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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다시 읽기

DJ의 죽음으로 그들은 그 감옥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by 낮달2018 2019. 8.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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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10주기] 다시 ‘김대중’을 생각한다

▲ 김대중 전 대통령 국장 화보. 2009년 8월 24일 <한겨레> 12면. 그는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국민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았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난 지 벌써 10년이 흘렀다. 그는 박정희와 유신독재가 만든 지역감정과 반공 이데올로기의 최대 피해자이자 희생자였다. 그는 국민의 절반에게는 자유 민주주의 지도자로 추앙받았지만, 나머지 절반으로부터는 경원당한 정치인이었다.

그는 한국 정치사에서 가장 뛰어난 경륜을 가진 정치인이었지만, 그것을 인정한 주권자는 절반에 그쳤다. 그는 일평생 지역감정과 반공 이데올로기와 싸워야 했고 영남사람들의 편견과 멸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지역감정과 반공 이데올로기에 피해를 보았고 편견과 멸시를 당했지만, 그것은 그의 책임이 아니었다. 그가 감내해야 했던 지역감정과 이데올로기, 편견과 멸시는 어떤 합당한 근거도 없는 가해 측의 일방적인 재단이었을 뿐이기 때문이다.

DJ에게 가해진 왜곡과 멸시의 원천은 지역감정의 포로가 된 영남사람들의 ‘맹목의 저주와 증오’다. 그들은 자신의 정치적 선택을 정당화하기 위해 왜곡과 멸시의 감정을 학습하고 내면화했다. 그 진실을 자각하는 것과 무관하게 그들이 견고한 ‘마음의 감옥’에 갇힌 수인들이 된 이유다.

2009년 DJ가 세상을 떠났을 때, 나는 무엇보다도 그의 죽음으로 우리 지역 사람들의 반 김대중 정서와 평가가 마감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더는 미워하거나 경멸할 대상이 없는 증오와 멸시의 감정은 사라질 수 있으리라고 보면서 이 글을 썼다.

그러나 그가 떠난 지 10년, 다시 정권교체가 이루어졌고, 영남사람들의 ‘묻지 마’ 지지를 받던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금 감옥에 있다. 2016년 총선에서는 30년 만에 대구에서도 ‘김대중 당’, ‘전라도 당’으로 폄훼해 온 민주당 국회의원이 뽑혔다.

정권교체 3년째, 그러나 잃어버린 권력을 되찾겠다고 절치부심하는 지역 기반 보수정당의 행보는 기막히게 퇴행적이다. 이들은 다시 죽어가던 이데올로기를 불러내어 다시 전가의 보도로 다듬고 있다. 지역 출신의 민주당 국회의원을 ‘빨갱이’로 적시하는 일탈도 재현되고 있다.

DJ가 떠난 지 10년, 세상은 변한 듯한데 정작 변해야 할 것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2019. 8. 17.

▲ 정치인 DJ의 미소는 마치 소년처럼 수줍다. 영면하시길
▲ 김대중(192.4.1.~2009.8.18.) 전 대통령

공교롭게도 2009년에 두 전직 대통령이 세상을 떠났다. 5월에 노무현(1946~2009.5.23.) 전 대통령이 비극적으로 삶을 마감했고, 그의 죽음을 두고 내 몸의 반이 무너진 것 같다라고 하며 슬픔과 충격을 감추지 못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은 불과 석 달 뒤에 85세를 일기로 영면한 것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 장례가 국장이라며?”

 

9시가 넘어 귀가한 딸애가 제 동생에게 묻는다. 아들 녀석은 의심 없이 받는다. 아내도 옆에서 거든다.

 

“그럼, 당연하지.”
“국장을 치러야 마땅하지.”

 

셋의 대회를 듣다가 나는 아이들이나 아내가 내 정치적 영향력(?) 아래 있지 않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우리 가족들의 정치적 성향은 비교적 일치하는 편이라고 해야 한다. ‘일치하는 편’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일치하지 않는 경우’도 더러 있기 때문이다.

