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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다시 읽기

‘좋은 이웃’인가, ‘힘센 이웃’인가, ‘우리 안’의 미국과 ‘우리 밖’의 미국

by 낮달2018 2019. 8.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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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 평택의 미군기지(K-55) 앞 로데오거리에서 미군 헌병이 한국인을 수갑 채운 채 연행하는 사건이 있었다 .

최근 한국을 방문한 미 볼턴 보좌관이 만만찮은 청구서를 내밀었다는 소식이다. 문제는 ‘방위비 분담’ 요구다. 미국은 방위비 분담이 좀 더 ‘합리적이고 공정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했는데, 이는 더 많은 방위비를 부담하라는 주문이요, 압력이다. 그 요구액이 현행의 5배라는 설이 '설'에 그치지 않을 듯하다. 

‘호르무즈 해협에서의 해상 안보와 항행의 자유를 위한 협력 방안’을 협의하며 파병 문제도 다루었다고 한다. 원칙적인 언급에 그쳤지만, 미국은 파병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미 파견된 청해부대가 있어 임무 변화나 추가에 해당하지 않아 별도의 국회 비준 처리가 필요 없다는 의견이 있으나 국회 동의가 필요한 문제라는 반론도 강력하다.

번번이 우리에게 과도한 요구와 겁박으로 속앓이를 강요하는 ‘혈맹(血盟)’ 미국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미국과 우리의 이해가 충돌할 때마다 한 수 접지 않으면 안 되는 약소국가 대한민국에 한미동맹은 무엇인가.

7년 전, 평택에서 미군 헌병이 한국 민간인을 수갑을 채운 채 연행한 사건, 대구에서 미군 부대 군무원이 '출입증' 장사를 하다가 해고된 사건이 있었다.  ‘효순·미선이 사건’에 비기면 사소한 것일 수도 있는 이 두 사건에는 우리에게 '미국은 무엇인가'를 환기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  세월은 흘러도 바뀐 게 별로 없다는 생각을 하며 옛 글을  다시 읽는다.[관련 글 : 두 소녀의 희생으로 드러난 불평등 한미관계]

 

                                                                                           2019. 8. 9.


날씨 탓인가. 요즘은 이런저런 세상 소식에 무심해지고 있다. 쳇바퀴 같은 일상, 어제 같은 오늘에, 오늘 같은 내일이 무한 반복 속에 느는 건 ‘게으름’이다. 여야 대선후보의 근황과 지지율 추이 따위에도 무심하고 슬슬 여론을 달구려 하는 올림픽 소식에도 심드렁하다.

 

그래도 ‘현실을 떠나 환상의 세계를 보여주기는커녕, 환상 속에 사는 우리를 조롱하고 각성시키기 위해 현실을 재현하는 드라마’(이나영 교수)였던 추적자의 여운은 예사롭지 않았다. 늘 배곯는 아이였던 열 살 소녀와 삼성의 56번째 죽음(고 윤슬기·32) 앞에서 잠깐 옷깃을 여몄다. 흔히들 ‘세계와의 불화’를 말하지만, 기실 이 세계는 이미 ‘불화’,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미군, 미군기지, ‘치외법권’

 

이런저런 뉴스 속에서 유독 두 가지 소식이 눈에 띄었다. 경기도 평택에서 미군 헌병대가 한국인 민간인을 거리에서 수갑을 채운 채 미군 부대 앞까지 끌고 간 사건(관련 기사)과 대구에서 미군 부대 군무원이 ‘출입증’ 장사를 하다가 해고를 당했다는 뉴스(관련 기사)다.

 

앞의 사건은 한국 정부가 엄중히 항의하고, 미군 측도 이례적으로 재빨리 사과함으로써 마무리되었단다. 미군 부대 영내가 아닌 거리에서 민간인을 수갑을 채워 연행한 사건에 대해 ‘이례적’인 조치가 뒤따른 것은 효선·미순 사건 때에서처럼 ‘촛불시위’가 벌어질 것을 우려해서라고 한다.

 

이 사건이 벌어진 곳은 경기도 평택의 미군기지(K-55) 앞 로데오거리였다. 사건이 불거지면서 한미 주둔군 지위협정(SOFA·소파)까지 넘어선 미군의 월권에 대한 여론은 끓어올랐고 민족 감정까지 끼어들었던 것 같다. 그러나 정작 현지 사람들은 예의 거리가 사실상의 ‘치외법권’ 지대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고 후속 보도들은 전한다.

