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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3돌 한글날] 한글날 아침, 국어교사는 마음 겹다

by 낮달2018 2022. 10.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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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에게 외면당하는 ‘최고의 알파벳’ 한글

꼭 12년 전에 쓴 글이다. 그간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국경일 지위를 회복한 한글날이 공휴일로 재 지정된 것은 2012년, 이듬해부터 사람들은 한글날을 쉴 수 있게 되었다. 국립국어원 한 해 예산의 몇 배를 들여 만든 영어마을은 속속 세금만 낭비한 채 거의 대부분 문을 닫았다. 그래도 영어 광풍은 그치지 않았는지 최근에는 초등 저학년 영어교육 문제가 화두로 떠올랐다.

휴대전화에서 글자를 제대로 구현하지 못했던 완성형 코드의 문제점은 기술적으로 이내 극복되었다. 그러나 근본적인 문제점, 한글이 정작 토박이말 사용자인에 제나라 국민에게 외면당하는, 말글살이의 그늘에 드리운 씁쓸한 풍경은 변하지 않았다.

다시 573돌 한글날을 맞지만, 경축을 붙이는 게 쓸쓸할 지경이다. 이날을 전후하여 매스컴에서 얼마간 찧고 까불고 나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모든 문제의식은 사장되면서 대한민국의 일상은 다시 무심하게 돌아갈 것이니 말이다. 한글날을 앞두고 예전에 썼던 <알파벳, 괄호 밖으로 나오다>를 다시 올리면서도 씁쓸한 기분은 바뀌지 않는 이유다.

▲ 훈민정음(국보 제70호) 표지와 용자례(用字例). 간송미술관 소장. ⓒ 문화재청

한글날 아침이다. 오늘은 세종 임금이 훈민정음을 반포한 지 오백예순한 돌이 되는 날이다. 나이가 오백 살이 넘는다는 것은 어떤 뜻일까. 승천한다는 용으로 말하자면 하늘에 올라도 여러 번 오를 수 있는 시간이 아닌가.

육백 살이 가까워지지만, 이 세계 유수의 문자가 걸어온 길은 만만찮다. 창제 초기부터 ‘언문(諺文, 상말의 글)’으로 불리었던 한글은 백성의 글자였지, 주류의 문자가 될 수 없었다. 언서(諺書)·언자(諺字)·암클·중글 등 한글의 별칭들은 바로 그러한 인식에서 말미암은 이름들이다.

그러나 스무 해 넘게 모국어를 가르치면서 살 수 있었던 것을 나는 매우 자랑스럽게 여겨온 편이다. 교육 운동 초기, 어느 술자리에서 ‘국어교사의 긍지’를 이야기하다, 수십 년 동안 영어를 가르쳐 온 한 선배 교사의 말씀을 듣고 머리를 조아릴 수밖에 없었던 때를 제외하면 말이다.

그 노 교사는 쓸쓸하고 자조적인 태도로 그렇게 말했다.

 

“나는 약소국가의 교사로서 초강대국의 언어를 가르치지 않으면 안 되는 현실에 비애를 느낍니다.”


그의 비애는 그 출발은 다르지만, 오늘의 한글을 바라보는 요즘의 내 느낌과 다르지 않은 듯하다.

모든 언어가 꿈꾸는 최고의 알파벳, 한글

▲ 조령 산불됴심 표석(경북문화재자료 226호) 경북 문경새재에 있다.

지금까지 한글에 바쳐진 헌사는 차고 넘친다. 유네스코에서 1989년부터 인류의 문맹률을 낮추는 데 이바지한 단체나 개인에게 주는 상 이름이 ‘세종대왕상’(킹 세종 프라이즈)이라거나 1997년에는 훈민정음을 세계 기록유산으로 지정했다는 사실 등이 그 단골 차림표다.

세계에서 손꼽는 언어학자들의 찬사와 함께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서 세계의 모든 문자에 순위를 매긴 결과 한글이 1위였다는 사실도 그 헌사의 일부를 차지한다. 또 한국어를 모국어로 삼아 쓰는 이의 수는 세계 12위권이라는 사실도 잊지 않는다.