 

지난 총선에서 우리 가족은 모두 같은 후보와 정당에 표를 던졌다. (물론 공개투표처럼 서로의 선택을 확인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는 100% 사실로 볼 수 없기는 하다) 그러나 김대중 후보가 당선되었던 1997년 대선 때 아이들은 각각 초등과 중학생이었다. 당연히 투표권이 없었다. 그러나 아이들은 저희 엄마를 통하여 나름의 정치적 판단을 관철해 냈다.

 

그해 대선에서 나는 김대중이 아닌 다른 진보 후보에게 표를 던졌다. 투표에 앞서 아내와 어머니께 나는 같은 선택을 해 줄 것을 요청(?)했고 당연히 식구들이 내 의견을 존중하였으리라고 믿었다. 그러나 훨씬 뒤에 나는 아내가 김대중 후보에게 표를 던졌고 그게 아이들의 종용 결과라는 걸 알았다. 아이들은 다음과 같이 저희 엄마를 협박(?)하였다는 것이다.

 

“엄마, 안 될 사람에게 투표해선 안 돼! 알지? 2번이 아니면 절교야!”

 

▲ 1997년 대통령선거 포스터

물론 김대중 후보가 당선되었고, 내가 지지한 후보는 당연히 낙선했다. 짐작하였겠지만 나는 전혀 실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헌정사에서 처음으로 이루어진 정권교체의 감격 때문에 한동안 현실감을 잃기조차 했다.

 

김대중 대통령 재임 기간에 내가 몸담은 전교조가 합법화되었고, 절차적 민주주의뿐 아니라 내용으로 의미 있는 민주화가 이루어졌다.

 

꼭 그래서였을까. 그의 대통령 당선이 확정된 다음 날, 나는 모처럼 정장에 넥타이까지 갖추어 매고 출근했다. 오늘 정장한 까닭을 알 것 같다는 학교장의 말에 속내를 들켰다 싶어서 서둘러 그렇지 않다고 부인했던 기억이 새롭다.

 

2000년 6월 15일에 이루어진 남북 정상의 공동선언에 대해서는 더 보태고 뺄 게 없다. 그것은 냉전 반세기를 끊고 새로운 민족화해의 길에 대한 7천만 남북 겨레의 의지를 확인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6·15선언 등의 남북 평화를 위한 그의 노력과 결단은 그해 노벨평화상 수상으로 이어졌다.

 

TV에서 김 전 대통령의 서거에 따라 북측에서 조문단을 파견할 방침이라는 뉴스가 방영되고 있었다. 나는 현재 꽉 막혀 있는 남북 관계와 며칠 전 현대 그룹과 북측의 합의사항을 언뜻 떠올리면서 혼잣말을 뇌까렸고 아내가 얼른 되받았다.

 

“DJ는 죽어서도 남북의 화해에 이바지하네.”
“그러게 말에요, 나도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우.”

 

그의 서거에 붙이는, 그를 지지했든 지지하지 않았든 간에 대중들의 추모와 애도는 마땅히 전직 국가 원수의 죽음에 대한 예의일 터이다. 그러나 나는 일부 정당과 정치인들과 보수 언론이 보여주는 민망한 찬사 앞에서 씁쓸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DJ의 행보에 대한 보수진영의 반발과 폄훼는 기실 지금 그들이 보여주고 있는 태도에 비추면 믿기지 않을 만큼 적대적이었다. 그래서 지금 이들이 보여주는 모습이 한 인간의 죽음에 바치는 인간적 예의라 보더라도 여전히 씁쓸함은 가시지 않는다.

 

죽음은 DJ에 대한 애증의 경계를 흐려놓았다. 살아서는 껄끄러운 걸림돌이고, 적(敵)이었던 그는 더는 돌아올 수 없는 먼길을 떠남으로써 다시는 적은커녕 걸림돌로도 되살아날 수 없게 된 것이다. 무장해제당한 적장에 대한 예우야 어떤 장수인들 못 하겠는가.

▲ 김대중은 한국 역사상 처음으로 노벨상을 받았다. 노벨평화상 수상(2000년 12월).

