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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정부는 ‘독립운동가’가 중심이었다”고?

by 낮달2018 2024. 3.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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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영화 <건국전쟁>의 주장에 대한 팩트체크

▲ 민족문제연구소가 누리집에 올린 <건국전쟁>의 주장에 대한 팩트체크.

요즘 “김덕영 감독이 제작해 2024년 개봉한 한국의 독립영화. 대한민국 제1~3대 대통령 이승만을 다룬 다큐멘터리 역사영화” <건국전쟁>이 흥행세를 이어가고 있다. 정부 여당이 장악한 <한국방송(KBS)>과 <조선일보>, <중앙일보> 등 보수 일간지가 적극적 보도에 나서 관객이 이어지면서 누적 관객 백만 명을 넘었다.

 

<건국전쟁>은 정치인을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 영화로 누적 관객 수에서 2017년 개봉한 <노무현입니다>(185만 명)에 이은 2위에 올랐다. 보수 진영에서 영화의 홍보에 열을 올리는 데서 드러나듯 이 영화는 “박근혜 정부에서 만든 국정교과서에도 기술된 ‘독재자’라는 사실도 부정”(미디어오늘 기사, 이하 같음)하고 있다.

▲ 김덕영 감독이 만든 이승만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 포스터

이는 영화가 이승만 전 대통령의 공과를 다양한 각도에서 객관적으로 평가하기보다 그의 “독립운동 행보와 대통령 재임 시절 농지개혁 등 정책 측면에 긍정적 평가를 하는 것을 넘어 일방적 주장을 다수 담고 있다”라는 주장과 맥을 잇는다.

 

<건국전쟁>은 “이승만 전 대통령이 교육정책에 관심을 쏟은 결과 의식이 높아져 4·19 혁명의 발판이 됐다”는 내용조차 담고 있다. 4·19혁명을 그의 18년 독재, 3·15부정선거 등에 대한 저항으로 빚어진 반독재 민주화 운동으로 기억하는 이들의 고개를 갸웃하게 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백만을 넘기면서 흥행세가 꺾이는 모양새다. 공교롭게도 새로 개봉한 영화 <파묘>가 연일 기록을 갈아치우는 관객몰이에 성공하면서 <건국전쟁>은 3위, 4위로 떨어진 것이다. 이에 “김덕영 감독은 지난 26일 자신의 SNS에 “또다시 반일주의를 부추기는 ‘파묘’에 좌파들이 몰리고 있다”며 “<건국전쟁>에 위협을 느낀 자들이 <건국전쟁>을 덮어버리기 위해 ‘파묘’로 분풀이를 하고 있다”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엉뚱한 좌파 타령은 여기서도 출몰한다. [관련 기사 : 건국전쟁노무현입니다를 넘을 수 있을까]

 

보수세력의 도발에 진보 진영이 또 증세가 도졌구나, 하는 식으로 굼뜬 대응을 하는 건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다. 워낙 황당한 주장을 황당한 방식으로 전개하는 데 마땅히 대응하기도 쉽진 않다. 일부 대중 역사가들이 대응에 나서면서 2013년 <백년전쟁>을 제작해 방영했던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카드뉴스로 <건국전쟁>의 ‘팩트체크’에 나섰다. [카드뉴스 바로가기 : 영화 건국전쟁팩트체크 이승만 정부는 독립운동가 중심이었다?]

 

한국 근현대사 100년을 독립운동가와 친일파, 그 후손들의 전쟁으로 보고 두 전 대통령(이승만·박정희)의 공과 등을 다룬 <백년전쟁>의 1편이 바로 <두 얼굴의 이승만 : 당신이 알지 못했던 이승만의 모든 것>이었다. 2013년 방송통신위원회에서 이 영화를 방영한 <아르티브이(RTV>를 제재하자, 제재 처분 취소 소송이 제기되었다. 1·2심에서 패소했으나 대법원은 다음과 같은 주문으로 이를 뒤집었다. [관련 기사 : 대법서 뒤집힌 백년전쟁]

▲ 2013년 민족문제연구소가 제작한 영화 <백년전쟁>의 1편 '두 얼굴의 이승만'

“‘백년전쟁’이 공정성·객관성·균형성 유지 의무 및 사자 명예존중 의무를 위반했다고 볼 수 없다.”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만든 카드뉴스는 “뉴라이트가 만든 영화 ‘건국전쟁’의 주장, 관연 맞을까요”라고 하면서 조목조목 영화의 주장을 반박하고 있다. 카드뉴스 1편은 “이승만 정부는 독립운동가가 중심이었다”라는 주장에 대한 반박이다.

 

초대 내각에 독립운동가가 많았던 건 사실이다. 그러나 친일파 윤치영이 내무부 장관, 경찰조직, 경찰 간부 대부분이 친일경찰 출신이었다. 1949년 6월 6일 이승만의 명령으로 경찰이 ‘친일경찰 노덕술·최운하를 지키겠다’며 반민특위를 습격한 것은 유명한 사건이다.

 

이승만 정부 인사의 최대 문제는 ‘정실 인사’였다. 이승만은 미국 시절 개인 비서였던 임영신을 상공부 장관으로, 상선 선장 출신의 신성모를 국방부 장관으로, 이승만의 국내 연락책이었던 김도연을 재무부 장관, 정치 자금책 장택상을 외무부 장관으로 임명한 것이다.

 

친일 군인 원용덕을 동원해 친위쿠데타를 감행한 것이 이른바 ‘부산정치파동’이다. 국회의원들을 감금하고 겁박하여 전쟁 중에 굳이 ‘직선제 개헌’을 하여 이승만 2대 대통령에 당선되며 권력을 이어갔다.

 

1954년 5·20총선 때 자유당 후보로 친일파들이 너무 많이 나오자, 이승만은 “일제 때 무엇을 했든 지금 죄를 씻을 일을 하면 애국자”라고 강변했다. 그는 자신의 극우 반공 독재를 강화할수록 친일파를 더 많이 등용했다.

 

1956년 9월 28일 장면 부통령 저격 사건의 배후는 자유당 총무부장 임흥순과 내무부 치안국장 김종원이었는데, 임은 조선임전보국단 평의원, 김은 일본군 출신으로 각각 ‘ 친일반민족행위자’로 <친일 인명사전>에 등재된 인물이다.

 

이승만 정부에서 부정선거의 첨병 역할을 한 내무부 장관 중 <친일 인명사전>에 등재된 친일파만 윤치영, 백한성, 김형근, 장경근, 이근직, 김일환, 홍진기 등 7명이나 된다. 실제로 이승만 정부 역대 내각 중 <친일 인명사전> 등재자는 모두 20명에 이른다.

 

민족문제연구소의 카드뉴스는 ‘진짜 이승만을 알고 싶다면 <백년전쟁>을 반드시 시청하라’고 권하고 있다. 영화로 보고자 하면 민문연 누리집에서 <백년전쟁>의 큐아르(QR) 코드를 따라가시라.

 

 

2024. 3. 1.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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