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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선산(구미) 이야기

그 숲과 황톳길 - 칠곡의 테마공원 ‘가산수피아’

by 낮달2018 2023. 10.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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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과 황톳길을 품은 울창한 숲, ‘숲이야’ 탄성이 절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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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피아 미술관에서 공룡뜰로 오르는 길목. 왼쪽 위에 하늘정원의 핑크뮬리가 보인다.
▲ 솔숲의 맨발 걷기 황톳길. 흙길 가운데에 고운 황토를 두툼하게 얹었다. 황톳길은 모름지기 이래야 마땅하다.
▲ 공룡뜰 위쪽에 있는 카페 그라운드 수피아. 옛 종돈장의 흔적인 듯한 철근 구조를 살려놓았고 앞에는 핑크뮬리 밭이다.

테마공원 가산수피아를 알게 된 것은 지난 8월, 가까운 데 맨발 걷기에 맞춤한 길이 없나 찾으면서다. 경상북도 나들이 블로그는 물론 칠곡군의 문화관광 사이트에서 명소로 소개하는 곳이었다. 가산수피아? 난생처음 듣는 곳인데, 거기 1.5km 황톳길이 펼쳐져 있다고 했다. 나는 이름의 ‘가산’만 보고 가산산성이 있는 동명면 쪽의 위락단지 안에 있는가 보다, 지레짐작하면서 언제 가족들 모이면 들르리라고 마음먹고 있었다.
 
2019년에 문 연 가산수피아, 4년 뒤에 알았다
 
명절을 앞두고 새로 검색해 보니 가산수피아는 동명 쪽이 아니라, 인동에서 가산으로 넘어가는 학하리에 있었다. 인터넷으로 2천 원 할인하여 6천 원에 입장권을 사서 한가위 오후에 길을 나섰다. 구미시 고아읍 문성리에서 33번 국도를 타고 구미시 구평동에서 내려 가산면 천평리 가는 길로 5분쯤 가니 오른쪽으로 칠곡군 가산면 학하들안2길 105(학하리 1206-5), 가산수피아를 알리는 이정표가 나타났다.
 
성벽 모양으로 세운 담장 가운데 성문처럼 뚫린 문을 지나 입장권을 확인하고 들어가는데, 눈앞에 전개되는 메타세쿼이아 숲이 예사롭지 않았다. 비자나무가 2열로 서 있는 언덕 아래 주차장에 차를 대고 나오자, 공원으로 오르는 길은 벚꽃길, 좌우에 45년이 넘은 벚나무 고목이 넘실대며 이어졌다.

▲ 주차장에서 공원으로 올라가는 벚꽃길. 45년생의 벚나무 고목이 치렁치렁한 잎을 늘어뜨린 이 길의 운치는 단연 최고다.
▲ 주차장 위쪽의 카라반. 12대의 가족형, 2대의 단체 대형카라반으로 운영하는 숙박시설이다.

탄성  ‘숲이야!’에서 비롯한 이름, 혹은 ‘숲 + 유토피아’ - 국내 최대의 민간 정원(4만 평)
 
2019년에 문을 연(그런데 나는 4년이 지나서야 알았다) 가산수피아는 테마공원의 각종 시설, 구조물을 빼면 눈에 들어오는 것은 모두 나무고 숲이다. ‘수피아’란 이름은 눈을 돌릴 때마다 시야를 가득 채우는 숲이 선사하는 경이로움에서 터져 나온 탄성 ‘숲이야!’에서 비롯했다고 하고, 또 어떤 이는 ‘숲’과 ‘유토피아’가 합쳐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수피아가 깃든 골짜기는 산림청의 ‘숨겨진 우리 산 244’에 선정된 명산으로 ‘학이 놀던 산’ 유학산(遊鶴山 839m)이다. 중생대 백악기에 솟은 응회암류로 이루어진 유학산의 정상 부분은 대체로 완만한 억새밭이지만, 남쪽과 북쪽의 사면은 경사가 매우 급하여 낭떠러지를 이룬다.
 