겉으로야 내가 사는 영남, 정확히 말해 경북 북부지역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그들(편의상 구분하지 않고 쓴다. 여기서 지칭하는 이들은 ‘지역감정’이나 반 DJ 정서에서 자유롭지 않은 영남인, 혹은 기타 대중을 가리킨다. )은 이 서거 정국에 걸맞은 표정과 엄숙을 가장하고 있는 듯 보인다. 그러나 나는 영남의 대중들이 평균적으로 지니는 DJ와 그가 관여했던 정당을 바라보는 시각을 아주 선명하게 기억한다. 내게 떠오르는 두 가지 장면이 있다.

 

하나는 해직 시절의 이야기다. 우리 고향마을에서 일찍이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변호사로 영달한 이가 있었다. 촌수를 헤아리기는 어려운, 집안 아저씨뻘의 이 양반이 오랜만에 고향에 왔다. 어머니께 인사를 드린다고 우리 집에 들렀는데, 인사를 드렸더니, 무얼 하냐고 물었다. 형님이 대신 웃으면서, 전교조 하다 어찌 되었다고 하니까, 이 양반 망설임 없이 내뱉은 말이 걸작이었다.

 

“음, 김대중이 똘마니구먼.”

 

내 주변의 지인들은 설사 그가 극우 보수라 할지라도 내 앞에서 함부로 DJ(그를 포함한 개혁진영)를 헐뜯거나 폄훼하는 일은 없다. 내가 거기 불쾌해하기 때문이 아니라, 서로의 정치적 입장에 대한 예의를 지키는 차원에서다. 그러니 주변에서 노골적으로 DJ를 비난하는 이들은 내가 모르는 사람들이다.

 

복직하고서다. 하회마을에 들렀다가 들머리의 식당에서 헛제삿밥을 먹는데, 옆자리의 사람들의 화제가 정치로 옮겨가나 싶었는데, 일행 중 60을 갓 넘은 듯한 할머니가 벌떡 일어나더니 다리가 불편하여 종종걸음을 치는 DJ의 걸음을 흉내 내기 시작했다.

 

조롱과 폄훼도 진화한다. 원색적인 비난이나 욕설보다 은근히 점잔을 가장한 능멸이 훨씬 더 위험하고 치명적이다. 그들은 단 한 마디의 욕설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노인의 반들반들한 얼굴에 득의만만하게 번지는 조롱기와 과장되게 벌이는 다리 저는 흉내와 폭소 속에서 나는 자신이 모욕을 당하는 듯한 수치심과 모욕감을 느꼈다.

 

이 두 가지 기억은 경상도 사람들의 DJ 증오가 얼마나 뿌리 깊고 일반화된 현상인가에 대한 방증이다. 그러나 짐작했겠지만, DJ에 대한 그 노인의 증오와 조롱은 학습된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지지나 혐오가 이성적인 판단과는 무관한 원시적이고 맹목적이라는 사실을 충분히 알고 있다.

 

“혹시 직접 김대중이나, 호남사람에게서 어떤 피해를 보았나요?”
“아니요.”
“그럼 주변에서 그런 피해를 보는 걸 목격하셨나요?”
“아니요.”
“그를 미워하는 다른 이유가 있습니까?”
“아니요.”
“그럼 왜 김대중과 호남사람을 그렇게 미워하지요?”
“그냥. 그냥 싫어서 그래요.”

 

근거 없는 자신의 맹목적 증오를 지키기 위해서 그는 자신의 신념을 강화한다. 그래서 그의 증오심은 더욱 깊어지고, 더욱 치명적으로 바뀌어 간다. 증오가 깊어질수록 자신의 정치적 선택은 요지부동으로 굳어가고 그것은 다시 자신의 증오와 적개심을 정당화해 준다. 결국, 그들은 이 뿌리 깊은 증오의 악순환의 포로에 불과하다.

