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애(最愛)’, ‘새말’이 아니라 오래된 낱말이다
‘가장, 제일, 으뜸’의 의미 지닌 ‘최(最)’
‘최(最)’는 “일부 명사 앞에 붙어 ‘가장, 제일’의 뜻을 더하는 접두사”로 ‘최고위, 최우수, 최전방’처럼 쓰인다.(표준국어대사전) ‘최’는 ‘고·저·강·약·선·악’ 등의 한자와 어울려 ‘최고·최저·최강·최약·최선·최악’ 등의 단일 명사로도 쓴다.
‘최(最)’는 ‘가장, 제일, 으뜸’의 의미를 지니고 있어 다른 낱말보다 위계에서 앞선다. 한국 최고(最高)의 산은 백두산이라고 할 때, 백두산보다 높은 산은 없다는 의미를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나 ‘가장 위대한 선수 중 하나(one of the greatest players)’, ‘최고 중 최고(best of the best)’와 같은 영어식 표현의 영향으로 그 의미는 다소 약화한 느낌이 있다. 계량하기 어려운 위상을 이를 때 ‘~ 중의 하나’로 쓰는 형식은 별 저항 없이 받아들여지게 된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아이돌의 팬덤 용어로 ‘최애’가 널리 쓰이게 된 것은 근래 들어서다. 최애 굿즈, 최애 적금, 최애 간식, 최애 요리, 최애 스카프 등과 같이 ‘최애’는 엔간한 명사 앞에서는 무리 없이 쓰일 수 있기 때문이다. 국어사전에서 ‘최애’가 표제어로 오른 것을 확인해 보고, 나는 ‘최애’가 근자에 등재된 신조어인 줄 알았다.
그러나 최애는 생각보다 훨씬 오래된 어휘였다. 다만 거의 쓰이지 않고 있다가 MBC 예능 <최애 엔터테인먼트>(2020)와 일본 드라마 <최애>(2021)와 애니메이션 <최애의 아이>(2020~ ) 등과 함께 다시 쓰이기 시작한 것이다.
19세기 춘앵전(춤)에 쓰인 ‘최애’ 21세기에 되살아나다
조선조 23대 임금 순조의 아들이자 24대 헌종의 아버지인 효명세자(1809~1830)가 돗자리 위에서 혼자 추는 춤인 춘앵전(春鶯囀)에 붙인, 오언절구 한시에 ‘최애’가 등장한다. 효명세자는 뒤에 문조로 추증된, 강력한 정통성과 일찌감치 성군의 자질을 보여 뭇사람들의 기대를 받았으나, 스물두 살에 요절해 버린 비운의 왕세자다.
빙정월하보(娉婷月下步) 고울사! 달빛 아래 걸으니,
나수무풍경(羅袖舞風輕) 비단 옷소매에 바람이 일렁이네.
최애화전태(最愛花前態) 꽃 앞의 자태가 참으로 사랑스러우니
청춘자임정(靑春自任情) 청춘에 정을 맡기려네.
이 절구에서 ‘최애’는 ‘참으로 사랑스러우니’ 정도로 번역된다. ‘꽃 앞의 자태’란 춘앵전에서 절정을 이루는 춤사위를 이른다. 즉 춘앵전에서 펼쳐지는 춤사위를 묘사하며 ‘최애’가 쓰인 것이다.
‘최애’는 사물이나 행위와 같은 명사 앞에서 ‘가장 사랑하는’의 뜻, 즉 관형어 노릇을 하니 웬만한 명사 앞에서는 자연스럽게 꾸미는 말로써 쓰임에 무리가 없다. 오랫동안 쓰이지 않던 이 낱말은 텔레비전 예능과 드라마 등에 쓰이면서 되살아나 널리 쓰이기에 이른 이유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영화’ 대신 ‘나의 최애 영화’라고 쓰면 되므로 ‘언어 경제’에도 부합한다. 적어도 그건 ‘시간과 노력을 절약’하려고 ‘소확행’, ‘알못’, ‘깜놀’과 같은 형식으로 사용하는 언어생활에 비기면 훨씬 자연스럽고 우리말의 규칙과 잘 어울리는 표현이니 말이다.
2024. 1. 26.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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