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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선산(구미) 이야기

잎 벗은 나무와 갈대…, 샛강의 가을

by 낮달2018 2023. 10.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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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둘러 잎 떨군 벚나무와 갈대, 가을 이미지

*PC에서 ‘가로 이미지’는 클릭하면 큰 규격(1000×667픽셀)으로 볼 수 있음.

▲ 최근에 새로 세운 지산샛강생태공원의 상징인 오리와 명칭 구조물.
▲ 무성한 잎을 벗고 나목으로 가고 있는 샛강의 벚나무.
▲ 샛강 도로 아래쪽 강변의 갈대. 세찬 바람에 쏠려 흘러가는 갈대의 물결은 장관을 연출했다. 뒤쪽의 산이 금오산이다.

지난 20일, 다시 샛강을 찾았다. 기온이 많이 내려간 것은 아니지만, 바람이 강하게 불어서, 체감 온도가 떨어졌다. 오랜만에 도로 아래쪽 강부터 돌기 시작했다. 바람이 세차서 몇 번이나 뚜껑 없는 챙 모자가 날아가려고 해서 나는 몇 번이나 모자를 새로 눌러써야 했다.

 

사흘 전 들러 버들마편초를 찍을 때만 해도, 그새 나뭇잎이 거의 다 떨어졌네, 하고 무심히 지나쳤었다. 바람이 몰아치는 둘레길로 들어서는데, 강을 삥 둘러싼 벚나무에 잎이 거의 붙어있지 않았다. 품종이 조금씩 달라서일까, 나는 머리를 갸웃했다. 요즘 매일 지나치는 동네 중학교 운동장의 벚나무도 한창 단풍으로 물들고 있었고, 이웃 아파트 담장 가의 잎이 고운 벚나무도 아직은 싱싱하기만 했는데, 유독 샛강의 벚나무만 잎을 죄다 떨구어 버린 것이다.

 

가끔 들른다는 것으로 샛강을 잘 안다고 여기기 쉽지만, 샛강의 사계는 때로 상상과는 다른 모습으로 우리를 맞았다. 해마다 봄이면, 샛강에 열차처럼 달려가는 ‘벚꽃’ 행렬을 바라보면서 나는 ‘벚나무 단풍’을 상상했었다. 그러나 정작 한 번도 나는 샛강의 단풍을 찾지도 만나지도 못했다. [관련 글 : 올해도 샛강 벚꽃열차는 달린다]

▲ 잎을 벗은 벗나무의 남은 잎들. 왼쪽 뒤에 보이는 아치형 다리가 지산교다.
▲ 샛강의 잎 벗은 벚나무. 수면에 누렇게 떠 있는 것은 말라가고 있는 연잎이다.
▲ 바람에 쏠리고 있는 갈대. 샛강을 가로지르는 도로 아래쪽 강변에 대규모의 갈대 군락이 자생해 있다.
▲ 샛강 위를 지나가는 33번 국도의 지산교 아래의 갈대.

샛강의 벚나무들은 잎이 일찍 지는 품종일까. 강 둘레를 따라서 심긴 벚나무들은 모두 잎 벗은 나무로 서 있었다. 가지 끝에 듬성듬성 남은 푸르고 붉은 잎사귀들이 바람에 서글프게 나부꼈다. 나는 카메라 줌을 최대한 당겨서 허공에서 나부끼는 이파리들을 렌즈에 담았다.

 

세찬 바람에 쓸려 물결처럼 흘러가는 갈대들이 연출하는 풍경도 장관이었다. 갈대는 도로 아래쪽 강에 군락을 이루고 있는데, 그것이 바람에 넘실대는 장면은 억새의 그것과는 또 다른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돌아와서야 그 장면을 동영상으로 찍을걸, 하고 나는 후회했다.

▲ 아래쪽 강 끝부분에서 바라본 샛강. 멀리 지산교가 보이고, 수면을 뒤덮은 것은 말라가는 연잎이다.
▲ 위와 비슷한 화각에서 찍은 지난 3월 27일의 사진. 수면은 잔잔하고, 양쪽 가에 벚꽃 행렬이 화사하다.

샛강 둘레길에도 가을은 완연했다. 알지 못하는 새에 가을은 샛강의 수면과 둘레길이 시치미를 떼고 닿아 있었다. 추수가 끝난 논둑에 바람에 세차게 나부끼고 있는 코스모스도, 어느새 꽃이 지고 열매 안에 씨로 여물고 있는 무궁화도, 아치형 지산교 아래 언덕에 군락을 이룬 노란 산국이 눈부시게 화사했다.

 

지난여름에 다투어 꽃을 피우던 연은 어느새 그 무성하던 잎사귀들을 떨구고 누렇게 변해, 마치 방아깨비처럼 수면에 서글프게 떠 있다. 나는 수면을 가득 채운 연의 자취가 이듬해 3월이면 어떻게 감쪽같이 깨끗한 수면으로 바뀌는지 궁금했는데, 가만 생각하니 물이 준 강에 물을 대어서일 거라는 데 생각이 미쳤다. 

▲ 지산교 아래 자생한 산국 군락의 노란 산국의 꽃빛이 화사하다. 오른쪽 아래는 무궁화 열매.
▲샛강 둘레길 감밭의 감나무에 감이 먹음직스럽게 익고 있다.
▲ 샛강의 수면에서 말라가는 연잎들. 불과 두 달 전만 해도 이 수면을 뒤덮었던 것은 무성한 연잎과 아름다운 연꽃이었다.
▲ 위 사진과 비슷한 화각에서 찍은 지난 3월 27일의 사진. 벚꽃 행렬이 눈부시다.
▲ 위쪽 강의 왼쪽에서 찍은 사진. 벚나무 아래 버들마편초가 피었다. 꽃 너머 누런 빛의 연잎이다.
▲ 위 사진과 비슷한 화각에서 찍은 지난 3월 26일의 사진. 시민들이 벚꽃을 즐기고 있다.

샛강을 반쪽으로 가로지르는 괴평교 다리 아래쪽 밭의 몇 그루 감나무에서 감이 빨갛게 익고 있었다. 요즘은 감도 방제하지 않으면 온갖 병충해를 입어 온전한 감을 얻기 어려운데, 이 감들은 쨍한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선명하게 빛났다.

 

아래쪽 강에서 도로를 건너면서 지난번에 이야기한 버들마편초 군락으로 이어진다. 새로 바라보니, 군락다운 면모가 있다. 지난번 글에서는 숱이 적어서 마치 허공에 뜬 듯하다고 했는데, 그건 내 착각이었던 모양이다. 위쪽 강이 시작되는 다리 끝에 서면, 새삼 지난 4월에 만났던 눈부신 벚꽃 행렬의 감동이 고스란히 되살아나곤 한다.

 

앞으로 여섯 달, 샛강에 다가올 겨울과 철새들을 생각하면서 2024년의 ‘벚꽃 열차’를 상상해 본다.

 

 

2023. 10. 23.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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