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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겨 찻집] “나라에 충성, 부모에 효도”?

by 낮달2018 2024. 9.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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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명사와 무정명사에 따라 달리 쓰이는 ‘조사’

▲ 아직도 '부모에 효도'라고 쓴 표어. 춘천 '102보충대'의 마지막 입영식을 다룬 '육군 블로그 아미누리'의 사진.

1984년 2월, 졸업식을 불과 며칠 앞두고 어느 사학으로부터 이른바 ‘초빙’을 받았다. 학교로 와서 면접을 보자는 연락에 정말로 ‘때 빼고 광내어’ 경주시의 소읍에 있는 여학교를 찾았다. 오지라고 할 수 없는 지역이었으나 나는 초행이었고, 억센 경북 동부 지역의 사투리를 처음 들었다.

 

아담한 교정의 낡은 교사 한쪽의 교장실에서 면접을 봤는데, 나는 요구한 서류를 내고, 한자를 섞어서 쓰는 ‘나의 교직관’이라는 짧은 글 한 편을 써서 냈고, 교장, 교감 선생과 이런저런 대화를 주고받았다. 이틀 뒤에 학교 서무과장으로부터 3월 2일부터 출근하라는 연락을 받았다.

 

1980년대의 구호 “나라에 충성, 부모에 효도”

 

3월 2일, 얼떨떨한 표정으로 출근하여 고1, 띠동갑인 열일곱 소녀들을 만난 그날의 감격을 잊을 수 없다. 그게 이후 30년 넘게 이어진 내 교단생활의 시작이었다. 교사 본관의 측면 출입문 위쪽에 당시 유행하던 글귀의 표어 “나라에 충성, 부모에 효도”가 걸려 있었다.

 

꼭 40년 전의 일이라, 기억이 앞뒤가 뒤섞여 혼란스럽긴 해도 그때 같은 국어과 출신의 교장 선생과 나는 그 표어를 소재로 잠깐 대화를 나누었었다. 나는 무정명사인 ‘나라’에는 ‘에’가 맞지만, 유정명사인 ‘부모’에 ‘에’를 붙인 것은 잘못이다, ‘에게’를 붙여야 하되, 높임말인 ‘께’를 붙여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교장 선생은 잠깐 당황하더니 맞다, 그건 생각하지 못했다, 빨리 고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교장 선생은 신입 교사의 느닷없는 지적에 곤혹스러웠을 것이지만, 이내 그 표어를 고쳐서 달게 했다. 당시 전두환 신군부의 문교부에서 만들어 내린 예의 표어는 전통적인 ‘충효’를 강조한 내용이었지만, 지나치게 대구를 맞추다 보니, 어법에 맞지 않은것이었다.

▲ 유무정 여부에 따라 조사는 달리 쓰인다. 무정명사를 의인화하면 '에게'를 쓸 수도 있다.

국문법에서 ‘명사’는 고유성을 기준으로 한 ‘고유명사’와 ‘보통명사’, 그리고 자립성에 따라 나눈 ‘자립명사’와 ‘의존명사’로 나누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감정’을 나타내는가, 그렇지 않은가로 나누는 ‘유정명사’와 ‘무정명사’는 특정 조사의 쓰임새와 관련된다.

 

유정명사니  ‘부모에’는 ‘부모님께’로 써야

 

유정(有情)명사는 감정을 나타내는 사람이나 동물을 가리키는 명사고, 무정(無情)명사는 감정을 나타내지 못하는 식물, 무생물을 가리키는 명사다. 그런데 이러한 명사 뒤에 ‘어떤 행동이 미치는 대상을 나타내는 격조사’는 각각 달리 쓰인다. 유정명사 뒤에는 ‘-에게’가 쓰이지만, 무정명사에는 ‘-에’가 쓰이는 형식이다.

 

위 표어에서 ‘나라’는 무정명사이므로 ‘-에’가 쓰이는 게 맞다. 그러나 ‘부모’는 유정명사이므로, ‘-에게’가 쓰이는데, 여기선 대상이 ‘부모’니, 존칭 접미사 ‘-님’과 함께 ‘-에게’의 높임말인 ‘-께’를 붙여야 한다. ‘부모에’가 격식을 갖추어 ‘부모님께’로 쓰는 이유다.

▲ '나라에 충성, 부모에 효도'는 '나라에 충성, 부모님께 효도'로 바로잡아야 한다.

처음 말을 배우는 아이들도 ‘꽃에 물 주자’라고 정확히 쓰는데, 범람하는 영어와 외국어에 치여서 그런가, 그런 단순한 사용법마저 잊어버린 이도 적지 않다. 개인도 문제이긴 하지만, 매체들이 이를 거르지 못하고 어법에 어긋난 표현을 무심히 쓰고 있는 건 진짜 문제다.

 

아래 문구는 모두 인터넷 검색으로 찾은 뉴스의 제목들이다. 잘못된 부분을 확인해 보라.

 

(1) 에이아이(AI)에게 맡기지 마라, 세계가 퇴화할 것이니

(2) 한국 Z세대 직장인은 모르면 AI에게 묻는다

(3) “수능 논술·서술형으로 바꾸고, 1차 채점 AI 맡기자”

(4) 순천시, “전남의대 신설 중앙정부 맡기자”

(5) “중소 병원에게 진정한 슈퍼 갑은 인증원”

(6) 딥페이크 등 생성형 AI 목줄 거는 AI

(7) 알파고에게 ‘당연한 수’는 당연하지 않았다

(8) “사회가 겪을 모든 고통의 책임은 정부에게 있다”

(9) 미 억만장자, 유산 161억 반려견

(10)“사람 거짓말하는 AI 확인, 제거하려고 하자 죽은 척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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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에이아이(AI)에게 맡기지 마라, 세계가 퇴화할 것이니 (×) 인공지능은 사물 AI

(2) 한국 Z세대 직장인은 모르면 AI에게 묻는다  (×) 인공지능은 사물 AI

(3) “수능 논술·서술형으로 바꾸고, 1차 채점 AI 맡기자”  (○) 

(4) 순천시, “전남의대 신설 중앙정부 맡기자”   (○)

(5) “중소 병원에게 진정한 슈퍼 갑은 인증원”  (×) 병원

(6) 딥페이크 등 생성형 AI 목줄 거는 AI   (○)

(7) 알파고에게 ‘당연한 수’는 당연하지 않았다  (×) 알파고

(8) “사회가 겪을 모든 고통의 책임은 정부에게 있다”  (×) 정부

(9) 미 억만장자, 유산 161억 반려견에  (×) 반려견에게

(10)“사람 거짓말하는 AI 확인, 제거하려고 하자 죽은 척도”  (×)  사람에게

2024. 9. 15.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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