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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세시 풍속·24절기 이야기

정월 대보름, ‘액은 보내고 복은 부른다’

by 낮달2018 2024. 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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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월 대보름의 ‘세시 풍속’

▲ 오늘 아침 우리 집 밥상. 이 상을 차리느라고 아내는 어제부터 오늘 아침까지 수고가 적지 않았다.

정월 대보름이다. 시절이 예전 같지 않으니 세상은 심드렁하기만 하다. 대보름은 고작 시장에서 절식(節食) 마련을 위한 반짝 수요로나 기억될까. 그러나 내 어릴 적에 정월 대보름은 설날에 못지않은 절일(節日)이었다. 한자어로 상원(上元)’이라고도 하는 대보름은 백중(7.15.), 한가위와 함께 보름을 모태로 한 세시풍속일이다.

 

대보름은 음력을 사용하는 전통 농경사회에서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차고 이지러지길 거듭하는 달의 변화에서 꽉 찬 만월은 풍요의 상징이었다. 음양 사상에 따르면 달은 ()’, 즉 여성으로 인격화된다. 따라서 달의 상징구조는 달-여신-대지로 표상되며, 여신은 만물을 낳는 지모신(地母神)으로서의 생산력의 상징인 것이다.

 

태곳적 풍속으론 대보름을 설처럼 여기기도 하였다. 조선 후기에 간행된 <동국세시기>에선 대보름에도 섣달 그믐날의 수세(守歲)’ 풍속처럼 온 집안에 등불을 켜 놓고 밤을 새운다고 했다. 이는 농경을 기본으로 하였던 고대사회에서부터 풍농을 기원하는 대보름이 명절 대접을 받았다는 뜻이겠다.

 

대보름날의 시절 음식

 

▲ 약반절식 ⓒ 문화콘텐츠닷컴

명절로 자리매김하는 날이니 시절 음식이 빠질 수 없다. 대보름날의 절식으로는 찹쌀을 밤·대추··기름·간장 등을 섞어서 함께 찐 후 잣을 박은 약밥[약반(藥飯)]이 유명하다. 문헌에 따르면 이 절식은 아주 오랜 역사를 지닌 풍속이었다.

 

신라 소지왕이 재위 10년이 되던 해에 천천정(千泉亭)으로 나들이를 하였는데옆에 까마귀와 쥐가 놀고 있었다쥐가 사람의 말로 이 까마귀가 가는 곳을 뒤쫓아 가보라는 것이 아닌가왕은 기이하게 여겨 기사에게 까마귀를 따라가 보게 하니 연못 한가운데서 노인이 나오더니 겉봉투에 이 봉투를 열어 보면 두 사람이 죽고열어 보지 못하면 한 사람이 죽는다고 적힌 봉투를 내주었다.

 

왕이 황급히 봉투를 뜯어보니, 그 안에는 빨리 금갑(金匣)을 향해 활을 쏘아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왕이 이상히 여겨 금갑을 향해 화살을 쏘니, 화살을 맞은 금갑에서는 난데없이 붉은 피가 흘러나왔다. 금갑에는 승려와 궁주(宮主)가 정을 통한 후 왕을 해치려고 그 안에 숨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 후 까마귀의 은혜로 역모를 꾀하는 무리를 찾아내어 처단하고 목숨을 살려 준 까마귀에 대한 보은(報恩)의 뜻으로 이날을 오기일(烏忌日)’로 정하고, 까만 찰밥을 지어 까마귀에게 먹이도록 하였다.

 

   - <삼국유사> ‘사금갑(射金匣)’

 

약반 절식은 그러나 가난한 집에서는 먹을 수 없는 귀한 음식이었다. 지방에 따라 서민들은 약반 절식 대신 오곡밥·잡곡밥·찰밥 등을 즐긴 것이다. 우리 지역에서는 찰밥을 지어서 먹었다. 물론 찹쌀에다 수수, 기장, , , 팥 등을 섞어서 짓는 밥이니 오곡밥이나 잡곡밥이라 해도 무방할 테지만 우리는 그걸 그냥 찰밥으로 불렀다.

