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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선산(구미) 이야기

구미 지산동 샛강의 ‘벚꽃 행렬’, ‘소문내지 말라’고요?

by 낮달2018 2021. 4. 2.

코로나19가 강제하는 ‘비대면’의 꽃놀이 장소로 추천하는 샛강생태공원

* 사진은 누르면 큰 사진으로 볼 수 있음.

▲ 생태공원으로 거듭난 공원의 전체 면적은 습지를 포함하여 25만4천㎡, 길이는 2.5㎞, 둘레가 5.6㎞다. 샛강 둘레는 벚꽃의 행렬이다.

벚꽃의 계절이다. 코로나19 탓에 내로라하는 벚꽃 축제는 베풀어지지 못해도 곳곳에서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이 이 꽃의 향연은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 여느 해라면 남도의 군항 진해에서 시작된 벚꽃 물결이 북상을 시작할 무렵이다. 그러나 서울 벚꽃100년 만에 가장 빨리 피었듯 올 벚꽃의 개화엔 지역의 편차가 거의 없다.

 

지난 주중에 울산에 다녀왔다. 길가에 활짝 핀 벚꽃 행렬을 보면서 이쪽이 역시 구미보다 이른가 보다, 여겼는데, 다음날 돌아와 보니 웬걸, 구미에도 벚꽃이 이미 필 만큼 피어 있었다. 27일 오전에 들른 금오천 주변은 벚꽃 구경 나온 시민들로 바글바글했다. 사진 몇 장을 찍고 서둘러 떠나면서 벚꽃 좋은 데는 여기 말곤 달리 없는가 하고 머리를 갸웃했다.

 

다음날(28일), 오전에 벚꽃 가로수로 유명한 강변도로로 가볼까 하고 나섰다가, 언뜻 멀리 아스라하게 보이는 벚꽃 물결에 홀려 차를 돌려 닿은 곳이 지산동 샛강생태공원이었다. 낙동강 본류에서 갈라진 지류라 ‘샛강’으로 불리었지만, 샛강은 강의 기능을 잃으면서 점차 습지로 바뀐 곳이다. 4대강 사업으로 인근 해평습지가 사라지면서 샛강은 이 지역의 마지막 습지가 되었다.

 

샛강은 연, 줄, 가래, 마름, 물옥잠 등의 식물상(相)과 잉엇과 어류(붕어, 가물치), 식용 달팽이, 황소개구리, 왜가리, 백로, 논병아리 등의 동물상을 갖춘 생태계를 이루었다. 시에서 이곳을 생태습지로 조성하고 시민의 휴식 공간과 자연 친화적 체험 학습장으로 꾸미면서 샛강은 생태공원으로 거듭났다. 공원의 전체 면적은 습지를 포함하여 25만4천㎡, 길이는 2.5㎞, 둘레가 5.6㎞다.

 

생태계에 아둔한 나는 공원이 소개하고 있는 ‘식물상(어느 특정 지역에 생육하고 있는 식물의 모든 종류)’과 동물상을 두루 살피지는 못한다. 그러나 해마다 여름이면 무성하게 자라는 습지를 뒤덮는 연꽃이나, 겨울이면 찾아오는 큰고니, 재두루미, 청둥오리, 논병아리 따위야 알고도 남는다.

 

조용한데, 경치도 빠지지 않네 

 

▲ 샛강을 가로지른 도로 쪽에서바라본 샛강의 위쪽. 여름이면 연꽃으로 뒤덮이는 수면이 장관을 이룬다. 아래쪽에는 떨어진 꽃잎이 하얗다. 
▲ 늘어진 벚꽃 가지 저편으로 흐려진 벚꽃 행렬과 마른 갈대밭이 연출하는 빛의 조화가 아련하다. 

겨울 들면서 공원이 탐방객의 출입을 막은 것은 조류 인플루엔자(AI) 탓이었다. 어느 결인가 출입 통제는 풀렸고, 그간 강을 가로질러 건설하던 다리도 완성되는 등 우회도로 공사도 막바지였다. 공원의 출입이 풀린 걸 사람들이 알지 못했던가, 일요일인데도 샛강 주변은 한적했다.

 

주변이 너무 고즈넉해서 나는 저도 몰래 조심조심 발걸음을 옮겨야 했다. 한 시간가량을 머물면서 내가 만난 사람은 주변에서 텃밭을 가꾸던 중년 남자 둘과 쑥을 뜯던 부인뿐이었다. 두 사람과 나는 공원의 풍경에 관해 수작을 나누었다.

 

“어제 금오산에 갔더니 벚꽃 구경 온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던데 여긴 한적하네요. 금오산보다 백번 낫습니다.”

“그럼요. 조용한데다 경치도 안 빠지니 최고지요. 소문내지 마세요. 사람들 몰려올까 겁나니까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그에게 동의한다는 뜻에서 소리 내어 웃었다. 정말이었다. 모르긴 해도 지역 토박이가 아니면 샛강을 모르는 사람도 적잖을 것이다. 생태공원이 조성되어 있으나, 주변에는 변변한 편의시설도 없다. 관리사무소와 한쪽에 관망대가 덩그렇게 서 있을 뿐, 주변에는 탐방객들을 맞을 찻집이나 음식점은 구경조차 할 수 없다. 둘레길 중간에 조그만 구멍가게 하나가 차를 판다고 붙여 놓았으나 나는 그 집을 이용해 보지 못했다.