 

영남인들의 DJ에 대한 증오와 반호남 정서는 멀쩡한 경상도 사람인 노무현조차 ‘비(非) 경상도 사람’으로 만들었다. 그의 조상이 원래 호남사람이었다는 헛소문도 결국 그들의 신념을 뒷받침하기 위한 졸렬한 흑색선전(마타도어)에 불과했다. 민주당에 대한 영남사람들의 정서도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정작 DJ에 대한 거의 병적인 증오와 선동(프로파간다)로 일관하는 일부 극우 파시스트들의 행보는 별로 문제가 아니지 않나 싶다. 그들의 병적인 적개심과 증오는 오히려 드러나 있어 다수 대중의 검증이라는 관문을 거쳐야 하니 말이다.

▲ <한겨레> 그림판(2009.8.20.) ⓒ 장봉군

<한겨레> 그림판의 장봉군 화백은 8월 20일 자 만평에다 ‘석방’이란 제목을 붙였다. 나는 한참 동안 그 그림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만평은 머리를 깎은 DJ의 영혼이 옥문을 나서는 장면을 잡았다. 감방 위에는 ‘색깔론 등 덧씌워진 부정적 이미지의 감옥’이란 글씨가 붙었다.

 

신문을 접으면서 나는 자신에게 되물어 보았다. 정녕 DJ는, 노벨평화상조차 ‘북한에 퍼 주기 한 공로’로 받았고, 심지어는 노벨상위원회에 뇌물을 쓴 결과라는 음해까지 창조해 내는 한반도 남동부 지역 사람들의 저 ‘맹목의 저주와 증오’로부터 벗어났을까.

▲ 김대중은 분단 사상 처음으로 북의 정상을 만나 6.15선언을 이끌어냈다.
▲ 1971년 대선 시기의 김대중. 그는 박정희에게 패배했지만, 강력한 대안으로 국민에게 각인되고, 가장 두려운 박정희의 정적이 되었다.

DJ는 일찍이 최대의 정적인 자신을 제거하려던 독재자 박정희의 공작에도 살아남았다. 그 대신, 영구집권을 꿈꾸었던 박정희는 자기 심복의 총에 맞아 숨졌다. 또 DJ는 대통령 당선인의 신분으로 김영삼 대통령에게 자신에게 사형을 선고했던 전두환·노태우의 사면을 건의함으로써 자신의 은원을 가장 이성적으로 정리한 이다.

 

그가 85년, 그 간난의 삶을 마치면서 자신을 가두었던 이 전근대적 정치 상황으로부터 자유로워졌으리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는 한국 현대사의 가장 예민하고 아픈 시기를 끌어안고 거기 정면으로 맞서면서 자신의 정치적 삶을 불살랐다.

 

그가 지향했던 민주주의와 자유, 평화는 화석이 아니라, 대중들의 일상적 삶의 가치로 내면화하게 되었다. 이루지 못한 조국 통일의 대업은 우리, 남은 사람의 몫이 되었다. 그가 뿌린 씨앗은 여전히 거칠긴 하지만 가능성의 이름으로 이 땅에 굳건히 뿌리박고 있다.

 

지금 DJ는, 그의 죽음은 오히려 우리와 우리 사회에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게 아닐까.

 

“나의 죽음으로 영남사람들은,
혹은 나를 증오하고 폄훼했던 대중들은
그 ‘맹목의 저주와 증오’에서, 그 견고한 ‘마음의 감옥’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이제 대중이 답할 차례다. 그리고 대중들이 그 답을 찾는 일은 곧 이 땅의 민주주의에 대한 성찰이 될 터이다. 그가 추구한 민주주의와 자유, 그리고 평화와 민족 통일은 한 정치인의 정치적 선택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분단 조국을 살아가는 동시대인 모두가 기꺼이 져야 할 역사적 과제인 까닭이다.

