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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선산(구미) 이야기

‘칠곡 할매’들이 담벼락에 그려낸 그들의 ‘삶과 자부’

by 낮달2018 2023. 1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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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곡] 칠곡군 약목면 남계리 ‘칠곡 가시나들 벽화 거리’

*PC에서 ‘가로 이미지’는 클릭하면 큰 규격(1000×667픽셀)으로 볼 수 있음.

▲ 영화 <칠곡 가시나들>의 주인공들이자, 약목면 남계리 '칠곡 가시나들 벽화 거리'를 만든 복성리에 사는 8, 90대 노인들.
▲ 2019년에 상영된 다큐 영화 <칠곡 가시나들> 포스터

차를 끌고 나설 땐 묵혀두었던 볼일 몇 가지를 몰아서 해치우려는 하는 건 퇴직 후에 생긴, 요샛말로 ‘루틴’이다. 등락을 거듭하긴 하지만, 그간 기름값이 다락같이 오를 때가 적지 않았고, 코로나 시절엔 되도록 외출을 삼가다 보니 자연 그렇게 되었다.

 

약목면 남계리의 ‘칠곡 가시나들 벽화 거리’

 

북삼읍 인평리의 달제 저수지를 돌아보고 내처 향한 데가 약목면 남계리다. 금오산에서 발원하여 동네를 가르며 낙동강으로 흘러 들어가는 하천이 두만천(豆滿川)인데, 웬 두만? 싶어서 나중에 확인하니 북녘의 ‘두만강’과 한자도 같다. 왜 이런 이름이 붙었을까 궁금하지만, 그 까닭을 알아볼 방법이 없다.

 

 ‘칠곡 가시나들 벽화 거리’는 계곡의 남쪽이라는 뜻의 남계(南溪)리 두만천 주변에 조성되어 있다고 했다. 상류의 저수지 두만지 앞에 있는 조선 후기 무신 신유(申瀏, 1619∼1680) 장군의 유적을 돌아보고 내를 따라 내려가는데, 어쩐지 개울 옆 동네가 낯설지 않았다.

▲ 금오산에서 발원하여 남계리를 가르며 낙동강으로 흘러 드는 하천 두만천(豆滿川). 두만강과 한자도 같은데 이유는 모른다.

벽화 거리로 가려고 차를 다리 옆에 세우고 동네를 돌아보니 마을 안쪽의 담벼락에 그려진 벽화가 눈에 익었다. 아, 맞다. 여기는 2016년에 찾았던 벽화마을이다. 김천 지산동 벽화 마을을 다녀와서 검색하다가 가까운 약목에도 벽화마을이 있대서 찾은 것이다. [관련 글 : 시골 벽화마을엔 우리 자신의 모습이 있다]

 

벽화마을 아래 벽화 거리

 

금방 찾을 수가 없어서 물어물어 찾았더니 칠곡 가시나들 벽화 거리는 두만천 위를 지나는 다리 남계교와 찻길인 칠곡대로의 약목교 사이 두만천 200여m 구간의 담벼락에 시와 그림을 그려서 조성해 놓은 거리다. 2019년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칠곡 가시나들>의 실제 주인공인 칠곡군 약목면 복성2리 곽두조(89)·김두선(87)·박금분(90)·박월선(90)·강금연(86)·이원순(81)·안윤선(81) 할머니의 시(詩)에 그림을 곁들여 제작됐다.

▲벽화거리에는 방문객들이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여온나 찍자'란 포토존도 마련돼 있다.
▲ 벽화거리의 화폭에 된 건물들은 주로 슬레이트 집이거나 허술한 벽돌집이 대부분이다.
▲ 2019년 칠곡의 할머니들이 함께 펴낸 시집 〈시가 뭐고 〉

