미쳤더구먼.” 하기 좋은 말로 ‘욕하면서 보는 시청자’를 빌미로 ‘막장 드라마’에 대한 비난을 비켜 가기도 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시청률에 목을 맬 수밖에 없는 이 나라 TV 방송판의 속사정을 고려한다 해도 그건 아니다. ‘피의 비밀’이나 ‘삼각관계’를 버무린 ‘재벌 이야기’ 따위의 공식을 벗지 못하는 책임은 시청자가 아니라 작가가 지는.. 2020. 5. 4.
<도가니> , 야만의 세상, 혹은 성찰 실화 소재의 영화 며칠 전, 인근 복합상영관에서 요즘 한참 ‘뜨고’ 있는 영화 를 보았다. 그러려니 했지만, 시작 시각을 기다리는 내내 영화관 앞은 사람들로 꽤 붐볐다. 예상을 웃도는 열기에 딸애와 나는 마주 보며 정말, 동의의 눈짓을 나누었다. 거기서 영화를 보러 온 지인을 두 사람이나 만났으니 가히 ‘도가니’의 열기는 뜨겁다고 할 수밖에 없다. 관객이 많을 수밖에 없는 시간대(밤 8시)이긴 했지만 168석의 자리를 거의 채운 채 영화는 시작되었다. 선입견 때문이었을까. 관객들은 숨을 죽이고 화면에 몰입하는 것처럼 보였다. 관객으로 가득 찬 실내는 금방 후덥지근해져서 우리는 겉옷을 벗어야 했다. “안동에 오고 처음이네” “ 때도 아마 이 정도는 들어왔을걸요?” 영화가 ‘뜨고 있다’면 당연히 이유가 있다.. 2020. 1. 22.
<다이빙벨>, 나는 진실을 보았다고 믿는다 [리뷰] 이상호·안해룡의 , ‘거대한 벽’과 ‘압도적 진실’ 사이 ‘다이빙벨(diving bell, 잠수종)은 바다 깊이 잠수하는 데 사용하는 단단한 챔버(chamber, 방)’다. 이 장비는 수중으로 내려갈 때 소수의 다이버들이 기지로 사용하거나 이동할 때 이용한다. (이상 ) 다이빙벨은 잠수사들이 물 밖으로 나오지 않고도 오랜 시간 수중 작업할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단순한 원리의 수중 구조 장비가 뉴스의 초점으로 떠오르게 된 것은 전적으로 세월호 참사로 말미암은 것이었다. 골든타임 72시간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만 보다가 304명의 승객을 수장시킨 여객선 침몰사고의 실종자 구조에 다이빙벨이 가장 유용한 장비로 여론의 주목을 받은 것이다. ‘다이빙벨’로 드러난 ‘사실’과 ‘진실’ 4월 2.. 2020. 1. 17.
<카트>, 공감 이후 영화 의 공감과 연대 서로 다른 계급, 계층의 삶을 이해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상류 계급의 삶과 그 양식에 대해서는 알 만큼은 안다. 자신의 삶과는 무관할뿐더러 허상에 그치긴 하지만 그걸 마치 손바닥 들여다보듯 아는 것은 텔레비전 화면에서 날마다 그들의 삶을 시시콜콜 보여주기 때문이다. 하류계층이 허상이나마 상류 계급의 삶을 이해하는 것과는 달리 가난한 사람들의 삶에 대한 부자들의 이해는 지극히 단편적이고 피상적이다. 가난한 이들에겐 부자들의 삶이 동경의 대상이지만 그 역의 경우는 성립하지 않기 때문이다. 중학교 짝꿍이었던 부잣집 아들로부터 ‘돈이 왜 없느냐’는 반문을 받고 말문을 잃었던 기억이 생생한데, 이런 상황은 서양에서도 예외는 아닌 모양이다. 흔히 인용되는 마리 앙투.. 2020. 1. 6.