사용자 수 기준으로 보면 우리보다 앞선 말은 표준 중국어·에스파냐어·벵갈어·영어·힌디어·포르투갈어·러시아어·일본어·중국 오어(吳語)·자바어 정도다. 13위인 프랑스 말보다 앞서니, 조동일 교수 같은 이는 ‘다수가 쓰는 언어의 말석, 소수가 쓰는 언어의 선두’로 표현하기도 한다.

한글은 유네스코에서 시행한 말만 있는 언어 2900여 종에 가장 적합한 문자를 찾는 연구(1998~2002)에서 최고의 평가를 받은 문자다. 또 지구상 100여 개의 문자 가운데 만든 사람과 창제의 원리와 이념이 정리된 유일한 문자이며 이동전화의 한정된 자판을 가장 능률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문자라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대지>의 작가 펄 벅이 “세계에서 가장 단순하면서도 가장 훌륭한 글자”라고 평가했고, 영국 리스대학의 제프리 샘슨 교수가 “기본글자에 획을 더해 동일 계열의 글자(ㄱ· ㄲ·ㅋ)를 만든 독창성은 어떤 문자에서도 볼 수 없다”고 칭송했으며, ‘모든 언어가 꿈꾸는 최고의 알파벳’으로 일컬어지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한글 맞춤법에 어두운 것이 자랑이 된 시대

그러나 이러한 헌사는 한글날을 전후해 이루어지는 일종의 냄비 장세(場勢)의 반영이 아닌가 싶다. 오히려 도를 넘는 찬사는 현실 언어에서 한글이 당하고 있는 홀대와 소외를 반증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영어 철자를 잘못 쓰는 실수는 치욕으로 느끼면서도 한글 맞춤법에 어두운 것을 무슨 자랑처럼 주절대는 사람들이 좀 많은가 말이다.

▲ 용비어천가(서울유형문화재 140호) 권 10(위),권 34(아래). 각각 계명대 동산도서관, 서울역사박물관 소장. ⓒ 문화재청

앞서 말한 것처럼 훈민정음은 창제한 때부터 주류의 글자는 아니었다. 세종 임금의 한글 창제를 도왔다는 집현전 학사들도 여느 한문 숭배자와 다르지 않았으나 이들은 관리로서 임금의 명을 거역할 수 없었을 뿐이다. 새로운 문자의 탄생은 어진 군주의 의지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국자(國字)에 대한 임금의 집념이 위대한 문자를 탄생시켰으나 그 역사는 <세종실록>에 한낱 사관에 의해 ‘임금이 몸소 스물여덟 자를 만들었다(上親製諺文二十八字)’라 하여 ‘언문’으로 정리되어 버렸다. 그 이후 근대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문자 체계는 한문과 한글이라는 이중 구조로 이어져 왔다.

한글은 피지배계층인 백성의 문자였고, 지배계급은 배타적 문자인 한문으로 그들만의 완고한 성리학의 성채를 쌓아갔다. 일부 문학 작품이 한글로 쓰이기도 했으나 그것은 일종의 여흥과도 같은 부차적인 창작행위였을 뿐이다. 물론 한문으로 문자 생활을 하는 데 전혀 불편하지 않았던 이 시대의 사대부들이 한글로 시문을 지었다는 것은 그것대로 평가할 만하다. 서포 김만중의 국문과 국자에 대한 자각도 마찬가지다.

“지금 우리나라의 시문(詩文)은 제 말을 버리고 남의 나라말을 배우고 있는데 비록 그것이 아무리 비슷하더라도 앵무새가 사람의 말을 흉내 내는 데 지나지 않는다. 마을의 나무꾼 아이와 물 긷는 아낙네들이 흥얼거려 서로 화답하는 소리가 비록 비속하다고 하나 참과 거짓을 사대부들의 시부 따위와는 결코 같이 말할 수 없는 것이다.” - 김만중 <서포만필>

그러나 그 역시 모친을 위해 쓴 일부 소설 작품에서만 한글을 쓰고 있을 뿐 주요한 저작은 한문으로 일관하고 있다. 중세의 권위주의에 저항한 문인 허균조차 <홍길동전> 외에 한글로 쓴 시문을 거의 남기지 않았던 것도 그 시대의 한계였을지 모르겠다.

북학을 주창한 근대 사실주의의 선구자 연암 박지원도 예외는 아니어서 그는 자신의 철학과 세계관을 드러낸 모든 소설작품을 한문으로 썼다. 그러나 조선 후기 평민의식의 성장과 더불어 새로운 문학 생산자로 등장한 부민(富民)들의 사설시조와 평민소설로 한글은 새롭게 꽃을 피우기 시작했으니 그것은 오롯이 백성의 글이었던 셈이다.

