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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향 칠곡과 ‘사드(THAAD)’, 그리고 이웃 성주

by 낮달2018 2021. 7.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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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문제로 홍역 치른 경북 칠곡과 성주군

▲ 사드 (THAAD, 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발사 실험 장면

얼마 전,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문제로 한바탕 홍역을 치렀던 칠곡은 내 고향이다. 고향 집을 정리하고 그곳을 떠난 지 20년이 얼추 가깝다. 이제 그곳에 남은 것은 조부모와 부모님 산소뿐이다. 그래도 거기엔 아직도 고향을 지키고 있는 옛 동무가 몇 있고, 어린 시절 놀던 동산도 그대로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던 깡촌은 경부고속도로가 지나가고 인근 구미가 공업도시로 발전하면서 그 근대화의 은전을 입었다. 70년대부터 시작한 참외와 수박 등 환금작물 재배로 소득이 늘고 구미에서 유입되는 노동자들 덕분에 인구가 급격히 증가하여 마침내 10년 전에는 읍으로 승격하였다.

칠곡의 군청 소재지는 왜관(倭館)이다. 왜관은 원래 조선시대에 일본인이 와서 통상(通商)하던 곳, 또는 거기 설치한 행정기관, 일본인의 집단 거주지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조선시대의 왜관은 낙동강 건너편에 있었으나 1905년에 경부선 철도역이 지금의 왜관 지역에 설치되면서 행정구역의 이름도 왜관이 된 것이다.

캠프 캐럴, 지역 경제 도움 준 ‘자유의 십자군’

왜관면이 읍으로 승격한 것은 한국전쟁 1년 전인 1949년 8월이었다. 그리고 이듬해 이 지역에선 한국전쟁 때 최대 격전이었던 ‘낙동강 전투’가 벌어졌다. 낙동강 전투와 함께 가산 다부동 전투 등으로 이름을 널리 알린 왜관에는 1959년 아시아 최대 군수 보급기지라는 캠프 캐럴(Camp Carrol)이 들어왔다. 칠곡이 ‘호국의 고장’임을 자임하는 근거다.

대개 한국인들에게 그러했듯 한국전쟁 때 북한의 침략을 물리쳐 준 강력한 우방국가 미국은 우리에게는 가까운 데 있는 가장 친근한 이웃이었다. 그뿐인가. 왜관 땅 97만 평에 자리 잡은 캠프 캐럴은 꽤 오랫동안 지역 경제를 떠받쳐 준 ‘자유의 십자군’이었다.

▲ 칠곡군 왜관읍 전경. 시가지는 낙동강과 미군기지(오른쪽 위)에 끼어 있다. ⓒ 경북매일

70년대 닉슨 행정부 때부터 시작된 주한 미군 감축이 이어지면서 왜관의 ‘경기’는 끝났다. 80년대 광주항쟁으로 환기된 미국의 지위와 역할에 대한 새로운 인식에 힘입으면서 지역 사람들도 냉정해진 듯했다. 미군 기지는 더 이상 지역 경제에 도움이 되지도 않았으며 지역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는 관점도 자라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캠프 캐럴에 대한 지역 주민들의 정서가 변곡점을 돈 것은 2011년, 1970년대에 이 부대에서 근무한 미군이 기지 안에 수천 킬로그램의 고엽제 ‘에이전트 오렌지’를 묻었다고 폭로하면서다. 그것은 막연하게 이롭지만은 않은 존재로 인식해 온 기지(미군)가 우리의 삶을 위협하는 장애물일 수 있다고 여기게 된 계기였다. [관련 글 : 캠프 캐럴에 묻힌 고엽제’, 혹은 주둔 50(2011/05/19)]

왜관 사람들뿐 아니라, 한국인에게 있어 미국에 대한 인식은 매우 양가적이다. 주둔군의 횡포와 범죄에 대해서 분노하면서 민족적 동기를 떠올리는 피 뜨거운 이들이 있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선 여전히 미국을 ‘꿈의 나라’로 여기고 거기서 모든 ‘표준’을 구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아마 대부분 사람들은 ‘민족적 분노’와 ‘친미 주류계급’ 사이의 어느 지점에 말없이 서 있을 것이다.[관련 글 : 좋은 이웃인가, ‘힘센 이웃인가, 우리 안의 미국, 우리 밖의 미국(2012/07/27)]

