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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 ‘성밖숲’, 3백~5백 살 먹은 왕버들 고목의 4월

by 낮달2018 2024. 4.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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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경북 성주군 성주읍 경산리 천연기념물 ‘성밖숲’의 봄

*PC에서 ‘가로 이미지’는 클릭하면 큰 규격(1000×667픽셀)으로 볼 수 있음.

▲ 성밖숲은 조선 중기 풍수지리 사상에 따라 조성한 전통 비보림인데, 현재 52그루의 300~500년 묵은 왕버들 숲으로 구성되어 있다.
▲ 성밖숲은 읍 서쪽으로 흐르는 이천 가에 자리 잡은 숲으로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다. 왼쪽이 이천이다. ⓒ 디지털성주대전

지난 총선거일(10일)에 아내와 함께 잠깐 칠곡 쪽에 볼일을 보고서, 내친김에 바로 성주로 차를 돌렸다. 4월도 중순으로 접어드니 봄을 맞은 성밖숲의 왕버들이 궁금해서였다. 1990년대 초반에 잠깐 성주에서 근무한 적이 있으나, 정작 성밖숲을 정식으로 찾은 건 20년이 지난 2015년 11월이었다. [관련 글 : 성주 성밖숲과 백년설 노래비]

 

성주읍의 서쪽으로 흐르는 이천(利川) 가에 자리 잡은 이 숲의 이름이 ‘성밖숲’인 것은 성주읍성(星州邑城) 서문 밖에 자리한 까닭이다. 읍성의 흔적은 북문 터만 남아 있었으니, 읍성이 어떤 모습이었는지는 상고하기 어렵다. 그러나 지금은 북문을 중심으로 읍성을 복원하는 사업(2017~2020)으로 이른바 ‘성주역사 테마파크’가 문을 열고 있다. [관련 글 : 역사를 기억하는 법, 성주읍성과 백년설 노래비]

 

성밖숲은 조선 중기 풍수지리 사상에 따라 조성한 전통 비보림(裨補林)이다. 비보림(裨補林)이란 지세가 허한 곳에 나무를 심어 보완, 길복을 가꾸는 것을 말하는데 달리는 ‘보허림(補虛林)’이라고도 한다. 성밖숲은 조성 당시에는 밤나무 숲으로 경작과 개간을 금지하며 관리했다. 그러나 임진왜란(1592~1597) 이후 고을의 기강이 해이해지고 민심이 나빠져 주민들이 밤나무를 베어 내고 사사로이 경작지로 이용하기 위해 숲을 훼손하게 되자 다시 왕버들 나무를 심어 숲을 유지하였다고 한다.

▲ 이천 따라 이어진 성밖숲길의 아파트, 앞이 성밖숲 주차장이다. 속이 텅 빈 고목에도 새잎이 달렸다.
▲ 울타리를 친 통로 좌우로 52그루의 왕버들이 연록빛 새잎을 빛내고 있다. 나무 아래에는 맥문동이 심어졌다.
▲ 8월이면 성밖숲 왕버들 아래에 맥문동이 만개하여 보랏빛 물결을 이루고 있다. ⓒ 영남일보 사진
▲ 나무는 개체별로 관리번호가 부여되어 있고, 대부분, 지지대의 도움을 받아 서 있다.

1980년대까지 우리나라엔 양잠업이 성행했었는데, 새마을 운동이 한창이던 시기에 잠사업(蠶絲業)을 육성하고자 누에를 먹이는 뽕나무를 심는 정책을 폈다. 성밖숲도 숲과 주변에 뽕나무밭을 조성하라고 강요받게 되어 성밖숲의 왕버들이 베어질 위기에 처하자, 주민들은 성밖숲의 역사성과 향토성, 가치성을 주장하며 성밖숲을 지키려고 하였다.

 

지금의 성밖숲은 그 상황을 이겨내고 남은 왕버들 숲이다. 과거에 뽕나무밭이었던 곳은 현재 성밖숲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는 잔디밭으로 남았다. 성밖숲을 이루는 수령 300년에서 500년에 이르는 노거수 왕버들은 가슴높이 둘레가 1.84~5.97m(평균 3.11m), 나무 높이는 6.3~16.7m(평균 12.7m)에 이른다. 수백 년의 풍상을 견뎌 낸 왕버들 나무는 시방도 가지를 드리운 채 늠름하게 성 밖을 지키고 있다.

 

1999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될 당시에 모두 59그루였던 왕버들은 이후 태풍 등의 자연재해로 말미암아 여러 그루의 왕버들이 쓰러져 죽고 현재 52그루만 남아 있다. 성밖숲은 찾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2011년부터 왕버들의 뿌리를 보호하기 위해 왕버들 아래와 주변에 지피식물(地被植物)인 맥문동을 심고 접근을 막는 울타리를 설치하였다. 적지 않은 고목들에 지지대로 보호 중이다.

 

성밖숲은 왕버들 숲과 맥문동이 어우러진 경관으로 2017년, 산림청·생명의숲·유한킴벌리가 함께 개최한 ‘제17회 아름다운 숲 전국 대회’에서 ‘아름다운 숲’으로 선정되었고, 사람과 숲의 조화로운 공존으로 다음 세대까지 변함없이 보전되기를 기원하는 ‘우수 공존상’을 받았다. 2018년과 2019년에는 문화체육관광부에 의해 ‘대한민국 생태 테마 관광지’로 선정되기도 했다.

 

9년 전 늦가을에 들렀을 때 성밖숲의 왕버들은 연노랑 단풍이 물들어 있었다. 잎이 모두 떨어진 나무도 있었고, 여전히 푸른빛을 띤 나무도 있었다. 통로마다 낙엽이 흩날리는데, 젊은 나무처럼 무성하지는 않지만, 수백 년 세월을 견뎌 온 고목의 외형에는 범접할 수 없는 신성한 기운으로 충만했다.

▲ 성밖숲의 왕버들은 젊은 나무처럼 무성하지는 않지만, 수백 년 세월을 견뎌와 고목의 외형에는 범접할 수 없는 신성한 기운으로 충만했다.

성밖숲 공원은 한적했다. 잔디밭 쪽에는 가족들이 텐트를 치고 캠핑하고 있었고, 맨발로 천변의 통로를 걷는 사람도 보였다. 새마을 운동 때문에 없어질 뻔한 숲이 보존된 것은 천만다행이다. 채 5만이 되지 않는 조그만 군이지만, 성주 8경의 제5경으로 성밖숲은 성주의 자랑으로 여겨도 충분하겠다.

 

우리는 입구의 거목 옆에 있는 벤치에 앉아 동네에서 사 간 김밥을 먹고, 사과 한 알을 깎아 먹었다. 읍성을 찾아보나 어쩌나 하다가 우리는 다음을 기약하고 성밖숲을 떠났다. 도로변의 백년설 노래비는 일부러 돌아보지 않았다. 이 아름다운 숲 입구에 뜬금없이 서 있는 친일 가수의 노래비는  몰역사적 추념’일 뿐이니 말이다.  [관련 글 : 혈서 지원의 가수 백년설, ‘민족 가수는 가당찮다]

 

성주는 전국 재배 면적의 70%를 차지하는 국내 최대 참외 생산지다. 지난해 성주군의 참외 생산량은 18만 톤, 6천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그러나 올해는 ‘이상기후 탓’으로 일조량이 부족하여 생산량이 평년보다 30% 적어 농민들의 시름이 깊다. 우리는 일부러 국도를 선택해 돌아오다가 길가의 트럭에서 참외 5개 한 봉지를 1만 원에 샀다.

 

 

 

2024. 4. 14.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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