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마이너리티(minority)를 위하여

[오늘] 세계 최초로 네덜란드에서 ‘동성결혼’ 합법화

by 낮달2018 2023. 3. 31.
728x90
SMALL

“결혼은 동성의 두 사람에 의해서도 이루어질 수 있다.”

▲ 동성결혼은 생물학 사회적으로 동일한 성의 두 사람 간에 법률상, 사회상으로 이루어지는 결혼이다.

“결혼은 이성의 혹은 동성의 두 사람에 의하여 이루어질 수 있다.”
    - 네덜란드 개정 결혼법 조항

 

15년 전 오늘(2001년 4월 1일) 네덜란드에서 세계 최초로 동성 결혼이 합법화되었다. 1989년, 이웃인 덴마크에서 처음으로 동성 커플 간의 시민결합(Civil union)을 법적으로 인정한 이후 네덜란드 성 소수자 인권운동연합은 정부에 동성 결혼을 허용할 것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이에 응답하여 네덜란드 의회는 1995년 관련 특별위원회를 설립하였다. 1997년에 특별위원회는 파트너 등록제(geregistreerd partnerschap)를 도입하기로 하고 이듬해(1998) 1월 1일부터 파트너 등록제를 시행함으로써 이른바 시민결합을 인정하게 되었다.
 
‘동성 결혼’은 1998년 선거에서 공약으로 제시되었고 정한바 토론을 거쳐 이를 반영한 결혼법 개정안이 의회에 상정되었다. 이 법률안은 하원과 상원을 통과하여 공포됨으로써 마침내 세계에서 처음으로 동성 결혼이 법률의 보호를 받게 된 것이다.
 
2001년 4월 1일, 네덜란드 동성결혼 합법화
 
동성 결혼은 기독교가 전파되기 전인 고대 그리스와 로마, 메소포타미아, 중국 등 고대 세계에 널리 존재해 왔다. 고대 문명에서는 결혼을 남자와 여자만으로 제한한 경우는 찾기 힘들다고 한다. 동성 결혼의 흔적은 고고학적 유물이나 무덤, 고서 따위에서 비교적 뚜렷하게 나타나지만, 그것이 ‘법적으로 인정’ 받았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남성과 여성이 당사자가 되는 결혼’의 시작은 기독교가 로마에서 승인되고 유럽에 뿌리를 내리면서 부터다. 서기 342년 로마 황제인 콘스탄티우스 2세와 콘스탄스는 테오도시우스 법전(Codex Theodosianus)에 따라 동성결혼을 금지하고 동성 결혼자들을 처형하도록 명령하였다. 이 사실은 적어도 그 이전 시대까지는 동성결혼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방증이다.

▲ 호주에서 동성 결혼 합법화에 대한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 아일랜드는 보편적 투표를 통해 성적 취향에 관계없이 모든 국민에게 완전한 시민 결혼 평등을 도입한 세계 최초의 국가가 되었다.
▲ 동성결혼식을 하고 나서 기뻐하고 있는 동성 부부들

일찍이 동성애는 근친상간과 함께 수천 년 동안 지속해 온 금기였다. 초기 기독교는 간음과 매춘은 물론이거니와 출산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부부의 성관계도 죄악시했을 정도였으니 동성애에는 더 완고한 입장을 취했던 것이다.
 
기독교에서 남색을 의미하는 낱말, ‘소도미(sodomy)’를 성경 창세기에 나오는 악명 높은 죄악의 도시 소돔(sodom)에서 따올 정도였다. 신은 성적 문란과 도덕적 퇴폐로 더럽혀진 소돔을 유황불을 내려 멸해 버린다. 기독교에선 동성애를 신의 권능에 대한 도전 행위로까지 여기곤 했다고 한다.
 
르네상스 이후 근세를 거치면서 동성애에 대한 억압은 더욱 심해졌다. 가문 간 경쟁, 정략결혼, 활성화되는 경제에 따른 인구 증가의 필요, 전쟁 등 시대적 요인들 때문에 동성 결혼은 수면 밑으로 잠복할 수밖에 없었다.
 
