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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드라마와 영화 이야기

드라마로 소환된 1990년대식 ‘체벌’, 혹은 2023년의 ‘학생 인권’

by 낮달2018 2023. 1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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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드라마(2022) <스물다섯 스물하나>의 ‘체벌’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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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년에 방영된 토일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

얼마 전에 월 5,500원짜리 요금제 ‘광고형 스탠다드’로 다시 넷플릭스에 가입했다. (최근 보도는 이제 이 요금제는 가입이 차단돼 있다고 한다.) 처음 넷플릭스에 가입한 것은 코로나19가 한창일 때였는데, 영화와 드라마를 한 2, 3백 편을 보다 질려서 끊었었다.

 

다시 가입한 OTT 넷플릭스

 

나는 한때 화제가 된 MBC 드라마 ‘연인’을 볼 생각이었는데, 유감스럽게도 그건 다른 오티티(OTT)에서만 볼 수 있는 드라마였다. 넷플릭스에선 영화는 물론, 현재 방영 중인 드라마까지 볼 수 있긴 했지만, 10회가 넘는 드라마를 따라갈 엄두가 나지 않아, 망설이다가 처음 보게 된 드라마가 <스물다섯 스물하나>다.

 

2022년에 <tvN>에서 방영된 이 ‘토일 드라마’는 1998년, “시대에 꿈을 빼앗긴 청춘들의 방황과 성장을 그린 청량 청춘 케미스트리”(누리집)라고 했다. 그러나 내가 이 드라마를 시청한 것은 달큼한 젊은이들의 연애담이 궁금했던 것은 아니었고 유튜브에 쇼츠로 제공되는 영상 중에 꽤 흥미로운 부분들이 있어서였다.

▲ 아버지의 빚쟁이에게 소액의 돈을 갚자, 빚쟁이는 한 순간도 행복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취소해 달라고 말한다.

이를테면 아버지의 빚쟁이에게 남자 주인공이 ‘단 한 순간도 행복하지 않을게요’라고 약속하고, 뒤에 소액의 빚을 갚자, 그 빚쟁이가 그 약속을 취소해 달라고 말하는 장면들 말이다. 또 흥미로웠던 것은 교사들의 폭력에 정면 대응하는 여학생의 모습이었다. 그건 30년이 넘는 내 교편 시절과, ‘교육’의 이름으로 만연하던 교사들의 폭력을 자연스럽게 소환해 주었다.

 

우연한 흥미로 시청하게 된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

 

1회부터 시작된 남녀 주인공의 달큼한 교감은 좀 지겨워서 나는 ‘10초 앞으로 가기’를 계속 눌러 그 장면을 벗어나곤 했다. 나는 남녀 주인공의 교제보다는 펜싱 맞수로 대립하다가 화해하는 두 여학생의 우정이 오히려 더 흥미로웠다.

 

내가 기다리던 장면은 10화에서 처음 나왔다. 전교 꼴찌 문지웅이 학생주임 교사에게 체벌당하는 장면인데, 그 시절에 흔히 그랬듯 맞아야 할 이유가 따로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이를 목격하고 지웅을 변호한 전교 1등이면서 반장인, 그러나 가슴 속엔 반항심으로 가득 찬 ‘잔 다르크’ 지승완은 잔뜩 우울해져 해적방송에서 이를 격렬하게 토로한다.

▲ 친구가 교사에게 체벌을 당하자, 해적방송으로 이 사실을 방송하는 전교 1등의 잔다르크 지승완.

“체벌이 그렇게 소중해? 다들 알지? 오늘 내 친구가 잘못한 것도 없이 쌤한테 맞았어. 다들 알지? 교육청에서 교내 체벌 금지 시행한 거 근데 시행되고 있는 거 맞아? 왜 교사들은 시행령에 따르지 않는 거야. 체벌이 그렇게 소중해? 놓칠 수가 없나?

 

다들 선생들한테 맞으면서 그런 생각 한 번씩 해봤을 거야. 이게 이렇게 맞을 일인가. 맞아, 우린 학교에서 참 많은 것들을 배우지. 근데 그중 하나가 폭력이야. 사람이 사람을 때리는 게 당연해 보이는 세상을 학교에서 배우고 있어. 웃기지.

 

그리고 학교라는 공간 말이야. 이상하지 않아? 사람들을 모아놓고 번호를 부여하고 벽을 세워 놓는 곳은 학교랑 교도소밖에 없대. DJ 완승의 해적방송 오늘은 여기까지.”

▲ 교사의 체벌을에당당하게 항의하면서 이를 신고하여 경찰까지 출동하지만, 승완은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음에 절망한다.

