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여행, 그 떠남과 이름의 기록

대관령 ‘양떼목장’에 없는 것

by 낮달2018 2019. 11. 6.
728x90

[2박 3일 강원도 회갑 여행] ⑤ 대관령 양떼목장

*PC에서 ‘가로 이미지’는 클릭하면 큰 규격(1000×667픽셀)으로 볼 수 있음.

▲ 대관령 양떼목장은 1988년부터 일구어 온 관광목장으로 해발 900m에 있는 목장의 62,000평의 초지에서 양이 풀을 뜯고 있었다.

속초에서 출발하여 대관령마루길에 있는 대관령 양떼목장에 닿은 것은 해가 서편으로 한 뼘쯤 기운 시각이었다. 원래 평창군 도암면이었던 이 지역 이름이 대관령면이 된 것은 2007년이다. 낯선 도암이라는 이름 대신 널리 알려진 대관령으로 바꾼 것이다.

 

강원 영월군 서면이 ‘한반도면’, 강원 영월군 하동면이 ‘김삿갓면’, 경북 고령군 고령읍이 ‘대가야읍’으로 바뀌는 등 지명을 지역 특색을 살리는 이름으로 바꾼 예 가운데 하나다. 국회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 도나 각 시·군 등 지방자치단체의 명칭과는 달리 지자체 소속 읍면동의 명칭은 자체 조례 개정만으로 변경할 수 있어서 이루어진 조치다.

 

이국 풍정의 목장도 익숙해졌다

 

대관령 양떼목장은 우리나라에 몇 없는 양 목장이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지만, 우리 세대에겐 ‘양’도 ‘목장’도 낯설었다. 역사적으로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목장’이라는 개념이 쓰이기 시작한 것은 이른바 ‘신문명’이 들어온 다음이 아니겠는가.

 

목장(牧場)은 ‘일정한 시설을 갖추어 소, 말, 양 따위를 기르고 새끼를 번식시키는 곳’이다. 그러나 우리 영세 농가에서 기르는 가축은 돼지나 닭, 소가 대부분이었다. 그중 재산목록의 으뜸을 차지하는 소는 한두 마리가 고작이었다. 애당초 목장이라는 시설이 필요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우리는 말이나 양을 기르는 목장을 교과서에 나오는 이국 풍경 속에서나 만날 수 있었다. 드넓은 초지 위에 풀을 뜯고 있는 젖소나 양 떼 풍경은 평화롭고 아름다웠다. 그런 낯선 풍경에서 우리는 바다 건너 있을 어느 먼 나라를 떠올리며 선망과 동경의 감정에 빠지곤 했다.

 

여러 마리의 소를 사육하기 시작한 것도 1970년 이후부터였고, 무분별한 소 입식 정책이 쇠 값 파동으로 이어졌던 1980년대에 본격화되었다. 그러나 소를 사육하는 곳도 ‘목장’이라 표기하는 대신 ‘농장’으로 쓰는 게 일반적이었다.

 

목장은 우리 세대가 보았던 흑백영화 따위에서 드러난 이미지로 존재했다. 그것은 한때 아침마다 집집으로 배달되었던 병에 든 ‘목장 우유’(물론 나는 이것을 받아본 적이 없다. 단지 이야기로 들었을 뿐이다.)라는 이름에서 간간이 기억되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익숙하게 ‘목장’을 받아들인다. 초지가 넓은 제주도나 대관령에는 소나 양은 물론, 말을 기르는 목장까지 다양하다. 여전히 농경이 주업이긴 하지만 일부 지역에서 목축이 특화되어 발전한 결과다.

 

양은 십이지(十二支)의 하나로 관념으로는 익숙한 동물이지만 정작 우리는 그걸 잘 만나지 못한다. 비슷한 가축으로 염소가 있지만, 이는 계통 분류학적으로 가까워도 양과 다른 동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양을 기르는 목장이 대관령에 있는 것이다.

▲ 양떼목장 풍경의 압권은 목장의 군데군데 시원하게 난 길과 그 길이 만드는 소실점이다.