동성결혼 허용은 세계적 추세지만 한중일은 아직
 
동성애에 관한 연구가 계속되어 왔지만, 그 성적지향의 원인은 명쾌하게 해명되지는 않고 있다. 동성애자의 성적지향은 ‘선택’되는 게 아니라 유전자에 의해 결정되는 것으로 본다. 따라서 타인이 개입해서 성적지향을 바꿀 수 있다는 증거는 충분하지 않다.
 
이는 동성애가 질병이 아니며, 변태적 성욕과도 연관되지 않는다는 강력한 증거로 이해된다. 동성애는 정상적이며 자연스러운 ‘차이점’일 뿐 부정적인 심리의 원인이 되지 않는다. 동성애 관계는 심리학적인 측면에서 이성애 관계와 ‘동등’하다. 이상이 지금까지 밝혀진 동성애에 대한 논의의 핵심이다.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동성결혼은 이미 세계적으로 그것을 법적으로 허용하거나 시민결합, 또는 사실혼의 형태로 우회적으로 허용하는 국가들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그런데도 여전히 일부 지역이나 국가에서 동성 결혼은 처벌의 대상이 되어 중범죄로 다루어지고 있다.
 
중동을 비롯한 이슬람권 국가에선 이슬람의 교리나 관습에 따라 동성애는 중범죄로 처벌되고 있으며 아프리카의 일부 기독교 국가에서도 마찬가지다. 러시아는 2013년에 ‘동성애 선동 금지법’을 제정하여 공공에 대한 성소수자 인권 증익 운동을 불법으로 규정하여 징역 또는 벌금형에 처하는 범죄로 다루고 있다.

보수적 유교문화권인 아시아에서도 상황은 그리 좋지 않다. 그것을 범죄로 간주하지 않을 뿐 지탄과 차별의 대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아시아 국가 가운데 가장 이 문제에 관한 가장 앞서가는 나라는 네팔과 대만이다.
 
네팔은 윤리적, 종교적으로 동성결혼이 금지되지는 않았다. 2007년 성 소수자에게 동등한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대법원판결이 나온 이후 트랜스젠더(성전환자)를 ‘제3의 성’으로 신분증에 표기할 수 있게 하는 등 성 소수자 정책에서 적극적 태도를 보인 바 있다. 또 지난해에는 동성결혼을 합법화해야 한다는 정부 위원회의 보고서가 제출된 바 있다.
 
대만은 2003년에 처음으로 ‘동성결혼 법안’을 만들었으나, 번번이 의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2016년 총통 선거에서 동성결혼을 지지하는 차이잉원(蔡英文) 후보가 당선되었고 지금은 입법부에 동성결혼 법안이 상정되어 있는 상황이다.
 
중국에서는 올해 동성결혼 허용 소송이 법정에 올랐다. 한 남성 동성애자 부부가 혼인 등기를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일본에서는 2015년 도쿄의 한 자치구에서 처음으로 동성 커플에게 결혼한 것과 거의 동일한 효력을 지닌 증명서 발급 조례를 만들었다. 물론 부부와 같은 수준의 법적인 효력이 있는 것은 아니다.
 
일본에선 동성 커플이 일반화되어 있다고 한다. 그런 사회 분위기는 멋진 소년들의 동성애를 다룬 만화가 여성 마니아층을 형성할 정도다. 그러나 일본 정부 입장은 여전히 완고한 듯하다. 아베 총리는 올 2월 국회에서 ‘가정의 존재방식 근간에 관한 문제’라며 반대 의사를 분명히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동성 부부의 법적 권리를 인정해달라는 국내 첫 소송이 진행 중이다. 2013년 동성결혼식을 공개적으로 치른 영화감독 김조광수는 지난해 7월, ‘동성 혼인신고를 인정해 달라’며 지방자치단체를 상대로 소송을 낸 것이다.