근대로 이행하는 시기였던 개화기는 물론, 일제 강점기 초기에도 사정은 별로 다르지 않았던 듯하다. 이를테면 유길준의 <서유견문(1895)>이나 기미독립선언서(1919)는 거의 한문에다 토씨만 한글을 써서 무늬만 ‘국한문 혼용’이었던 것이다.

말글살이의 그늘에 드리운 씁쓸한 풍경

언문일치를 거쳐 일간지조차 한글만 쓰는 시대가 왔지만, 여전히 한글의 갈 길은 멀다. 창제 이래 주인 노릇을 하던 한문의 자리를 차지하려고 엉덩이를 들이미는 건 영어다. 아니다. 이미 그것은 움직일 수 없는 주류의 문자로 성큼 우리 말글 세계를 점령하고 있다.

한글의 우수성을 목놓아 외치지만 초등학교, 아니 유치원 때부터 시작되는 영어 교육과 그 과열이 낳는 폐해, 일부 인사들이 주장하는 ‘영어 공용어화론’이나 심각하게 오염되고 있는 우리말 앞에서는 그것은 어쩐지 허장성세 같아 보인다. 세계화를 영어와 등치 하는 오도된 국제화의 패러다임이 바뀌지 않는 한, 영어에 의한 모국어 오염은 심해질 수밖에 없어 보인다.

바야흐로 영어에 관한 한 이 땅에 부는 바람은 광풍이다. 영어 공부에 들이는 사교육비는 제쳐두더라도 토익이나 토플 따위에 몰리는 천문학적 비용은 유창한 영어 능력을 위한 노력이라기보다 다다를 수 없는 주류 언어에 대한 짝사랑이고, 그 물신적 고백처럼 여겨진다. [관련 글 : ‘NEXT(넥스트)’로 써도 시청자는 곧이어로 읽어라?]

▲ 416년 만에 공개된 이응태 부인의 편지. 1998년 고성 이씨 분묘 이장시에 발견한 죽은 남편에게 보낸 한글 편지. ⓒ 안동대 박물관

국립국어원의 1년 예산은 100억 원이 채 못 된다. 그것도 절반쯤은 민간단체·학계 지원에 쓰인다. 그러나 경기도의 영어마을 두 곳의 예산은 300억 원이 넘는다. 작년 경기도는 191억, 서울 7억 원의 적자를 냈다. 반면 최근 2년간 영어마을의 정규교육 과정을 이용한 학생은 경기 도내 전체 초·중학생의 5%에 미치지 않는다. 그런데도 여전히 많은 지방 자치단체는 경쟁적으로 영어마을을 조성하고 있다.

영어마을로 성이 차지 않는지 정부는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에 2013년 완공을 목표로 한 제주 영어 교육도시를 조성한다고 발표했다. 국제 경쟁력과 선진화를 영어와 등치 하는 맹목의 심리 속엔 ‘나만 빠질 수는 없다’는 소외에 대한 두려움과 박탈감이 있는지도 모른다.

나라 밖 한국어 교육기관에서 한국어를 배우는 사람이 약 50만 명에 이르지만 정작 그에 대한 지원은 미미하다. 우리나라 영어마을의 원조라 할 수 있는 미국 미네소타주 ‘콩고디아 언어 마을’에 있는 ‘한국어 마을(일명 숲속의 호수)’에는 우리 국제교류재단에서 고작 6000달러를 지원하는 데 그친다. 이는 미국 프리만 재단의 지원에 훨씬 못 미치는 액수다. 모두 우리 말글살이의 그늘에 드리운 씁쓸한 풍경들이다.

영어 교육을 ‘빡세게’ 시킬 수 있는 부모의 능력이 아이들의 언어적 능력으로 이해되고, 그런 능력이 장차 한 사회의 계급으로 전화되는 이 천민자본주의 사회의 영어 광풍에 대해서, 러시아 출신으로 우리 국적의 박노자 오슬로 대학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관련 글 : 지구촌 시대? ‘한글이 보이지 않는다]

 

“현 단계에서 다수 노동자의 언어가 지식사회에서 시민권을 잃어가는 것과 패권 제국의 언어가 사회 귀족 특권의 상징으로 부상하는 것은 사회의 대다수 피지배 구성원에게 피해를 줄 수밖에 없다. 미안하지만 이는 결코 ‘선진화’가 아니며, 사회 양극화의 언어적 표현이자 동아시아 시대에 역류하는 대미 예속의 강화일 뿐이다.” - <한겨레>(2005. 10. 3.)