 

평창군 대관령면 횡계리에는 600만 평의 초지에서 900두의 육우와 젖소를 기르는 동양 최대의 대관령 삼양목장 말고도 1988년부터 일구어 온 관광목장인 대관령 양떼목장이 있다. 해발 900m에 있는 목장의 62,000평의 초지에서 양이 풀을 뜯고 있는 것이다.

 

대관령 양떼목장은 대관령마루길에 있는 대관령 마을 휴게소 뒤편에 있었다. 적지 않은 관광객들이 오르내리고 있는 진입로를 들어서면서도 우리에겐 목장의 모습이 잘 짚여지지 않았다. 입장권을 끊어 목장 안으로 들어서자, 골짜기의 축사를 중심으로 주변 구릉에 이어진 산책로가 한눈에 들어왔다.

 

산책길 풍경이 좋다

 

우리는 단박에 이 목장이 양 떼 구경보다는 산책길을 도는 게 정석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완만한 구릉에 조성된 초지를 가르고 낸 산책길 길섶에는 연둣빛 페인트를 칠한 나무 울타리가 쳐져 있었다. 흙길과 잘 어울리는 나무 울타리를 한 바퀴 돌아 골짜기 아래로 내려오면 경사면에 풀을 뜯고 있는 양 떼와 축사가 있었다.

 

털로 뒤덮여 있어서일까. 초지에 드문드문 흩어져 풀을 뜯고 있는 양 떼의 모습은 좀 비현실적이었다. 마치 밀랍인형 같은 양들의 모습은 울타리에서 저들을 불러주는 사람들에게 보이는 게으른 반응으로 간신히 현실감을 얻는 듯했다.

 

수학여행인지, 소풍인지를 온 중학생들이 떠들썩하게 산책길을 채웠고, 그들이 교사들과 사진을 찍는 모습을 나는 물끄러미 지켜보았다. 잘 정돈된 목장의 가라앉은 분위기는 이들의 드높은 웃음소리로 이내 가득 찼다. 역시 아이들이 있어야 돼, 활기가 넘치잖아. 아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 양을 기르는 게 목적이라기보다 그 양떼 목장을 사람들에게 구경시키는 게 목적인 양떼목장에서 양들은 마치 배우들 같았다.

 

축사 옆에 있는 ‘양 건초 주기 체험장’을 돌아 나오기까지 40여 분이 걸렸다. 손을 씻고 목장을 걸어 나오면서 아내가 말했다.

 

“구경 잘 했우. 꽃피는 봄에 한 번 더 와 봤으면 좋겠네.”
“그려. 그런데 뭔가 좀 허전한 느낌이 있네.”

 

그렇다. 한 바퀴 돌면서 사진을 찍고, 시원하게 트인 대관령 정상의 웅장한 모습과 목장의 초지 능선 따위를 바라보며 탄성을 지른 것까지는 좋았는데 어쩐지 미진한 느낌이 있었다. 한 마당의 잘 꾸며진 볼거리이긴 했지만, 거기엔 어쩐지 삶이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돌아와서야 그것은 양떼목장이 ‘관광목장’이기 때문이라는 걸 알았다. 삼양목장이 목우(牧牛) 중심의 목장이었다면 양떼목장은 목양(牧羊)보다 사람들에게 좋은 풍경과 구경거리를 제공하는 걸 우선하는 곳이었다. 그건 달리 말하면 보여주기 위해 운영되는 목장의 한계일 수도 있었다.

 

곧장 차를 달려 집에 도착하니 어둠 살이 내리고 있었다. 2박 3일의 강원도 여행을 마감한 것이다. 역시나 제대로 본다고는 했지만, 수박 겉핥기에 그친 여행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아쉽고 미진함으로써 언제나 여행은 새로운 출발의 전제가 되는 법이다.

 

 

2017. 1. 18. 낮달

 

 

[2박 3일 강원도 회갑 여행]

① 강릉의 솔향, 선교장과 경포대

② 허난설헌 생가터와 교산 시비를 찾아서

③ 정동진(正東津)과 강릉항 커피 거리

④ 설악산 권금성과 영랑호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