사드 배치 후보지로 왜관이 떠오른 것은 지난해부터였다. 긴가민가하면서도 나는 캠프 캐럴 덕분에 난데없는 사드 기지가 들어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입맛이 썼다. 시간을 끌던 사드 배치 관련 발표가 임박하면서 그예 칠곡이 가장 강력한 후보지로 다시 떠올랐다.

▲ 왜관 읍내 거리에 사드를 반대하는 현수막들이 줄지어 걸려 있다. ⓒ 오마이뉴스

보수의 본고장, 지역 이해에 ‘정부를 들이받다’

나는 좀 심란해졌다. 사드가 미국의 이해를 대행할 뿐, 정작 한반도의 안보에는 별 쓰임새가 없다는 것 정도야 제대로 뉴스를 챙겨보는 이들은 다 아는 일 아닌가 말이다. 그런데 과연 내 고향에선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나는 오래 길들여온 우리 지역의 보수성이 이 신종 무기 체제 앞에서 무력하지 않을까 저어했던 것이다.

그러나 온 국민의 이목이 쏠린 가운데 7월 9일, 칠곡에선 3천 명이 모인 ‘사드 배치 반대 범군민대회’가 치러졌고, 이 집회를 통해 주민들은 사드에 대한 반대를 분명히 했다. 군수와 군 의회 의장은 비장하게 머리까지 깎았다. 졸업 후에 만난 적은 없지만, 군수는 고교 동기고, 군 의회 의장은 같은 마을의 후배다.

정치인이 표를 위해서 무슨 말인들 못 할까마는 사드에 반대하는 일은 벌써 그런 낌새를 보이고 있듯 ‘비애국’으로 몰릴 수도 있는 일이다. 고교 졸업 후 지방공무원으로 임용되어 마침내 선출직 군수로 금의환향한 칠곡군수가 어떤 정치적 입장인지는 잘 알지 못한다.

나보다 두 해 아래인 군 의회 의장도 마찬가지다. 잘은 몰라도 단기 하사로 병역을 마치고 고향에 돌아와 농사를 짓다가 지방 의회에 진출한 이 3선 의원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사드 배치 반대뿐 아니라 미군 부대의 철수까지 주장했다고 한다. 그런 주장이 자신의 정치적 입장과 어떻게 이어지는지도 나는 잘 모른다.

그러나 두 사람은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새누리당 당적을 가진 정당인이니 그걸 기준으로 유추하자면 그들의 정치적 지향을 파악하는 게 그리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여러 매체를 통해 보도된 범군민대회 소식을 읽으면서 이들과 칠곡군민들의 주장의 본질은 무엇일까 궁금했다.

‘절대 불가’와 ‘우리 지역 불가’의 차이

사드 배치 반대 의견은 두 가지로 갈릴 수 있다. 사드는 배치할 수 있지만, 우리 지역은 안 된다는 것과 사드 배치 자체를 반대하는 것 말이다. 그러나 보도된 사실을 살펴보면 칠곡에서는 사드 배치 자체에 대한 찬반은 드러나지 않고 있다.

칠곡군수는 “사드 배치 선정에 고려되어 할 사항으로 군사적 효용성, 국민의 안정, 환경 문제가 있는데 단순히 칠곡에 미군 부대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사드를 배치한다는 것은 어처구니가 없다.”고 주장하면서 “사드 배치의 원천적인 문제는 정부의 몫으로 돌리겠다.”라고 밝혔다고 한다.[관련 <오마이뉴스> 기사]

사드의 칠곡 배치설에 대해서 경상북도 지사는 “국가안보 차원의 결정이라는 점을 이해한다.”고 하면서도 “위치와 부지 등을 감안할 때 칠곡 배치는 적절하지 않다.”라는 입장을 보였다. 두 사람의 태도는 대체로 “사드가 필요하든 필요하지 않든 간에 우리 지역에 들어와서는 안 된다.”라고 정리될 수 있겠다.