이들은 모두 칠곡군이 2008년부터 군 안 22개 마을에서 운영한 ‘성인 문해교실’에서 한글을 배워 깨친 이들이다. 이들은 시를 써서 칠곡의 다른 마을 할머니들(총 89명)과 함께 시집 <시가 뭐고?>를 펴내기도 했다. 또 다른 할머니 5분의 글씨로 만든 글꼴 ‘칠곡 할매 글꼴’이 만들어지진 것도 성인 문해교육의 결실이었다. [관련 글 : 삐뚤빼뚤 칠곡 할매들의 손 글씨, ‘폰트로 나왔다]

 

육신은 쇠락했으나 마음은 ‘낭랑 18세’인 할머니들

 

‘가시나’는 ‘계집애’의 경상·전라 방언이다. ‘가시내’라고 쓰기도 하지만, 짝이 되는 ‘머슴애’와는 달리 이 낱말은 아직 <표준국어대사전>에 오르지 못한 말이다. 당연히 어른에게 가시나라고 부를 수 없다. 그런데도 영화와 벽화 거리에 ‘가시나’를 쓴 이유는 하나다.

 

8, 90이 넘은 할머니들이지만, 이들은 서로를 ‘가시나’라고 부르기 때문이다. 우리가 보기에는 호호 할머니들이지만, 이들은 서로를 소녀 때의 이름으로 부른다. 그렇게 부르면서도 하나도 어색해하지 않는 것은 비록 육신은 쇠락했지만, 마음은 여전히 낭랑 18세 때의 것인 까닭이다. 남자 노인들이 서로 ‘머슴애’라고 부르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노인이 아니라 여전히 소녀, 소년의 기분으로 상대를 바라본다는 걸 나도 나이 들면서 깨닫게 되었다. 

▲ 벽화 거리가 시작되는 시장 입구의 첫 벽화. 집을 철거하면서 "인생, 참말로 고맙데이"의 앞부분이 사라져 버렸다.(원 안)
▲ 길게 이어진 블록 담장에 그려진 글과 그림들이 남계교에서 약목교까지 길게 이어지고 있다.

성인 문해교육으로 팔십 줄에 배움의 길로 들어선 할머니들은 자신들의 진솔하고 애틋한 인생 이야기를 가감없이 글과 그림으로 표현한 벽화 거리는 총 7개 구간으로 나뉘어 있다. 그 첫 구간은 ‘인생 참말로 고맙데이’란 메시지로 시작한 할머니들의 인생 여정을 담은 길이다.

 

“인생 참말로 고맙데이”

 

2구간은 손녀의 모습에서 어린 시절을 떠올리는 소녀 구간, 3구간은 소녀에서 여자로 성숙해 가는 과정을 표현했다. 엄마가 되어 자식을 걱정하고 기다리는 기다림 구간이 4구간, 멀리 떠난 영감(할아버지)을 회상하며 젊은 날의 추억을 떠올리는 추억 구간은 5구간이다. 6구간은 장성한 자식이 오히려 엄마를 걱정하는 우리 엄마 구간으로 그려져 있다. 마지막 7구간은 할머니들의 재치 있는 입담과 마을 곳곳에 숨겨진 할머니들의 그림을 찾아 동네를 돌아보게 하는 보물찾기 구간으로 돼 있다.

 

1930년대와 1940년대에 태어나 절대 빈곤의 시기를 거쳐 고단하게 살아온 이들이지만, 노년에 겨우 한글을 깨치고 돌아보는 자신의 삶은 절대 남루하지 않다. 배우지도 넉넉하지도 못한 간난의 삶이었지만, 그 삶 속에서 그들은 사랑하고 미워하면서 자식을 낳고 길렀다. 그리고 이제 한숨 돌린 노년에서 자신의 지난 삶을 반추하는 이들의 눈길은 넉넉하다. 그리고 그것은 ‘인생 참말로 고맙데이’란 메시지로 압축된 것이다.

▲ 담장 한 쪽에 김두선 할머니가 쓴 '도래꽃 마당' 시가 게시되어 있다.