유학산의 북 사면 자락의 학하리(鶴下里) 골짜기에 조성된 가산수피아는 현재 개방된 곳은 13만 2천㎡(약 4만 평)으로 국내 민간 정원으로는 최대 규모라 한다. 본디 이 골짜기에는 국내 처음으로 방역 위생 우수종돈장으로 인정받은 양돈 사육장이 있었다고 한다. 한 사업가가 이 땅을 사들여 여러 해에 걸쳐 꽃과 나무를 심어 정원을 만들었고 옛 농장 건물은 새로운 공간으로 바꿔냈다.
 
주차장으로 공원 경내로 들어오는 벚꽃길 좌우에 선 벚나무 고목이 45년생이라니 적어도 1970년대 후반에는 여기에 정원 조성이 시작된 셈이다. 숲을 이루는 일에 4, 50년이나 공을 들이고 그 결실로 이렇듯 아름다운 숲을 내놓는 이의 한 우물 파기가 우러러보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주차장 위쪽의 카라반(caravane)은 12대의 가족형, 2대의 단체 대형카라반으로 운영하는 숙박시설이다. 대상(隊商)의 이름을 따 왔지만, 물론 천막은 아니고, 차량형으로 된 숙박시설이다. 미술관 오른쪽에 조성된, 수영장과 샤워실을 갖춘 캠핑장과 함께 수피아의 이른바 ‘잠뜰’을 이루는 시설들이다.

▲ 수피아 미술관. 테마공원과는 별도로 운영되는 전시 문화 공간이다. 언덕 아래 지어 지하처럼 보이고, 자연석 벽돌로 쌓은 벽이 멋있다.
▲ 수피아 미술관 오른쪽의 캠핑장. 수영장과 샤워실을 갖춘 야영 시설이다.
▲ 수피아 미술관 오른쪽 측면에 있는 카페에서 커피를 마셨다. 대형 창으로 공원이 내다보였다.
▲ 수피아 미술관으로 들어가는 오른쪽 입구. 고목에 새 잎이 피어 있다.
▲ 수피아 미술관 앞 마당. 오른쪽이 미술관이고, 뒤쪽 통로로 나가면 암석정원과 공룡뜰이다.

조금 더 오르면 언덕 아래 자연석 벽돌을 두른, 마치 지하 공간처럼 조성한 건물이 수피아 미술관이다. 테마공원과는 별도로 운영되는 미술관은 다양한 전시로 지역 미술의 활성화와 전시·교육·공연·체험 등 소통을 위한 체험 프로그램에도 힘쓰고 있다고 한다. 전시 중인 미디어 아트전 구경 대신에 우리는 미술관 오른쪽 옆의 카페에서 커피를 마셨다.
 
미술관과 공룡뜰 …그리고 핑크뮬리
 
다시 공원 위쪽으로 오르니, 왼쪽은 몸길이 42m 브라키오사우루스, 티라노사우루스, 트리케라톱스, 파키케팔로사우루스 등 움직이는 초대형 공룡들과 화석 발굴 체험장이 있는 공룡뜰이다. 어린이들을 위한 테마공원으로 거대한 규모의 공룡은 만듦새가 조악하지 않고 썩 그럴듯했다.

▲ 자연석인지 일부러 조성한 것인지 모르는 너덜겅 (돌이 많이 흩어져 있는 비탈)에는 암석정원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 몸길이 42m 브라키오사우루스, 티라노사우루스, 트리케라톱스, 파키케팔로사우루스 초대형 공룡들을 전시한 공룡뜰.

미술관 왼쪽으로 사면에 펼쳐진 너덜겅(돌이 많이 흩어져 있는 비탈)은 암석정원이라는 이름이 붙었고, 그 오른쪽 그러니까 미술관 지붕 위는 하늘정원으로 핑크뮬리가 화사하게 피어 있었다. 미술관 오른쪽에 야영장, 그 위로는 돌담길이 이어졌다.
 