 

찰밥과 함께 먹는 묵은 나물도 갖가지다. 고사리··호박고지·시래기·도라지··가지··고구마 줄기·토란대 등이 있지만 나는 유달리 아주까리 나물을 즐겨 먹는다. 한자로는 피마자(孃麻子)’로 쓰는 아주까리는 열대 아프리카 원산인데 이 널따란 잎사귀의 나물은 독특한 풍미를 선사해 주기 때문이다.

▲ 아주까리(피마자) 나물. 역사 담백하면서도 솔직한 향이 일품이다.

아주까리 잎은 독이 있어 생으로 먹지 못하고 반드시 삶아 먹어야 한다그 맛을 어디에 비길 수 있을까대체로 취나물 류의 산나물 맛의 공통점은 담백함과 코끝에 스밀 듯 말 듯한 향내인데아주까리 나물 맛은 취나물을 닮았으면서도 그것보다는 다소 향이 강하다딸아이는 향이 세다고 싫다는데나는 오히려 그 은근하지 않고 솔직한 향에 끌리는 편이다.

 

어제 의성의 한 골짜기에 정착한 친구 집에 들르는 길, 탑리 오일장에서 우리는 신토불이를 강조하는 국산 아주까리나물을 샀다. 한 홉에 오천 원 하는 국산 좁쌀과 함께 등겨장 재료인 등겨 가루도 샀다. 아내는 식품점 할머니에게서 등겨장 조리법도 새로 배웠다.

 

그 밖의 시절 음식으론 밥을 김이나 취나물, 배춧잎 등에 싸서 먹는 복쌈이 있다고 하는데 글쎄, 우리에게는 좀 낯선 풍속인 것 같다. ‘청주 한 잔을 데우지 않고 마시면 귀가 밝아진다고 하여 마시는 귀밝이술도 빼놓을 수 없는 시절 음식이다. [관련 글 : 정월 대보름, 무엇을 빌 수 있을까]

 

제액초복’, 대보름의 풍속들

 

대보름의 풍속도 다양하다. 반세기 전만 하여도 마을 공동제의로 떠들썩하게 진행되었던 동제는 대부분 명맥이 끊어졌고 복원한 지역도 그리 많지 않다. 내 기억 속의 동제는 이웃 마을의 당수 나무’(우리 지역에서는 당나무를 보통 이렇게 불렀다.) 주변을 빙 둘러친 짚으로 꼰 금줄로 떠오른다. 거기 주렁주렁 매달린 한지와 붉은 띠 따위가 주는 무섬증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 줄다리기는 왕왕 남녀의 성적 결합을 상징하기도 한다. 풍요 주술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초군청놀이의 비녀꽂기.

줄다리기도 풍요 다산을 기원하는 농경의례의 일부다영주 순흥 지방에서 전승되는 초군청 놀이에서 보듯 줄다리기의 곳곳에는 우리 조상들이 지녔던 풍요의 기원과 성에 대한 관념이 드러난다줄다리기로 한해의 풍흉을 점친다는 것은 이 놀이가 주술적인 속성을 가지고 있음을 의미한다[관련 글  순흥 초군청 놀이

 

이 주술적 속성은 줄을 암수로 나누거나, 남녀의 성기를 닮은 모양으로 만드는 데서 드러난다. 줄다리기를 위하여 암줄과 수줄을 잇는 것도 인간의 성교를 모방하는 것이다. 이는 생산과 밀접히 연관되는 것으로 줄다리기가 풍요 주술의 일부라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풍요 주술로서의 줄다리기에서는 여성(암줄)이 이기는 것으로 설정된다. 여성이 곧 생산성의 상징이며, 이 암줄의 승리가 곧 풍요이기 때문이다. 줄다리기는 풍농을 기원하는 의례적인 놀이니, 상징적인 성행위 장면을 연출하고 여성의 승리로 끝내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이밖에도 풍농을 기원하는 풍속으로 지신밟기가 있다. 지신밟기는 대보름을 전후하여 마을의 풍물패가 집집을 돌며 집터를 지켜준다는 지신(地神)에게 고사를 올리고 풍물을 울리며 축복을 비는 놀이다. 이는 같은 내용을 집집이 연희함으로써 공동체의 정체성을 확인하며 마을 사람들 사이에 결속을 다지는 계기가 된다. 지역에 따라서 마당밟기·매귀(埋鬼걸립(乞粒)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 쌍봉당산제 및 지신밟기 행사에서의 지신밟기. ⓒ 여수넷통뉴스(http://www.netongs.com)
▲ 정월 대보름의 달집(2010, 순흥 초군청놀이)
▲ 2017년 정월 대보름달. 대보름달이라고 하지만 달의 크기는 변화하지 않고 사람이 보기에 따른 느낌일 뿐이다.