 

 

2009. 8. 21. 낮달

 

 

그날의 댓글들

풍경과시 2009/08/21 08:44

근거 없는 자신의 맹목적 증오를 지키기 위해서 그는 자신의 신념을 강화한다. 그래서 그의 증오심은 더욱 깊어지고, 더욱 치명적으로 바뀌어간다. 증오가 깊어질수록 자신의 정치적 선택은 요지부동으로 굳어가고 그것은 다시 자신의 증오와 적개심을 정당화해 준다. 결국 그들은 이 뿌리 깊은 증오의 악순환의 포로에 불과한 것이다. -낮달
 
정신병원을 차려 진료를 하셔도 될 듯합니다.
저도 경북 상주에서 나고 자라면서 어른들에게 학습받은 이유없는 증오를 일정정도 가지고 살았습니다. 대학에 가서야 그걸 깰 수 있었지만 완전한 치료는 아니었죠....
어쩌면 오늘 이 순간 김대중 대통령의 죽음이 제 정신병의 치료를 종료하는 계기가 되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픕니다. 참 훌륭한 분이구나 하는 생각을 지금 좀 더 심각하게 하게 되네요...
이북에 대한 생각이나 그 체제에 대한 선입관도 큰 정신병이란 생각을 요즘들어 자주합니다.
북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합니다.그냥 금강산이 아니라 평양시내의 한적한 곳이나 북의 어느 시골 마을을 그냥 사진기 들고 어슬렁거려 보고 싶은 생각 말입니다. 그리고 보고 듣고 느낀대로 가능하면 사람의 이야기 그 중에도 가슴이 짠해 오는 그런 이야길 하고 싶어집니다.
좋은 글 잘 읽고 일단 물러납니다.....
 
낙타 2009/08/21 13:57
그러게요...님 생각에 옷을 다시 여며봅니다...
 
낮달 2009/08/22 08:25
학습된 증오... 저도 그걸 버리는 데 꽤 시간이 걸렸습니다. 군대생활 할 때, 아주 친한 동기 중에 전남 순천 애가 하나 있었는데, 좀 별난 중대장 욕하면서 전라도를 갖다 붙였지요.... 녀석은 끝까지 무표정으로 침묵을 지키더군요. 지금도 마음으로 그 친구에게 사죄하고 있습니다...
 
이석호 2009/08/21 10:20
당신같은 사람이 있어 우리나라는 희망이 있습니다
 
낮달 2009/08/22 08:27
고맙습니다.
 
신호진 2009/08/21 10:40
자신부터 변하면 주변도 서서히 변할겁니다.
전 그렇게 믿으며 살아 가고 있습니다.
 
낮달 2009/08/22 08:28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녹두 2009/08/21 11:02
선생님 같은 분들이 영남에서
왕따 당하지 않는 '정상적인 세상'이
하루 빨리 오길 기원 합니다.
 
낮달 2009/08/22 08:27
'왕따' 수준은 아닙니다. 적어도 공개적으로 그런 정서를 표현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그런 정서가 옳지 않다는 공감이 보편화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지요.
역사는 발전하니까, 곧 옛말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소시민 2009/08/21 13:11
저의 경험입니다
전두환군사독재시절의 일입니다
김대중 전대통령께서 사형선고 받으신 후 미국으로 추방되었다가
다시 한국으로 되돌아오실때인 1985년인가로 기억됨니다
우리부대에서는(전군에서 똑같았지만) 매일 아침 병사들이 돌아가면서
김대중을 비판하는 5분스피치를 강제로 시켰었습니다.
또한 그 후 이어진 국회의원선거도 중대장의 잦은 면담과 강요로
거의 공개투표를 하다시피 했었지요
이러한 잘못된 학습의 영향도 있겠지만 금번 고 김대중대통령의 서거를 계기로
김대중이라면 무조건 싫어하고 배척했던 일부 사람들의 진심어린 반성과
사과의 의미로 고 김대중대통령의 영전에 국화 한송이 바치기를 기대합니다
이제 국민대화합과 남북통일 그리고 세계 평화의 시대로 가야하지 않겠습니까?
 
 
낮달 2009/08/22 08:29
동의합니다.
저도 80년 제대했는데, 그런 형편없는 지경까지는 경험하지 않았습니다...
 
