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김복동((金福童,1926~2019)
만 열네 살에 전쟁터로 끌려갔다가 22살에 고향으로 돌아왔다. 67세 때인 1992년 3월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에 자신의 피해 사실을 처음으로 알리고 공개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1993년에는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세계인권대회에 참석해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증언했으며, 2000년에는 일본군 성 노예 전범 여성 국제법정에 원고로 출석해 실상을 문서로 증언했다.
2012년 3월 8일 ‘세계여성의 날’을 맞아 길원옥 할머니와 함께 전시 성폭력 피해 여성들을 지원하는 나비기금을 만들었다. 2017년에는 여성인권상으로 받은 5천만 원을 무력분쟁 지역의 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하는 데 써달라며 정의기억재단에 기부해 ‘김복동 평화상’이 제정됐다.
국경없는기자회와 프랑스 AFP 통신은 김 할머니를 ‘자유를 위해 싸우는 세계 100인의 영웅’으로 선정했으며, 국제여성인권단체 ‘성평등을 위한 여성 이니셔티브’(WIGJ· Women‘s Initiatives for Gender Justice)가 제작하는 ’성평등 유산의 벽‘에도 이름이 기록됐다. 지난해에는 공익사단법인 정이 제정한 바른의인상에 첫 수상자로 이름을 올렸다.
2016년부터 재일조선학교 학생 6명에게 ‘김복동 장학금’을 지원하고 있으며, 지난 2017년에는 ‘김복동의 희망’‘’이라는 단체를 만들어 재일 조선학교 학생들을 돕고 있다.
마지막 유언에서도 재일 조선학교 학생들에게 장학금으로 써달라며 올해 초 수상한 바른의인상의 수상금을 내놓았다.
- <오마이뉴스> 기사에서 가려뽑음
삼가 김복동 할머니의 명복을 빕니다.
[서평]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고백…윤미향의 <20년간의 수요일>
때로 사람들을 성찰하게 한다는 뜻에서 역사는 귀한 스승이다. 그러나 추상적 관념이 아니라 실체로서의 역사를 이해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대신에 우리는 그 역사를 관통한 인물들의 삶을 통해 역사를 추체험할 수 있다. 역사의 질곡을 맨몸으로 겪어낸 사람들, 이들이 겪은 삶은 ‘ 일상 ’을 넘어 ‘역사’가 되기 때문이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의 윤미향 상임대표가 쓴 <20년간의 수요일>(웅진주니어, 2010)에서는 그런 ‘역사적 삶’을 고통스럽게 살아온 할머니들을 만날 수 있다. ‘정신대 할머니’로 흔히 불려 온 이들이 겪어야 했던 한국 현대사. 이 책에서 우리는 역사가 무명의 갑남을녀들에게 어떤 상처를 입히는가를 아프게 확인할 수 있다.
<20년간의 수요일>은 지난해 나온 책이다. 지난 9월 18일 방영된 MBC <시사매거진 2580> ‘20년이 흘렀지만…’을 시청하고 정대협 홈페이지에 접속했다가 나는 이 책의 존재를 처음 알았다. 청소년을 위한 책이라는 걸 알았지만 나는 주저 없이 책을 주문했다. 학교 사서 교사에게 이 책을 여러 권 구입해 달라는 것도 빼먹지 않았다.
비가 와도 눈이 와도
병상에 누워 있어도,
일본대사관 앞
수요일 12시
그것은 희망이었습니다.
20년간 지켜온 할머니들의 용기와 희망
위 인용구는 책의 속표지를 넘기면 만나게 되는 구절이다. 이 책은 1992년 첫 시위 이래 20년 동안 계속돼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시위’라고 불리고 있는 정대협과 ‘위안부’ 할머니들의 수요시위를 담고 있다. 이 책에 새겨져 있는 것은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이 지켜온 아름답고 경이로운 ‘용기’와 ‘희망’이다. [관련 글 : 24년 전 오늘, 첫 ‘수요시위’ 열리다]
*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서 ‘작은따옴표’를 붙여 표기하는 이유는 전쟁당시 일본군이 실제 사용하던 ‘역사적’ 용어 때문이라고 한다. 이 작은따옴표를 통해 역사적 사실을 보여주고 그 강제성과 부정적의미를 환기시킨다는 뜻을 담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지면에는 최갑순 할머니를 비롯한 모두 여덟 분 할머니들의 초상이 실려 있다. 흑백 사진 속의 할머니들, 무심한 표정을 그저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아려 온다. 굵게 패인 주름, 앙다문 입술, 하얗게 센 성긴 머리카락…. 그것은 이 땅의 20세기를 할퀴고 간 가혹한 역사, 아직도 지워지지 않은 흔적이다.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이 겪은 참혹하고 고통스러운 희생은 비교적 널리 알려져 있다. 뒤늦게 이 비극을 전해 들으면서 사람들은 '고통스런 희생'이라는 글귀로 써내려 가지만 할머니들이 살아온 세월과 그로 말미암은 상처를 어찌 말과 글로 다 표현할 수 있겠는가.