 

▲ 강의 아래쪽으로 드는 길목.  벚나무 사이로 드러난 수면은 송강 정철의 <관동별곡>에서 말하는 ‘십리 빙환’ 같았다. 
▲ 렌즈를 통해 본 강 건너편. 뭉개진 벚나무 배경의 엷은 분홍빛이 몽환적이다. 
▲ 막바지 공사 중인 우회도로가 강을 가로지른다. 멀리서 바라본 다리와 건너편 아파트 단지가 아련하다. 

그러나 그건 샛강생태공원의 장점일지도 모른다. 익숙한 소비에서 벗어나 가난하게 샛강을 둘러보는 것도 훨씬 담백한 꽃놀이가 아니던가. 둘레길 곳곳에 쉼터가 서너 군데 있고, 강 안으로 휘돌아 나오는 탐방 데크 길도 갖추었다. 곳곳에 식생과 생태를 알리는 안내판이 있고, 조류관찰대도 몇 군데 있다.

 

사람 물결에 밀리지 않으면서 호젓하게 샛강 주위 산책길을 돌면서 둘러보는 풍광은 쏠쏠하다. 벚꽃은 풍경으로도 배경으로도 그만이다. 매화보다 훨씬 풍성한 꽃잎을 넉넉하게 매달고 휘영청 수면에 가지를 드리우고 선 벚나무는 흐린 날에도 수면에 자신의 그림자를 적시고 있었다.

 

다음날(29일)과 그다음 다음 날(31일)에도 나는 샛강에 들렀다. 첫날은 흐렸고, 이틀째 날은 먼지가 심했다. 어제 들렀을 때는 그중 맑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황사가 심해져 나는 정오가 되지 않아 샛강을 떠났다. 사진을 보정하면서 나는 사흘간 렌즈에 담은 풍경을 천천히 복기해 보았다.

 

그간 나는 가끔 아내와 함께 샛강 둘레길을 돌곤 했다. 어쩌다 사람을 만날 뿐,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고즈넉한 호숫가를 도는 시간이 좋았다. 둘레길을 한 바퀴를 돌면 4, 50분쯤 걸리니 걷기 운동에도 제격이다. 게다가 길은 포장되지 않은 모래땅으로 된 흙길이다. 인근 저수지 주변에 조성해 놓은 ‘데크’ 산책로에 비길 바가 아닌 것이다.

 

강변체육공원으로 뻗은 도로가 양분한 샛강은 위쪽은 연밭이 중심, 아래쪽은 겨울 철새들의 서식지다. 위쪽은 물결이 찰랑이는데 비겨 아래쪽 수면은 한결 잔잔하다는 걸 사진을 찍으면서 깨달았다. 육안으로는 무심코 스쳤으나 렌즈에 담긴 수면은 그걸 확연하게 드러낸 것이다. 햇빛에 반사된 수면은 송강이 <관동별곡>에서 노래한 ‘10리(里) 빙환(氷紈)’(빛이 곱고 얼음같이 흰 명주) 같았다.

 

몽환적인 꽃 그림자... 호사스러운 봄날 풍경 

 

▲ 수면에 비친 건너편 벛꽃 행렬의 그림자. 뒤쪽의 산은 금오산의 연봉들이다. 
▲ 산책길을 따라 이어진 벚꽃 행렬이 수면에 일렬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 강을 가르지르는 도로 옆으로 이어진 벛꽃 행렬. 노랗게 보이는 부분은 마른 갈대밭이다. 

수면에 비친 벚꽃의 반영은 애매한 분홍빛이었다. 그러나 햇빛에 따라 빛깔과 그 채도를 달리하는 꽃 그림자는 몽환적이었다. 해가 구름 속에 들 때마다 오히려 더 선명하게 비치는 꽃 그림자를 따르느라 사진기도 호사를 누렸다.

 

우리는 무심히 스치고 마는 일상에 무심하다. 소문 난 명승지에만 사람들의 발길이 몰리는 까닭이다. 사람들이 꾀이는 곳은 그럴 이유가 있겠지만, 천천히 들여다보면 우리 주변에는 그 명승에 못잖은 곳이 적지 않다. 그걸 먼저 알아보는 이들은 내부자가 아닌 외부자들이다. 명승을 발견하는 이들이 토박이가 아니라 타관 사람인 이유다.

 

▲ 역광으로 빛나는 샛강의 수면. 탐스럽게 가지에 달린 벚꽃 너머로 건너편 강기슭의 벚꽃 행렬이 희미하게 보인다. 

며칠간 황사가 어지럽더니 어제는 다소 나아졌다. 샛강 둘레길을 한 바퀴 도는데 드문드문 사람들을 만났다. 붐비는 사람들로 치고 치이는 금오천보다 훨씬 나은 이런 숨은 풍경이 있다는 걸 아는 이들이 드문 것일까.

 

샛강의 벚꽃은 이번 주말까진 절정을 이어갈 듯하다. 그나저나 코로나19가 강제해 낸 숱한 비대면의 상황이 빚은 관계와 교유의 유예, 또는 부전은 언제쯤이나 풀릴까.

 

 

2021. 4. 1.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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