밝은 눈 2009/08/21 11:29
경상도인만 그런 것 아니던데요. 지금도 서울에 있는 많은 보수층의 있는 분들은 아직도 그옛날에 많이 써 먹던 '빨갱이' '용공' '뇌물노밸평화상' 조금만 눈을 돌리면 들어볼 수 있더라고요.
그래서 난 '아직도 그런 정신나간 사람들이 많구나, 어떻게 빨갱이가 대통령 5년을 했는데 적화통일 되지 않았으며 노벨상을 주는 나라나 사람들이 뇌물받고 노벨상을 준다면 노밸상이 노밸상이 되겠느냐'고 말을 하기도 합니다.
어서 정신들 차려야 할텐데...
어서 잘못된 감옥에서 벗어나야 될텐데...
그러날이 오겠지요만...
 
낮달 2009/08/22 08:29
대표적으로 영남이지, 그런 정서는 전국적인 현상인 듯합니다. 그만큼 독재정권의 악선전이 먹혔다는 뜻이겠지요...
 
김갑수 2009/08/21 11:59
참으로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도덕적이면서도 예민한 감수성이 돋보입니다. 감사합니다.
 
낮달 2009/08/22 08:30
고맙습니다. 생각을 정리한다고 했는데, 미진한 점이 많습니다.
 
태초개벽 2009/08/21 12:03
가져가오.
 
낮달 2009/08/22 08:30
얼마든지...
 
밝은 세상 2009/08/21 12:41
단어 하나하나까지 끝까지 빠뜨리지 않고 정독하게 만드는 좋은 글이네요, 논술 선생님이신가 봐요^^. 선생님의 논리를 통해 최근 들어 욕을 먹으면 먹을 수록 도를 더해가는 막말시리즈 주인공들(조갑제, 김동길, 변듣보 등의 심리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좋은 글 감사하고, 훌륭하신 전교조 선생님들을 항상 응원합니다!!!!
 
낮달 2009/08/22 08:31
고맙습니다.
논술은 아니고 국어를 가르치지요.^^
이로사 2009/08/21 13:14
잘 만들어진 시민교육이란 학습된 증오를 갈아엎는 것 부터 시작해야 되는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퍼가서 게시하도록 할께요
 
낮달 2009/08/22 08:31
얼마든지...
 
Always Thanks 2009/08/21 13:26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학습된 맹목적 증오라, 정확하게 짚으셨네요.
(다른데로 가져가도 될까요?)
 
낮달 2009/08/22 08:31
물론입니다. 얼마든지...
 
dysuh 2009/08/21 13:41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낮달 2009/08/22 08:32
감사~^^
 
gyk 2009/08/21 13:46
"김대중이가 죽었다" 호칭문제로 주먹다짐
http://kr.news.yahoo.com/service/news/shellview.htm?linkid=33&articleid=2009082018150176270&newssetid=16
 
 
19일 광주 북부경찰서에 따르면 A(43)씨가 18일 오후 11시40분께 광주 북구 매곡동 한 마트에서 장을 보면서 "김대중이 죽었다. 좋은 사람은 다 떠나는 구나"라고 푸념하자 그 옆에 있던 B(39)씨가 김씨의 말을 듣다가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니 친구냐. 왜 함부로 말하느냐"며 뺨을 한 차례 때리고 이에 맞서 A씨도 같이 폭력을 휘두른 것.
 
문씨는 경찰조사에서 "김 전 대통령 서거로 우울해 하고 있는데 A씨가 그 분을 자기 친구인 것처럼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것이 고인을 무시하는 것 같아 순간 화가 치밀었다"며 뒤늦게 후회.
 
이런기사 어떻게 생각하쇼 왜 시러하냐고
김대중의 말중 압권인 말을 적어본다
 
이 김대중은 일생동안 거짓말이라고는 해 본적 없습니다" (1997. 10. 8일 관훈클럽)
"저는 일생에 거짓말한 일이 없습니다.(청중들 폭소) 저는 거짓말한 일이 없어요. 이것은 약속을 못 지킨 것이지 거짓말 한 것은 아닙니다. 거짓말한 것하고 약속했다가 못 지킨 것 하고는 다릅니다".

alxls 2009/08/21 14:49

너 정신병자지?
밥상머리 교육을 그렇게 받아오니까정신병자가된거다.
그렇게살지말아라 그렇게 살려면 정신병동이나들어가...
 