대구 경북 지역의 여당 의원들의 의견도 “사드 배치는 찬성, 그러나 칠곡엔 안 된다.”다. 사드로 말미암아 입게 될 불이익 때문에 반대하지만 다른 지역에 가는 것은 용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본인들은 부인하겠지만 이는 “공공의 이익에는 부합하지만, 자신이 속한 지역에는 이롭지 아니한 일을 반대하는 이기적인 행동”을 뜻하는 ‘님비(NIMBY: Not In My Backyard)로 볼 수밖에 없는 지점이다.

▲ 성주읍 성산 정상에는 성산산성이 있고 주변에 70여 기의 가야 무덤들이 분포하고 있다.

일주일 뒤인 13일, 국방부는 사드의 “최적의 배치 부지로 경상북도 성주지역을 건의하였다”라고 발표함으로써 이 불씨는 이웃 동네인 성주로 옮아갔다. 내가 그걸 ‘다행’이라고 생각했는지 어땠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 나는 무심한 관전자였던 것 같다. 왜냐하면 그게 구미에 사는 내 이해와는 무관(!)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시간을 두고 전개되었던 칠곡에 비기면 성주가 배치 부지로 발표되는 과정도 이에 대한 성주 사람들의 대응도 매우 빨랐다. 칠곡에서의 반대운동이 준 학습효과 덕분이었을 것이다. 그 위치가 ‘성산리’라고 했을 때 나는 성산 꼭대기에 있는 가야 시대의 고분군을 떠올리고 있었다.

성주는 내가 해직 시절에 이태쯤 상근한 지역이다. 성산리의 조립식 건물에 사무실을 들이고 매주 한두 차례씩 현직 조합원들과 회의를 하고 가끔 학교 방문을 나가곤 했다. 복직하면서 성주와의 인연은 끊어졌는데 그때 만났던 성주 농민회의 활동가들과 교사들을 지금도 만나곤 한다.

13일에 성주군민 5천여 명은 읍내 성밖숲에서 범군민 궐기대회를 열었다. 사드 성주 배치 반대 범군민비상대책위원회는 “사드 배치는 군민 4만5천 명의 60%가 참외 농사를 짓는 성주 생존권을 위협하는 것”이라며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저지할 것”이라고 밝히고 군수를 비롯한 10여 명이 혈서를 쓰고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 7월 17일에 열린 성주군민들의 촛불집회. 주민들의 열기가 뜨거웠다고 한다. ⓒ 프레시안

21일에는 군민 2천여 명이 전세버스를 타고 서울로 가는 상경 투쟁을 벌였다. 아니나 다를까, 정부와 경찰 쪽에서 ‘외부세력’ 운운하자 비대위는 파란색의 머리띠와 나비 모양 리본 따위로 정부의 ‘갈라치기’에 대처했다.

파란 나비 리본에 담긴 평화의 소망

평화를 뜻하는 파란 나비 리본 달고 상경한 성주 사람들을 바라보며 나는 그들이 우선 한고비를 잘 넘기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들의 사드 반대가 ‘(다른 지역은 몰라도) 우리 동네엔 절대 안 돼’를 넘어서 사드 체제가 한반도와 동북아의 갈등과 이어지며 동북아 평화를 해칠 수도 있음을 알고 있다는 뜻이었기 때문이었다.

현장에 가 보지는 않았지만 나는 성주군민들이 뿜어내고 있는 사드 반대의 열기가 예사롭게 느껴지지 않았다. 칠곡 군민대회를 바라보는 것과는 어쩐지 조금은 다른 느낌이었다. 처음이니까 기세등등하게 시작했지만, 이런저런 회유가 들어오면 적당히 타협해서 꼬리를 내리는 게 보통인 보수적인 지역인데 어째 이번 싸움은 중동무이가 될 것 같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20일 밤에 성주읍에 사는 농민회의 활동가 후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는 그렇게라도 성주의 상황을 알아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는 싸움의 전망과 농민회의 역할 등을 에둘러 물어보았다. 그는 의견이 갈리는 부분이 없지 않지만, 생각보다 사람들이 잘 싸우고 있는 것 같다고, 마이크를 들고 집회를 이끄는 친구가 농민회장이라고 말해주었다.

