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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욕정’을 못 이겨서?

by 낮달2018 2020. 11. 15.

▲ 아름다움은 흔히들 ‘욕망’으로 잘못 읽히기도 한다.

말과 이데올로기- 과부, 혹은 미망인

 

아이들에게 국어를 가르치다 보면 언어가 강력한 이데올로기를 갖고 있다는 걸 새삼 깨달을 때가 많다. 기본적으로 언어는 의사소통의 수단이지만, 그 이전에 세계를 이해, 인식하고 그것을 표현하는 매체이다.

 

연속적인 세계를 불연속적인 것으로 끊어서 표현하는 과정에서 언어는 그 운용자의 주관과 이해를 일정하게 반영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한 사회의 지배적 이념이나 태도가 시나브로 섞여 있다고 봐야 한다.

 

한국 사회에서 유난히 두드러진 ‘근로’와 ‘노동’의 대립은 바로 그런 현상의 좋은 보기다. ‘힘써 부지런히 일하다’라는 의미의 ‘근로’는 ‘몸을 움직여 일을 함, 사람이 생활에 필요한 물자를 얻기 위하여 체력이나 정신을 씀, 또는 그런 행위’를 뜻하는 ‘노동’에 비하면 훨씬 온건하고 친자본적(!)인 모양이다.

 

이 나라에서는 전 세계에서 쓰이는 보편적 개념인 ‘노동’ 대신에 굳이 ‘근로’가 쓰이고, 만국 노동자들의 날인 ‘메이데이’도 여전히 ‘근로자의 날’이니 말이다. 이 밀레니엄 시대에도 여전히 정부나 보수 사회의 관점은 여전히 5, 60년대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광부(曠夫)’, 혹은 ‘환부(鰥夫)’라는 낱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그게 낯설다고 느낀다면 ‘홀아비’는 어떤가. ‘아내를 잃고 혼자 지내는 사내’를 ‘홀아비’라 하지만, 광부라거나 환부라는 어휘는 거의 쓰지 않는다. 반면에 ‘남편이 죽어 홀로 사는 여자’인 ‘홀어미’는 ‘과부(寡婦)’, ‘과수(寡守)’, 또는 미망인(未亡人)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린다.

 

지금이야 ‘미즈(Ms.)’가 널리 쓰이지만, 영어권에선 ‘혼인 여부’로 여성의 호칭을 구분해 썼다. 미혼 여성을 ‘미스(Miss)’로, 기혼 여성을 ‘미시즈(Mrs.)’로 쓰면서 정작 남성은 그걸 따지지 않고 ‘미스터(Mr.)’로 통칭한다. 그런 언어 관습 속에는 여성을 혼인 여부에 따라 차별하겠다는 지배적 남성 사회의 의도가 숨어 있다.

 

홀아비를 이르는 한자어가 널리 쓰이지 않는다는 것은 현실에서 그 낱말의 쓰임새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굳이 홀아비 대신 한자어를 써야 하는 상황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봐도 무방할 만큼 말이다. 배우자를 잃은 사람을 이르는 말이 남녀별로 달리 쓰이는 것은, 그 실존을 바라보는 시선과 관점이 다르다는 뜻으로 읽어야 한다.

 

‘과부’와 ‘과수’, 그리고 ‘미망인’이라는 낱말 속에 숨은 이데올로기는 물론 남성중심주의다. 이 낱말을 규정짓고 있는 기준은 ‘남편의 존재 여부’다. ‘과부’와 ‘과수’의 ‘과(寡)’는 ‘적다’라는 뜻이니 ‘남편을 잃은 상태’를 이르는 것이고, ‘부’와 ‘수’는 각각 ‘지어미’와 ‘정조 지키기’를 뜻한다. 지아비를 잃은 지어미에게 세상은 ‘수절(守節)’을 요구하는 것이다.

 

‘미망인(未亡人)’은 한술 더 뜬다. ‘죽지 않은 사람’이라는 뜻의 이 낱말이 뜻하는 죽음이란 일종의 당위다. 마땅히 ‘남편과 함께 죽어야 할 목숨’이나 그러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니 말이다. 정려문(旌閭門)이란 곧 조선조 여인 잔혹사라는 비아냥거림의 속뜻이 짚어지는 낱말이 된 이유다.