공개 증언의 용기가 세상을 바꾸다
그들은 고국으로 돌아왔지만, 자신의 과거에 대한 불안 때문에 고향으로 돌아가지도 못했고 여느 여성들처럼 쉽게 혼인하지도 못했다. 일본군 ‘위안부’ 생활을 안 남편으로부터 학대를 당하기도 했고 몸이 망가져 아이를 가질 수도 없는 이도 적지 않았다. 그들은 피해자였지만 그들이 겪은 희생의 성격 때문에 오히려 비난받았으며 스스로 침묵을 지킬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오랜 침묵 끝에 일본의 전쟁 범죄를 고발한 할머니들의 수요시위는 20년째 계속되고 있다. 그 동안 234명의 할머니가 피해자 신고를 했고 그중 많은 분들이 일본의 사죄를 받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 이제 생존자는 80여 분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나 20년간 계속된 할머니들의 당당한 외침은 사회에 적지 않은 변화를 이끌어냈다.
일본 정부는 국제 여론에 떠밀려 일본군 ‘위안부’ 제도에 대한 조사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고, 일부 책임을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또 ‘강제성은 없었다’며 자신들의 법적 책임을 부인하다 부분적으로 강제성을 인정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배상금’ 아닌 ‘위로금’에 지나지 않는 ‘국민기금’을 피해자에게 지급하는 형식의 기만책으로 일관하고 있는 실정이다.
오랜 침묵 속에 살다가 뒤늦게 인권에 눈뜬 할머니들의 눈부신 활약은 국제 사회에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법적 강제력은 없지만 2007년 미국 하원과 유럽의회에서 '일본 정부의 사죄와 법적 배상을 요구하는 결의안'이 채택된 것이다.
정대협과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지치지 않는 끈질긴 싸움은 현실을 바꾸는데 그치지 않고 오랜 고통과 침묵 속에 살아온 할머니 자신들도 변화시켰다. 할머니들은 일본의 더러운 전쟁 범죄를 고발하고 증언하면서 전쟁이 인권 유린의 근원임을 깨달았고, 아주 자연스럽게 역사와 평화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갖게 된 것이다.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 건립 반대는 전근대적 역사의식
할머니들은 더는 자신과 같은 희생이 발생하지 않기 위해 전쟁을 멈춰야 한다고 굳게 믿는다. 또한, 이제 여성들이 수난당하지 않고 살 수 있는 '평화의 나라'를 위해 그런 역사를 기록해 놓은 박물관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2004년, 정대협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와 인권회복, 미래 세대에게 평화로운 세상을 물려주기 위한 '전쟁과 여성 인권박물관'(박물관) 건립사업을 시작했다.
박물관 건립사업은 8년간 모금 활동을 펼쳐 17억 원을 모으고, 서울시로부터 서대문 독립공원 매점 부지에 100여 평의 땅을 확보하면서 순조롭게 진척되는가 했다. 하지만 박물관 건립은 '독립공원 내 위안부 박물관 건립은 순국선열에 대한 명예훼손'이라는 광복회의 반대에 부딪히게 되면서 원점으로 돌아갔다.
이런 일련의 과정이 MBC <시사매거진 2580> '20년이 흘렀지만…' 편으로 방영되면서 누리꾼들의 성토가 이어졌다. 그러나 서대문 독립공원 안 박물관은 무산되고 정대협은 모인 돈으로 성미산 기슭의 한 단독주택을 매입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박물관 건립사업이 좌초된 것은 아직도 잔존해 있는 전근대적 가치관을 뛰어넘지 못하는 우리 사회의 한계를 드러낸 일이었다. 사회적 약자로서 여성이 감당해야 했던 희생과 고통을 자신들의 빛나는 무용담의 격을 떨어뜨리는 것으로밖에 이해하지 못하는 우리 사회의 역사의식이 여전히 전근대적이라는 이야기다. 그런 뜻에서 주류 남성들이 만들어온 역사는 비겁하다 못해 치졸하기까지 한 셈이기도 하다.
피해자뿐만 아니라 '가해자'의 역사도 아우르다
지은이 윤미향 상임대표는 아주 쉽고 편하게 대화를 나누듯 조곤조곤 한국 현대사를 청소년들 앞에 펴 보인다. 청소년용으로 펴낸 책이지만 굳이 어른들이 읽지 못할 수준은 결코 아니다. 책에 다양하게 실린 관련 사진과 자료, 할머니들이 손수 그린 그림, 수요시위에 동참한 학생들의 편지글 등도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무엇보다 이 책의 미덕은 우리나라를 피해자로서뿐 아니라 현대사를 거치면서 스스로 가해자가 된 역사까지 아우르는 점이다. 지은이는 '전쟁과 여성,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악연', 즉 전시에 자행되는 전쟁 성폭력의 진실을 깊숙이 들여다본다. 그리고 일본군 ‘위안부’가 지나간 역사가 아니라 지금도 여전히 존재하는 현실임을 환기하는 것이다.