아마, 친구는 내가 전화를 건 의도를 알아챘을 것이다. 내가 무얼 우려하고 무얼 궁금해하는지를 알고 있었을 것이다. 상경 투쟁을 물었더니 그는 거기엔 사정이 있어서 못 간다며 토요일 밤에 군청 마당에서 집회가 있을 거라고 말해 주었다. 나는 혹시 가 보게 될지도 모르겠다고 하면서 전화를 끊었다.

다음날 집단 상경한 성주군민들의 집회가 서울역 앞에서 ‘외부세력을 차단’한 상태에서 무사히 치러졌다. 당국에 빌미를 주지 않기 위해서 그런 조치를 할 수밖에 없었겠지만 성주군민들의 정부에 대한 불만은 대단했던 것 같다. 그들은 항변했다. “누가 외부세력입니까?” 경찰청장은 성주 출신의 출향 인사도 ‘외부세력’이라고 했단다. 기발한 해석이다. 그런 순발력(?)이 그를 그 자리에 앉게 했는지 모르지만 말이다.

▲ 평화의 상징 파란 리본

나는 멀찌감치 보도를 통해서만 성주 사람들의 싸움을 지켜보고 있었다. 오해하지 말기 바란다. 나는 다만 단순히 이웃 동네 주민으로서 그들이 싸움에서 뜻한 바를 이루기를 응원할 뿐이다. 물론 가까이 간다고 해서 내가 그들을 도울 일도 없겠지만 말이다.

나는 토요일 밤에 성주에 가지 않았다. 대신 나는 여러 지면에 실린 성주 사람들의 상경 투쟁 이야기를 꼼꼼히 읽었다. 일요일 오후에 <한겨레> 기사 “성주군민 150여 명, 4·16 광장 찾아 ‘세월호 서명’”을 읽으면서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광화문 4·16 광장 진실 마중대에 성주에서 올라온 30대 여성들이 찾아왔다. 이들은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 반대 집회’에 참여한 뒤 진실 마중대를 찾아온 것으로 보였다고 한다.

이들 성주군민 150여 명은 진실마중대에서 실시하고 있는 두 가지 서명(‘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에 대한 정부의 방해 행위 중단과 성역 없는 조사 수사 보장, 특별법 개정 촉구 범국민 서명’과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고 김초원, 이지혜 선생님에 대한 순직 인정을 요구하는 서명’)에 참여했고 서명을 맡은 자원봉사자들에게 속내를 털어놓았다.

“성주에서 사드 배치 문제를 직접 겪다 보니, 언론의 왜곡 보도가 심각한 걸 알게 됐다. 세월호 참사 때, 배 보상 문제만 강조하는 일부 언론 보도를 보고,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것 같아서 세월호 유가족들한테 미안했다.”

“사드는 성주 군민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의 생명에 관한 문제다. 세월호 참사도 안전과 생명에 관한 문제니 함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민과 소통하지 않는 ‘불통’인 줄은 알았지만, 성주에 사드 배치 과정을 보면서 더욱 절실히 느꼈다.”

“세월호와 밀양 송전탑, 제주도 해군기지 반대를 위해 목소리를 낸 분들에게 죄송함을 느끼게 됐다. 앞으로 사회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겠다.”

사드 배치를 찬성하는 보수 진영과 주류 언론 등에서 사드 배치를 반대하는 지역 주민들의 싸움을 ‘님비’로 흘겨보고 있을 때 이들은 그렇게 항변했다. “우리를 지역이기주의로 몰지 말라. 이것은 생존이 걸린 문제다. 우리가 현 정부를 지지한다고 해서 그런 위험을 감수할 순 없다. 인구가 적어도 다 같은 대한민국 국민이다.”