분재원을 지나 공원의 맨 위쪽 솔숲 아래에 구절초가 만발한 핑크뮬리 언덕이 펼쳐져 있다. 우리 눈에는 별로인데, 언제부턴가 이 볏과의 여러해살이풀 핑크뮬리(pink muhly grass)가 사람들의 사랑을 받기 시작했다. 곳곳의 공원에 다투어 심기 시작했지만, 지난해 환경부는 이 풀을 생태계 위해성 2급으로 지정하고 번식력이 워낙 강해 국내 생태계에 악영향을 미칠지 몰라 관찰 대상으로 분류하고 공공기관에 식재 자재를 권고했다. 최근에는 울산대공원 등 핑크뮬리를 제거하고 수종을 바꾸는 곳이 늘면서 퇴출 대상이 되기에 이르렀다고 한다.
 
구미의 낙동강 체육공원에도 핑크뮬리가 심겨 있는데, 수피아의 그것은 견주기 어려울 만큼 규모가 크고 광범위했다. 사람들은 저마다 이 풀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휴대전화로 그 풍경을 찍기에 바빴다. 핑크뮬리 언덕 위 연못 주위에 솔숲을 배경으로 맨발 걷기 황톳길이 만들어져 있었다.

▲ 카페 그라운드 수피아. 들어가는 길에 철로가 깔려 있고, 왼쪽은 메밀밭, 오른쪽 물 앞은 핑크뮬리밭이다.
▲ 솔숲 황톳길로 오르는 길목의 핑크뮬리 언덕. 왼쪽 솔밭은 구절초원, 핑크뮬리가 꽤 넓은 지역에 심겨 있다.
▲ 환경부가 생태계 위해성 2급으로 지정하고 번식력이 워낙 강해 국내 생태계에 악영향을 미칠지 몰라 관찰 대상으로 분류한 핑크뮬리.
▲ 연못 앞에서 내려다본 핑크뮬리 언덕. 마침내 퇴출 대상으로 몰린 핑크뮬리는 언제까지나 이 공원을 장식하게 될까.
▲ 핑크뮬리 언덕 위의 연못. 여길 돌아 황톳길이 시작된다. 황톳길은 3km와 1km의 두 개 코스가 있다.
▲ 가산수피아의 맨발걷기 황톳길 코스 안내도

 

▲ 솔숲에 난 흙길 가운데 고운 황토를 두텁게 깔았다.
▲ 굳이 맨발로 걷지 않아도 이 그윽한 숲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정화를 누릴 수 있을 듯하다.
▲ 갈림길. 오른쪽으로 가면 이끼정원으로 오르는 황톳길 3km 코스다. 이끼는 나무와 바위 곳곳에 끼어 있다.
▲ 황톳길이 끝나는 곳의 길가에 세워놓은 벤치. 황톳길도 인위를 지양하고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살렸다.

수피아의 진짜 맨발 걷기 ‘황톳길’
 
굵은 모래(마사토)를 깐 여는 길과는 분명히 차이가 나는 그야말로 진국의 ‘황톳길’이다. 아이들은 구경을 이어가고 우리 내외는 주저하지 않고 신발을 벗었다. 누렇고 고운 입자의 진흙이 길의 중앙에 두툼하게 쌓였는데, 간밤의 비를 머금어 촉촉한 그 느낌이 아주 좋았다. 코스는 3km와 1km, 두 종륜데 우리는 짧은 길을 택했다. 짧은 코스를 선택하는 바람에 유명한 이끼 정원은 만나지 못했다.
 
황톳길 위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으니, 최근의 ‘맨발 걷기’가 붐이라는 사실을 확인한다. 아주 고령의 노인들도 중간중간 쉬면서 걷는데, 얼굴들이 밝고 건강해 보였다. 간이 수돗가에서 발을 씻고, 공원을 내려가는데, 주변은 댑싸리를 빽빽이 심은 ‘댑싸리 가든’이다.
 