그러나 사건은 얼마 있지 않아 터진다. 당시 탈주범 신창원이 입었던 티셔츠가 유행했는데, 이를 입고 와 자랑하던 지웅이 학생주임에게 발각되어, 무자비하게 폭행당한다. 승완이 이를 목격하고 하얗게 질려 교사에게 강력하게 항의한다.

 

“그만 하세요. 그만하시라구요! 언제까지 이렇게 패실 거예요? 교내 체벌 금지됐어요! 모르세요?”

“그럼 신고해.”

 

승완은 망설이지 않고 휴대전화로 경찰에 “학생을 상습적으로 폭행하는 선생님이 계신다”고 신고한다. 경찰이 출동하고 교장이 나와 말리면서 교장실로 일행을 데려간다. 학생주임은 “탈옥수 티를 입고 와서 정신 나간 짓을 하는데 그걸 보고만 있을 수 있냐”고 항변하는 등의 대화가 이어진다.

▲ 네 일도 아닌데 왜 이러느냐는 교사의 핀잔에 "내 일 아니면 나 몰라라, 나만 아니면 돼, 그렇게 살기 싫어서"라고 답한다.

“말로 하실 수 있잖아요. 벌을 주실 수도 있고요. 근데 늘 손부터 나가시잖아요. 오늘 처음 때리신 거예요? 상습적이시잖아요.”

“그런 놈들이 말로 해서 듣는 줄 알아.”

“때리면 듣는 줄 아세요. 그럼 이 학교에 전부 모범생만 있어야죠. 그렇게 때리고 다니셨는데.”

“이 새끼 공부 잘해서 예쁘다 했더니, 그저…….”

“쌤, 저 때린 적 없으시죠. 전교 1등이라서. 근데 한 번도 맞은 적 없는 제가 경찰에 신고를 했어요. 저도 쌤한테 맞으면 바뀔까요? 피가 터지도록 맞아도 경찰에 신고 안 하는 애로?”

 

체벌에 맞서는 여학생,  “내 일 아니면 나 몰라라 나만 아니면 돼그렇게 살기 싫다”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교장이 승완에게 “니가 맞은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냐고 말리자, 승완의 답은 단호하다. 그는 자기 일만 아니면 괜찮다고 여기는 이기적인 삶을 살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다.

 

“왜냐면요. 전 내 일 아니면 나 몰라라 나만 아니면 돼, 그렇게 살기 싫어서요.”

 

출동한 경찰도 승완(학생) 편은 아니다. 그는 선생님한테 그러는 거 아니라고. 이런 일로 경찰에 신고해도 딱히 뭘 해줄 수가 없다고 말한다. 교내 체벌 금지긴 하지만 체벌에 대한 모든 권한은 학교 측에 일임하고 있기 때문이라면서. 이에 어이없어하는 승완에게 학생주임은 못을 박아 버린다.

 

“뭐라구요? 그럼 피가 터지도록 맞아도 학생들은 할 수 있는 게 없네요.”

“맞을 짓을 안 하면 되잖아? 체벌 없이 어떻게 교육을 하라는 거지. 이놈의 세상이 어떻게 되나…….”

 

마지막 교사와 경찰의 대화는 그들의 사고가 얼마나 고정관념으로 막혀 있는가를 여실히 드러낸다. 그들은 변화하는 시대에 맞서는 낡은 사고와 편견을 버리지 못하는 ‘꼰대’라는 점에서 의기 상통한 것이다. 그건 그들의 한계이면서 그 시대의 한계였을 것이다.

 

“우리 선생님들 얼마나 또 수고가 많으십니까? 아이, 옛날 같았으면 진짜 생각도 할 일인데…….”

“제 말이 그 말입니다.”

▲ 승완은 해적방송에서 체벌 사실과 함께 교사의 실명을 공개한 것으로 반성문을 쓰고 전교생 앞에서 그걸 읽으라는 요구를 받는다.

그날 밤, 승완은 해적방송으로 사건을 다시 알린다. 경찰을 불렀다는 사실과 함께, 그 결과도 예상대로였다며,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 세상이 너무 자연스럽지만, 적어도 여기서만큼은 이건 부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말하고 싶다고 밝힌다. 그리고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 오늘 학교에서 일어났다며 그 폭력 교사의 이름도 공개한다.

 

승완은 이 방송을 녹음한 학생주임에게 소환되어, 반성문을 쓰고, 그걸 전교 학생들 앞에서 낭독하라는 요구를 받는다. 학생주임은 대학 안 갈 거냐고 진학을 무기로 위협하지만, 승완은 단호하다.

 

“가야죠. 그러나 이 학교 졸업장 들고는 쪽팔려서 못 가겠어요. 사과 안 해요. 반성할 게 없어서 반성문도 못 씁니다. (……) 말도 안 되는 학칙 받아들일 생각도 없어요. 할 수 있는 게 하나밖에 없네요. 자퇴하겠습니다. 절이 쪽팔리면 중이 떠나야죠. 엄마 모시고 올게요.”