2001년 네덜란드에서 동성결혼을 합법화한 이래 벨기에(2003), 스페인·캐나다(2004), 남아공화국(2006), 노르웨이·스웨덴(2009), 포르투갈·아이슬란드·아르헨티나(2010), 덴마크(2012), 브라질·프랑스·우루과이·뉴질랜드(2013), 룩셈부르크·미국·아일랜드(2015) 등이 뒤를 따랐다. 2017년부터 허용하기로 한 핀란드를 포함하면 19개 나라다.
 

일부 지역에서만 동성결혼을 허용한 나라로는 멕시코와 영국이 있다. 멕시코는 멕시코시티 등 6개 지역에서, 영국은 스코틀랜드, 웨일스, 잉글랜드에서 동성결혼을 허용하고 있다. 이스라엘과 몰타 등 5개 나라는 해외나 다른 지역에서의 동성결혼을 법적으로 용인하고 있다.
 
법적 허용의 전 단계라고도 할 수 있는 시민결합 허용국가는 독일과 스위스, 프랑스 등 22개국, 일부 지역에서의 시민결합을 허용하고 있는 나라는 덴마크와 미국 등 4개국이다. 사실혼을 허용하고 있는 나라도 오스트레일리아 등 4개 나라다. 2016년에도 독일과 오스트리아, 스위스, 헝가리, 북아일랜드에서 동성결혼 제도의 입법화가 논의 중이다.
 
LGBT 운동가들은 시민결합을 두 가지 측면으로 인식한다. 동성결혼의 합법화로 가는 ‘과도기적 형식’이라는 점은 긍정하지만 ‘동성결혼에 대한 대안’으로서는 반대하는 것이다. “시민결합은 동성 커플을 보편적인 ‘결혼’에 포섭하지 않고 ‘시민결합’이라는 차별적이고 모호한 제도로 수용하여 성 소수자 운동이 애초 목표로 삼았던 평등화의 원칙에서 벗어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미국의 동성결혼 합법화
 
미국에서의 동성결혼 합법화는 동성결혼이 미국 수정 헌법 제14조에 따른 기본권에 속하는지에 대한 미국 연방 대법원의 판결로 이루어졌다. 2003년 매사추세츠주 법원의 동성결혼 허용 판결 이후 도입된 동성결혼 제도는 이후 각 주가 자체적으로 동성결혼을 허용하기 시작하였다.
 
2013년 6월 연방 대법원은 결혼을 남녀 사이에서의 결합만으로 한정해 동성결혼 커플이 세금·주택·보건 등 연방 혜택 부여 대상에서 제외되었던 ‘결혼보호법’(1996년 제정)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당시 판결은 동성결혼을 인정하지 않는 주에 대해서 동성결혼을 인정하도록 하는 구속력을 갖지 않았다.
 
2년 뒤인 2015년 6월 26일, 미연방대법원은 “동성결혼은 헌법이 정하는 기본권이자 사회 질서로서 존중되어야 하고, 개별 주 차원에서 동성결혼을 금지할 권한이 없다.”라고 판결함으로써 미국 전역에서 동성결혼이 합법화되었다.
 
레이건 대통령에 의해 임명된 중도적 성향의 현직 연방대법관 앤서니 케네디(Anthony Kennedy)가 이 판결에서 캐스팅 보트를 행사함으로써 세계에서 21번째 동성결혼 허용국가가 되는 진보적 결정을 주도했다. 그는 합법화 결정문에서 “결혼은 수천 년간 문명사회에 존재했던 제도이지만 과거가 현재를 지배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결혼보다 심오한 결합은 없다. 결혼은 사랑, 신의, 헌신, 희생 그리고 가족의 가장 높은 이상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혼인 관계를 이루면서 두 사람은 이전의 혼자였던 그들보다 위대해진다. 이들 사건의 일부 상고인들이 보여주었듯이, 결혼은 때로는 죽음 후에도 지속하는 사랑을 상징한다. 동성애자 남성들과 여성들이 결혼이란 제도를 존중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그들을 오해하는 것이다.