댑싸리(Kochia scoparia)는 마당 비를 만들기 위해 뜰이나 집 둘레에 심던 한해살이풀인데, 공원 및 강가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다. 핑크뮬리처럼 가을이 되면 붉은빛으로 잎이 변하는 관상용 식물로, 식재 자제 권고가 내려진 ‘핑크뮬리’의 빈자리를 채우고 있는 풀이다.

▲ 댑싸리 공원의 모과나무. 고목이 된 모과나무에는 모과가 가득 열려 있었다.
▲ 댑싸리 공원의 연못과 솔밭. 연못에 연잎과 떠 있고, 못가에는 부들이 피어 있었다.
▲ 세족장. 자리에 앉아서 발을 씻을 수 있는 곳인데, 초점이 맞지 않았다. 오른쪽은 80트럭.
▲ 공룡뜰로 가는 길가의 돌담. 수피아에는 이런 돌담길이 적지 않다.
▲ 공룡뜰의 공룡들. 이들은 조금씩 움직이기도 하는 등 매우 정교하게 만들어졌다.

댑싸리 가든 옆은 낙타과 비쿠냐 속에 속하는 포유류로 남아메리카에서 주로 모직물 원료를 목적으로 사육되는 가축인 알파카 랜드였다. 별도 요금을 내고 알파카 먹이를 주는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 중인데 추석날이어서 휴장이었다. 알파카 랜드 주변에는 짐승의 배설물 등 냄새가 아주 심하게 났다.
 
잃었다가 되찾은 축복 같은 숲, 단풍철에 다시 만나길
 
올라갈 때 그냥 스쳐 지났던 공룡 뜰을 가로질러서 내려오니 어느새 두 시간이 훌쩍 흘렀다. 같은 길인데도 올라갈 때와 내려올 때의 분위기와 느낌이 다르다. 나무와 숲이 연출해주는 오묘한 조화다. 가산수피아는 분명 인공이 가해진 시설물인데, 비교적 그 인위적 느낌이 덜 들고, 시설물과 숲이 아주 잘 어우러지고 있었다. 아니, 인공의 흔적 따위는 우람한 숲의 아우라가 무화해 버리는지 모른다.
 
저절로 이루어진 숲이든, 계획 조림으로 이룬 숲이든 그것이 도시 문명에 찌든 현대인들에겐 흔치 않은 축복이면서 치유의 공간이다. 김천 수도산 자작나무숲이 ‘치유의 숲’이라는 이름을 붙인 이유가 다르지 않다. 그것들은 자신의 성장으로 인간에게 ‘아낌 없이 주는’ 나무요 숲인 것이다. [관련 글 : 코로나 시대의 여행, 바다보단 자작나무숲]

 

한가윗날에 우연히 찾게 된 가산수피아는 마치 잃었다가 되찾은 축복의 공간처럼 느껴졌다. 나는 잠깐 손주 녀석들을 데리고 가산수피아의 카라반이나 캠핑장을 찾는 상상을 잠깐 하다 말았다. 손주는 고사하고 아이들은 제 머리도 못 깎고 있으니 내 상상은 너무 앞서간 것이다. 10월 말쯤, 단풍이 좋을 때 벗들과 함께 다시 들르겠다고 생각하면서 우리는 가산수피아, 이 가을에 만난 축복의 숲을 떠났다.

 

돌아와서 아이들은 기대 이상이라고 만족을 표시했고, 아내도 말로만 듣던 숲이 너무 좋았다고 했다.  나이가 들수록 숲은 훨씬 더 친밀해져서 타자가 아닌 내 자신의 일부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것은 숲이 마침내 돌아가야 할 곳이라는 사실을 우리 몸이 먼저 알아채고 있어서인지도 모른다. 

▲ 공원을 내려오면서 찍은 벚꽃길. 이 벚나무에 단풍이 고울 때에 다시 한번 수피아를 찾으리라.
▲ 제5주차장 바로 위에 2열로 서 있는 메타세쿼이아. 처음엔 비자나무인가 싶었는데, 메타세쿼이아가 맞을 듯하다.

 
 

2023. 10. 4.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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