 

미군 부대 영내는 한국의 주권이 미치지 못하는 ‘치외법권’ 지대가 틀림없다. 그러나 부대와 미군을 대상으로 벌어먹는 지역 사람들도 지역에서 도를 넘는 미군의 통제에 억눌려 있다고 했다. 이런 미군기지 주변은 한국인이 미군으로부터 인권침해를 당해도 공권력이 막지 못하는 곳이라는 것이다.

 

미군의 ‘법적 근거 없는 통제’와 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주변 상인들의 불만이 쌓이고 있는 이유다. 이 땅에 미군이 주둔한 지 반세기를 훌쩍 넘겼지만, 미군과 한국 민간인의 관계는 여전히 ‘강약이 부동(不同)’이다. “이제라도 한국 땅에서 미군이 총기로 무장하고 걸어 다니는 게 적법한 일인지 제대로 문제 제기해야 한다”라고 하는 시민단체 간부의 지적을 귀담아들어야 할 이유다.

▲ 미군은 국내에서 국군과 함께 여러 가지 합동훈련을 벌인다. 사진은 합동 도하훈련의 모습.

서울 용산에 이어서 대구에서도 미군 부대 출입증 뒷거래 의혹이 사실로 밝혀졌다는 소식은 평택 사건과는 또 다른 측면에서 씁쓸하기만 한 뉴스다. 대구 시내에 있는 미군기지(캠프 헨리) 소속의 군무원에 의해 저질러진 이 사건은 우리가 미국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를 매우 역설적으로 확인케 해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미군기지에는 한-미 교류에 힘써온 한국인들에게 발급되는 ‘좋은 이웃 출입증’(Good Neighbor Assess Pass)이라는 제도가 있다고 한다. 말 그대로 이는 ‘좋은 이웃’에게 발급되어야 한다. 그런데 ‘좋은 이웃’과 무관하게 지역의 유력 인사들이 이 출입증을 원하자, 수백만 원의 뒷돈이 오갔다는 게 사건의 요지다.

 

모르긴 몰라도 장당 수백만 원이 오갔다면 이 증명서가 주는 이득은 그걸 초과하는 게 마땅하다. 보도는 이 출입증의 인기가 ‘시중보다 값이 싼 인근 미군 부대 캠프 워커의 골프장과 식당을 드나들 수 있는 데다, 보수 성향이 강한 이 지역에서 미군 부대 출입을 일종의 특권으로 여기는 사회 분위기’에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단지 음식값 얼마와 골프장 이용료 때문에 수백만 원을 기꺼이 내놓지는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이 출입증을 지역의 ‘유력 인사’들이 불법적으로 발급받고자 한 것은 ‘미군 부대 출입을 특권으로 여기는 사회 분위기’ 때문이라고 보는 게 맞다. 그리고 예의 ‘특권’은 단순 비용으로 환산할 수 없는 이득을 그들에게 제공해 왔을 것이다.

 

‘좋은 이웃’, 혹은 ‘힘센 이웃’

 

실제로 이 출입증만으로는 부대 안 카지노를 이용하거나 면세품을 살 수 없다. 이들 ‘유력 인사’들은 출입증으로 지인들을 미군 부대로 초대해 식사하는 등 과시용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지인들을 치외법권 지대인 미군 부대 안으로 데리고 들어갈 수 있는 권리는 미국이 ‘글로벌 스탠다드’인 이 나라에선 만만찮은 특권인 것이다.

▲ 고엽제 매립과 관련해 논란을 벌였던 캠프 캐럴 사태는 결국 어떻게 귀결되었는가…
▲ 왜관 읍내 곳곳에 고엽제 관련 항의를 담은 플래카드가 걸렸다. 2011년 6월.

그러니까 이내 내게도 짚이는 게 있다. 20년도 전의 이야기다. 얼마 전 고엽제 매립으로 시끄러웠던 미군기지(캠프 캐럴)가 있는 경북 칠곡군 왜관읍에 살 때다. 지금은 이미 달라졌지만, 그때만 해도 미군 부대는 지역 경제에 무시하지 못할 영향력을 갖고 있었다. 한 반에 미군 부대에 근무하는 학부모들이 서너 명씩은 있었고 이 아이들은 미국산 학용품들을 쓰기도 했던 것 같다. [관련 글 : 캠프 캐럴에 묻힌 고엽제’, 혹은 주둔 50]

 

거기서 6년쯤 살았다. 우리의 일상은 그것과 무관했지만, 일반인들 사이에는 부대 안 식당에서 회식을 주선하는 게 유행이었던 것 같다. 한번은 교회 장로가 주선한 식사 모임을 부대 안에서 갖고 나온 아내가 씁쓸해하던 걸 기억한다.