김의진 2009/08/21 13:44
인간의 본성은 ? 성惡설 ? 성善설 ?
 
사랑 2009/08/21 13:51
언젠가 아이들 학부모 모임때
대구 출신의 판사부인이 한 말이 떠오르는군요.
김대중이는 우리 고향에서는 취급도 안해준다라구요.
먹먹하고 울컥했던 기억이 떠오르는군요.
길게 길게 볼수록 참 다시는 볼 수 없는 거인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그냥 이민가고 싶다는 생각이 요즘 더 드네요.
낮달 2009/08/22 08:32
그래도 이 땅을 지키는 사람들 덕분에
이 나라에는 희망이 있지 않습니까? ^^
 
좋은글 2009/08/21 13:52
대단히 좋은 글입니다.
이런 생각을 가진 분들이 많아야 나라가 발전하고 이성적인 국가가 되겠지요.
강추합니다.
 
낮달 2009/08/22 08:33
감사~^^
 
moongchi 2009/08/21 15:03
For Korean Democracy
대한민국은 2009년 한국 민주주의를 가장 발전시킨 두 분의 전직 대통령들을 모두 잃었습니다. 한나라당이 원하는 세상, 언론장악으로 입으로는 국민을 현혹하면서 기득권 세력만을 위한 나라를 만들고 정권연장 하는데 거칠 것이 없어졌습니다.
 
야권의 단합만이 죽어가는 민주주의를 살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과거 우리는 분열로 인한 많은 실패를 경험했습니다.
 
국민들은 차기 대통령후보 1순위로 독재자의 딸 박근혜를, 가장 선호하는 정당은 부패 독재잔당 한나라당을 선택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국민들을 상대로 꺼져가는 민주주의를 살리려면 야권의 단합뿐이 없습니다. 야권 분열은 민주주의를 영원히 잃을 수 있는 행위입니다.
 
낮달 2009/08/22 08:34
DJ가 이룬 민주주의, 그걸 지키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은 사람들이 알고 있으리라 믿습니다...
 
해를그리며 2009/08/21 16:11
나이가 들면 도시의 삶을 정리하고 어딘가에 자리를 잡고 싶은데
그 삶의 주변 공간이 맹목적인 증오와 저주를 무의식적으로 학습되지 않은 사람들이었으면 하는 바램을 하는데 그런 곳을 찾는 것이 그다지 쉬워보이지는 않습니다.
주입시킨 이데올로기의 폐해가 너무나 큽니다.
 
낮달 2009/08/22 08:35
그런 이데올로기가 힘을 쓰지 못하는 날이 멀지 않으리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걸 버리지 못하는 한 우리가 '좋은 나라'를 이루는 것은 어려울 테고요...
 
수완인 2009/08/21 16:13
맹목적 반감-이 정답인 듯 합니다.
어찌 되어 건 영남인 상당수는 객관적이고 사실적, 논리적 사고는 미약합니다.
동고(同苦)도 어렵고, 동락(同樂)은 더더욱 어려울 것 같아요.
그런 시각에서 민족 통일인 듯 원치 않을 듯 해요.
 
카이엔 2009/08/21 16:21
잘읽었습니다...부끄럽습니다...
 
낮달 2009/08/22 08:36
천만에요. 부끄러움을 느끼시는 분들은 따뜻한 사람들입니다. 그 따뜻함이 얼음을 이겨내는 힘일 테고요...^^
 
정운현 2009/08/21 16:34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부디 그들이 그런 감옥에서 풀려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돌도 시간이 지나면 많은 회오를 느끼게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낮달 2009/08/22 08:38
고맙습니다.
그래야만 우리가 자유롭고 자랑스러운 시민이 될 수 있겠지요...
 
청산 2009/08/21 18:10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이번이 계기가 되어 다른 지역, 다른 사고, 다른 계층에 있더라도
한번 더 배려하고, 이해하는 마음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나만 행복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행복한 세상..
 