 

▲ 여성주의 저널 <일다> 누리집

‘욕정’은 부적절한 표현

 

경우야 조금 다르지만, 법원의 성폭력 사건 판결문에 흔히 쓰이는 ‘욕정(欲情)’이란 표현도 비슷한 남성 중심주의적 뉘앙스를 강하게 풍기는 낱말이다. 여성주의 저널 일다(http://www.ildaro.com/)의 기사에 따르면 이는 ‘가해자의 변명을 옹호’하는 언술로 매우 부적절한 표현이다. [관련 기사 : 성폭력 판결문에 “욕정” 표현은 부적절]

 

“칠순 노인의 ‘빗나간 욕정’이 낳은 살인 참극”
“피해자의 모습을 보고 순간적으로 욕정을 느껴 피해자를 강간하려다…”
“이야기를 하던 중 욕정을 느껴 A씨를 폭행한 뒤…”
“욕정을 채우기 위해 집안에 들어가 여고생을 성폭행하고 숨지게 한 혐의…”

성폭력 사건을 보도하면서 언론은 일종의 관습적 표현처럼 ‘욕정’이란 표현을 쓰곤 한다. 그러나 이는 ‘감정적’이고 ‘비논리적’이고 ‘공문서’에 사용하기에는 부적절한 낱말이다.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는 성폭력 사건 판례와 사법연수원 교육자료의 분석 결과를 발표하면서 법정 문서에서 ‘욕정’이라는 문구를 삭제하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법조계 전문가들도 ‘욕정’이라는 문구가 ‘가해자의 범행 동기나 범죄 원인’으로 관례처럼 사용되는 것은 부적절하고 편파적일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한다. 이들은 우리나라에서는 이러한 표현이 “성범죄의 수사 과정부터 기소, 재판에 습관적으로 사용되고 있다”라고 지적한다.

 

          ▲ 여성 시각의 법 담론서. ⓒ 일다

경찰대 표창원 교수는 영국, 미국 등에서는 성범죄 사건 서류나 기록에 가해자의 범죄 동기나 원인과 관련하여 ‘욕정’이란 절대 사용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또 ‘미리 범인의 범행 고의성 혹은 계획성을 배제하는 이러한 용어나 표현을 판결 전에 수사기관이나 기소 기관, 법원에서 사용한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라고 지적한다.

 

이는 판결문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런 이유로 표 교수는 “국가 형사사법 절차 내에서 ‘욕정을 참지 못하고’ 같은 부적절하고 비과학적이고, 편파적이고 차별적인 표현은 영원히 사라져야 한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뒤틀린 ‘여성관’

 

전문가가 아니라도 ‘욕정’이란 낱말의 함의는 좀 복잡해 보인다. ‘욕정을 못 이겨’라는 표현은 그것이 계획된 범행이기보다 우발적·충동적 행위라는 의미를 강하게 내포하고 있다. 또 그 표현은 피해자의 존재를 전제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문제가 많다. 이것은 마치 범행의 원인을 피해자가 제공하고 있다는 뉘앙스를 은근히 내비치는 셈인 것이다.

 

이는 ‘심야 외출’이나 ‘노출 복장’ 따위를 언급하면서 성폭력 피해자를 나무라는 사회적 분위기와 일정한 연관을 갖는다. 또 더 큰 문제는 ‘영웅호색’ 운운하면서 ‘욕정’을 남자들의 자연스런 성정으로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뒤틀린 여성관에 있다. 거기에서는 마치 여성 앞에서 욕정을 느끼는 게 인지상정인 것처럼 인식하는 마초증후군(macho syndrome)의 기미조차 느껴지는 것이다.

 

여성민우회는 성폭력의 범행 동기나 목적도 타 범죄와 마찬가지로 ‘강간할 의사를 가지고’나, ‘강간할 목적으로’ 등으로 기술하는 것이 더욱 적절하고 명확한 표현이라고 지적한다. 당연한 지적이다. 어떤 경우에도 성폭력이 ‘남자다움’이라는 왜곡된 성역할에 기대어 그 죄의 크기나 무게를 줄여서는 아니 된다는 것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학교에서는 한때 무심코 써왔던 ‘결손(缺損) 가정’이라든가, ‘편모(偏母)’나 ‘편부(偏父)’ 따위의 낱말을 쓰는 걸 무척 조심스러워한다. ‘결손’이 제 뜻을 갖추려면 양친이 있는 경우를 잣대로 삼아야 한다. 그러나 가족의 형태를 다양하게 인정하고 있는 이 세기의 가정을 묵은 잣대로 가를 일은 이제 없어졌다. ‘한 부모 가정’이란 새로운 낱말이 그런 시대를 반영하는 새말로 바야흐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언어에 포함된 이데올로기와 주관적 이해를 하나씩 바꾸어 가는 과정은 아직도 만만찮은 일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세기에도 여전히 그늘을 드리우고 있는 전근대의 형식과 내용에서 온전히 벗어나는 출발점이라는 건 두말할 필요도 없을 터이다.

 

 

2008. 1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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