이른바 제2의 일본군 ‘위안부’는 우리 현대사 속에서도 재현되었다. 해방 후 미군 주둔기지 주변에서 공공연하게 이루어진 성매매나 산업화 시기 국가에 의해 암묵적으로 용인된 '기생 관광'이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한국군에 의해 벌어진 민간인 학살과 강간은 우리 자신이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로 뒤바뀐 역사적 비극이었던 것이다.
지은이는 마지막 장에서 '우리가 만들어 가야 할 미래'를 이야기한다. 남성 중심주의적 가부장적인 생각이 전쟁 중 성폭력을 일으키고 여성을 억압한다. 또 극단적 식민주의가 개인의 희생을 강요하며 여성을 '식민지'화한다고 그는 말한다. 또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끔찍한 희생이 우리에게 가르쳐 준 것은 역사적 진실과 함께 '인권'이야말로 우리가 지키고 보존해야 할 가치라는 것이다.
지난 8월, 헌법재판소는 일본군 ‘위안부’와 원폭 피해자들의 배상청구권을 두고 한일 양국 사이에 분쟁이 있음에도 정부가 아무런 해결 노력을 하지 않은 것은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 청구권에 대해 협의하자고 한 우리 정부의 제안을 거부했다.
그러나 일본 정부와는 달리 일본 시민사회에서는 '건강한 반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고 한다. 그들은 부끄러운 역사를 넘어 자국의 이익과 명예보다 인권을 선택한 것이다. 가해자로서 우리의 숙제인 베트남 문제는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베트남에 학교를 세우거나 평화 활동을 펼치는 것을 통해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가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삶을 다룬 다큐 <낮은 목소리>에 출연했던 이용수 할머니가 베트남을 방문해 피해 여성을 만나 그들에게 손을 내밀었다는 이야기는 묘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할머니는 처음에 베트남의 피해 여성을 만나는 것을 부정적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나 결국 할머니는 국적을 넘어 자신과 같은 피해자인 베트남 여성을 바라보게 된 것이다.
지은이는 '바르게 생각하고 바르게 알기'를 권하면서 책을 끝맺는다. 그러나 안다는 것만으론 부족하다. '참여하고 관심을 갖는 순간부터 역사는 변화해 갈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추상적 관념으로 우리 현대사를 이해해 온 청소년들은 그녀가 조곤조곤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으며 그 추상과 관념을 하나씩 걷어내고 '역사'의 생생한 실체를 만날 수 있을 터이다.
덧붙이는 글 | <20년간의 수요일>(윤미향 씀 | 웅진주니어 | 2010.11. | 1만2000원)
책 표지의 날개에는 “이 책의 인세 전부는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 건립 기금으로 기부됩니다.”라고 쓰여 있다. 앞서 말한 성미산의 단독주택을 마련했지만, 박물관을 꾸미려면 6억 원을 성금으로 더 모아야 한다고 한다.
정대협 누리집(http://www.womenandwar.net/index.php)에 가면 10만 원으로 전쟁과 여성 인권 박물관 1만인 건립위원으로 참여할 수 있다. 그게 부담스러우면 이 책(12,000원)을 사서 아이들과 함께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이 사업을 돕는 방법이 되겠다.
내가 구입한 책은 초판 3쇄다. 아직 만 부도 팔리지 않았다는 뜻이겠다. 부끄럽게도 우리보다 먼저 일본 도서관협회가 이 책을 선정도서로 뽑았으니 책의 가치는 입증된 셈이다. 아이들의 ‘몰역사’를 탓하지 말고 스스로 역사와 만나는 방법을 찾게 하는 것도 좋은 공부가 될 터이다.
2011. 10. 17. 낮달
2011년에 쓴 서평이다. 당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가운데 생존자는 80분이었다. 그런데 어제(1월 28일) 김복동 할머니와 또 한 분의 할머니가 세상을 뜸으로써 이제는 스물세 분밖에 남지 않았다.
그러나 여전히 '위안부' 문제는 미해결 상태다. 일본의 태도는 외려 고노 담화를 발표할 때보다 퇴행해 있다. 2015년 말의 '한일 합의'는 사실상 백지화된 셈이지만 그것은 끝이 아니라 또다른 시작에 불과하다.
해결의 열쇠는 일본이 쥐고 있다. 이 가공할 전쟁범죄를 인정해 그 피해를 배상하고 오랜 질곡을 끊어야 할 의무가 일본에게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새롭게 '전쟁할 수 있는 국가'로 가고 있는 일본의 '우경화' 앞에 길은 막혀 있다. '위안부' 피해자들이 살아생전에 이 문제의 해결을 기대하기가 쉽지 않다는 얘기다.
2019. 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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