▲ 사과할 수도, 전학을 가고 싶지도 않다, 그건 내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라는 승완의 자퇴 결심을 어머니는 받아들인다.

그리고 승완은 어머니의 동의를 얻어 학교를 자퇴한다. 그걸 흔쾌히 받아준 어머니의 태도도 놀랍다. 드라마니까 가능한 일이 아니라, 아이 편에 서서 공정하게 세상을 바라보는 부모도 드물지만 있을 터이다. 시청자들은 이러한 서사 앞에서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맛볼지 모른다.

 

학교 교육에서 체벌의 변화

 

드라마는 1998년을 배경으로 “시대에 꿈을 빼앗긴 청춘들의 방황과 성장”을 그리는데, 학교에서 교육이란 이름으로 자행되던 폭력도 그 시대의 특징짓는 사안인 셈이다. 2023년의 중고생들에게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폭력은 얼마나 낯설까. 2016년에 내가 학교를 떠날 때만 해도 남학교여서인지, 교사들의 체벌은 남아 있었다.

 

교육과학기술부에서 학교에서 ‘간접체벌’을 허용하는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개정한 게 2011년이니, 제도 교육에서 체벌은 유지될 수 있는 최소한의 규정이 남아 있는 셈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아이들이 교사의 체벌을 신고하는 사례가 이어지면서 체벌의 존립 근거는 점차 사라지고 있는 듯하다. [관련 글 : 간접체벌 허용? ‘묘수보다 원칙이 필요하다]

 

체벌에 관해서는 나는 할 말이 많으면서, 동시에 그걸 말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다. 1980년대 남학교에서 이른바 ‘열등반’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적잖은 체벌을 행사한 교사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직에서 연차를 더하면서 체벌이 그 동기나 목적에도 불구하고 전혀 ‘교육적’이지 않다는 것은 진실이라는 것을 깨달았었다. [관련 글 : 문제아는 발길질과 따귀로내가 왜 이러지?]

▲ 매는 일시적으로 질서를 세울 수는 있다 . 그러나 그 질서는 매를 놓는 순간 허물어지는 신기루일 뿐이다 .

매는 일시적으로 질서를 세울 수는 있다. 그러나 그 질서는 매를 놓는 순간 허물어지는 신기루일 뿐이다. 교육은 인간의 존엄성을 가르치고 배우는 과정이다. 저마다 하나의 ‘세계’이며, ‘우주인 인간을 가르치기 위해서 그 존엄성을 짓밟는 체벌을 동원하는 것은 결코 용인되어서는 아니 된다. 필요한 것은 아이들도 미성숙하지만, 존엄한 인격체라는 인식인 까닭이다. [관련 글 : 맞아도 싼 아이들은 없다]

 

교권학생 인권의 충돌? 명백한 ‘오진

 

그리고, 2023년은 흔들리는 교권으로 선생님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시대가 되었다. 학부모는 물론 학생들마저 예전 같지 않다. 교사를 협박하는 학부모가 있는가 하면, 교사에게 폭언과 폭력을 서슴지 않는 아이들도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대응으로 ‘학생인권조례’를 드는 것은 명백한 헛발질이다.  아이들이 교사에게 저지르는 ‘일탈’은 ‘학생 인권’과는 별개이기 때문이다. 

 

교사의 권리를 가리키는 ‘교권’은 국가가 교원에게 위임한 권한이므로 학생의 인권 존중을 기반으로 한다. 따라서 교권을 ‘학생 인권’과 충돌하는 개념으로 이해하는 것은 잘못이다. 교사와 학생의 관계는 상생과 상호 존중을 기본으로 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충청남도에서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한 데 이어 서울시도 이를 따르려다가 법원이 서울시 교육청의 집행정지 신청을 인용함으로써 제동이 걸렸다.  이에 서울 학생인권조례는 본안 판결 때까지 당분간  유지하게 되었다. 전국의 교육감 9명도 ‘교권’ ‘학생 인권’은 양립할 수 있다며 조례 폐지 중단을 촉구했다.

 

최근 여당 측 추천 인권위원회 상임위원의 몽니와 어깃장으로 파행을 겪고 있는 국가인권위원회 사태에서 보듯 보수 정권은 ‘인권’이라는 의제에만 유독 알레르기 증상을 보인다. 교권 침해 상황을 과잉된 학생 인권의 문제로 보고 조례 폐지를 해결책으로 내세오는 이 한 바탕의 소극을 뒷날의 역사는 어떻게 기록하게 될까. [관련 글 : 학교 현장의 교권 보호, ‘교감·교장 등 관리자의 책임이 가장 중하다]

 

 

2023. 12. 20.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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