김대중 전 대통령님의 희망처럼
자유가 들꽃처럼 만발하고,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세상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낮달 2009/08/22 08:38
그런 세상이 설령 영원히 꿈에 그칠지라도
그런 세상을 상정하고 그것을 위해 땀흘리고 싸우는 사람들 때문에 세상은 아름답고 빛나지 않나 하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남원기 2009/08/21 18:55
저는 50대 초반의 경상북도 출신人입니다.경상도 사람들 다수가 님게서 말한대로 맹목적 반감을 가지고 있는게 사실입니다만, 또한 주위를 둘러보면 많은 가진자들이 또한 그러 합니다.(소위 말하는 기득권자 들..) 그리고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김대중 전대통령에 대한 무조건적인 맹신도 간과해서는 안될 것 같습니다. 이 또한 우리가 바꾸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치루어야 할 총선에서 지역주의를 이용한 선거가 되지 않도록 말입니다.
 
낮달 2009/08/22 08:37
생각보다 사람들은 훨씬 슬기롭고 현명합니다. 걱정하시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맹신은 일부의 문제지요, 대부분은 균형과 절제를 잃지 않습니다.
 
플라치도 2009/08/22 08:30
요즘 다시 촘스키의 저작들을 읽고 있습니다.
"언론은 잘 짜여진 프로파간다 시스템이다."
지난 세월뿐 아니라 지금도 프로파간다 시스템의 희생양들이 너무 많습니다.
민주주의의 확산을 막는 최고의 방법은 국민의 관심을 딴 데로 돌리는 것, 우민화라는 거지요.
'그들'은 그냥 싫은 것입니다. 자유롭지 못한 삶을 사는 노예들이지요.
정말 깔끔하고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낮달 2009/08/22 08:40
고맙습니다.
두분 전직 대통령의 죽음을 통해서 시민들이 자신의 구각을 벗고 새롭게 깨어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민주주의와 평화, 통일, 인권 등을 새롭게 성찰하면서 말이지요.
 
낙화암 2009/08/22 21:56
낮달님의 글 참으로 아프게 읽었습니다
읽는 제 마음이 이럴진대 피해 당사자인 그 분은 얼마나 고통스러우셨을까요
색깔장사로 톡톡히 재미본 장사치(정치모리배)들과 맹목적으로 묻지마식 지역주의에 매몰된
남동쪽 사람들이 낮달님의 이 글을 읽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서거 다음날, 이웃 아무개 엄마가 전화 걸어 대뜸 하는 말,
`김대중이 죽었다며?` 하는데 순간 머릿속이 멍했습니다.
불쾌함과 모욕을 떠나 며칠 내내 그 말이 화인처럼 느껴지고 찢겨진 조국의 깃발을 보는듯
가슴이 답답했습니다
어쩌다가....정말 어쩌다가
 

낮달 2009/08/24 15:02
적어도 대구 경북에선 DJ의 서거가 지나가는 풍문에 그치는 듯합니다. 맹목적 증오나 미움이 역사나 삶에 대한 성찰마저 방해하는 게 아닌가 싶어 씁쓸하기 짝이 없지요...
 
어드민 2009/08/29 21:57
어떤 분인지 좀 보고싶어질 정도로 예리하게 쓰셨습니다. 오래전 (이런 류의 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만, 하도 이슈화 되어서..) '주유소 습격사건'이란 영화를 보았는데 주유소를 왜 그랬냐는 질문에 '그냥'이란 답변이 나오더군요. 너무나 어이가 없었습니다. 우리 대한민국은 '그냥'의 이데올로기 전쟁과 '그냥'의 종교전쟁만 사라지면 사회경쟁력이 배는 더 늘지 싶습니다. 내 몸 속에 흐르는 피는 좌측 피지만 내 몸뚱어리가 태어난 곳은 우측입니다. 내 몸 속의 피가 좌측의 피라는걸 깨달은건 좀 늦은 30대였습니다. 아픈 가슴으로 좌우를 품어볼려 노력했고 또 노력하고 있지만 너무 힘듭니다. '그냥'에는 그 누구도 덤빌 수 없는 강력한 마력이 있습니다. 너무 가슴 아픕니다. 하지만 글을 읽으며 고마운 마음, 행복한 마음이 가득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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