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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현장의 교권 보호, ‘교감·교장 등 관리자’의 책임이 ‘가장 중하다’

by 낮달2018 2023. 9.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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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들을 거리로 내몬 ‘교권 침해 문제’에 부쳐

▲ 지난 7월 29일 경복궁역 부근에서 열린 서울 서이초등학교 교사 추모 및 공교육 정상화를 위한 전국교사집회.

교권 침해와 교육의 위기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은 지난 7월 18일에 서울 서이초등학교 교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다. 그동안, 교사들은 어떠한 교육적 도움도 받지 못한 채, 학부모 등의 교권 침해에 만신창이가 되어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어 온 이들이 적지 않았음이 연이어 드러났다.

 

20만 교사를 자발적으로 모은 ‘교권 침해’와 분노 

 

30년 넘게 중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다가 퇴직한 지 7년째인데도 그런 교단 상황이 금방 와 닿지 않아서 나는 잠깐 혼란스러웠다. 문제가 초중등을 가리는 상황은 아니지만, 유독 초등에서 두드러지게 일어났음을 알고는 그랬나 싶기도 했었다. 그렇다고 해서 안타깝고 불편한 심정이 덜어지는 건 아니었다.

 

안타까움이야 모든 사람이 공감하는 문제여서 빚어지는 감정이지만, ‘불편’이라는 감정은 쉽게 설명하기 어렵다. 그것은 우리가 수십 년 동안이나 수행해 온 ‘참교육 운동’이나, 전교조 활동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조직의 현안으로 안아 해결하지 못한 사실을 깨우치면서다.

 

전교조를 비롯한 교사노조들이 일부 힘을 보탠 듯하지만, 노동조합이 한 번도 이루지 못한 20만 교사의 결집을 경이롭게 지켜보면서 나는 그런 생각도 했다. 그건 노동조합이 조합원이나 교사 대중들의 문제를 제대로 살피고 그것을 풀어내는 능력을 제대로 발휘한 적이 없다는 뜻으로도 읽을 만한 일이었다.

 

어쨌든 교사들이 거리로 나서고 두 달여 만에 ‘교권보호 4대 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법안이 가진 한계도 있을 테고, 그것이 제도적으로 얼마나 보탬이 될 것인가 하는 문제는 논외로 치더라도 말이다.

▲ 서이초등학교 교사의 49재 추모일인 9월 4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교육대학교에서 열린 촛불문화제. 오마이뉴스 사진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4개 법률 개정안은 교원의 지위 향상 및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특별법(교원지위법), 초·중등교육법, 유아교육법, 교육기본법 등이다.

 

교권보호 4법은 제정되었지만

교원지위법에는 교원이 아동학대로 신고된 경우에도 정당한 사유 없이 직위 해제 처분을 하지 못하도록 제한하는 내용이 담겼는데 이 조항은 공포 즉시 시행된다. 교원의 정당한 생활지도가 ‘아동학대’로 신고돼 조사·수사가 진행될 때는 교육감의 의견제출을 ‘의무화’하도록 했다.

 

또 학부모의 악성 민원을 ‘교육활동 침해행위’로 명시했다. 학부모는 교육활동을 침해할 때 서면사과 등의 조치를 받고, 미이수 시 3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내게 되었다. 학교 단위로 열리던 교권보호위원회는 교육지원청으로 이관된다. 이 조항들은 시행령 개정 등의 후속 작업을 거치고 6개월 뒤부터 시행된다.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의 골자는 교원의 ‘정당한 생활지도’는 아동복지법에 따른 신체적·정서적 학대로 보지 않는 것이다. 학교장이 ‘민원 처리를 책임져야 한다’는 조항도 담겼다. 또 보호자(학부모 등)는 교직원과 학생의 인권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했다.

 

유아교육법 개정안에는 교원의 유아 생활 지도권을 명시했다. 교육기본법 개정안은 보호자가 학교의 정당한 교육활동에 협조하고 존중해야 한다는 의무를 규정했다. 해당 법안들은 대통령이 공포하는 즉시 시행된다. 중대한 교권 침해 사안의 학교생활기록부 기재, 아동학대사례판단위원회 설치는 앞서 교육위 법안소위를 통과하지 못해 제외됐다.

 

7년 전에 퇴직했지만, 나는 교권 침해 문제를 전혀 겪지 않았다. 성적 문제로 어쩌다 민원이 불거지기는 사례가 있었을 뿐이었다. 글쎄, 마지막 5년간은 담임을 맡지 않았으므로 같은 문제에 노출될 기회가 없기도 했다. 그러나 희생 교사가 그런 교묘하고 악랄한 교권 침해를 온몸으로 맞서다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태에까지 이르렀다는 데 안타까움과 분노를 가눌 수가 없었다.

