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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습 피의자’와 ‘피습범’ : 혹은 ‘습격 피의자’와 ‘습격범’

by 낮달2018 2024. 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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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에서의 맞춤법 오류도 꽤 심각하다

▲ '피습범'이라는 낱말은 기본적으로 성립 불가능한 어휘다.

새해 벽두인 1월 2일, 더불어민주당의 이재명 대표가 부산에서 정치적 테러를 당했다. 살해 의도를 품고 이 대표에게 접근한 60대 남자(김씨)가 준비해 온 양날형 검에 목이 찔린 것이다. 범인은 현장에서 체포되었고, 이에 관한 보도가 줄을 잇던 때의 일이다.

 

 ‘피습 피의자’에다 피습범’까지

 

함께 차로 이동하다가 관련 라디오 뉴스가 나오자, 후배 교사가 “뉴스마다 ‘피습 피의자’라고 한다”라며 ‘습격 피의자’라고 해야 하지 않느냐고 말했다. 아, 맞아, 그렇구먼. 무심히 듣고 있다가 나는 동감을 표시했다. 보도의 ‘관행’ 때문일까. 방송은 무심히 이 상호 모순되는 표현을 쓰고 있었다.

▲ 초기의 방송에서는 대부분 '피습 피의자', '피습범' 따위의 표현을 썼다.

‘피습(被襲)’은 말 그대로 “습격을 받음”이니 이재명 대표의 상황이다, 그런데 ‘피의자(被疑者)’는 “범죄의 혐의가 있어서 정식으로 입건되었으나, 아직 공소 제기가 되지 아니한 사람”으로 가해자인 김씨다. ‘피습’의 객체는 이 대표이고 피의자는 김씨이니 두 낱말을 나란히 쓸 수 없다.

 

그런데도 한동안 뉴스에서는 ‘피습’과 ‘피의자’를 나란히 쓴 기사가 넘쳤다. 텔레비전 화면마다 그런 자막이 고스란히 노출될 무렵에는 방송사별 교열 기능도 멈추었던 것 같다. 이 오류의 절정은 ‘피습범’이다. ‘피습’의 객체와 범인은 완전히 ‘다른 사람’인데, 어떻게 ‘피습’과 ‘범인’을 묶을 생각을 한 것일까.

 

‘피습’과 ‘피의자’가 나란히 쓰이다가 ‘피습’이 따옴표로 묶이고 그 뒤에 피의자가 쓰인 경우는 그나마 낫다. 일단 따옴표로 가둔 ‘피습’과 뒤이은 ‘피의자’가 다른 사람임을 염두에 둔 표현이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오류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다가 내부에서든, 외부에서든 이 오류에 대한 지적이 이루어졌을 것이다. 언론사별로 조금 차이가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자막은 시정되기 시작했다. 매체별로 ‘이재명 습격 피의자’라는 표현과 ‘이재명 습격범’ 같은 표현으로 이 오류가 바로잡힌 것이다.

▲ 시간이 지나면서 내외부의 지적이 있었던지, 위의 표현들은 '습격 피의자'와 '습격범' 등으로 바로잡히기 시작했다.

온라인 매체도 넘치는 시대, 인터넷에서 확인하는 기사에도 맞춤법에 어긋나거나 비문에 가까운 표현이 간간이 엿보인다. 교열이 훨씬 엄격할 수밖에 없는 종이신문과 달리 신속성을 강조하는 인터넷 기사여서 따로 교열이라는 거름망을 거치지 못해서일까. 그게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어쩌면 기자들의 관련 지식이나 훈련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심증을 버리기 힘든 경우도 적지 않다. 

 

인터넷 기사나 유튜브엔 맞춤법 오류나 비문이 넘친다

 

공중파 기자가 ‘고가도로’를 ‘고까 도로’라고 발음하는 기사가 생방송을 탄다.[관련 글 : 고까사다리와 고까도로] ‘(불을) 때다’를 써야 할 자리에 ‘떼다’라고 쓴 예능 프로그램 자막이 황금시간대에 송출되는 상황도 생긴다.[관련 글 : 군불은 때고책은 뗀다]

 

아마도 이러한 상황은 앞으로 더 가속화할 가능성이 크다. 사람들이 종이신문보다 인터넷에서 기사를 더 많이 읽고, 기사보다 유튜브 등 영상으로 뉴스를 즐기는 시대이니 말이다. 이미 유튜브의 맞춤법 오류나 비문은 심각한 상태로 보인다. 누리꾼들이 누구나 자유로이 유튜버가 되어 1인 미디어 노릇을 하는 시대이니 더 말할 게 없다.

 

여전히 종이신문을 받고 있지만, 가끔은 이미 스마트폰으로 엔간한 기사는 다 읽고 난 후라, 신문은 펼쳐보지도 않는 경우도 적지 않다. 종이신문을 비롯한 미디어의 미래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더 급격한 변화를 겪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지우지 못하면서 오늘도 배달된 신문을 편다. 

 

 

2024. 1. 29.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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