 

“뭐, 대단치도 않은 음식인데, 굳이 미군들의 허락을 얻어 부대 안으로 들어가 회식을 하는 이유를 모르겠어요. 아마 부대를 출입할 수 있는 걸 무슨 특권으로 여기는가 봐요. 나 참, 어이가 없어서. 다른 사람들은 어땠는지 모르겠는데 난 굴욕감을 느꼈어. 내 돈 내고 밥 먹으면서 그 꼴을 왜 자청하는지 모르겠어…….”

 

▲ 주한미군 휘장

그때만 해도 지역 사람들은 대체로 미국에 대한 환상 따위를 갖고 있지는 않았던 것 같다. ‘양놈들 지역에 떨어뜨리는 게 똥밖에 더 있냐’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으니 말이다. 미군들이 동거하는 양공주와 차리는 살림 마련하는 것만으로도 시장의 경기가 유지되었던 시기는 이미 옛일이었기 때문이다.

 

지역 주민 대부분이 아주 냉정하게 미군을 바라보았던 것과는 달리, 또 한편에서는 자기 일행을 데리고 미군 부대를 출입할 수 있는 권리를 으스대거나 흔치 않은 특권으로 여겼던 계층도 존재했다. 이들은 중산층 이상이었고, 모두 자기들 삶의 영역에서는 만만찮은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어떤 형식으로든 부대, 또는 미군들과 관계를 맺고 있거나 그들과의 친교를 가질 만한 사회적, 지역적 지위를 갖고 있었던 사람들에게 미군은, 혹은 미국은 권력이거나, 그것을 방증하는 사회적 지표였을지 모른다. 굳이 미군 부대 안에 사람들을 데리고 들어가 음식 대접을 하는 것은 그들이 가진 권력이나 지위를 대중에게 공표하는 기회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민족적 분노’와 ‘특권 의식’ 사이

 

주둔군의 횡포와 범죄에 대해서 분노하면서 민족적 동기를 떠올리는 피 뜨거운 겨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는 여전히 미국을 ‘꿈의 나라’로 여기고 거기서 모든 ‘표준’을 구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한국말을 유창하게 구사하는 ‘머리 검고 피부 빛이 누런 미국인들’이 사회 곳곳에 포진해 있는 탓일까. 각각 반대편을 향하고 있는, 두 가지 소식은 이러한 지극히 ‘한국적인 모순’이 만들어낸 서글픈 풍속도다.

 

글쎄,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다. 그때, 학교 동기 가운데 미군 부대 안에도 운행하는 택시를 몰던 친구가 있었다. 아주 잠깐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어떠냐고 했더니 말할 수 없이 쓸쓸한 얼굴을 하고 그가 내뱉은 말은 지금도 기억에 뚜렷하다.

 

“빛 좋은 개살구지, 뭐. 양놈들이 한국 사람을 사람으로나 대해 주는 줄 알아?”

 

그리고 20년이 흘렀다. 그때 내 앞에서 교과서를 펼쳤던 아이들은 이미 불혹을 넘긴 중년이다. 그들 가운데 미군 부대에 근무하는 친구가 하나 있다. ‘출입증 장사’ 기사를 읽다 말고 그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거기도 ‘출입증’이란 게 있냐고 물었더니 없다고, 영내 근무자들에게 일정 인원을 데리고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는 것일 뿐이라고 했다.

 

‘출입증’ 장사 이야기를 했더니 뜨악해했다. 막상 이해관계가 서로 다른데 속내 깊은 이야기를 건네는 게 쉽지 않다. 나는 20년 전에 유행했던 ‘부대 안 회식’을 이야기하고 사람들은 미국에 대해선 아주 ‘모순된 감정과 태도’가 있는 듯하다고 했다. 그는 내 말의 요지가 잘 짚이지 않는지 ‘글쎄요’ 하고 말끝을 흐렸다.

 

20년이라면 강산이 두 번 바뀐 시간이다. 여전히 20년 전의 묵은 기억으로 그것을 재단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몇몇 매체에 실린 미군기지 사진을 살펴보면서 ‘우리 안’이든 ‘우리 밖’이든 미국은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은 것이라는 생각을 아니 할 수 없다.

 

2012. 7. 27.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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