백성의 눈 밝힌 세종 임금의 뜻

그런 우울한 풍경 가운데서 그나마 우리를 위로하는 것은 세계 최고 부자라는 빌 게이츠의 마이크로소프트가, 시장을 장악하기 위해 덤핑과 끼워주기를 서슴지 않는 그 문서편집기 무른모(소프트웨어) ‘엠에스 워드’가 아직도 공략하지 못한 지구상의 마지막 시장이 한국이라는 점이다.

한글 문서편집기 시장을 지킨 것은 프로그램을 쉽사리 바꾸지 않는 사용자들의 보수성이라는 견해도 만만찮다. 그러나 엠에스는 한글 자모 40개(자음 19, 모음 21)가 무한한 조합을 가능케 하는 디지털 시대의 기호라는 사실을 간과하고 완성형을 택했지만, 한글과컴퓨터의 이찬진은 조합형을 선택한 것이 승패를 갈랐다. 이는 가장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문자로서 ‘한글의 승리’이기도 하다. [관련 글 : 조합형 코드, 한글 이야기(2)]


2005년도에 산 내 휴대전화에는 아직도 ‘똠방각하’나 ‘쑛다리’, 또는 ‘찦차’를 쓸 수 없다. 이 단말기가 멍텅구리 완성형 코드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완성형이 완성된 글자를 일종의 그림처럼 다루어 이미 만들어진 글자를 불러오는 방식이라면 조합형은 한글의 구성 원리인 초성·중성·종성의 세 갈래 음운을 코드 자료로 삼아 설계해 현대 한글에서 조합 가능한 글자 ‘1만1172’자를 모두 구현할 수 있는 방식이다.

그런데도 우리 정부가 완성형 코드를 표준으로 삼은 것, 한글 자판의 표준을 세벌식 아닌 두벌식으로 정한 것 등(지금 나는 세벌식으로 이 글을 쓰고 있다)은 1991년 한글날을 국경일에서 제외한 것과 함께 세종 임금이 ‘백성의 소리’’ 만든 뜻을 거스르는 일이다.

노태우 정권이 한글날을 기념일로 격하한 명분이 가관이었다. “노는 날이 많아 산업 생산력이 떨어지고 과소비 풍조가 발생해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는 여론을 존중했다는 것. 이는 당시 노 정권이 신정 연휴와 별개로 ‘민속의 날(설날)’과 추석을 연휴로 늘렸는가 하면 공휴일이 일요일과 겹치면 경우 다음날까지 휴일을 연장하기도 했던 것과는 정반대의 조치였다.

한글날을 국경일로 원상회복하는 데 걸린 시간이 14년이다. 하기야 일제가 붙인 ‘국민학교’를 반세기 만에 버린 데 견주면 다행인지 모른다. 다시 10년이나 20년 후 한글의 모습을 그려 보기가 어쩐지 두렵기만 한 것은 그간 한글이 걸어온 길을 돌이켜 본 까닭이다. [관련 글 : 한글날, 공휴일로 복원!]


이 위대한 문자에다 ‘한글’이란 이름을 붙인 주시경 선생은 “말이 오르면 나라가 오르고, 말이 내리면 나라도 내린다”고 했다. 말글이 단순한 의사소통의 수단에 그치지 않고 얼을 담는 그릇이라는 것을 꿰뚫어 본 것이다.

유네스코의 국가별 문해율 조사(2001~2005)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문해율은 98%로, 문맹률은 2%에 그친다. 오백예순한 해 전,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쉽게 깨우쳐 날로 씀에 편하게 하고자 할 따름’이라 밝힌 세종 임금의 사랑이 그나마 이 땅 온 백성의 눈을 밝혔으니 그 뜻의 ‘도타움’으로 이 우울을 갈음할 수 있을는지 모르겠다.

 

2007. 10. 8. 낮달

 

 

한글날 아침, 국어교사는 마음겹다

한국인에게 외면당하는 '최고의 알파벳' 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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