반 아이들과 함께 영화 <울지 마, 톤즈>를 보다 예술영화 전용관에서 반 아이들과 영화를 보다 지난 금요일 오후, 시내 예술전용관에서 우리 반 아이들과 함께 ‘맞춤 영화’ 를 보았다. 이 영화가 ‘맞춤 영화’인 것은 내가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 특별히 청한 영화인 까닭이다. 학년 말이었고 피자나 찜닭으로 1년을 마무리하는 것보다 영화를 한 편 보는 게 훨씬 나으리라고 나는 생각한 것이다. 학급 마무리를 고 이태석 신부와 함께 마지막 시험이 끝나는 날이었고, 관람료가 반액으로 할인되었으므로 나는 더 많은 아이가 이 영화를 보러 오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최종 확인한 관람객은 모두 48명. 우리 반 아이들 28명 외에 이 영화를 함께 본 이는 동료 교사 다섯을 포함 스무 명 남짓. 이는 몇 해 전, 독립영화 를 본 아이들 10.. 2019. 11. 23.
“사장님, 이거 말고 딴 영화 틀어주세요” 경북 안동의 ‘예술영화 전용관’ 중앙씨네마… 144석 규모의 맞춤형 서비스 ‘인구 16만의 소도시 안동에는 예술영화 전용관이 없다’라고 하면 아무도 그걸 심각하게 여기지 않을 터이다. 그러나 ‘소도시 안동에도 예술영화 전용관이 있다’라고 하면 이야기가 좀 달라진다. 그건 사람들 대부분한테서 ‘정말?’ 또는 ‘설마?’ 같은 단말마 성(?)의 경악을 끌어내기 때문이다. 그것도 그럴 만하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영화진흥위원회(그 말 많던 위원장은 최근 해임되었다. 그는 ‘좌파’들의 수중에 떨어진 영화판을 구하기 위해 권력이 파견한 ‘백기사’였지만 단 14개월 만에 ‘흑기사’라는 사실이 드러나 버렸다)에서 지원하는 ‘예술영화 전용관’에 선정된 영화관은 2009년에 전국에서 겨우 10개 영화관뿐이었기 때문이다. .. 2019. 11. 22.
그리운 극장, 추억의 단관 영화관 시대 단관 영화관이 사라지고 있다 인터넷에 국내 최초 영화관인 단성사 관련 기사가 여기저기 눈에 띈다. 법원경매에서 세 차례나 유찰돼 최저 입찰가격이 감정가의 절반 수준으로 내려갔다는 소식이다. 어떤 신문에선 ‘주인을 찾지 못하는 현 상황’을 ‘잔혹사’라고 표현하고 있다. 인터넷에 떠 있는 낡은 사진 속에 한자 간판 ‘단성사(団成社)’를 단 옛 영화관 건물이 오래 눈길을 끌었다. ‘단성사’ 소식에 단관 극장을 생각하다 물론 나는 단성사 극장을 전혀 모른다. 거기 가 본 적은 물론이고 그게 서울 어디쯤 있는 극장인지조차 모른다. 그러나 7, 80년대 따위의 일간지 하단을 장식하던 영화 광고에서 본, 한자 약자 ‘단(団)’자를 쓴 이름은 눈에 익었다. 이른바, 멀티플렉스(복합상영관)의 시대[관련 글 : ‘가설 천.. 2019. 11. 19.
<뮤직 박스(Music Box)>, 세상의 ‘아버지’를 생각한다 제시카 랭의 (1989) 시절이 하 수상해서일까. 도처에 ‘아버지’의 그림자가 어른댄다. 뉴스 속의 아버지는 자상하지만, 무력한 가장의 모습을 하고 있기도 하고, 천륜조차 저버리는, 비정한 짐승의 얼굴이기도 하다. 어떤 아버지는 그 자녀들의 ‘스승’이고 또 어떤 아비는 세상의 모든 자식의 ‘반면교사’이기도 하다. 미국에서 있었던 일이다. 알코올 중독자인 아버지 밑에서 자란 두 청년이 있었다. 이들은 나이가 들면서 파산한 집을 떠나 각자의 길로 나아갔다. 몇 년이 지난 후, 알코올 중독이 한 가정의 어린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분석하고 있던 한 심리학자가 그의 연구 조사에서 이 두 청년을 만나 질문하게 되었다. 한 청년은 깨끗하고 빈틈없는 금주가로 행복하게 살고 있었지만 다른 한 청년은 그의 아버지와.. 2019. 9. 18.