달맞이나 달집태우기는 가장 널리 알려진 풍속이다. 우리 어릴 적에는 마을의 가장 높은 봉우리에 올라서 달맞이를 하고 거기서 달집을 태우곤 했지만, 산불의 위험과 세태의 변화가 달집태우기를 산이 아닌 마을에서 하는 거로 바꿔냈다.

 

쥐불놀이도 대중적인 민속 가운데 하나다쥐불놀이는 조선 시대의 행사로서 궁중에서는 젊은 내시 수백 명이 잇달아 횃불을 끌면서 돼지 그슬리자쥐 그슬리자!”하고 외치며 돌아다녔다고 한다자일(子日), 즉 쥐날에 시골에서는 콩을 볶으면서 쥐 주둥이 지진다쥐 주둥이 지진다라고 주문 외우듯이 했다.

 

쥐불이란 쥐를 태우는 불이라는 뜻이며, 쥐불놀이란 사람들이 떼를 지어 논둑에 불을 사르는 놀이다. 농가에서는 특히 겨우내 건조해진 논둑의 잡초와 잔디를 태움으로써 해충을 없애고 타고 남은 재가 거름이 되어 풍작에 보탬이 되기를 바라는 뜻도 담고 있다.

 

쥐불놀이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깡통에 불을 담아 돌리며 불을 여기저기 옮겨 붙이는 방식으로 바뀌어 갔는데 산불을 염려하여 금지한 후로 지금은 거의 사라진 놀이가 되었다. 이 놀이는 지방마다 액을 막고 복을 비는 제액초복(除厄招福)과 풍년을 기원하는 바람이 담겨 있다. 일반적으로 쥐불의 크고 작음에 따라 그해의 풍흉 또는 그 마을의 길흉을 점치기도 했다고 한다.

▲ 쥐불놀이. ⓒ <한국의 세시풍속>(2001, 학고재) 사진(부분)
▲ 아이들이 논두렁에서 즐기던 쥐불놀이는 도시에서는 이렇게 진화했다. 위키백과 이미지 재구성

대보름날에 행하는 개인적인 의례로 부럼 깨물기더위팔기가 있다. 대보름날 아침 일찍 일어나면 부스럼 깬다하여 밤·호두·땅콩 등의 견과류를 깨물며 일 년 열두 달 종기나 부스럼이 나지 않도록 축원한다. 또 아침 일찍 일어나 사람을 보면 상대방 이름을 부르며 내 더위 사가라고 한다. 이렇게 더위를 팔면 그해 더위를 먹지 않는다고 했다.

 

아침에 찰밥을 먹었다. 아내가 올해는 팥이 비싸서 넣지 않았다며 변명하듯 중얼댄다. 그러나 그게 무어 대수냐. 아내는 어제 대보름 음식을 만드느라 한나절을 꼬박 썼다. 나는 밥 속에 든 밤을 우두둑 씹고 아주까리 나물을 향을 머금듯 즐겼다.

 

3월이 코앞이다. 올 초봄은 예년보다 추우리라고 한다. 그러나 이미 오고 있는 봄의 기운을 어쩔 수는 없으리라. 소생의 봄이 오고 있는데, 어제는 존경해 온 선배 교사의 부음을 받았다. 신생과 소멸이 거듭되는 것이 삶이고 역사지만, 마음 한쪽에 자리 잡은 슬픔과 연민을 다스리기는 역시 쉽지 않다.

 

2013. 2. 24.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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