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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선산(구미) 이야기

‘노약자석’과 ‘노약좌석’

by 낮달2018 2019. 7.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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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구미 시내버스의 배려석 

▲ 구미의 모든 시내버스의 배려석에는 무슨 까닭인지 '노약자석' 대신 '노약좌석'이라 쓰여 있다.

교통약자법에 따른 ‘노약자석’

 

시내버스나 지하철에는 ‘노약자석’이 있다. ‘노약자(老弱者)’란 ‘늙은 사람과 약한 사람을 아울러 이르는 말’(<다음 한국어사전>)이니 노약자석은 말 그대로 노인을 포함한 장애인, 임신부 등 교통약자를 배려한 좌석이다. 서서 가기에 불편한 사람들을 위해 자리를 양보해 달라는 뜻을 담고 있는 자리다.

 

이 노약자석은 지역에 따라 이름을 달리 쓰긴 하지만 법률에 근거한 ‘편의 시설’이다. 2005년에 최초로 제정된 이래 2016년에 개정된 법률 제13978호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약칭:교통약자법)이 그것이다. 이 법률에서 “‘교통약자’란 장애인, 고령자, 임산부, 영유아를 동반한 사람, 어린이 등 일상생활에서 이동에 불편을 느끼는 사람”이다.

 

법률로 정해지긴 했지만, 이 법률이 강제성을 띠고 있는 것은 아니다. 교통약자에 포함되지 않는 젊은이라도 몸이 불편하면 노약자석에 앉을 수 있고, 노약자가 자리를 비켜달라고 하는데 자리를 내어주지 않는다고 해서 법적 처벌을 받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 서울 지하철 임산부 배려석

교통약자들의 이동 편의를 증진하기 위해 법까지 만들었지만 사실 이는 법률적 강제 대신 사회 구성원들의 배려와 희생을 겨냥한 것이다. (2014년 도입된 서울 지하철 임산부 배려석까지 포함하여) 이런 배려가 얼마나 유기적으로 작동하는가 하는 것은 한 사회의 성숙도를 드러내는 지표가 될지도 모르겠다.

 

교통약자에 대한 배려 ≒ 사회적 성숙도

 

뉴스와 가십에 가끔 오르내리는 노약자석이나 임산부 배려석을 두고 벌어지는 아름답지 않은 풍경은 여전히 우리 사회가 장유유서의 경직된 도덕관이 우선인 사회라는 것을 드러내 준다.

 

노약자석이 자신들을 위한 자리라고 생각하는 일부 노인들로 인해 빚어지는 갈등이 결국 세대간 이해 충돌로 이어지고 있는 풍경은 씁쓸하기 짝이 없다.

▲ 지역에 따라 교통약자를 배려하는 자리는 이름이 다르다. 서울(위), 부산(가운데), 마산(아래).

한때 ‘노약자석’으로 통일되어 있었던 이 배려석은 지역에 따라 달리 쓰이는 듯하다. 서울시 지하철은 ‘노약자·임산부·영유아 동반자 좌석’이라는 긴 이름을 쓰고, 부산은 ‘장애인·노약자·임산부를 위한 좌석’, 경남 마산은 ‘배려석’이라는 이름을 쓰고 있다. 대체로 ‘노약자석’으로 쓰는 경우가 일반적인 것 같다.

 

구미에는 ‘노약좌석’이 있다

 

지하철이 없는 우리 지역에서는 시내버스에 ‘노약자석’이 설치되어 있는데 웬일인지 그 이름이 ‘노약좌석’이다. 내가 즐겨 이용하는 버스에만 그런가 했더니 시내에서 운행하는 모든 버스에는 같은 스티커가 붙어 있다.

▲ 노약자석과 노약좌석

‘노약좌석’. 그게 노약자석을 가리키는 이름임은 분명한데 어쩐지 거시기하다. 굳이 풀면 ‘노약 자리’쯤 되겠는데, ‘노약자 자리’인 ‘노약자석’과 비기면 뜻이 불완전한 것이다. 왜 저런 온전하지 못한 이름이 붙었는가 궁리해 봐도 마땅한 답을 찾기 어렵다.

 

글쎄, 시내버스조합 같은 데 따로 물어보지는 않았다. 짐작건대 제작과정에서 ‘노약자석’을 잘못 쓰는 바람에 대량으로 스티커가 인쇄된 게 아닌가 싶을 뿐이다. 어쨌든 버스를 타고 다니면서 ‘노약좌석’ 표시를 볼 때마다 실소하지 않을 수가 없다.

 

 

2017. 2. 27.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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