세월은 가도 명작은 남는다 임권택 감독의 (1993) 요즘 국어 시간에 비평문을 가르치고 있다. 교재는 교과서에 실린, 유지나 교수의 영화 평론이다. 가 개봉된 것은 1993년인데 아이들은 대부분 1995년에 태어났다. 당연히 영화에 대해 아는 게 전혀 없다. 본문을 배우기 전에 가 어떤 영화인지부터 시작해야 했다. 원작, 줄거리, 배우, 감독을 소개하고 영화의 스틸 사진과 동영상 따위를 이용해서 아이들에게 밑그림을 그려주었다. 당시에 영화를 본 느낌이나 주변 이야기도 전해주었다. 일곱 학급을 다니다 보니 아주 자연스럽게 18년 전에 본 영화가 새롭게 되살아났다. 영화 는 임권택이 이청준의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는 단성사 개봉 당시 서울에서 196일 동안 백만 관객을 동원하여 사상 최대 관객을 모은 영화로 기록된 영화다. 간.. 2019. 9. 14.
성우들, ‘목소리의 시대’는 가는가 TV 에서 ‘더빙’이 사라지고 있다 지난 7월 31일, 성우 박일(1946~2019) 씨가 돌연 세상을 떠났다. 향년 73세. 9월 2일에는 성우 이완호(1938~2019) 씨가 80세를 일기로 유명을 달리했다. 두 분 다 50년 이상 방송에서 목소리로 시청자(청취자)들을 울리고 웃긴 위대한 연기자다. 박일은 1970년대 이래 텔레비전 외화 더빙에서 늘 주역을 맡았던 인기 성우였다. 피어스 브로스넌이 연기한 제임스 본드 역을 비롯하여 의 말론 브랜도, 의 클린트 이스트우드, 의 팀 로빈스, 의 로버트 레드퍼드, 의 알 파치노의 목소리를 연기했다. 가까이는 에서 길 그리섬 반장 역을 맡았었다. 이완호 성우는 ‘동물의 왕국’(KBS)의 해설자 말고는 내게 특별히 기억 나는 영화가 떠오르지 않는데, 그는 주로.. 2019. 9. 11.
영화 <암살>, 혹은 역사에 대한 성찰 최동훈 감독의 (2015) 누적 관객 800만을 넘겼다는 영화 을 본 것은 개봉 다음 주 월요일이었다. 지난 1월에 임시정부 노정(路程)을 답사하느라 상하이와 항저우를 다녀왔고, 몇 달에 걸쳐 답사기를 쓰느라고 진을 뺐지만 나는 임정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이 영화에 대해선 달리 특별한 ‘무엇’을 기대하지 않고 있었다. 역사는 허구보다 때론 훨씬 비루하다 와 을 연출한 감독이니 그의 솜씨를 의심할 수는 없는 일이다. 무엇보다 감독의 시나리오가 여러 해를 넘겨서 묵힌 곰삭은 것이었다는 기사를 거듭 읽으면서 나는 그가 버무려 낸 이 영화를 의심할 일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특별한 무엇’을 기대하지 않았다고 한 것은 배경과 역사적 상황을 빌려왔을 뿐 영화가 한편의 잘 짜인 허구라는 것을 알고 .. 2019. 4. 5.
‘문숙’, <삼포 가는 길>, 길 위의 사람들 문숙과 영화 그리고… 에 ‘자연치유’라는 책을 냈다는 기사가 언뜻 보이더니 에서는 배우 문숙의 인터뷰가 실렸다. 무심하게 기사를 읽는데, 문득 그녀가 나와 거의 동년배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서른몇 해 전 싱그러운 스무 살 처녀였던 이 배우는 이제 쉰여섯 초로의 여인이 되어 우리 앞에 나타났다. 하얗게 센 머리카락, 야위었지만 풍성해진 표정 뒤편으로 나는 삼십오 년 전, 대구 만경관 극장에서 만났던 스물한 살의 문숙을 충분히 떠올릴 수 있었다. “몸을 낫게 하는 건 ‘취함’ 아닌 ‘비움’”이라며 그녀는 미국 생활 30년 만에 자연치유 전문가가 되어 돌아왔다고 기사는 전한다. 이만희 영화 의 백화 돌아오다 다른 기사는 뒤늦게 그녀가 2007년에 펴낸 책 ‘마지막 한해-이만희 감독과 함께한 시간들’을 중심으로.. 2019. 1.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