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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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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일’은 없다

by 낮달2018 2020. 4.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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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은 있어도 ‘몇일’은 없다

▲ 현행 맞춤법에 따르면 '며칠'은 쓸 수 있지만, '몇일'은 쓸 수 없다.

어형의 변화를 설명하는 이론에 ‘부정회귀(不正回歸)’가 있다. 이는 ‘옳지 않다고 생각되는 어형을 올바르다고 생각되는 것으로 되돌리기 위하여 오히려 바른 어형까지 잘못 고쳐버리는 것’을 이른다. 

 

이 현상은 주로 우월한 방언(주로 서울 방언)에 대하여 그렇지 못한 지역과 사회 방언의 사용자가 말을 고상하게 하려고 방언이나 비속어 냄새가 나는 말을 지나치게 바로잡으려는 데서 비롯된다.

 

대표적인 예가 ‘길쌈’이다. ‘길쌈’의 옛말은 ‘질삼’이다. 그러나 ‘질’은 주로 방언에서 쓰이는 소리(길 : 질, 기름 : 지름, 길다 : 질다)여서 사람들은 이를 ‘길’로 되돌린다. 결국, 멀쩡한 ‘질쌈’은 사투리로 떨어지고, 잘못 돌이켜진 ‘길쌈’이 표준말의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오늘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몇일’이다. 오마이뉴스 블로그의 이웃들은 물론이고 아이들도 대부분 ‘몇일’을 쓰는데 이는 사전에 없는 말이다. 정확히 쓰면 ‘며칠’이 맞다. 이런 경우를 부정회귀라고 할 수는 없다.

 

‘몇일’은 없다

 

그런데 굳이 부정회귀 얘기를 꺼낸 것은 사람들이 다분히 어법을 의식하면서 ‘며칠’ 대신 ‘몇일’을 쓰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는 소리 나는 대로 적은 ‘며칠’보다 원래의 형태를 밝혀 적은 ‘몇 일’이 훨씬 어법에 가깝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1988년 새 ‘한글 맞춤법’ 이전에는 ‘몇 일’과 ‘며칠’이 같이 쓰였다. 물론 ‘몇 일’에서 ‘몇’은 뒤의 ‘일’을 꾸미는 관형사니 당연히 이 말은 띄어 써야 하는 두 단어다.

 

(1) 몇 사람, 몇 개, 몇 주일, 몇 시간, 몇 달…….

 

이 두 단어가 오래 붙어 쓰이면서 굳어져 명사로 쓰이니 이것이 ‘며칠’이다. 1989년 3월부터 시행하게 된 맞춤법 규정은 ‘몇일’과 ‘며칠’을 모두 ‘며칠’로 통일하였다. 따라서 어떠한 상황에서도 이제 ‘몇일’은 쓸 수 없고 ‘며칠’만 쓸 수 있다.

 

(1) 생일이 몇 월 며칠이냐?
(2) 며칠간 시간을 다오.

 

‘웬지’, ‘왠말’도 없다

 

비슷한 혼동을 부르는 낱말 중에 ‘왠지’와 ‘웬지’가 있다. 이 경우는 ‘왠지’가 맞다. (‘웬지’라는 말은 아예 없다.) ‘왠지’는 이유를 뜻하는 의문사 ‘왜’에 어미 ‘(이)ㄴ지’가 붙은 형태로 ‘왜인지’가 준 것이다.

 

(1) 오늘은 왠지 멀리 떠나고 싶구나.

 

그러나 발음이 비슷한 ‘웬일, 웬 떡, 웬 말, 웬 사람’ 등은 모두 ‘웬’으로 써야 한다. ‘웬’은 ‘왠’과 형태와 의미, 그리고 품사가 다른 말이다. ‘웬 사람이니’의 ‘웬’은 ‘어찌 된, 어떠한’의 뜻을 가진 관형사인 까닭이다. 당연히 두 말은 띄어 쓰는 게 원칙이다. (‘웬일’은 굳어진 명사다)

 

(1) 웬일로 전화를 했니?
(2) 이게 웬 떡이냐!
(3) 웬 사람이 너를 찾아왔어.
(4) 부당해고가 웬 말이냐!

 

단, ‘웬걸’은 감탄사로 붙여 쓴다. ‘웬걸’은 ‘웬 것을’의 준말로, 의심 또는 의외나 부정의 뜻을 나타내는 말인데 역시 붙어서 굳어진 것이다.

 

(1) 잘 되는 줄 알았더니 웬걸, 결국 실패하고 말았어.

 

애당초 밝힌 대로 생각나는 대로 쓴 세 번째 얘기다. 순서도 체제도 없이 괴발개발 쓰는 글이어서 도움이 될지 어떨지 모르겠다.

 

읽는 순간에는 ‘아, 그렇구나’ 하다가 이내 잊어버리시는 건 아닌지도 궁금하다. 최선의 공부법은 배운 대로 자주 써먹기다. 몇 번만 쓰면 아주 자기 것이 될 수 있음을 믿으시길…….

 

 

2007. 7. 26.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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