최근 주류 언론들은 사드 레이더 전자파에 대한 우려가 과장되었다, 사드 전자파 위해론은 ‘괴담’이므로 여기에 부화뇌동할 필요가 없다고 강조한다. 이 논리는 성주 사람들의 분노와 저항이 괴담 탓이라는 전제 위에 서 있다. 그러나 무지렁이 농부로 참외나 수박 농사를 자으며 살고 있지만, 이들은 바보가 아니다.

사드는 모두의 문제! 정답은 연대다

성주에 사드가 배치되면 북한은 물론, 중국과 러시아 같은 나라로부터 선제 타격을 받을 수도 있다고 우려한다. 또 ‘사드 참외’라는 이야기에서 드러나듯 사드 체제가 야기할 불확실성이 결국 농업 생산은 물론 지역공동체의 미래마저 불투명하게 할지도 모른다고 여기고 있는 것이다.

물론 싸움에 나선 성주군민들 모두가 이러한 상황 인식에 이르렀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비록 농사를 짓고 살지만, 지금껏 한국 사회에 연출된 지역과 정부 간 다툼이 어떤 방식으로 전개되는지, 그것들이 언론을 통해 어떻게 왜곡되는지를 너무 잘 학습해 오지 않았는가.

송전탑을 막기 위해 노구를 이끌고 싸웠던 밀양의 할매·할배들, 제주도 해군기지에 맞서 싸워 온 강정마을 사람들, 자식들을 죽음으로 내몬 세월호의 진실을 밝히려 힘겹게 달려온 학부모들을 정부와 주류 언론들이 어떻게 왜곡하고 버렸는지를 그들도 이제야 새삼 깨닫게 된 것이다.

▲ 사드 배치 예정지인 성산포대에서 바라본 성주읍 시가지 ⓒ 연합뉴스

4·16 광장에 와서 서명하고 그간의 무관심을 사죄한 성주 사람들의 소식은 뒤늦게 알려졌다. 이 소식을 접한 누리꾼들은 저마다 뜨거운 연대와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고.

“이렇게 한 사람 한 사람이 정부에 당하면서 사회문제에 눈을 뜨고, 약자에 공감하게 된다는 것이 안타깝지만, 그래도 그 마음 전하러 오신 발걸음들이 참 소중하다.”

“진실의 편에 서는 한 혼자만은 아닐 겁니다. 힘없는 소수의 힘은 연대뿐입니다.”

새로 한 주가 시작되었다. 이번 주, 성주 사람들의 싸움은 어떻게 진행될까. 오늘 10시부터 성주 사드철회 투쟁위원회가 성산포대와 성주군청 대회의실에서 새누리당 원내지도부와 정부 인사가 참석한 가운데 면담을 하고 있다고 한다.

한때 대안으로 논의되던 성주 내 제3 사드 후보지에 대해선 정부는 물론이고 성주투쟁위도 불가하다고 밝힌 상태다. 현실적으로 배치 철회의 가능성도, 군민들이 이를 수용할 가능성도 지금으로선 거의 없어 보인다. 마주 향해 달리는 열차처럼 이 싸움의 귀추가 위태위태하게 보이는 것은 그 때문이다.

성주 사람들의 싸움이 승리할 수 있을지, 국가와 ‘안보’ 앞에 무력하게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민의 패배’에 더 익숙하다. 안보 이데올로기로 공격해 오는 국가의 물리력 앞에서 손을 들어야 하는 이웃들의 모습을 그리는 것은 너무 씁쓸하다.

어쨌든, 조만간 성주에 한 번 다녀와야겠다.

* 따끈한 소식이다. 성주에 온 새누리당 지도부는 주민대표들과의 간담회를 위해 성주군청에 도착했지만, 이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새누리당 장례식’ 퍼포먼스를 준비하고 군청 앞에 모여 있었던 군민 500여 명이었다. 구체적인 내용은 보도된 대로다.


2016. 7. 26.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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