그들은 결혼을 존중하기 때문에, 스스로 결혼의 성취감을 이루고 싶을 정도로 결혼을 깊이 존중하기 때문에 청원하는 것이다. 그들의 소망은 문명의 가장 오래된 제도 중 하나로부터 배제되어 고독함 속에 남겨지지 않는 것이다. 그들은 법 앞에서 동등한 존엄을 요청하였다. 연방헌법은 그들에게 그러할 권리를 보장한다.
    - 2015년 6월 26일, 미국 연방대법관 앤서니 케네디

▲ 서울 퀴어문화 축제장의 풍경 둘. 찬성과 반대가 극명하게 갈리는 게 한국의 상황이다. ⓒ 경향신문
▲ 성 소수자를 배려하고 있는 호주와 일본의 예. ⓒ 허핑턴포스트

늘 미국을 표준으로 삼는 관행에도 불구하고 성 소수자 인권 문제에 대한 우리 상황은 만만치 않다. 특히 기독교계 등 일부 보수 세력은 성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면서 성 소수자 인권 제고와 관련 법안의 입법 등 제도화를 가로막고 있다. 2007년 입법 예고되었으나 10년이 가깝도록 표류하고 있는 차별금지법은 그 단적인 예다.
 
숫자로 성별구분 주민번호도 인권침해
 
‘성적지향·성별정체성 법정책연구회(SOGILAW)’가 간행한 ‘한국 LGBTI 인권현황 2014’의 우리나라의 무지개 지수(유럽 대비)는 12.15%로 심각한 인권침해와 차별 쪽에 치우쳐 있다. 우리나라보다 지수가 낮은 나라는 우크라이나, 모나코,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러시아 등 5개국밖에 없다.
 
그나마 이 지수는 2013년보다 3% 포인트 하락하였다. 이유는 2013년에는 없었던 성 소수자 인권재단의 설립 허가 거부, 공공행사 장소 사용 불허 등 집회·결사의 자유를 침해한 사건 등이 2014년에는 여러 차례 발생했기 때문이었다.
 
4·13 총선을 앞두고 <허핑턴포스트>는 3월 28일, 트랜스 젠더의 투표 참여 문제를 다룬 기사를 실었다. 우리의 “숫자로 성별 구분하는 주민등록번호 제도가 트랜스 젠더 등 소수자의 인권을 침해한다”는 것이다. [관련 기사 : 많은 트렌스젠더들이 '이 문제' 때문에 투표에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 ]
 
우리네야 기사를 보고서야 그렇네, 하고 말지만 주민등록번호의 성별 표시가 차별이라는 이미 지난 1월에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소수자인권위원회,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진보네트워크센터 등 인권단체 연대 기자회견에서 밝힌 바 있었다.
 
“남성은 1번, 여성은 2번 등 홀수와 짝수로 주민번호를 구분하는 것은 부당한 성별 고정관념을 국가가 나서 강화하는 것”이고 “2005년 인권위가 초등학교 출석부 번호에서 남학생에게 앞번호를 부여하는 것이 성차별로 판단한 것처럼, 숫자로 성(젠더)을 구분하는 것은 성평등에 어긋나는 것”이라는 것이다. [ 관련기사 바로 가기 ☞ ]
 
성 소수자는 말 그대로 소수(마이너리티 minority)다. 최소한 우리가 일상에서 늘 만날 수 있는 이웃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래서 그들의 삶과 사랑에, 그들의 성적 지향에, 그들의 아픔과 분노에 우리는 무심하다. 쉽게 공감하지 못한다.
 
그러나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멀리 있는 이들의 아픔과 분노를 보듬을 줄 아는 것이 진짜 ‘공감’이다. 같은 사물을 바라보면서 그것을 이해하는 가장 관용적인 태도를 유지함으로써 우리는 궁극적으로 인류 보편의 이해와 인식에 이를 수 있으리라. 그런 뜻에서 소수를 포용하지 못하는 다수의 윤리와 도덕은 어쩌면 허위고 폭력일지도 모른다.
 
 

2015. 3. 30. 낮달

반응형
LIST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