마당에 도래꽃이 만타

영감하고 딸하고 같이 살던

우리 집 마당에 도래꽃이 만타

도래꽃 마당에 달이 뜨마

영감 생각이 더 마이 난다

- 김두선(87), 도래꽃 마당

 

그의 집 마당에는 도라지꽃이 흐드러졌다. 영감하고 시집간 딸과 함께 살던 집이다. 도라지꽃 만발한 마당에 달이 뜬다. 그는 달빛 속에서 문득 먼저 간 영감님 생각에 마음을 적신다. 가득한 달빛 속 애증도 회한도 덧없이 스러지는 도라지꽃 화사한 마당이다.

 

노인의 진심이 직설적으로 드러나는 짤막한 생활 시편 속에는 고단한 세월을 의연히 건너온 여인의 넉넉한 여유와, 인생 뭐 별거 있어, 같은 담백한 마음자리가 담겨 있다. 흘러간 과거는 추억과 회상 속에서 덧없이 스러지고, 이제 그걸 견뎌내고 노년에 도달한 이들의 담담한 마음 씀씀이가 절로 느껴지는 시편이다.

▲ 칠곡대로가 지나가는 약목교 쪽에서 바라본 벽화 거리.
▲ 남계교 건너편 담벼락에 쓰인 글과 그림들. 영화 <칠곡 가시나들>을 소개하고 있다.
▲ 찻길인 칠곡대로 쪽에서 바라본 두만천. 이 하천은 금오산에서 발원하여 낙동강으로 흘러든다.
▲ 남계교 건너편에 있는 담벼락의 그림과 글들. '칠곡늘배움학교'의 칠판과 학생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 허술하고 높낮이가 다른 벽돌담에 2019년에 개봉된 다큐 영화 <칠곡 가시나들>을 소개하고 있다.
▲ 벽화 거리의 끝에 쓰인 '인생 팔십줄 사는 기 와 이리 재민노'는 할머니들이 마침내 이른 도저한 낙관주의를 보여준다.

그러나 색색의 페인트로 덧칠한 낡아빠진 담장과 벽에는 여전히 고단하고 피폐한 삶의 흔적을 감추지 못한다. 허물어지거나 기울어진 블록 담장과 금이 간 시멘트벽, 이끼가 낀 담장 밑에 고인 삶의 무게를 스쳐 지나지 못한다. 그러나 그게 현재형이 아니라 과거형이라는 게 위안이고, 노인들의 남은 생애를 염려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다.

 

“우리 모두의 할머니, 어머니, 세상의 모든 딸들에게 바칩니다”

 

영화 <칠곡 가시나들>의 부제 같은 ‘오지게 재미있게 나이듦’이 가리키는 지점이 그쯤이다. 그래서 영화가 아니더라도 이 영화의 헌사 “우리 모두의 할머니, 어머니, 세상의 모든 딸들에게 바칩니다”는 남계리 담벼락에 그려진 벽화 속에서도 생생하게 살아 있는 이유다.

 

칠곡 할매 글꼴 이야기에서 밝혔듯, 이들 세대는 가난으로 보통교육을 받지 못한 마지막 세대가 될지 모른다. 세계 최빈국에서 개발도상국을 거쳐 마침내 선진국의 반열에 든 대한민국에서 이후로는 그들이 겪은 가난과 신산이 반복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뜻에서 복성리의 남계리의 담벼락을 장식한 노인들의 시와 그림은 한 시대, 한 세대의 종언이 될 수 있다. 날이 가면 담벼락의 페인트칠은 벗겨지고 낡아가면서 시와 그림은 희미해지고, 사람들에게서 잊혀 갈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자식이 낳은 아이들이 다시 젊은이로 자라는 순환이 이어질 것이니 말이다.

 

약목교 아래 두만천의 보를 건너서 개울 건너에도 벽화는 이어진다. 그 끝부분의 담벼락에 쓰인 글은 “인생 팔십 줄 사는 게 와 이리 재민노”다. 그건 이 노인들이 간난의 세월을 견디며 마침내 이른 도저한 낙관주의다. ‘칠곡 가시나들’이 그런 마음으로 여생을 여미기를 빌면서 나는 두만천과 벽화 거리를 떠났다.

 

 

2023. 11. 19.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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