 

교권 침해의 피해 교사들이 공통으로 맞닥뜨린 문제는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한 채 오직 자신의 힘으로 그에 맞설 수밖에 없었다는 점이다. 학교에는 동료 교사는 물론 행정 관리자인 교감, 교장도 있으며, 지역에는 교육지원청도 있지만 그런 제도로부터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동료 교사들은 정서적 교감과 위로를 나눌 수는 있지만, 어떤 권한도 없는 ‘을’이긴 마찬가지여서 정작 그런 문제에 구체적인 도움을 주지 못한다. 먼 데 있는 상급기관인 교육지원청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어떤 도움도 없이 맨몸으로 맞서야 했던 희생자들

 

피해 교사들은 대부분 학교 측에 교권보호위원회 개최를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한다. 퇴직 전에 들어보지 못해 교권보호위원회에 대해선  잘 알지 못하나, 학교장이 가장 유력한 판단의 주체다. 나는 교사들의 호소를 거절하거나 무시하는 학교장의 모습을 얼마든지 상상할 수 있다.

 

공무원이나 회사원은 외부의 문제 제기에 대해서 관청이나 회사에서, 즉 상급자가 나서서 내부 직원을 보호하려고 하지만, 교육계엔 그런 ‘상식이 성립하지 않는 곳이 학교’라는 자조적 인식이 있다. 교장, 교감도 평교사에서 승진했지만, 이들은 관리자가 되면서 스스로 일종의 성역이 되어 교사들의 어려움을 내몰라라 하기 쉬운 까닭이다.

 

마땅히 외부의 압력 또는 민원에 대해서 스스로 교사들의 방패가 되어야 할 교감, 교장은 책임을 교사에게 떠넘김으로써 과녁에서 벗어나려고 기를 쓸 뿐이다. 설령 자신의 결정 때문에 빚어진 문제라 할지라도 관리자들은 아이들을 직접 지도하는 교사들에게 책임을 미루기 일쑤다.

▲ 지난 7월 20일, 서이초등학교를 방문한 추모객들. 근조 화환과 추모 메모가 학교를 둘러싸고 있다. ⓒ 시사인 사진

1989년 전교조 사태 때 교사들에게 탈퇴각서를 강요한 관리자들은 교사를 보호하려고 그런다고 부르댔지만, 기실은 자신에게 돌아올 관리 책임을 벗으려는 동기가 훨씬 더 컸다. 그들은 뜻밖의 불똥이 자기 책임이 되어 제 앞길에 장애가 될지도 모르는 상황을 두려워하곤 했었다.

 

면피와 보신에 급급한 교감·교장 등 관리자의 책임이 중하다

 

대전의 초등학교에서 여교사가 목숨을 끊자, 당시 교감은 동료 교사들에게 뇌출혈로 인한 사망이라고 알렸고 “가급적 조문을 삼가라”라는 당부했다고 한다. 이 상식 밖의 대응이야말로 학교 관리자들이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과 자기 보호에 급급한 처신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것이다.

 

의정부의 한 초등학교에서 1년 안에 두 명의 초임 교사가 목숨을 끊은 사고에서도 교감, 교장은 상식에 반하는 철저한 자기 보신으로 일관했음이 드러났다. 그들은 교사들의 민원에 귀를 기울이지도 않았고, 폭주하는 악성 민원을 고스란히 교사들에게 미루었다.

 

이들이 극단적 선택으로 세상을 떠나자, 이 죽음을 ‘추락사’라고 보고한 것도 관리자들이었다. 최근에는 민원에 시달리다가 입대한 교사에게 전화를 걸어, “학부모 민원 전화가 안 오게 하거나, 치료비를 주라”고 요구한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다. 그들에겐 후배 교사의 고통을 나누기는커녕 그 일부분도 자신에게 돌아오지 않게 하려는 극단적 이기와 무책임뿐이었던 것이다. [관련 기사 : “25살 교사 죽음에 책임교장·교감 신상 공개 논란]

▲ 숨진 교사의 49재이자 이를 추모하는 '공교육 멈춤의 날'인 4일 오전 서울에서 열린 지지 기자회견에 참여한 학생

다행스러운 것은 이들의 문제가 드러나면서 경기도 교육청이 이들을 징계하기로 했다는 사실이다. 교사를 보호하지 못한 관리자들은 중징계로 다스려야 마땅하다. 이들뿐 아니라, 문제가 불거진 학교의 상황을 살펴보면 관리자들이 비슷한 대응으로,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덮거나 회피하려고 일관했음이 물어보나마나다.

 

초·중등교육법에 “학교장이 ‘민원 처리를 책임져야 한다’”라는 조항도 담겼지만, 그게 학교 현장에서 어떤 방식으로 운영될 것인지 우려스럽다. 여전히 ‘면피’나 ‘면책’이 바쁜 관리자들이 문제를 축소하거나 사실상 해결이라고 볼 수 없는 화해 따위를 주선하는 식의 형식적 운영에 그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려운 까닭이다.

 

일단 미흡하나마 관련 법률의 개정이 현장 교사들의 교권을 제대로 지켜낼 수 있으면 좋겠다. 교사들이 활발한 협동과 논의를 통해 공동으로 이러한 문제에 맞서고, 노동조합이나 교원단체들이 그 최일선에서 분투하기를 희망한다. 무엇보다도 학교가 사랑과 희망, 배움의 공동체로 거듭나기를 바라 마지않는다.

 

악성 민원을 견디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야 했던 선생님들의 영면을 빈다. 퇴직 교사라서가 아니라, 나는 그들의 분노와 고통에 공감하고 그것을 기꺼이 나누고 싶은 평균적인 시민이어서다.

 

 

2023. 9. 25.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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